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국립무용단 현장 스케치
환호와 아쉬움, ‘문화창작’이란 큰 시각에서의 접근 필요
김인아_<춤웹진> 기자

 안무가 조세 몽탈보와 국립무용단이 합작한 <시간의 나이>가 3월 23-27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서 그 베일을 벗었다.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2015-2016 한불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한국 내 프랑스의 해’를 여는 묵직한 타이틀의 작품인 만큼 무용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 전반의 관심이 집중된 공연이었다.
 국립무용단과 함께 <시간의 나이>를 완성한 조세 몽탈보는 샤요 국립극장의 상임안무가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안무가다. 1990년대 발표한 〈Paradise〉부터 최근작 〈Balletoman com〉 〈Don Quichotte du Trocadéro〉 〈Asa Nisi Masa〉 등에 이르기까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미지를 영상과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유쾌하고 활력 넘치게 구현해왔다.
 전작에서 보여준 발레, 아프리칸 댄스, 플라멩코, 힙합 등 다문화의 춤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탁월한 역량도 그의 안무력을 평가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빚어내는 것에 정통한 안무가라고 익히 알려져 있어 우리에겐 체득된 전통이지만 그에겐 새로웠을 한국춤을 어떤 시각으로 무엇과 접합했는지에 대해 기대와 관심이 집중됐다.

 

 



 안무가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큰 틀 안에서 두 가지 개념이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섞이고 공존하며 나아가 상생한다는 태도를 견지하려 했다. 1장 ‘시간의 나이’, 2장 ‘여행의 추억’, 3장 ‘볼레로’ 등 총 3장으로 구성하여 한국춤에 다른 방식들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잇대어 갔는데, 그 가운데 주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은 작품 제목이기도 한 1장이다.
 총 70분의 공연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1장에서는 무대 뒤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전통 복식을 갖추고 춤추는 영상과 무대 위 실재하는 무용수들의 춤을 데칼코마니처럼 병렬시켜 전통과 현대의 공존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고궁과 아파트/상가를 좌우로 배치하는 영상도 전통과 현대 건축양식이 공존하는 서울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태평무> <한량무> <살풀이춤> <학춤> 등 전통춤의 동작을 해체하여 서로 다른 춤을 추는 무용수를 한 무대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전통춤과 재창작된 움직임이 한 데 섞이고 흩어지며 다른 시간대인 과거와 현재가 무대 위에 중첩되어 간다. 시간의 흐름 속에 과거와 현재가 분리될 수 없음을 몽탈보 특유의 유쾌하고 가벼운 터치로 풀어내 보인다.
 관객 박효선 씨는 “한국무용이라 하면 정중동과 한의 정서에 갇혀 무겁고 진중하게 표현된 것을 연상하기 마련인데 오늘 본 <시간의 나이>는 프랑스 안무가의 시선으로 모처럼 밝고 활기 넘치는 한국춤 작품이어서 신선하고 보기 좋았다”고 관람 소감을 밝혔다
 특히 김미애와 정길만의 <부채춤>은 무게중심을 아래에 둔 채 유려하고 역동적인 상체의 흐름을 선보였는데 그들의 분출 에너지가 플라멩코의 넘치는 긴장감과 맞닿아 있어 흥미로웠다. 전통을 분해, 재구축한 새로운 움직임이자 한국춤의 동시대성을 가늠하는 장면으로 특기할 만하다.

 

 



 2장에서는 ‘하늘에서 본 지구’ 프로젝트로 유명한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의 영상 작품 <휴먼> 중 미공개 컷이 무대 배경으로 펼쳐졌다. 노을지는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여행자들로 시작된 영상은 지구온난화로 무너져 내리는 남극의 빙산, 쓰레기더미 위의 여자아이, 고층빌딩, 인산인해를 이룬 파도 풀의 장면 등으로 이어진다.
 무질서한 장면의 나열 속에서 환경문제, 빈곤과 같이 인류가 직면한 상황이라든지 고독, 불안, 희망 등 현대인의 보편적 감정이 다소 노골적인 메시지로 전달된다. 여행자들의 여정이 담긴 장면들이 그 자체로 시각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에 1장의 속도감에 비해 매우 느리고 둔중하게 구성된 2장의 현대춤이 상대적으로 부각되기 어려웠다. 게다가 인류의 대한 사색을 표현한 이 장이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는 큰 줄기와 동떨어져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한다.
 3장은 라벨의 ‘볼레로’를 한국 춤사위로 녹여낸 열정과 흥겨움의 한마당이다. 정박으로 구성된 볼레로의 단조로운 리듬 위에 엇박을 오가며 즉흥으로 풀어내는 우리춤의 접목이 신선하다. 볼레로가 크레센도로 가열하게 전진할 때 동시에 장현수의 구음과 추임새가 추진력을 더한다. 마치 샤먼처럼 보이는 무아지경의 과정, 원초적인 움직임에 한데 어우러진 24명의 군무가 그 자체로 작품을 완성한다. 무엇보다 세 장 중에서 가장 생동감 넘치는 한국의 신명스런 몸짓은 세계에서도 통용될 장점을 지녔다. “다양한 인종이 있지만 결국은 하나에서 시작했듯이, 다양한 춤이 존재하지만 하나의 맥으로 통한다”는 안무가의 생각이 잘 드러난 장면이었다.

