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4대 도시 서울 제주 대구 부산 국제즉흥춤축제

4월 한달 동안 전국 곳곳에서 즉흥춤의 열기가 불을 뿜었다. 3월에 한국과 프랑스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시도된 한불 즉흥 프로젝트 〈Voici〉의 오디션을 시작으로, 4월 들어 대구국제즉흥춤축제(Dimpro, 5-6일), 제주국제즉흥춤축제(Jimpro, 7-8일),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 12-16일), 부산국제즉흥춤축제(Bimpro, 16-18일)가 잇따라 열렸다. 축제의 현장을 4명의 필자가 스케치 했다. (편집자 주)




제16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

순수한 몸짓, 즉흥춤의 성찬

 


김인아_〈춤웹진〉 기자


 16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가 더욱 다채롭고 풍성해진 모습으로 4월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무용센터와 아르코소극장에서 열렸다.
 서울을 중심으로 대구, 부산에 연계되었던 축제는 올해 제주까지 지역을 넓혀 제1회 제주국제즉흥춤축제를 태동시켰고 제주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특화된 생태즉흥춤 공연으로 성공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
 특히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양국에서 다양한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해 공식인증사업으로 선정된 축제는 프랑스 아티스트들의 즉흥춤 프로그램을 4개 도시에서 고루 선보였다. Emmanuel Grivet를 필두로 한 5명의 프랑스 아티스트들은 한국 무용가들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비롯해 다양한 주제의 즉흥공연, 워크숍에 이르기까지 축제 기간 내내 전문화된 프랑스 즉흥의 세계를 제공하며 폭넓은 활약을 보였다.
 대부분의 국제 무용축제들이 서울에 집중되어 열리고 있고, 거의 모두 서울에서만 공연이 이루어지는 데 반해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부산 대구에 이어 제주와 연계시켜 함께 축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것은 지역춤의 활성화와 지역 무용가들의 국제교류 네트워킹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시도로 보여진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Simpro)는 개막축제를 시작으로 한-불 협업 즉흥 프로젝트 〈Voici〉 공연, 105분 릴레이 즉흥공연, 150분 즉흥 난장, 컨택즉흥 및 관객과 함께 하는 즉흥파티로 구성되었다. 닷새에 걸쳐 쉼 없이 내달린 즉흥춤의 현장에서 세계적인 즉흥 전문 아티스트들과 다른 장르의 협업은 물론 우연성과 생명력이 느껴지는 몸짓의 교감, 관객과 한데 어우러지는 한판 놀이의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4월 12일 개막축제는 “Enjoy Impro - 공간과 즉흥”이라는 주제 아래 새롭게 문을 연 서울무용센터의 여러 공간을 활용하여 무려 9시간 동안 펼쳐졌다. 국제 즉흥 라운드 테이블과 네트워킹 파티, 메인 공연, 컨택즉흥 잼, 열린 즉흥, 즉흥 워크숍 등 즉흥춤의 모든 것을 집약적으로 담아낸 성찬이었다.
 국제 즉흥 라운드 테이블(Talk! Talk! Improvisation)은 오스트리아 안무가 Andrea K. Schlehwein, 프랑스 즉흥 아티스트인 Emmanuel Grivet와 Marie-Pierre Genard, 프랑스 음악가 Jean-Remy Guédon, 안무가 남정호, 재독 안무가 전인정이 패널리스트로 자리한 가운데 춤비평가 이지현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아티스트들은 각각 자신이 생각하는 즉흥춤을 개념화하거나 즉흥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물론 해외 안무가들이 느낀 한국 작업의 소감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작업했던 즉흥춤의 경험담들이 자유롭고 유쾌하게 오갔다.
 Emmanuel은 “무용수와 조명, 음악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성, 춤으로 발현되는 생명력 자체가 얼마나 흥미로운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서 “즉흥은 열려있는 것, 살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흥춤에 대해 Andrea는 “내 자신을 향한 연결이다. 나의 신체, 삶, 예술 안에서 내가 누군지를 알아가는 작업”이라했고, Marie-Pierre는 “입으로 뱉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 몸 안에서부터 발현된 것을 타인과 소통하는 것으로, 다른 이의 상상력과 세계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매개”라고 이야기했다. 클래식과 재즈를 베이스로 즉흥 음악을 연주하고 작곡하는 Jean-Remy는 “나에게 즉흥이라는 것은 삶이다. 삶 자체가 즉흥이다”라며 즉흥적인 삶, 일상의 즉흥성에 대한 예찬을 재치있는 입담으로 풀어내보였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즉흥춤에 대해 저마다의 애정과 열정을 담은 아름다운 코멘트였다.
 한국 패널리스트들의 이야기는 국내의 즉흥춤에 대해 다시 성찰해 볼 기회를 갖게 한다. 안무가이자 교육자인 남정호는 즉흥춤이 독특한 안무법이자 창작의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춤계에서 그리 길지 않은 역사를 갖는다면서, 21세기부터 시작된 즉흥춤축제를 통해 비로소 국내에 대두되고 통용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언급했다.
 재독안무가 전인정은 해외에서 활동하며 즉흥춤을 접했지만 그 과정 중에 오히려 한국춤에 담겨져 있었던 즉흥성을 새롭게 발견하였고, 현재 한국과 유럽의 즉흥 메소드를 혼합해 자신의 작업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짧게나마 언급된 한국의 즉흥춤 역사, 한국춤 고유의 즉흥성, 즉흥춤의 가치에 대한 내용은 추후 포럼이나 세미나의 자리를 빌려 좀 더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흥미로운 주제라고 여겨진다.

