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이현범 외 〈Preparation: 그 어떠한 것의 춤〉
의기투합, 독립 무용가들에 의한 신작 공연
이보휘_<춤웹진> 기자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안무가 6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윤보애, 이정인, 강진안, 최민선, 이지희, 이현범이 그들이다.
 이들 중 이현범은 6년 전부터 안무 작업을 했으니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잠시 뜸했던 활동에 다시 불을 붙여보고자 뜻이 맞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고 이번 공연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밝혔다.
 〈Preparation〉(준비)이라는 공연명 그대로 그들은 멀리 뛰기 전 도움닫기를 하기 위해 공연을 준비했다(1월 25일, 문화역서울284 RTO). 긴 호흡을 가지고 꾸준히 발전해 가기 위한, 관객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더 나은 작품으로 발전시켜 가기 위한 시작점인 셈이다.
 문화역서울284 건물에서도 제일 오른쪽 끝에 위치해 있는 RTO공연장은 ‘오늘 공연하는 곳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주변은 어두컴컴했다. 입구도 건물 뒤쪽에 있기 때문에 멀리서 봤을 때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처음 찾아오는 관객을 배려한다면 조금은 더 밝은 가로등과 공연장임을 알리는 배너 혹은 건물에 들어서는 입구에 포스터라도 부착되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극장 로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모습이었다. 관객의 대부분이 무용계 관계자인 듯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Preparation: 그 어떠한 것의 춤〉의 기획 의도가 지인을 초대해 피드백을 듣는 것이었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공연은 강진안·최민선의 〈모르겠습니다.〉, 윤보애의 〈하수구〉, 이현범의 〈포즈 필로〉(Pause Philo), 이정인의 〈Tuft〉, 이지희의 〈What do you want?〉 순으로 무대에 올랐다.
 “의도, 명령, 신경, 근육, 제시어, 전달사항, 내 새끼발가락, 확실함. 오류...갓뎀!” 이는 프로그램에 적혀있는 강진안·최민선 공동안무작 〈모르겠습니다.〉의 설명이다. 이들은 움직임의 원리를 밝히려는 듯 “오른쪽 어깨” 혹은 “두 번째 손가락” 등의 지시어를 말하고 그 지시어가 말하는 신체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즉 한 무용수가 “오른쪽 어깨”라고 말하고 오른쪽 어깨를 이용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계속 움직이다가 음악이 빨라지면서 이들은 지시어 없이 동작만 계속 이어간다. 동작은 점점 빨라지고 작품은 그렇게 끝이 난다. 정확한 명령 하에 움직이던 동작들이 점점 빨라지면서 통제를 벗어나게 됨을 보여줌으로써 움직임의 원리를 〈모르겠습니다〉로 전달한 것이 아닐까 한다.

 

 



 윤보애의 〈하수구〉는 하수구를 모티브로 계속 나아가는 삶의 모습을 표현한다. “버린다. 버려진다. 넘친다. 막히고 뚫는다. 역류한다. 버린다. 또 다시 비워진다...그렇게 계속 걸어간다.” 프로그램에 적혀있는 작품 설명이다. 물 내리는 소리, 사람들 발소리 등등 하수구 안에 있으면 들릴 법한 소리들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었고, 하수구와 가장 잘 어울리는 동물인 쥐 인형이 등장한다.
 안무가는 쥐와 싸우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고, 쥐와 노는 듯한 움직임을 하기도 한다. 만약 하수구 안에서 산다면 저러한 모습으로 일상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현범의 〈포즈 필로〉는 최진주와 공동안무로 2011년 국제현대무용제(Modafe) 초청작으로 공연했던 작품이다. 이번에는 이승은 무용수와 함께했다. “매일 똑같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을 잠깐 정지시켜 놓고, 우리의 일상과 삶을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고 싶다”는 안무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잠깐 쉬는 시간 후 이정인의 〈Tuft〉가 무대에 올랐다. 사선으로 비치는 조명 하나에 의지해 그녀만의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지희의 〈What do you want?〉는 사람들의 시선에 얽매여 자유롭지 못한 상황을 표현한 작품으로 수 십 개의 넥타이를 머리에 얹고 등장한다. 넥타이는 그녀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시선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듯하다. 무대 위에 놓여 있는 의자에 넥타이를 묶어 놓고 벗어나고자 하지만 이번에는 넥타이가 묶여 있는 의자가 그녀를 짓누르면서 그녀는 더욱더 억압받고 있음을 표현한다. 그렇게 9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모든 작품은 끝이 났다.

