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댄스씨어터 창 〈바늘〉
사각 키워드, 융복합의 총체극
이만주_춤비평가

 안무가 김남진의 춤 작품은 늘 궁금하다. 그는 한국 현대 춤계에서 문제 작가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문제 작가라는 뜻은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라는 뜻의 나쁜 의미가 아니다. 그가 무용가로서는 색다르게 늘 춤으로 역사와 사회, 환경보존에 대한 문제의식을 일반인들이 이해하도록 쉽게 제기하고 항상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기 때문에 그렇게 일컫는 것이다.
 그의 춤 작품에는 다듬지 않은 거칠음이 있다. 어찌 보면 작품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작은 규모의 작품에서도 늘 기발한 상상으로 다양한 실험과 연출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름의 사색과 함께 공부하며 다음 작품을 연구하고 구상하는 것 같다.
 2014년 9월 19-2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김남진의 <바늘>은 인성교육보다는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맞추어야 하는 입시 교육에 시달리는 한국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초상을 다룬 춤 작품이다. 입시 공부의 스트레스를 폭력으로 풀고, 자극적인 그 무언가에 중독된 청소년들의 정신 상태를 ‘날카로운 바늘’로 치부하고 그 정신 상태가 빚어내는 불안정한 모습들을 그렸다. 네 명의 남자 무용수를 등장시켜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 가상의 게임과 현실을 혼동하는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실상을 춤과 연기로 표현하게 했다.




 그는 이 작품을 위해 사각이라는 키워드를 사용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사각의 아파트에서 살며, 사각의 TV를 보며, 사각의 교실에 갇혀 있고, 사각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사각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에는 무대 바닥을 완전히 덮을 수 있는 정도의 수많은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의 두꺼운 스티로폼 널빤지가 오브제로 사용되었다.
 그 널빤지들을 밀고 치우고 세우면서 다양한 장면과 연출이 이루어졌다. 송곳으로 널빤지에 그리고, 긋고, 송곳을 꽂는다. 널빤지를 두들기고, 각자 널빤지로 버나돌리기를 하고, 두 장으로 기요틴을 흉내 내기도 했다. 제식훈련과 같은 군대놀이, 옷 벗고 하는 싸움놀이, 무당 칼 갖고 춤추며 무당놀이를 했다. 청소년들을 연기하고 춤추는 출연자들은 정서불안에 좌충우돌하는 정신없는 상황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세워진 널빤지들 위에 사람 모습의 영상 이미지가 비춰지고, 도시의 사각 빌딩 숲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주는 등, 영상 이미지들이 연출에 과감히 사용되었다. 사실은 뒤돌아서 무언가를 깎고 있지만 잠시 동안, 청소년들의 자위행위로 착각하게 하는 장면과 미켈란젤로의 조각 다비드 영상이 조명과 어우러져 여러 효과를 내는 절묘한 연출이 관객들의 흥미를 돋았다. 실로 한 시간이 숨 가쁘게 진행되기에 관객이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지막 장면은 네 명의 출연자가 각자 직사각형의 스티로폼 위에 누웠다. 이때의 직사각형 스티로폼은 문득 관을 연상시켰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들의 자살율도 만만치 않다. 직사각형의 널빤지에 누움으로서, 죽음으로 편안함을 얻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동경이 있음을 암시했다. 섬뜩해지면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남진은 “부모의 몰이해와 왜곡된 사랑에 고통 받고, 사회적 억압에 짓눌려 대못(Spike)으로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찌른 17세 소년, 앨런 스트랭(Alan Strang)의 내면의 심리를 다룬”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연극, <에쿠우스>(Equus)에서 안무와 연출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했다. 앨런을 진료하는 소년정신과 의사인 마틴 다이사트(Martin Dysart)가 앨런과 만나면서 현실로부터 점점 유리되어 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듯이 청소년들의 불안과 방황은 우리 어른들의 내면에도 깃들어 있다. 단지 감추어져 있을 뿐이다.




 가끔 춤이 추어지기도 하지만 작품 <바늘>은 대사, 노래, 괴기스러운 장면, 연극적인 요소, 퍼포먼스 아트 같은 요소가 버무려져 춤 작품이라기보다는 융복합의 총체극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유려하게 정리된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기에 좀 더 다듬을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 김남진 춤 작품의 매력이자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4. 10.
사진제공_댄스씨어터 창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