 

 



 서울무용센터 2층 휴게 공간과 야외 테라스에서 즉흥 네트워킹 파티가 이어졌다. 해질 무렵의 선선한 공기와 어우러지며 보다 자유롭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만남의 장이었다. 이날 파티에는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 예술감독 최준호, 서울무용센터 매니저 최재훈, 프랑스 즉흥 아티스트 3인과 서울국제즉흥춤축제 예술감독 장광열, 무용가 김화숙 국은미 남정호, 제주국제즉흥춤 운영에 참여했던 아트프로젝트 더파란의 박연술 홍민아, 오스트리아 일본 프랑스 미국 한국의 즉흥 아티스트 등 8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최준호 예술감독은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기념해 프랑스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프로그램 중 무용이 가장 많은 작품수를 선보이고 있고,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한국인의 가장 근사한 힘이 즉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즉흥에는 젊은 상상력과 에너지가 넘친다. 이 자리에 모인 즉흥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무용이 나아가야할 길을 열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즉흥춤축제의 개최를 축하드린다”는 인사말을 전했다.

 

 



 이어진 메인 공연에서는 ‘공간과 즉흥’을 테마로 서울무용센터의 여섯 개 공간을 활용해 각기 다른 색깔의 즉흥춤을 선보였다. 야외 잔디밭, 이중으로 얇게 그어진 하얀 원 안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으로 시작된 박성율의 몸짓은 진중하게 에너지의 흐름을 따라가는 꾸밈없는 움직임, 흡입력과 내공을 갖춘 독무로 15분을 장악했다.
 Olivier Nevejans와 이선아의 협업 즉흥은 일제히 소등한 스튜디오 white 공간에서 무용수만을 가까스로 비추는 작은 조명에 의지해 전개된다. 질서정연하지 않은 느린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하얀 벽면을 커다랗게 채운 검은 그림자가 몸의 조형성을 극대화하여 노출시킨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Marie-Pierre Genard와 밝넝쿨의 즉흥에는 음률의 완급이 돋보이는 피아니스트 한지연의 음악이 가세했다. 많은 사람이 보행하는 그래픽 영상이 무용연습실 1 공간의 벽면에 쏟아지고 이와 대조적으로 Marie-Pierre와 밝넝쿨은 쓰러지고 뒹굴고 엎어져 슬라이딩하는 방식으로 플로어를 이용한 움직임을 활력 넘치게 선보인다. 서로의 움직임과 피아노 연주를 조율하는 상생의 과정, 우연성의 접합이 쌓여가는 한편 간간히 보인 밝넝쿨의 도발적인 제스쳐와 코믹한 상황 연출은 관객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커다란 정육면체 박스가 놓여있는 무용연습실 2에서 유태선의 트럼펫, 가민의 생황 연주와 함께 이나현의 독무가 진행되었다. 이나현은 움직임과 오브제(박스), 관악기의 선율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지를 보여주려 하였다. 이미 짜여져 있는 구성과 확정된 작품이 아니라 춤과 음악, 무용수와 오브제, 서로의 능동적인 관계 맺기의 과정에서 구축되는 즉흥춤의 묘미를 재차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무용센터의 2층 테라스에서 진행된, 저글링을 접목시킨 Hisashi Watanabe의 즉흥은 움직임 어휘의 다양함을 일깨워 주었다. 어깨, 등, 팔과 다리를 이용해 자유자재로 공을 던지고 받아내는 묘기에 가까운 신체표현으로 보는 이들의 눈을 한 시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크로스오버 즉흥은 옥상에 이어 스튜디오 블랙에서 진행되었다. 최명현, 이윤정, 전인정, Emmnuel Grivet, Chloé Caillat 등 다섯 명의 춤꾼은 옥상 공간의 특성을 활용하여 환풍구, 난간, 넓은 플로어 등 구조물을 매개로 여러 경우의 수를 포함한 즉흥 퍼포먼스를 펼쳐냈고, 반면 스튜디오에서는 사각 프레임 공간 안에서 춤추는 몸 사이의 합일점을 찾아가는 과정으로서 접촉즉흥에 집중하여 공간별 움직임을 뚜렷이 구별시켰다.
 이들 무용수와 함께 한지연(피아노), Jean-Remy Guédon(테너 색소폰), 유태선(트럼펫), 가민(생황)의 연주 협업으로 꾸며진 크로스오버 즉흥에서는 음악 선율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몸의 움직임을 다채롭게 엿볼 수 있었던 점도 흥미롭게 다가왔다.

