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국립무용단

국립무용단과 안무가 조세 몽탈보의 신작 <시간의 나이>는 2015-2016 한불상호교류의 해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의 국립극장과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의 공동제작이란 점에서 관심을 보았다. 공연 후 작품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 전문가들은 기대에 못미쳤다, 일반 관객들은 색달랐다는 것이 중평이었다. 무용수 김미애와 장현수의 인상적인 활약에 대해서는 모두가 칭찬했다. <춤웹진>에서는 무용수 김미애의 인터뷰와 함께 기자의 현장 스케치, 현대무용과 한국무용 안무가의 글을 통해 <시간의 나이>에 접근했다. (편집자 주)




표지인물 인터뷰_ 국립무용단 김미애


느림과 빠름 속도 변화만으로도 현대적일 수 있다

 



 


 



장광열
공연을 마친지 이틀도 되지 않은 시점이라 아직도 무대에서의 여운이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한불상호교류의 해 국내 개막공연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아직 초연도 하지 않은 작품임에도 6월에 파리의 국립샤요극장 공연이 확정되어 있었던 점, 그리고 영상을 활용하는 춤작업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색깔을 가진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의 협업이란 점에서 많은 관심이 집중된 공연이었습니다. 우선 작업에 참여했던 무용수로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김미애 작품이 어떻게 보일 지는 사실 저를 포함해 작업했던 단원들 모두에게 더 큰 관심거리였습니다. 댄서들의 만족감은 움직임에 대한 성취도인데 그런 성취감 보다는 안무가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 많았던 작업이었습니다. 안무가가 우리를 이렇게 힘들게 했으면 작품도 좋아야 한다는--- (웃음). 공연을 본 일반인들이 쉽다고 하더군요. 무용수들이 말도 하고, “날봐” “날고 싶다”고 말할 때는 울컥 눈물이 났다는 말을 듣고는 아! 그랬었구나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적지 않은 것을 얻었던 작업이었습니다.

80분의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상당히 많은 이미지들이 비교적 빠른 템포로 전개되었습니다. 너무 많아 넘쳐날 정도로요. 무용수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떤 작업과정을 거쳤는지요?
일주일 정도 두 차례의 워크숍이 있었고 이후 선발된 무용수들과 함께 한달 간 작업했습니다. 보통 3개월 정도 작업을 하는데 중간에 <향연>의 해외 공연 일정이 잡혀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만들었다니 놀랍습니다. 외국의 안무가를 객원으로 초청해 신작을 만들 경우 그동안 국립현대무용단과 국립무용단의 예를 보면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유럽의 유명 안무가들이 보통 30분 길이의 신작을 안무할 경우 작품 구상 기간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미 자신의 스타일에 익숙한 무용수들과도 최소 2개월은 집중적으로 연습을 합니다. 이번 공연의 경우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무용수들과의 작업이란 점에서 보면 안무가나 무용수들 모두 무모한 시도를 한 것이네요.(웃음) 두 번에 걸친 워크숍은 일종의 오디션이었나요? 몽탈보가 춤을 전공하지 않은 안무가이기에 워크숍은 어떤 내용으로 진행되었는지, 국립무용단으로서는 2년 전 테로 살로넨과의 작업에 이어 두 번째로 외국의 안무가와 작업한 경우가 되겠는데 안무 스타일 면에서 몽탈보는 어떻게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시작 때부터 이전 <회오리>를 안무한 테로 사리넨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주일 동안 워크숍을 하면서 출연 무용수들을 캐스팅 하더군요. 그룹을 지어서 <동래학춤>을 토대로 속도변화 등을 고려해 무용수 나름대로 새롭게 추어보라고 하기도 하고, 이야기나 주제를 던져주고 놀아 보아라는 식이었습니다.

 

 