 

 



 그러나 한국춤을 재발견하려는 시도에서 한국춤의 동시대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해석이 이뤄졌다고 하기엔 전반적으로 적지 않은 아쉬움이 따랐다. 안무가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새로움에 도전했지만, 이방인이기에 한국춤에 대해 단편적인 해석을 내놓게 된 아이러니를 품게 되었다. 이미 구축된 몽탈보 특유의 스타일에 한국춤의 일차원적인 단면을 부분적으로 끼워 넣은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춤비평가 이종호는 “이질적인 문화권이 만났을 때는 개인의 창작이라는 개념을 넘어 ‘문화 창작’이라 큰 틀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몽탈보의 평소 안무스타일을 한국무용에 덮어씌운 것으로, 한국 무용의 특질적인 면을 뽑아 전통과 현대의 만남을 단편적으로 해석한 것에 그쳤다고 볼 수 있다. 안무가가 늘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없지만 대상의 특성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피상적으로 접근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전했다.
 춤비평가 권옥희는 “낯설지 않으나 지루하고 진부했다. 복제(영상)가 원본(무용수의 춤)의 존재감을 무력화한 몽탈보의 영상, 마치 국립극장이 아닌 한국관광공사가 의뢰한 광고 OEM 같았다. 한국춤의 역사(시간)가 전통의상에 갇혀 있다든지, 바지에 셔츠를 입고 전통 춤사위로 ‘과거 춤의 기억’을 해체한다는 식의 해석은 입체적이지 않다. 역사는 역사가 아닌 곳에 있다. ‘나를 보라’는 대사의 반복, 춤을 추다가 북을 메고 무대를 뒹굴게 하는가 하면, 의미 없이 떼로 몰려 뛰어다니게 한다. 곤혹스러웠다. 고독과 희망 없는 것에의 희망을 현대춤 형식으로 풀어낸 2장은 의미없는 공허함으로 다가왔다”고 지적하는 반면, “3장, ‘볼레로’ 선율과 바순의 슬프고 부드러운 음색에 얹힌 한국 춤사위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였다. 무용수들은 춤으로 권력을 얻고 안무가는 겨우 이름값을 했다. 한국 춤의 (역사)두께, 그 깊이와 유연함, 표현의 섬세함을 확인하게 된 장이었다. 작품에서 독자적으로 빛난 김미애의 강렬하고 매혹적인 춤은 아름다웠다”고 촌평했다.
 춤비평가 방희망은 “전통/현대를 논하면서 서양/동양의 이분법까지 끌어들인 것이 작품에 혼란을 가중시켰다. 안무가가 전하고 싶은 내용은 1장만으로 충분했다고 본다. 특히 원시적인 생명력에 대한 희구를 표현하기 위해 굳이 3장의 볼레로를 넣어야 했는지, 이것은 결국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안무가의 한계로 보인다. 원래 북춤 자체가 피를 끓어오르게 하고 신명을 돋우는 목적이 있지 않나. 북춤을 너무 양식화시키는 바람에 본래의 목적을 가려버린 우리 자신을 탓해야 할까. 조세 몽탈보가 국립무용단원들을 북 위에 앉아서도 추게 만들었다고 색다른 시도라 칭하는 것은 그야말로 넌센스다”라고 촌평했다.
 국립무용단과 조세 몽탈보의 <시간의 나이>는 오는 6월 16-24일 프랑스 파리로 그 무대를 옮겨 샤요국립극장에서 유럽 초연된다. 비록 국내 평단의 높은 기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한국춤에 생경한 유럽인들이 이 작품을 본다면 흥미롭게 받아들일지도 모르겠다. 황홀경으로 빠져드는 우리춤의 신명, 리드미컬한 타악연주의 흥겨움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탄탄한 준비를 거쳐 3개월 뒤 더욱 짜임새 있는 작품으로 파리 관객을 매료시키기를, 나아가 이번 공동제작을 통해 향후 한불 무용교류에 힘찬 활력이 더해지기를 기대한다. 

2016. 04.
사진제공_국립극장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