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제6회 대한민국발레축제 리뷰(2) 해외안무가
감각적인 선곡으로 이루어낸 발레와 현대무용의 조화
방희망_춤비평가

 재독안무가 허용순의 작품 〈Contrast〉와 〈The Edge of the Circle〉의 국내초연 무대가 대한민국발레축제를 통해 마련되었다(5월 24-25일, CJ토월극장, 평자 24일 관람).
 평자가 최근 안무가 허용순의 작품을 접했던 것은 지난해 서울발레시어터 20주년 기념공연 때 〈Elle Chante〉였고, 당시 깊은 인상을 받았었기에 기다려지는 무대이기도 했다.

 

 



 미국 툴사발레단에서 2014년에 초연되었던 〈Contrast〉는 그녀가 공항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영감을 통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규모 있게 저음이 받쳐주면서 플루트, 피콜로 등의 악기로 상쾌한 방점을 찍는 존 애덤스의 도회적이며 속도감 있는 음악과 함께 막이 열리고 무용수들이 무대를 빠르게 걷는 첫 장면은 공항이라는 장소에서 누구나 기대함직한, 활력과 설렘이 물씬 풍겨 나온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무대를 종횡무진 날아다니며 독무를 추는 이원철은 다른 인간 군상들로부터 독립된 자유롭고 고독한 ‘방랑자’의 이미지를 형상화했으며, 색깔만 다른 샤넬스타일 수트를 입어 한껏 멋을 내고 경쟁하는 듯한 여성 듀엣은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공항 패션’을 생각할 때 작품에 위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공항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여행객들이 무사히 안전하게 이용하도록 돕는 직원들에게 그곳은 치열한 일터일 뿐일 텐데, 황혜민·엄재용 커플은 그들의 반복적이지만 전투적인 일상의 격렬함을 잘 추어냈다.

 

 



 조명을 낮추고 공항의 대기의자를 눕히면서 새롭게 시작된 후반부는 작품해설에 따르면 개인적이고 익숙한 공간인 ‘집’을 의미한다고 했지만, 굳이 물리적인 공간이동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괜찮았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면서 내가 ‘이방인’임을 의식하게 만드는 공항이라는 환경은, 한편으로 일상생활을 떠나 내면을 성찰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용수들은 이제 직업이나 배경을 짐작할 수 없도록 스킨색 의상을 통일하여 입고, 우리가 익숙함 속에 관성에 젖지 않았는지, 상대방의 외로움을 은근히 방치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하였다. 그리고 엔딩에서 샤넬 수트를 입은 여성이 반지를 던지는 동작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작품 전체를 복기하게 하는 묘미를 주었다(초반부에 옛 연인을 마주쳐 당황하는 장면이 있었다).

 

 



 작년 가을 슈투트가르트에서 초연된 〈The Edge of the Circle〉은 안무가가 이번 국내공연의 연습과정을 통해 더욱 완성된 형태로 진전시켰다고 하여 관심을 끌었다. 앞서 〈Contrast〉보다 구체적인 풍경 제시는 떨어지지만, 허용순 특유의 ‘관계에 대한 고찰’은 이 작품에서 더욱 압축적으로 빛난다.
 수학적 정의로 ‘원’은 평면 위의 한 점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점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원형의 식탁이나 회의석이 관계를 부드럽게 한다지만, 원의 질서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만약 구심력이 강하다면 상대에게 함몰되기 쉽고 원심력이 강하다면 사람은 떠나버리게 된다는 점에서, 원은 그 무엇보다 긴장감 넘치는, 관계에 대한 상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무가는 한편으로 원을 수많은 작은 각이 모여 이룬 것으로 파악했는데, 그런 사유는 발레와 현대무용을 결합시킨 그녀의 작품 세계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발레 언어는 인체의 곡선미를 강조하는데, 거기에 ‘각’을 더해줄 수 있는 것이 현대무용의 표현들이다. 출연무용수 10명 중에 김주원, 황혜민, 엄재용, 이원철, 윤전일과 현대무용수인 한류리, 조현상, 김다애는 이전에 허용순 안무가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 현대무용수 이선태와 임샛별을 추가 기용하여 균형을 맞춘 것은 이번 작품의 색깔을 더욱 명확하게 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한편, 허용순의 안무에서 가장 탁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음악 선곡에 대한 것이다. 〈The Edge of the Circle〉에 사용된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 악장은 기존의 것이 아니었다. 막스 리히터라는 독일의 신예 작곡가가 재구성한 이 버전은 ‘겨울’ 1악장 21번째 마디의 질주 부분에서 음표를 줄이거나 통합함으로써 기존의 규칙적인 리듬을 당기듯이 처리하여 변화를 준 것이 특징이다(신나게 달리려다가 한 발이 살짝 빠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때문에, 관계의 일정한 질서가 삐걱대고 무너지기 시작한 위기의 순간에 참 잘 들어맞는 선곡이 되었다.
 이렇게 일상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감각적인 선곡, 발레와 현대무용의 조화로운 결합으로 마음에 쉽게 와 닿는 허용순의 작품은 국내 발레계에 여성안무가의 감수성을 불어넣을 활력소가 될 듯하다. 안무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젊은 현대무용수들을 기용함으로써 발레와 현대무용 양쪽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작업이 되는 것도 바람직하다. 앞으로는 그녀의 〈카르멘〉이나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큰 프로덕션도 국내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2016. 06.
사진제공_대한민국발레축제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