공연에서 보았던 <부채춤><처용무><아박춤><진도북춤><한량무> 등의 움직임들도 그렇게 해서 변형된 것들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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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명의 단원들이 4개 그룹으로 나누어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되돌아보게 하고 ‘볼레로’ 음악에 맞추어 굉장히 느린 한국춤을 추어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테로의 경우는 움직임을 주고 무용수들이 그 움직임을 그대로 추었던 것에 비해 이 같은 스타일은 무용수들에게 괴리감을 주어 처음에는 당황해 했습니다. 초반에 무용수들이 다소 지쳤을 때 몽탈보는 오리지널 초상화를 변형시킨 그림을 한 점 가져와서는 단원들에게 보여주면서 전통을 해체하는 것은 이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많은 것들이 시도되었습니다. 작품 속에 안 들어 간 것도 많이 있구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안무가가 콘셉트를 설명하고 내용을 설명한 후 댄서들의 창의적인 움직임을 끌어내어 구성하는 안무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으나 객원 안무가와의 작업 경험이 거의 전무한 국립무용단 단원들로서는 생경할 수도 있었겠군요.
아시다시피 현재 저희 무용단은 장기간 예술감독도 없는 상태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안무가에 대해 배타적이라기보다는 협력을 해서 잘 만들어보자는 마음들이 단원들 사이에 있었습니다. 창의적으로 뭔가를 만들어보라고 했을 때 마음을 오픈하는데 대한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반면에 이 같은 스타일을 즐기는 단원들도 있었습니다. 연습 때마다 명확한 것을 주지 않아 안무가와 무용수 사이에 소통에 문제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이 안무가의 스타일이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 인식하게 되더군요.

 

 



공연이 끝난 후 일반 관객들의 반응이나 무용가들, 그리고 춤계 주변인들의 반응을 들어보니 한결 같이 김미애씨에 대한 칭찬을 하더군요. 안무가가 특별히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몇몇 댄서들이 작품을 끌어가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2장에서 김미애씨, 3장에서 장현수씨의 열연은 일반 관객들에게도 춤작품에서 댄서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몽탈보의 전작인 <파라다이스>에서 보면 아프리카 댄서와 브레이크 댄서의 역할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드라마적인 구조를 갖지 않은 1시간이 넘는 길이의 작품에서 캐릭터 댄서를 활용하는 장치를 하는 것은 몽탈보 특유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김미애씨와 장현수씨가 그 같은 중심 댄서의 역할이었습니다. 그 특별한 역할은 안무가로부터 어떻게 주문되었었나요?

저와 현수 선배를 부르더니 국립무용단 공연을 DVD를 통해 모두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춤춘 작품 중에서 3개 정도씩을 골라 춤을 추어보라고 했어요. 저에게는 <소울 해바라기> 중에서 나오는 ‘무녀의 꽃춤’과 <부채춤>, 그리고 즉흥을 요구했습니다. 그대로 추는 것이 아니라 저 나름대로 변형해서 추라고---

안무가로서도 전통과 현대의 접목을 표방한 만큼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 있었겠지요. 워크숍이 끝나고 연습 과정에서도 안무가가 요청한 또 다른 특별한 것이 있었나요?
무용수들에게 완급을 조절해서 춤을 추어달라고, 정확한 동작을 해달라고 주문했었는데 우리춤이 곡선이다보니 이 곡선의 움직임을 빠르게 추는 게 쉽지가 않아요. 이게 신경이 쓰이더군요.

이 같은 몽탈보의 안무 방식에 대해 무용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처음 왔을 때 국립무용단의 기본을 추어보도록 요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시나위 장단의 기본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이 춤을 추는 동안 왜 우리는 그동안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번 작업은 3주 전부터 극장으로 내려가서 이루어졌습니다. 2막과 3막은 연습실이 아닌 무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막이 오르고 나자 공연 때마다 안무자가 요구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어떤 부분은 더 늘려주고 어떤 부분은 더 줄여주고 하는 식으로--- 그래서 이번 작품은 매 공연마다 조금씩 달랐어요.(웃음) 몽탈보는 움직임의 느림과 빠름, 강한 속도변화 하나만으로도 나는 현대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더군요. 공연이 모두 끝난 뒤에 그의 이 말이 생각나더군요.

 

 



박지영 송지영과 추는 <진쇠춤>에서는 진쇠춤의 다른 실연 영상이, 정길만과의 <부채춤> 2인무에서는 날아가는 새의 형상이 배경에 투사되었습니다. 영상과 오버랩 되는 시도는 관객들로 하여금 춤 감상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영상과의 접목은 몽탈보의 안무 스타일인 만큼 그것 자체를 즐기는 것도 관객의 몫일 수 있지요. 무용수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춤이 영상과 오버랩 되었을 때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일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영상이 사용된다고 말해 준적은 없어요. 영상은 뒤에 나오는 배경이니까 신경쓰지 말라고 하더군요. 첫날 공연이 끝나자 이런 주문을 하더군요. 2부 독무를 출 때 사람들이 파도에 밀려가는 영상이 나올 때 치마를 잡고 앞으로 나가는 타이밍과 뒤로 가는 타이밍을 맞추어 달라는---. 객석을 보고 춤을 추는 상황에서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았었는데 다행히 그 영상이 객석 뒤쪽에도 비추어져 흐름을 쫓아갈 수 있었습니다.

