인터뷰

〈다크니스 품바〉 장기 공연한 김재덕 2
새 시대 춤 품바, 유례없는 춤 팬덤이 오고 있다
  • 일    시
    2019년 4월 28일(일) 오후3시
  • 장    소
    카페 두다트(서울 연남동)
인터뷰│김채현_〈춤웹진〉 편집장




 




전세계 39개 도시와 만나다

김채현: 이어서 〈다크니스 품바〉의 해외 순회 공연뿐 아니라 품바 소재를 택하게 된 동기나 보완할 점, 그리고 김재덕 씨가 감독하는 모던 테이블 단체의 창작 방식, 음악적 소양을 쌓게 된 내력 등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다크니스 품바〉뿐 아니라 우선 해외에서 공연한 지역부터 헤아려 보았으면 한다.

김재덕: 아랍권에선 이집트 카이로, 아부다비, 오세아니아 쪽에선 호주 시드니, 뉴질랜드 오클랜드, 웰링턴에도 갔었고. 미국에선 워싱턴, 디트로이트엘 갔다. 뉴욕, LA, 샌프란시스코에는 아직 못 갔는데, 계속 컨택 중이다. 유럽에는 스위스 바젤, 빈터투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그리고 독일은 한 번 CND에서 하는 거 슈퍼바이저로 갔었다. 그리고 2016년 런던 더플레이스에서 2회 공연했다. 더플레이스에서는 문화원에서 K뮤직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피날레를 무용으로 하기로 해서 더플레이스와 손을 잡고 공연하였다. 전세계 39개 도시에서 공연한 것으로 정리된다.

김채현: 39개 도시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으로는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 아까 ‘체홉 페스티벌’ 이야기를 했는데, ‘체홉 페스티벌’은 2년 연속 초청을 받은 거였다.

김재덕: 맞다. 일본의 고베에서는 〈품바〉를 그쪽 무용수들로 만들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안무 개런티만 받고, 제가 체류해서 거기 무용수들로 〈신(新)다크니스품바〉를 만든 거다. 고베는 한국 사물놀이나 한국무용을 하는 한인들이 있었다. 그분들과 음악 콜라보레이션을 했고, 거기 프로덕션에서 오디션을 봐서 된 무용수들과 한 거다. 창은 안 사용했고, 민요나 그분들이 할 수 있는 음악으로 했다.

김채현: 아무튼 39개 도시를 돌면서 말하자면 춤 내지는 정서를 널리 전파했다고 볼 수 있는데, 춤으로써 했다는 사실이 잘 안 알려져 있다. 일 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국내에서 보기 힘들다.

김재덕: 작년엔 2월부터 5월까지 해외에 있었다. 스위스에서 한 달 기준으로 해야 할 것과 싱가포르에서 해야 할 것이 있어서 2주 스위스에 있다가 2주 싱가포르에 있다가 다시 2주 스위스에 있다가 2주 싱가포르에 있다가 다시 한국에 온 적 있다. 또 한국 와서 외국 나가고 홍콩도 갔어야 했고, 해외 공연을 오가면서 혼자 나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채현: 해외에서 객원 안무, 협업이랄까, 모두 몇 번 있었는가?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김재덕: 작품 개수만 14편이다. 기본적으로 내년에 홍콩 시립에서 해보자는 말이 있고 그거 말고는 싱가포르에서는 레지던스로서 T.H.E 댄스컴퍼니와 매년 한 작품을 올린다.

김채현: 싱가포르 반응은 어떠한가?

김재덕: 2009년 ‘인도네시아 댄스 페스티벌’ 끝나고 초청되었는데, 쉬 분은 2009년에 만든 작품을 보고 그 다음에 다시 초청을 하면서 레지던시 코레오그래퍼가 되었다. 제가 하고 있는 색깔이 마음에 들었고 T.H.E 댄스컴퍼니에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디렉터인 퀵 쉬 분은 이제 40대 중반으로 유럽으로 진출하고 있고 원래 스페인 국립무용단에 나초 두아토가 있을 때 수석무용수로 있었다. 움직임에 대해서 파고드는 성격인데, 싱가포르로 돌아와서 무용단을 만든 거다.

김채현: 그하고 근 10년간 작업한 셈이다. 국제적 인연을 쌓고 네트워킹 작업으로써 서로 꾸준히 10년 동안 하는 사례는 국내에서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싱가포르 작업을 조금 더 소개해 달라.

김재덕: 그와 만든 콜라보 작품만 2개이고, 나머지는 다 신작이다. 싱가포르에서 레지던시 기간은 기본 5주를 잡는다. 5주 동안 항공료, 개런티를 지급받는다. 그것 갖고 1년 생활할 수준은 아니지만, 적지 않은 개런티이다.