 

 



 공연 후 무용 공연을 자주 보는 마니아라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는 말아달라는 김모씨는 “프로그램에 적혀 있던 작품의 순서와 공연 된 순서가 일치하지 않아 공연되는 작품의 제목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라며 “프로그램에 설명되어 있는 작품과 실제로 공연되는 작품을 보고도 서로 매치할 수 없다면 좋은 작품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공연을 지켜 본 춤비평가 방희망은 “각자 소속된 무용단과 별개로 젊은 춤꾼들이 의지를 모아 자신들만의 작업을 무대에 꾸려내는 모습은 보기 좋다”고 하면서도 “쇼케이스를 목적으로 오픈된 무대라고 했을 때, 피드백을 반영할 의사가 있었다면 좀 더 적극적인 준비를 했더라면 좋았겠다. 공연 시작 전 그런 의도를 공지하고 설문지를 준비해둔다던가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안무가 잘 보이도록 관객석을 좀 더 뒤에 배치하던가 하는 배려가 아쉬웠다. 작품들은 춤의 기술적인 구사에만 머무른 듯하여, 짤막한 소품 안에서도 압축된 극성을 담아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촌평했다.
 춤비평가 이종호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자세와 노력은 눈여겨봐야겠지만 아직 성과를 판단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면서도 “그래도 마음가짐이 퍽이나 진지하니 발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작품의 우열을 떠나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유는 〈Preparation: 그 어떠한 것의 춤〉이라는 공연명이 보여 주듯, 이번 공연은 발전을 위한 준비 무대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안무가들이 모인 방식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학연, 지연 없이 오로지 동시대에 안무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뭉쳤다. 이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공연도 없었을 것이다. 열정이 만들어 낸 이번 공연을 발판 삼아 더욱 주목 받는 안무가로 성장해 나가길 기대한다.

 


..................................................................................................................................................................




미니 인터뷰_ 이정인

관람 소감 취합 완성도 높이는 것이 목표

 


이번 공연에서 〈Tuft〉를 발표하고, 젊은 안무가들이 모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이정인과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보휘 안무가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가 제일 궁금합니다.
이정인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로 출신 학교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은데 저희의 경우는 각자 활동하다가 만나게 되었습니다. 딱히 기억에 남는 계기가 있어서 모이게 된 것은 아니고 다 비슷한 또래이고,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활동을 하다 보니 조금씩 알고 지내게 되었습니다. 저를 기점으로 만나게 된 것이고요.

이번에 공연을 올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냥 재미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외국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알고 지내던 지인들을 만나다가 우리끼리 한번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시작하기에는 부담스럽고 주제를 정하면 얽매이게 되니까 우리가 하고 싶은 것 한번 해 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작은 스튜디오를 빌려서 우리끼리 쇼케이스 갖고,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조언을 받자는 생각에서 시작을 했었습니다. 저는 작품이 한 번의 공연만으로 완성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었고 하나의 모티브를 가지고 장기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같이하게 되면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시너지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프로그램에 지도가 그려져 있고, 여러 지역에 안무가들 이름이 적혀 있던데 그 그림의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각 지역 출신의 안무가들이 모였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제 이름이 한반도 밖에 표시되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만주에서 왔냐고 물어보는데 그건 아니고 그저 외국에서 왔다는 표현이었습니다. 지도는 재미로 그린 것이었습니다.

어디서 활동했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독일 베를린에서 개인 안무가들과 프로젝트로 2년간 활동했고, 불가리아의 데리다 무용단에서 2년간 활동하다가 2013년 말에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2014년에는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활동했구요.
그런데 이제는 독립적인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체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단체의 시스템이나 기획하는 분들께 너무 의존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을 하면서 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고, 저뿐만 아니라 함께 작업했던 안무가 분들도 이번에 했던 작업을 조금씩 수정 보완하면서 확장시켜 나갈 예정입니다.
또 2015년 모다페 국내초청작에 선정되어서 조금 더 발전된 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Tuft〉의 모티브는 신체였습니다. 모다페에 올리는 작품의 주제는 조금 바뀔 수 있겠지만 신체라는 모티브는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체를 중심으로 움직임의 확장을 계속 발전시켜나갈 예정입니다.

2015.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