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홍은예술창작센터 ‘모모한 예술’ 안수영의 〈마피아〉
성공적인 컨셉트, 아쉬웠던 진행
김혜라_춤비평가

 

 

 안무가 안수영이 이례적으로 추리극을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춤 작업을 선보였다. 관객이 공간을 탐색하며 게임을 하는 이른바 장소특정형 & 관객참여형 방식을 표방한 <마피아>(1월17일)는 작년 10월부터 홍은예술창작센터 2014 입주예술가 창작발표인 ‘모모한 예술’의 한 프로젝트이다.
 안수영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품을 구상하였다. 외딴섬에 10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초대되어 영문도 모른 채 한 명씩 죽어나간다는 원작처럼, 홍은예술창작센터의 구석진 위치와 관객 수를 최소한(20여명)으로 제한한 설정은 소설과 유사점이 꽤나 많다.
 창작센터로 들어오는 관객 한 명씩 신상을 정확하게 체크하는 다소 어색한 상황, 공연시간 20여분이 지연되었는데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 의아한 상황. 그리고 암전, 이어지는 총소리는 흥미로운 공포감을 조성하는 반전 효과가 있었다.

 



 춤꾼들과 관객이 함께 범인의 배후를 찾아가며 의문을 증폭시키고자 기획된 공연은 나름 설득력을 갖추었다. 모 TV 프로그램 ‘마피아 게임’과 같이, 작품의 출발은 누가 범인인지 모르게 하는 의문의 상황을 연출했다. 로비 한쪽 계단에서 탈을 쓴 익명의 무용수들이 관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다가와 응시하며 ‘너희 중에 용의자가 있음’을 암시한 상황이나, 실연 중 관객 핸드폰에서 들리는 “범인을 알고 있다?”는 음성이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춤꾼들은 초반부에는 혼란스런 상황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다가 점차적으로 죽어가는 역할만을 담당했다. 갑작스럽게 한 명이 로비에서 쓰러지고 다른 무리는 각각의 공간으로 점차적으로 흩어졌다. 복도를 지나 철문을 두드리며 절규하는 춤꾼, 피 묻은 몸을 웅크리고 무용실 바닥을 휘젓는 춤꾼, 그리고 2층에서 건배를 제의하며 마신 술에 의해 쓰러지는 춤꾼. 여기서 범인은 누구일가? 관객 중에 혹시 범인이 있을까?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없는 점이 흥미로웠다.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며 “테라스로 나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옥상에서 서성이는 검은 망토 입은 존재(범인)의 발견은 전체 흐름의 맥을 싱겁게 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어버렸다. 물론 제한된 관객의 이동 경로를 계산한 안무라 생각하지만,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는 반복적인 상황이 그다지 범인이 누구인지 궁금해 지지 않게 만들었다. 만약, 예측할 수 없는 장소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영상으로라도)으로 후반부를 설정했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해 본다. 장소만 교체해가며 죽음의 세레나데를 표현한 단선적인 후반부가 적극적이 될 수 있었던 관객들의 호기심을 흐리게 하였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절제된 동작과 치밀한 공간 동선사용이 식상한 듯 했지만 추리극의 묘한 분위기와 무신경하게 지나쳤던 공간 안팎의 의미를 배가시켰다. 특히 우아하면서도 처연한 볼프(Hugo Wolf)의 음악은 조소 섞인 작품의 분위기에 적합하였으며, 테라스에서 구석진 1층 연습실 커튼 뒤에서 죽어가는 춤꾼의 그림자 몸짓을 바라보게 한 설정도 피의자를 잡지도 못하고 피해자를 구할 방도가 없는 상황을 은유함으로써, 펼쳐진 상황에 집중하여 궁금증을 유발시킨 재미나는 설정이었다.

 



 홍은창작센터의 장소적 특성을 잘 활용한 <마피아>의 컨셉트는 성공적이었다. 반면에 초반부에 불러일으킨 능동적인 호기심이 친절한 복선 덕분에 관객을 수동적으로 이끌려 다니게 되어 버린 상황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결과로 <마피아>는 피해자만 있고 피의자를 찾을 수 없다는 사회적 함의가 부각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후반부를 보강한다면 춤과 공간적 특성을 재조명하는 순기능의 역할과 관객을 자극하는 신선한 작업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작품이다.

 


..................................................................................................................................................................



인터뷰_ 안무가 안수영 & 연출가 홍혜전

“공연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김혜라: <마피아>라는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와 가장 주력한 부분은 어떤 것이었나요?
안수영: 2014년은 유독 가시화된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있으나 가해자는 없는……. 서로 타인의 탓으로만 돌리고 스스로는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피아 게임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구상하였습니다.
공연<마피아>를 통해 작년에 제가 느낀 혹은 우리들이 느낀 현재 우리사회의 단면을 그려보려고 주력했습니다. 또한, 홍은예술창작센터 건물 어디를 가도 <마피아> 공연이 생각날 수 있게, 혹은 반대로 공연을 통해 건물의 위치나 각 용도의 특성을 잘 알 수 있게 소개하는 게 두 번째 주력한 부분입니다.

원작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소설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안수영: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소설을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못 모르고 읽어나갔는데 제가 끝까지 읽은 첫 번째 소설책이었습니다.