모던테이블 〈다크니스 품바〉 ⓒ김채현




품바, 판소리와의 인연

김채현: 왜 품바를 소재로 택했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검정과 연결시켜서 했다.

김재덕: 당시 좀 더 마음껏, 한국에서 가장 자유로이 무용을 할 수 있는 소재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던 참에 품바라는 소재가 생각이 났다. 그런데 애당초 공연 기획 주제가 ‘블랙’이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생각했다. ‘블랙’이라는 주제는 나중에 연관시켰다.

김채현: 품바라는 것을 이전부터 많이 접해본 적 있는가?

김재덕: 없었는데, 예전에 신해철 앨범 중 〈모노크롬〉 이라는 앨범을 고등학교 1학년 때 들었다. 넥스트 해체한 후에 나온 앨범이다. 거기에 신해철의 1번 트랙과 6번 트랙이 한국 음악 가락을 이용해서 현대적으로 테크노시켰고 ‘품바가 잘도 돈다’가 잠시 나오는데,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때 밴드하면서 힙합춤 추는, 두 가지를 다 할 때였는데, 어느 순간 품바가 생각나니깐 그 음악이 생각나더라. 그러면서 음악적 범주가 생겨 이런 식으로도 만들어보았다. 신해철은 하드락과 테크노의 융합을 넥스트 때 펼쳤었는데, 저는 하드락과 판소리의 융합을 해 볼까 그 생각을 했다.

김채현: 신해철 콘서트에 가본 적 있는가? 그리고 판소리는 왜 섞었는가?

김재덕: 음원을 들었다. 2006년 당시에 제가 이미 졸업한 상태에서 한국무용이나 한국 전통이 가진 것을 갖고 무언가를 꼭 해보고 싶었어요. 어릴 때부터 한국 락을 들으면서 중학교 때는 들국화와 산울림에 빠져있었다. 그런 음악들을 들으면서 외국 락을 들을 필요 없구나, 같은 드럼 베이스 기타인데 노래 방식과 이런 거에 따라서 우리나라적인 것을 할 수 있구나 해서, 우리나라적인 것을 하려는 꿈이 있었다. 한국적일 것 같은 것을 만들려 하다 보니 그런 색채를 자꾸 찾게 된 거다.

김채현: 상당히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눠야 할 부분인데, 너무 쉽게 단정할 부분은 아니지만 궁금한 점으로서 안무자 김재덕 씨가 음악적 소양이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하고는 있지만 대부분 잘 모른다. 음악적 소양이 있다고 했을 적에 어떤 측면에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작곡도 하는 줄로 안다.

김재덕: 뽕짝적 느낌을 좋아한다. 장르 중 락을 좋아하고, 그러나 컨템퍼러리화시키기에는 가요는 너무 대중적이다.

김채현: 김영길 씨하고는 작품 〈속도〉에서 아쟁으로 작업을 했었다.

김재덕: 아쟁 소리가 너무 독특하다고 느꼈다. 콘트라베이스나 첼로, 이런 악기와는 또 다른 정서가 있다. 내가 아쟁과 함께 춤춤으로써 김재덕이란 한국인이 더 두드러지게 보일 거라 생각하니깐, 그걸로 실험해보고 싶은 욕심이 났다.





김채현
: 자기 춤에 음악을 용해시키는 것이 중요한데, 앞으로도 기대된다. 단순히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하는 모든 것이 〈다크니스 품바〉에서 녹아 있는 것 같다.

김재덕: 사실 그렇다. 라이브 음악은 MR보다 좋고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떤 사람에게 노래일 수 있지만 저에게는 입으로 춤추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작곡할 때도 어떤 사람에게는 음악적 작곡일 수 있지만 저한테는 춤적 행위일 수 있다. 단지 음표를 가지고 춤추고 안무하는 것일 뿐라도 사실 저에게는 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김채현: 〈다크이스 품바〉의 다른 요소로서 밴드하고 소리꾼이 나오는데, 밴드하는 분과 소리하는 분과 춤을 맞출 때 어디까지 조율하는가?

김재덕: 모든 부분에서 조율한다. 예를 들어 이번 공연에서 마지막에 관객 퇴장용 음악이 나오는데, 갑자기 생각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 공연 때, “성훈아 이렇게 해봐” 그 다음에 “형민아, G키로 들어가봐. 아르페지오로 들어가 돼” “품바가 잘도 돈다” “즉흥적으로 해봐” 이런 식으로 즉석에서 라이브로 만들게 되었다.

김채현: 몸의 흥이랄까, 리듬을 공유하면서 안무자가 기본 리듬을 다 짜서 작곡을 조율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김재덕: 그렇다. 애초에 작품이 시작될 때는 제가 미리 작곡을 해놓고 들려준다. 그다음에 ‘필인’이 들어간다. 드러머 능력에 따라 채워지고, 노래도 가르친다. 제 노래이기 때문에 발음 할 때 양 옆으로 더 찢어서 부른다든지 발음과 입 모양까지 제가 컨트롤한다. 소리꾼과 밴드와 음악을 조율할 적에 기본적으로 안무자가 짜고 조율할 때 소리꾼과 밴드는 ‘필인’한다.