작업을 해나가는 중에나 공연 후에 안무가가 김미애씨의 춤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한 적이 있었나요?
몽탈보는 다른 안무가들과 확실히 달랐습니다. 늘 지켜보고 춤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 딱 한번, 나를 없애고 나를 버리고 춤을 추었을 때 극에 달한 칭찬을 한 적이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무용수 김미애씨는 몽탈보의 안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용수로서 안무가를 평가한다면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눈썰미가 날카로운 안무가였어요. 춤을 잘 추는 무용수와 그렇지 못한 무용수, 무용수의 춤이 잘 되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를 정확하게 구분했습니다. 반복되는 연습에 좀 무디어진 춤을 추면 예전에는 이보다 더 잘 추었었다며 그때처럼 추어달라고 주문할 때는 굉장히 단호했습니다.

 

 



국립무용단에 입단하지 시간이 꽤 흘렀지요? 그동안 여러 명의 안무가와의 작품에서 김미애씨가 출연했던 공연을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1997년에 입단했습니다. 당시 국수호 선생님이 단장이셨는데--- 이후 배정혜 김현자 윤성주 단장님까지--- 어느새 20년이 되었네요. 내가 무용수로서 작업하면서 이 시기에 국립무용단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한국무용을 전공했지만 현대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몇 년 전부터 해외 안무가 등 외부 안무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접하는 국립무용단의 흐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아서요.

안성수씨가 안무한 <틀>에서의 인상적인 움직임도 아직 기억에 생생합니다. 한국춤 전공자가 만들어내는 현대적인 감각의 춤이 더욱 특화된 움직임으로 빛을 발하는 것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강수진씨의 줄리엣 역을 보면서 느꼈던 특별한 질감의 춤을 다시 본 순간이었습니다. 현대적인 움직임을 수련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나요?
신무용 스타일의 춤만을 추다 대학 4학년 때 손인영선생님의 미국 투어에서 창작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었어요. 2006년에는 현대무용가 김성한선생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2007년에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도 출연했지요. 이런 작업을 거치면서 빨리 전통춤을 공부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두 장르의 작업을 하다 보니 춤에 대한 감각뿐만 아니라 생각의 뿌리, 내 몸의 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클래식 발레만 공연하는 단체이거나 전통무용만을 공연하는 단체가 아닌, 직업무용단의 무용수들에게 어떤 춤을 전공했다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안무가가 원하는 어떤 스타일의 춤도 출 수 있어야 진정한 프로페셔널 무용수이지요. 그런 점에서 국립무용단의 최근 변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도되었어야 했습니다. 중간에 잠시 무용단을 떠났던 적이 있었지요?
네, 결혼 전후에 너무나 많은 공연을 했어요. 외부 안무가로부터 공연 요청도 많아 몸을 너무 혹사시켰습니다. 결혼을 했는데 정작 남편은 곁에 없고 맹목적인 춤만 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년간 휴직하고 당시 파리오페라발레단에서 활동하던 남편이 있는 프랑스로 갔습니다. 무용 스튜디오에서 현대무용 클래스를 하면서 사이사이 우리나라 전통춤 공연을 요청받은 적이 있었는데 제가 자신있게 뭐하나 출 수 있는 전통춤이 없더군요. 그래서 귀국 후에 바로 우리춤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전통춤 수련은 테크닉을 떠나 심신을 정화하는데 큰 기반이 되었습니다.

어떤 장르의 춤을 추든 한국의 전통춤을 훈련하는 것은 무용수에게는 그것 자체로 자신의 몸을 특화시키는, 특별한 질감의 춤을 출 수 있는 자양분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전통춤은 개인적인 춤입니다. 나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춤이지요. 현대무용은 과거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안무가가 요구하는 움직임만 하면 그만이지요. 그러나 전통춤을 수련하는 것은 자기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전통을 공부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번 몽탈보와의 작업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안무에 대한 저의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과 무용수로서 안무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된 것입니다.

무용수로서, 예술가로서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지요?
나에게 솔직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이제 안무를 해볼 때도 되지 않았나요 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재능이 없는 안무 작업은 왜 하냐고 말합니다. 주변의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무용수로서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이런 나에게 국립무용단은 큰 축복입니다. 언젠가 전통적인 움직임에서 현대적인 움직임까지 한 무대에서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을까 꿈꾸어 봅니다.

시간이 꽤 흘렀네요. 감사합니다

2016. 04.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