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정현진 〈카르페 디엠〉
축조 방식의 구성에 깃든 여운
김채현_춤비평가

 신진 세대 안무가 정현진은 분석적인 발상으로 춤을 뒷받침하는 면모를 보인다. 근자에 있은 그의 공연 <카르페 디엠>(4월 9-1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움직임을 건축적으로 축조(築造)하면서 춤을 전개하는 방식이 뚜렷하였다. 지난 1, 2년 사이에 발표한 2편과 이번의 신작 1편 등 3편의 소품이 올려진 <카르페 디엠> 공연에서 이번의 신작도 <카르페 디엠>이었다.
 신작 <카르페 디엠>은 이전의 <다섯 가지의 법칙>과 <뒤바뀐 새벽>에 비해 내용이 선명하지 않다. 캐주얼한 바지와 짧은 티를 착용한 두 여성과 세 남성은 서로 간에 감정상의 거리를 유지하는 가운데 접촉과 분리를 이어나간다. 카르페 디엠은 훗날은 기약할 수 없으니 오늘 지금의 순리를 따르라는 라틴어 경구이고, <카르페 디엠> 역시 이를 기조로 한다고 설명되었다. 작품 설명에 덧붙여지는 다깡, 양꼬치, 뚜시, 백상아리, 황비홍 같은 다소 생소한 낱말들이 작품에 접근하는 열쇠말로 제시된다.




 전자기타와 가벼운 허밍, 타악이 배경 음악으로 흐르는 가운데, 다섯 출연자들 사이의 절제되면서도 균형잡힌 그룹핑과 분리가 보기에 부담 없이 이루어진다. 그렇긴 해도 <카르페 디엠>의 내용을 쫓으며 공감하기는 여의치 않다. 안무자가 의도한 것과 객석에 전달되는 것 간의 불일치 현상은 얼마든지 용인되는 일이지만, 나로서는 안무자가 의도한 것을 객석이 간파하도록 유도하는 바가 <카르페 디엠>에 추가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다섯 가지의 법칙>은 3편의 공연작 가운데 가장 이색적이고 정제되어 있었다. 5명의 남녀 출연진이 검정 반바지와 민소매의 짧은 원피스를 걸치고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출연진들 간의 접촉은 전혀 없었고 각자 자기 움직임에 열중하지만 그들은 느긋이 흐르는, 뒤로 갈수록 점차 빨라지는 피아노 반주에 움직임을 내맡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 소품에서 안무자는 조합(組合)이라는 착상에서 이 작품을 진행시킨다고 밝혔다. 여기서 조합이란 순열조합에서의 그런 조합으로 풀이되는 것으로서, 하나의 동작과 또 다른 하나의 동작이 조합해서 제3의 동작이 산출되는 현상이 그에 해당한다. 요컨대 5명의 출연자가 각자 다른 동작을 가지며 이들 다른 동작들이 순열조합 식으로 조합되는 양상을 춤으로 전개시킨다는 의도가 설명으로 제시되었다.




 <다섯 가지의 법칙>에서, 그러나, 조합의 뜻은 일견 불투명하다. 왜냐하면, 조합은 동시적 병존으로 읽힐 가능성과 융합으로 읽힐 가능성을 함께 갖는다. 그리고 5명의 출연진이 각자 가진 동작, 즉 조합되기를 앞둔 동작으로서 원석(原石) 같은 동작이 5가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식별해내기가 용이하지 않다.
 이상의 불투명성에도 불구하고 이 소품에 몰입할 수 있다면, <다섯 가지의 법칙>이, 우선 앞서 주목한 대로, 검정색 기조의 무대를 배경으로 기다란 정사각 패턴의 플로어 조명 박스 속에서, 간략히 말해 바로크적인 결이 감지되는 정제된 움직임과 구성을 펼쳐 보였기 때문이다.
 손정현·이세승·김지혜·김정수·박지은, 다섯 출연자들의 가다듬은 동작과 가지런한 구성 속에서 춤꾼들의 사지는 생동감 있게 반짝인다. 안무자도 밝혔듯, 론도 형식으로 움직임들이 반복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다섯 가지의 법칙>에서는 움직임 자체를 따라가면서 그 질감을 격조있게 음미할 수 있다.




 심야는 특히 오늘날 도회인들이 자신을 응시하는 유일한 시간대일지 모르겠다. 그만큼 하루의 대부분 그 무엇들에 쫓기는 세태가 쉽사리 연상된다. 이 시간대는 그러므로 실존적인 성격이 강할 때일 것 같고, 안무자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뒤바뀐 새벽>을 안무한 듯하다. 안무자 자신과 이제성, 둘이 출연한 이 작품은 동일한 동작과 정서를 마치 거울에 비추는 것처럼 일심 동체로 전개하였다.
 거울에 비추는 듯한 그런 방식이 작품에서 시종일관 지속되리라고 예상한 관객은 없을 것이다. 실제 그런 공연은 흔치도 않고 자칫 식상함을 주기 마련이다. <뒤바뀐 새벽>에서는 작품 중반 이후 둘의 동일성이 시종일관 지속된다는 점이 확실히 감지되고부터 더욱 흥미를 끌게 된다.
 <뒤바뀐 새벽>에서 새벽은 뒤바뀌지 않았다. 뒤바뀔 가능성은 일종의 예상인데, 뒤바뀔 가능성을 은근히 예시한다는 점에서 작품의 호소력은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커진다. 두 출연자 가운데 한 사람은 흑색 슈트를, 다른 사람은 백색의 짧은 바지와 셔츠를 걸쳤다. 여기서 흑과 백의 대조는 안무자가 염두에 두었듯이 죽음과 탄생을 은유하는 것으로도 보이고, 또한 동일한 동작과 정서는 흑백이 어떤 일상인의 양면성, 다시 말해 우리들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같은 상징성을 <뒤바뀐 새벽>은 잔잔한 피아노 음향을 배경으로 다양하게 연속되는 절제된 움직임들로 구현하였다. 흑백은 하나가 하나를 따라 하였고(반복하였고) 서로 만나 엉켰다 풀어졌다. 어느 순간에는 흑이 백의 목을 감싸 안았다가 나중에는 백이 흑을 감싸 안는다. 그런 흐름들 끝에 두 출연자는 서로 마주 보며 상체를 맞대고 양팔로 상대방을 감싸 안은 상태를 만든다. 죽음과 탄생이 만나는 이 시점에 나는 어디로 기울어질까. 긴 여운을 남기는 소품이다.
 소품들로 구성되었지만 이번 공연에서 정현진은 감정의 흐름을 앞세우기보다는 춤의 구축적(構築的)인 흐름에서 느낌을 호흡하도록 하였으며, 그의 춤은 전체적으로 보아 상당히 반성적이다. 소품 <카르페 디엠>에서처럼 보완할 점도 분명해 보이더라도 작품을 급하게 펼치기보다 공을 들여 축적해가려는 의지는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4. 05.
사진제공_김채현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