 

 



 둘째 날, 한-불 협업즉흥프로젝트 〈Voici〉가 아르코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서울국제즉흥춤축제와 프랑스의 Emmanuel Grivet Company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 무대는 두 차례의 오디션을 통해 한국 무용수 5인을 선발하였고, 프랑스 아티스트 5인과 함께 워크숍, 연습 및 리허설을 거쳐 이날 무대에서 공연되었다.
 ‘이것은 …이다(This is)’를 뜻하는 60분 길이의 〈Voici〉는 남성과 여성의 고정적인 역할에 대해 뒤집어 생각해보고 이를 여성의 에너지 넘치는 파워, 남성의 부드럽고 흐르는 듯한 몸짓으로 전복시켜 나타낸다. 젠더라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단기간 내 공유하고 최소한의 합의로 움직임 구성을 이끌어낸 무대였다. 그 결과 즉흥으로 도출되는 상황들이 때로 거칠게 튀어 오르기도 했는데 저마다 순발력 있게 몸과 몸짓으로 포용해가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작품은 앞서 이스라엘, 멕시코에서 협업즉흥의 경험을 가졌었다. 하나의 작품을 각기 다른 나라와 컨텍스트 안에서 새롭게 적응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꽤 흥미로웠을 법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객석에서는 한국과의 협업을 꼬집어 특기할만한 색채나 결과물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을 추어낼 것인가 보다는 어떻게 추어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과정 중심의 즉흥 공연 특성상 공연 참가자들만이 내적 느낌 내지 창작 경험으로 그 차이를 공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한국 무용수들은 몸을 면밀히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이 체득한 움직임 어휘에 갇힌 느낌을 받았다. 몸통에서 손끝, 발끝까지 세밀하게 분할하여 몸을 다층적·다면적으로 쓰지 못한 움직임은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았다.
 14, 15일 아르코소극장에서는 한국, 프랑스, 일본 3개국 총 20개 팀이 참여하여 105분 릴레이 즉흥공연과 150분 즉흥 난장이 이어졌다. 두 프로그램 모두 10-15분 길이의 작품을 통해 상이한 주제와 개성 있는 즉흥 접근법을 도출한 무대로 꾸며졌다.

 

 



 마지막 날에는 오스트리아의 Andrea Maria Handler, Arnulfo Pardo Ravagli, 프랑스의 Marianne Masson, Olivier Nevejans, Emmnuel Gtivet, 일본의 Rie Tashiro, 한국의 이윤정 총 7명의 댄서들이 Jean-Remy Guédon(색소폰), 가민(생황), 류태선(트럼펫·전자음악), 신현필(재즈 색소폰)의 연주와 함께 컨택 즉흥을 벌였다.
 즉흥 아티스트들은 2-3인씩 그룹을 짓고 춤의 명확한 흐름을 사전에 약속하지 않는다는 상식적인 관행 이외엔 어떠한 규칙도 없이 예측 불가능한 신체 접촉과 분리를 전개시켰다. 상대와 균형을 맞춰가는 매 순간마다 아티스트의 창의적인 순발력이 요구되었고 그 과정에서 즉흥 그 자체를 최상의 목적으로 둔 순수한 몸짓이 드러났다.
 이런 흐름은 객석에 전이되어 출연 아티스트와 관객이 함께 무대를 가득 메우고 즉흥춤을 추는 것으로 이어졌다. 아티스트와 관객이 하나 되어 모두가 신나게 어울리는 한판, 제16회 서울국제즉흥춤의 대미를 장식한 열기 가득 찬 현장이었다. 

2016. 05.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