소설과 다르게 해석한 부분은요?
안수영: 한 곳에 사람들이 초대장을 받고 모인다는 설정과 의문의 죽음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범인을 작가가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 소설 내용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춤의 구성과 추리에 따른 범인의 이동성을 맞추었다는 부분이 큰 차이점 아닐까요? 범인은 있음을 암시하면서 확실한 알리바이에 따른 시간과 이동경로도 다 계산했고 실험해서 동선을 짰습니다.

음악이 작품 분위기와 설정된 연출에 적절했습니다.
안수영: 홍혜전 연출가께서 90년대 초 동네 경양식집에서 돈가스 썰 때 나오는 음악처럼 우리가 인지하지는 않지만 없으면 허전한 느낌의 음악이 좋을 것 같다고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하지만 아주 어려운 숙제였죠. 바흐부터 모차르트까지 경양식 집에서 나올만한(?) 클래식을 다 듣던 중 볼프음악을 찾았고 우연히 한 씬(Scene), 한 신이 끝날 때 마다 음악이 맞추기나 한 것처럼 느낌과 동선이 적절히 맞았습니다. 또한 홍은 건물 구조가 한몫 했죠. 1층에서 음악을 틀면 2층 테라스까지 음악이 들려요.


홍혜전씨는 작년 12월에 안무 한 <춤매뉴얼>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어서 안수영의 <마피아> 연출에 참여했네요. 이 작품에서는 연출자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홍혜전: <마피아>의 연출 컨셉트는 첫째, ‘closed circle’로 외부로부터 고립된 장소에서 한정된 인원이 갇혀 연속적인 살인이 발생되는 형식을 추구하였습니다. 둘째, ‘생존 서바이벌’로 한 사람이 살해당하게 되고 이후 참여자(무용수)들은 죽음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서로를 의심하고 범인으로 몰아가는 상황이 벌어지도록 하였습니다. 더불어 셋째, 극장이 아닌 장소특정형 공연을 지향하기 위해 홍은예술창작센터 전체 공간을 사용해보려 하였고, 실제로 사용된 공간은 1층 로비에서부터 복도, 탈의실 입구, 3무용실, 2층 로비, 테라스, 1무용실, 그리고 다시 2층 복도 순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사실 서울문화재단 기금으로 진행된 공연인데 관객 수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의구심이 공연 시작 전에는 들었습니다.
홍혜전: 장소특정 공연으로 진행하기 위해 관객은 25명으로 제한하였습니다. 지정된 공간 안에서 관객의 관람 컨디션을 위해 인원을 제한한 이유도 있었지만 관객을 탐정으로 정해 놓고 관객 스스로 벌어진 사건마다 범인을 찾도록 하는 관객참여형 공연을 계획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장소특정 연출은 나름 성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관객참여형으로 관객이 탐정으로 범인을 찾고자 하는 부분은 미흡했고 연속되는 살인의 반복은 지루한 감도 있었어요.
홍혜전: 처음 의도는 사건의 상황을 무용수들로 인해 재연하고, 이를 관객들이 확인함으로써 범인을 찾아 가는 관객참여형에 중점을 두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지적하셨듯이 미흡하게 진행되었고 발견된 문제점들을 다음 공연에 보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저는 안무자가 아닌 연출자로서 극장이 아닌 특정한 장소에서 공연되는 장소특정형 공연을 의도하였고, 마피아 게임의 형식을 통해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이 장소에서만 발생될 수 있는 상황을 공간 안에 채워야 한다는 반성과 다짐을 다시 해봅니다. 안수영: 보완해야할 점이 너무 많아요. 저희 내부에서도 범인에 대한 의견이 상이했어요. 관객이 잡는 것, 작품의 마지막에 알려주는 것, 무용수들이 잡는 것 등 수많은 의견 등이 나왔었죠.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 주객이 전도되어 춤 공연이 아닌 레크레이션 게임이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가 있었어요. 우선 춤 공연이니 움직임으로 뼈대를 잘 잡는 것이 이번 공연이 풀어야할 과제였던 것 같아요. 그다음 관객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꾸준한 리서치를 지속해야 더욱 탄탄한 이야기가 나올 테니까요.

홍은창작센터에서 작업하면서 어떤 점이 작품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는지, 혹은 아쉬웠는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 해 계획도 듣고 싶네요.
안수영: 홍은창작센터에서의 작업은 이곳저곳의 예술가들이 항상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저에게 힘을 주기도 때론 채찍질하기도 하였어요. <마피아>에서 마지막부분에 테라스에서 1층 1연습실을 바라보는 그림 자 씬 아이디어도 공간을 둘러보던 중 1연습실에서 움직이는 댄서들을 보며 찾아낸 장면이죠. 그동안 아쉬웠던 건 없어요. 단지 2015년 공사로 인해 홍은과 5월부터 함께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다음 단계는 다큐멘터리 영화형식으로 <마피아>를 필름으로 재구성 할 계획이 있습니다. 시작은 되었구요. 네덜란드에서 <백조의 호수>공연이 끝난 후 더욱 박차를 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세계 명소나 유명 건축에서 <마피아>를 계속 발전시키고 싶어요. 루브르박물관이나 대한민국-국립중앙박물관 건물에서 꼭 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피아>도 많은 발전을 꾀어야 하지만 홍은 관계자분들과 많은 스텝 분들의 도움으로 한발자국 나아간 것 같아 너무 기분 좋고, 든든합니다. 범인을 잡는 날까지 공연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웃음)

2015. 02.
사진제공_홍은예술창작센터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