김채현: 그러면 판소리 가락에서는 어떻게 호흡과 음색을 조절하는가?

김재덕: 그렇다. 제 관점에서 현대화를 시켰다, 춤이 멋있어 보일 수 있게. 반주와 소리를 반대로 뽕짝처럼 부를 수 있겠으나, 여기서 춤의 멋이 좌우된다고 보았다.

김채현: 〈다크니스 품바〉의 이번 포맷이 기본 형태로 짜인 게 언제인가? 이번에는 예전에 있던 것이 어느 정도 조절 되었을지 모르겠는데….

김재덕: 기존에 있던 것을 가지고 하다가 본인들이 작품 속에 들어오다 보면 보인다. 그러면서 레게 연주 부분이 나오는데, 레게풍으로 해보겠다는 제안을 했고, 느낌이 더 좋았다. 작품의 지루한 감이 그런 식으로 더 사라졌다.

김채현: 2009년부터 국내외를 다니며 〈다크니스 품바〉를 해왔는데, 음악의 흐름에 기본 틀은 있으되 디테일하게 바뀐 부분은 더러 있을 것이다.






ⓒ모던테이블




김재덕: 당연하다. 바뀐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지금 대중 관객들에게 내놓을 법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지금 가진 어떤 작품은 시간을 넘기고, 어떤 거는 정서에서 다듬어야 하는데, 〈다크니스 품바〉는 그 조금의 기다림도 주지 않게끔 짰었다.

김채현: 기다림도 주지 않다는 것은 관객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뜻인가?

김재덕: 아주 잠깐 있을 것 같다. 어둡고 칙칙한 조명에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걸 관객들은 이제 알아보며, 안 보이니깐 조명 좀 밝게 하라고 한다. 〈다크니스 품바〉에는 그런 몇 가지가 절충 되었는데, 그래도 어두운 편이다.

김채현: 원래 발단이 ‘블랙’ 소재에서 왔는데, 개인적으로는 〈다크니스 품바〉의 제목을 손보았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김재덕: 한 연출가 선생님도 그러고, 어느 관객은 저녁에만 볼 수 있는 품바라 하고... 수용하기에 따라서는 걸림돌이 될 여지가 있을지도 모른다.

김채현: 다음에 어떻게 진화할지 모르겠지만 새 요소가 가미될 수 있을 듯한데, 혹시 생각해본다면 어떤 점이 있겠는지 듣고 싶다.

김재덕: 사실 공연 자체를 건드릴 생각은 별로 없는데, 이번에도 알아서 손보았고, 공연을 해가면서 큰 난관이 있지 않은 이상 그대로 할 것이다. 다만 홍보는 일찍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지원금의 타이밍이 홍보 기간과는 제대로 맞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기획사는 홍보만 좀 더 일찍 했더라면 수입을 더 올릴 수 있었겠다고 하더라. 모든 거래처와 그 모든 것이 이미 준비가 되었더라면 당연히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CKL 공모 결과가 늦었는데, 그거 기다리면서 미리 3천만 원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김채현: 재력 있는 기획사가 자신감을 갖고 하기 위해서는 확실히 보이는 게 있어야 하고, 이래저래 여건이 녹록치 않은데, 돌파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김채현




음악 수련 시기, 그리고 장기 공연을 꿈꾼다

김채현: 그럼 잠시 말머리를 돌려서, 판소리 〈적벽가〉를 왜 택했는지 궁금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김재덕: 23살 때 판소리 하는 친구와 다크니스 품바를 주제로 이렇게 만들었고, 여기서는 오르간 한 개 깔아놓고 판소리를 마음대로 편안히 조용필이 하듯이 해보고 싶어 어떤 게 맞겠는지 물었다. 그때 〈적벽가〉가 나을 것 같다고 들었는데, 〈적벽가〉가 조조하고 만나서 이런저런 일이 있는 부분이다. 단지 스토리일 뿐인데, 추상적으로 들어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조언을 받았다. 판소리 대목을 봤는데 또 괜찮을 것 같았다.

김재덕: 2006년이다. 〈적벽가〉를 잘 보면 남자들의 치열함, 억눌러짐, 경쟁, 만남, 전략 이 모든 것들이 들어가 있다. 어떻게 보면 두 번째 씬에서 보면 이리저리 움직이고 우리가 어떤 동작을 하고 그것과 어떻게 어우러질까를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깐 나중에는 다 덜어내고 〈찾아〉라는 곡이 어떻게 보면 객석에 무언가 전할 거라고 생각했다.

