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김명숙늘휘무용단 ‘Movement Itself’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 더 확장되지 못한 움직임 탐구
김인아_<춤웹진> 기자

 창단 이래 지난 20년간 다양한 예술장르 간 통섭을 시도하며 한국춤을 기반으로 한 서정적이고 자연주의적인 작품을 꾸준히 선보여온 김명숙늘휘무용단이 젊은 안무가들의 기획공연을 마련했다. 3월 21-22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 ‘Movement Itself’는 이은정, 이한솔, 최시원, 배진일의 안무작 네 편을 옴니버스 방식으로 소개한 늘휘무용단의 신작 무대였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Movement Itself’는 몸의 기교적인 탐닉이나 과시에서 탈피하여 ‘움직임 자체’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는 곧 유미주의적인 색채를 지닌 기존 작품과 달리 현실의 삶을 반영한 작품으로 이어진다. 리플렛에는 ‘사회의 순탄치 않은 삶, 그리고 여기서 파생되는 여러 이야기와 감정을 담아내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성찰을 창작의 출발점으로 하여 동시대의 사회적 고민을 담으려는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이은정의 <찰나의 바다>는 허공 속에 사라지고 마는 찰나의 기억들이 모여 현재를 이루고 이 순간은 또다시 과거가 되는 거대한 삶의 바다에서 이를 헤쳐 나아가는 자유의지를 그린 작품이다. 그를 둘러싼 설치 작품은 기억 속 자아를 가로막고 있던 불편한 장벽으로, 또 인생을 항해하는 배로 기능한다. 한국춤의 호흡과 밀도를 바탕으로 섬세한 발 디딤새와 미적 선형을 보여주는 동시에 차분하게 정돈된 흐름을 마지막까지 유지하는 독무를 펼쳐보였다.
 이한솔의 <사라진 자리>는 상처나 트라우마로 각인된 자신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응축시켜 또다른 자아로 표현했다. 이때 심리적인 주제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해 연극 감성을 끌어들인다. 일상의 자아와 부정하고픈 남루한 자아가 춤과 언어(대사)로 대립하며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짓눌리는 듯한 몸짓을 풍부하게 발현시킨 이한솔의 움직임이 돋보였다.
 최시원의 <그, 터널>은 인생을 터널에 비유해 빛을 쫓는 지난함을 그렸다. 전체적인 짜임새에서 풍기는 일련의 이미지와 분위기는 빛과 어둠, 희망과 좌절이다. 조명 디자인으로 어둠 속에서 오로라처럼 환상적인 터널을 구현한 도입부가 돋보이고, 움직임의 강약을 리드미컬하게 조절하며 신체미를 한껏 돋우는 춤의 선형이 인상적이었지만 예상과 상투를 깨는 신선한 전개는 찾을 수 없었다.
 배진일의 〈The '0'〉는 사회로부터 학습된 관점에 따라 사람의 정체성이 재단돼버리는 현실 속에서 본연의 자아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성에서 출발한다. 다섯 명으로 이뤄진 탄탄하고 노련한 군무와 반복적인 변주, 시선을 압도하는 강렬한 조명 이미지가 작품을 고조로 이끈다. 그러나 이미지와 분위기에 갇혀 결론적으로 무엇을 말하려는 지에 대한 개념의 발현은 다소 약해보였다.

 



 설치미술과 연극, 조명디자인 등 예술장르 간 통섭을 통해 작품의 주제에 보다 직접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이나 협업의 강도조절에서 실패해 자칫 춤의 여운을 압도해 버린 것은 아닌지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이번 공연이 지향했던 동시대의 사회적 고민과 삶의 통찰은 깊이 있는 사유로 확장되지 못한 채 ‘정서에 매몰’된 춤으로 귀결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춤비평가 방희망은 ‘Movement Itself’에 대해 "체격과 기본기가 좋은 네 명 무용수는 어떨 때 무대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춤사위 자체가 너끈히 매력을 발산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과하게 분할하여 설계된 화려한 조명 효과에 묻혔다. 때문에 무용수의 몸은 잘 가공된 무대 그림의 한 요소가 될 뿐이었는데, 옴니버스임에도 색깔을 통일하려는 전체연출의 강제력 속에 개성을 잃어버렸다.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는데, 무대 위에서 드러난 것은 여전히 유미주의였다"고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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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안무가 이은정 이한솔 최시원 배진일



3월 22일 공연이 끝난 직후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김명숙 늘휘무용단 봄신작 ‘Movement Itself’ 의 안무가 4인과 만나 짧은 인터뷰를 가졌다.

