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의학의 시각: 춤의 세계 - 그림의 세계 4
당시 오페라극장 내 부패의 실상 폭로한 작품
문국진_원로 법의학자

에드가 드가는 허구한 날 무희 그림을 많이 그려 무희 화가로 알려졌다. 따라서 그의 무희 그림은 그녀들과 친밀하지 않으면 도저히 포착할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아마 드가는 처음부터 무희들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했던 것은 아니며, 그는 고전음악을 아주 좋아했고, 오페라극장의 관현악단 연주자들과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오페라극장에서의 공연을 자주 관람하게 되었으며 특히 화가로서 형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발레공연이 곧 움직이는 드로잉이라 느껴 더욱 더 매혹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드가는 오페라극장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연간 회원권을 구입했다. 당시는 상류층 사람들만이 연간 회원권을 구입할 수 있어 오페라극장의 주요 좌석을 차지했다. 그들은 단순히 공연을 볼 수 있는 1층 앞자리나 귀빈석뿐만 아니라 무대 옆 공간이나 기둥 사이사이의 은밀한 공간, 공연 시작 전이나 막간 혹은 끝나고 나서 무희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무희휴게실 등에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특권이 부여돼 있었다. 드가 역시 무대뿐 아니라 탈의실, 대기실, 연습실 등 무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쫓아가서 스케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무대 뒤의 은밀함’이란 무희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과 관련된다. 당시 무희들은 주로 가난한 집 출신의 소녀들로서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정식교육을 받지 않아 글을 읽거나 쓸 수 없었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많은 수업과 힘들고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무희들의 어머니들 또한 인고의 세월을 보내기는 마찬가지였는데, 그들 중 대다수가 아무도 택하지 않은 세탁부들이었다. 그렇게 더러운 일을 해도 생활해 나갈 수가 없게 되자 딸을 무희로 키우는 것만이 가난을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늘 딸의 행동을 주시하였는데, 그것은 딸의 처녀성을 지켜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비싼 값을 부르는 후원자를 찾을 때까지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돈 많은 후원자들은 무희를 마치 우리에 갇힌 사냥감이나 시녀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드가 〈막〉(The Curtain)(1880), 개인 소장




 드가의 작품 〈막〉(The Curtain, 1880)이라는 그림을 보면 공연시간에 무대막이 오르기 시작하자 여러 명의 검은 옷의 정장을 한 남성들이 무대 앞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들의 목적은 보다 가까운 위치에서 발레 감상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무희가 자기의 이성 상대로 적합한지 고르기 위한 것이었다. 즉 이들의 대부분은 사회 상류층으로서 연간회원들이라 이 극장의 어디이건 출입이 가능한 특권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보는 현상으로 이들이 마치 사냥개가 노획짐승을 찾는 것과 같은 행동에 분노를 느낀 드가는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드가 〈범죄형 관상〉(Criminal Physiognomies)(1881), 개인 소장




 이들 가운데는 실제로 사회의 상류층 인사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희들의 어머니와 흥정해서 무희에 대한 권한을 싸게 사서 무희와의 교제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비싼 값으로 매매하고나 아니면 사창굴에 마치 물건을 파는 것처럼 팔려는 악독 포주들도 있어 이를 보다 못한 드가는 그러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범죄형 관상’(1881)이라는 화제를 달았던 것이다.
 당시 극장에서는 이런 일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었지만 발레를 계획하고 집행하는 실무진에서는 무희들의 모습을 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선보이기 위해 그 분장실에서는 무희들의 무용복을 보다 우아하게 단장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드가 〈드레스 룸〉(1878년경), 개인 소장




 드가의 작품 〈드레스 룸〉(1878경)을 보면 두 명의 무용복 재단사가 이미 만들어진 무용복을 입히고는 그 무희의 몸에 맞게 이를 다시 교정보고 있다. 발레에서 의상은 표현기교와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있으며 도약(跳躍) 등의 격렬한 운동을 수반하는 기교가 고도화됨에 따라 더욱더 긴 발을 노출시킬 필요가 절실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발레 기교가 차차 복잡해지고 고도화되기 때문에 이 튀튀의 형상도 변화되어 그림에서 보는바와 같이 그 옷을 그 무희가 동작을 하는데 불편 없이 하기 위해 재단사가 두 명 씩이나 붙어서 일을 하고 있다.




드가 〈스튜디오〉(1878년경), 개인 소장




 드가의 작품 〈스튜디오〉(1878경)를 보면 무희들이 연습을 하는 스튜디오 현장이다. 다른 무희들은 연습에 열중하고 있는데 무희지망생인 듯한 소녀가 발레연습을 하려고 옷을 차리고 있는 뒷모습인데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 주위를 보면 이미 연습을 하는 무희들은 두르지 않은 감색 끈으로 목과 허리를 연결해 묶고 있다.
 의학 눈으로 보면 연습 증에 지나치게 심한 동작으로 허리에 통증을 느껴 허리를 과도하게 구부리는 동작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하였는데, 발레 전문가에 문의하였던바, 그림에서 목뒤에 맨 끈은 흔히 말하는 초크형식의 목걸이처럼 장식으로 발레나 무용에서는 액세서리를 착용할 수 없어 의상이나 소품으로 그 효과를 더하는데, 발레 같은 경우는 여성의 아름다움을 몸의 선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의상과 소품 선택에서도 그 형식에 맞는 소품으로 선택한다는 것으로 이 무희는 다른 무희들보다 남달리 아름다움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에서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앞서 〈드레스 룸〉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희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위한 재단사들의 노력과 같은 타의적인 멋 내기와 무희들 자신의 초크 형식의 목걸이와 같은 작위적인 멋 부림이 결국은 발레의 격을 높이고 보다 승화된 예술미를 나타내는 반면 앞서 〈막〉에서와 같은 남정네들의 눈을 끄는 유인제가 되기도 하였던 것 같다.




드가 〈장미 빛 의상의 무희〉(Dance rose)(1878), ⓒ시카고, 미술연구소




 드가의 작품 〈장미 빛 의상의 무희〉(1878)를 보면 한 무희가 화려한 장밋빛 튀튀를 입고 머리에는 아름다운 꽃으로 된 화관을 쓰고 목에는 초크 형식의 목걸이를 하고 손에는 기다란 꽃의 장식물을 들고 있어 이 무희는 다른 사람의 한눈에 띌 수 있게 몸 장식을 하고 있어 좀 지나친 감이 든다.
 사람은 삶을 통해 부단히 감정을 느끼며 생활하게 되는데, 감정이란 인간이 주위에서 야기되는 여러 현상이나 타인의 언동에 영향 받아 일어나는 심적 상태로서 주위의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정신적 반응이라 하겠다.
 따라서 감정과 몸짓의 표출은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간에 솔직하게 표출되게 마련이다. 또 감정은 말이라는 표현에 앞서 느끼는 즉시 그대로 표정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거짓이 없는 솔직한 의사의 비언어적 표현으로 예술에서는 매우 중요시된다.
 분명 이 무희도 집이 가난해서 이를 해결하는 방책으로 무희를 지망했는데 어머니의 요구대로 멋진 후원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다른 무희와는 달리 눈에 띄게 보여야겠다는 고심 끝에 나름대로 멋을 내고 있는 모습인 것 같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라는 정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욕망이 언제나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경우 사람들은 필연으로부터 유래되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맛보게 되는데 혹시 그림의 무희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한다.

​​문국진 박사(1925~ )는 한국 최초 법의학자이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창립 멤버로 한국 법의학계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

2019. 08.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