김채현: 〈찾아〉라는 곡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가?

김재덕: 제가 나중에 만든 곡이에다. 〈다크니스 품바〉를 하다보면 어떤 내용을 잘 극장/기획 측에 전달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키워드를 찾아야 했다. 2014년에 잘 생각해보니 키워드가 나오던데, 그 키워드가 ‘결여’였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그런 상태, 그에 대해 텍스트에 맞는 곡을 만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다.

김채현: 무엇을 채우기 위한 의미로서의 〈찾아〉인가?

김재덕: 여기서 보면, 내 속에다가 잡아 가지고 다 넣어야 하는 건데 때로는 우리는 정신적으로 그 어떤 것을 떠나보내는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을 토대로 이 가사를 만들었다.

김채현: 처음 2006년~2008년도에는 없었고 2015년부터 추가되었는가?

김재덕: 그렇다. 그때 이 곡이 만들어졌다.






ⓒ김채현




김채현: 본인이 춤을 추기도 하지만 공연 진행 중에 창을 함께 한다. 가창력이 엿보이는데 노래를 부른 다는 것, 가창 활동은 언제부터 했는가?

김재덕: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내에서 락 밴드 하면서 했었고, 중3때는 과천시민회관을 빌려서 했다. 보컬을 맡았다. 크라잉넛의 〈말 달리자〉에서는 제가 악기를 다루면서 불렀다. 락 콘서트를 중학교 때 한 번,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번, 딱 두 번 했다.

김채현: 락에서 제1보컬이었는가?

김재덕: 노래방에 가서 부르긴 싫고, 제대로 된 연주로 해보고 싶다 보니, 밴드 만들어서 리더가 됐다.

김채현: 2006년부터 〈다크니스 품바〉를 했으니까, 그때부턴 창을 계속 했을 것 같은데….

김재덕: 그전부터 제 어머님과 같이 블랙가스펠을 했었다. 피아노를 치시던 어머님께서 밴드를 만들었고, 그중에 한 친구가 드러머 허성은 씨다. 그래서 대학 2학년 때부터 가스펠을 했다. 각 교회 봉사활동에서 가스펠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제가 작곡한 곡도 부르고 찬송가 곡을 바꿔서 하기도 한다. 그런 때문에 작곡, 화성악이나 발음, 발성을 어머니께 배우게 되었다.

김채현: 발성 연습은 언제부터 했는가?

김재덕: 발성 연습을 배운 건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북경예술대 성악과를 나오셨고, 어머님께서는 함중아의 〈내게도 사랑이〉라는 노래를 받으셔서 어머니가 노래를 불렀고. 어려서부터 봐 오고 들었다. 그런 환경에서 음악 구성을 배우게 된 것 같다. 그냥 가요처럼 부를 수는 없는 점이 있었다.




ⓒ모던테이블




김채현: 무용을 보다 확장시키는 건데, 춤 공연의 일반적인 패턴을 벗어날 필요가 있고 그걸 처음으로 개척하려고 하니깐 힘들 것이다. 새로운 패턴이 필요하다. 끝으로 덧붙일 말이 있는가?

김재덕: 〈다크니스 품바〉를 이후에도 했으면 좋겠다. 수입을 창출하는 공연으로서 〈다크니스 품바〉를 꿈꾼다. 〈난타〉나 〈점프〉 정도의 지명도를 갖는 거로 해볼 의지는 있다. 상설공연도 만들고 싶다. 또 리더로서 단원들과의 관계에서 이렇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뜻도 있었다. 단원들은 돈 보고 일하는 건 아닐 것이고, 내가 모습을 달리 보여 준다면 단원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생각했었기에 다른 기획을 생각하고 팬덤을 만들려고 했었다.

김채현: 팬들이 여러 반응을 보였다는 인상적인 댓글을 소개하면 어떤 게 있을지?

김재덕: 〈다크니스 품바〉를 네이버에 검색하면 리뷰가 다 나온다. 뮤지컬 배우한테 물어봤는데 엄청 칼 같은 소감들이 뜬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걸 보니까 희망을 보게 된다.

김채현: 댓글 단 사람에게 답신을 보내면서 팬덤으로서의 주소록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재덕: 입소문이 날수록 몇몇 사람들은 인터파크에서 5만 5천원을 내고 티켓을 샀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수입의 역할을 했었다는 것이다. 처음엔 수천 만원 예산을 어떻게 해결하나 매일 부담스러워서 조금 힘들었다. 이젠 해방된 기분이고, 힘든 만큼 분명히 의미가 컸었다고 본다.

김채현: 다음 기회를 잘 맞이하기 바라며,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린다.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를 비롯 다수의 논문,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다.​​ ​ ​​ 

2019. 06.
사진제공_김채현, 모던테이블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