 



김인아
: 늘휘무용단의 젊은 안무가들이 모여 올해 첫 신작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이번 공연의 기획의도와 작품의 주안점은 무엇인가요?
배진일: ‘Movement Itself’ 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이 움직임 그 자체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무대에서 움직임이라는 것이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이 많은데, 순간적인 움직임에서도 그 잔상만은 오래도록 기억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어요.
최시원: 작품을 아우르는 큰 주제는 ‘지금 이 삶의 길을 걷고 있는 나’라는 것이었어요. 무용이라 하면 예쁘고 아름다운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런 유미주의적인 관점을 벗어나서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를 녹아내야 진정한 예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네 명의 안무자가 동시대 삶의 고민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냈는데,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낸 작품 4개를 옴니버스 형태로 구성해 보았습니다.
이은정: 우리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내서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게끔 노력했습니다. 어렵고 철학적인 면 보다는 재밌고 편하게 풀어내고 싶었어요. 저는 설치미술, 이한솔 안무가는 연극, 최시원ㆍ배진일 안무가는 조명을 작품에 접목해 보았습니다. 어제 공연 후에는 다른 무용 작품에 비해 어렵지 않았고 메시지 전달이 좋았다는 관객들의 반응이 있었어요.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조명을 활용한 풍부한 시각적 이미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진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명성황후> 등에서 조명을 담당하셨고, 지난 기획공연 <나ㆍ飛>에서도 호흡을 맞췄었던 ‘73 컴퍼니’ 백시원 대표가 이번 공연도 기꺼이 협업해 주셨습니다. 이은정 안무가의 작품에 쓰인 작품은 오혜민 설치미술가가, 이한솔 안무가 작업의 연기 부분은 황정라 씨가 맡아주셨어요.
이은정: 처음부터 협동 작업을 염두에 두고 안무를 시작했습니다. 조명의 경우 모든 안무가들이 백시원 선생님과 창작 단계에서부터 꾸준히 협의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냈어요. 최종적으로 김명숙 예술감독님께서 매끄럽게 연출해주셨고요.

무용에서 기본적인 작품활동은 소극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특히 소극장에서 펼쳐지는 젊은 안무가들의 실험적이고 독자적인 소품들은 창작 활성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는데요. 15-20분 정도의 소품이라고 하나 창작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요?
이은정: 작품을 하면서 늘 어려운 점은 제가 생각하고 표현하고 싶은 주제와 메시지를 몸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작품의 주제에 맞춰 '찰나의 순간'을 설치로 표현하고 이를 인생의 배로 설정하여 몸의 움직임으로 나타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작품의 메시지와 설치가 맞춰지지 않아 수정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결국 해석은 관객의 몫이지만 제가 표현하고자 한 바를 관객이 마음으로 느꼈을 때, 고된 작업의 끝에 큰 희열을 느낍니다.
이한솔: 연극과의 만남을 컨셉트로 정하면서 캐스팅 과정에서 곡절이 많았습니다. 주제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나의 아픔이나 감정을 어떻게 해야 함께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대사의 범위나 표현방식을 함축적으로 담아내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어요. 춤과 에너지, 표정, 감정의 강도를 분명하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몰입이 필요했습니다. 그 흐름이 잠시라도 끊이지 않기 위해 무대 들어가기 전까지 내가 이걸 하는 이유,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진솔한 저의 모습이 관객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무대에 올랐던 것 같습니다.

늘휘무용단은 김명숙 이화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를 주축으로 1996년에 창단한 단체이지요. 아카데미즘을 기반으로 구성된 민간무용단체의 입장에서 공공 무용단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견해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이한솔: 무용단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자기 색깔을 나타내거나 특색을 보여주기 마련인데요. 제 생각에 공공 무용단은 단체의 고유한 특성과 이념을 갖고 다양한 관객층을 확보하는데 중점을 두어야할 것 같아요. 특히 사회상황과 현실의 고민을 공유하면서도 다가가기 쉬운 무용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무용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과 시도가 공공무용단에게서 자주 비춰졌으면 좋겠어요.
이은정: 저는 민간 무용단체가 겪는 어려움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새로운 작업을 시도할 때 지원의 문제가 늘 뒤따르곤 합니다. 이번 공연은 전문무용수지원센터로부터 지원을 받았어요. 저희 무용단은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기 위해 창작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여러 지원사업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젊은 안무가의 육성이나 더 나은 창작여건을 위해 앞으로 다양한 지원사업이 개발되고 또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년은 늘휘무용단의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단체 또는 개인적으로 향후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요.
배진일: 늘휘무용단은 한국춤 메소드의 개발과 세계적인 한국무용작품을 지향하며 지난 20년간 꾸준한 활동을 펼쳐왔습니다. 그동안 쌓아왔던 좋은 작품들을 바탕으로 내년 20주년을 다채롭게 꾸미려 합니다.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창작, 전통, 젊은 안무가를 육성하기 위한 기획 등 성격이 다른 세 가지의 공연으로 관객을 찾아뵐 것 같아요.
이은정: 젊은 안무가들을 위한 무대로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이는 <공간, 그 무한의 가능성>을 시리즈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다음 기획공연에도 새로운 안무작업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한솔: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연에 담아낸 저의 이야기를 여성적 관점에서 차별과 불평등의 상황을 대입하여 해석하시곤 후련함과 뭉클함을 느꼈다고 공감해주신 관객 분들이 많았습니다. 추상적 춤도 좋지만 한국무용 특유의 '한'과 호흡, 정서 등의 이점을 활용하여 관객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공연이 표현, 전달방식 등 작업의 방향성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어주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관점에서 사람의 마음에 다가가는 춤을 만들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춤웹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배진일: 무용도 즐겁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렵거나 재미없다는 편견을 많이들 가지고 계시는데 직접 오셔서 함께 느끼고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물론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무용가들의 몫이겠지요. 앞으로도 더욱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애정 어린 관심으로 지켜봐주세요.

늘휘무용단의 창작 활동, 내년 20주년 기념 공연에 기대가 큽니다. 오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2015. 04.
사진제공_김명숙늘휘무용단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