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6년 시즌 기획 ‘예술가들’의 첫 번째 예술가 웨인 맥그리거(Wayne McGregor)의 행보는 ‘경계 없는’이라는 GS아트센터의 모토에 더할 나위 없이 걸맞다. 그의 작업은 무용, 연극, 뮤지컬, 영화,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광고, 건축, 디자인, 패션쇼 등 다양한 예술을 넘어, AI, 머신러닝, 로봇, 3D프린팅, 웨어러블, 원자, DNA, 드론, 알고리즘, 360도 3D LED 파노라마 스크린 등의 과학기술을 넘나든다. 일련의 전시(3.24~4.5) 안에 공연(3.27-28)을 위치시킨 ‘경계 없는’ 기획 속에서, 30년 넘게 지속된 예술과 기술에 대한 그의 실험은 ‘최첨단’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주요 언론의 뜨거운 관심과 집중을 받으며 많은 관객을 무용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큐레이팅으로 풀어낸 안무가의 기술론 〈기계와 몸: 무한의 변주〉
〈딥스타리아〉를 둘러싼 전시는 그 어떤 무용 기획에서보다도 많은 친절한 설명(공연음성해설, 오디오 도슨트, 자료집 등)과 체험 (및 전시팝업 공연)으로 아트센터 로비를 한껏 채웠다. “안무와 창의성, 이것이 나의 세계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움직일 수 있을까”라는 전시 표제에 붙은 안무가의 진술은 어찌 보면 매우 일반론적이면서도 예술에 기술을 더한 그의 안무적 의도를 잘 내포한다. 춤을 충동적이고, 본능적이고, 관습적인 것보다 “뇌의 정보처리 과정을 거치는 다양한 패턴의 생성”으로 이해한 그는 안무가로서 익숙한 또는 정형적으로 읽히는 춤 움직임이 아닌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발현되는 움직임”을 찾기 위해 기술을 적극적으로 탐구해 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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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Self〉, GS아트센터 제공 ⓒRavi Deepres |
전시에서 먼저 마주하게 되는 〈미래의 자아 Future Self〉(2012)는 움직임 인식 카메라와 1만 개의 LED 조명이 달린 퍼포머티브 조명 설치물로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LED 입체 패턴을 실시간으로 구현하도록 설계되었다. 설치물 앞 관객은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빛으로 또 다른 자신의 동시적 존재를 인지하게 되며, 움직임에 기민한 참여자라면 마치 조명으로 현현하는 나와 실제의 내가 춤으로 상호작용하는 것 같은 유사 감각을 느껴볼 수도 있다. 이러한 작품의 설정은 일찍이 빌티 존스(Bill T. Jones)가 〈유령잡기 Ghostcatching〉(1999)에서 모션 캡처와 컴퓨터그래픽 기술로 자신의 움직임을 데이터화하고 복제하여 다중화하는 테크놀러지 안무 실험을 선보인 것과 맥을 같이하며, 기술의 진보와 함께 안무의 논제를 보다 대중적인 관객참여형 버전으로 풀어낸 것이라 읽혀진다. 공공미술이나 상업적인 건물들에서 행인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미디어아트에 이미 익숙한 동시대 관객들에게는 혁신적인 무엇이기보다 융합기술 실험에 뛰어들었던 2000년대 초 예술가들의 교과서적인 시도를 몸소 체험할 기회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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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SOMA〉, GS아트센터 제공 ⓒDavid Parry PA Media Assignments |
두 번째 설치물 〈에이아이소마 AISOMA〉(2025)에서는 머리 위와 정면의 카메라가 사용자의 춤 시퀀스를 실시간으로 인식·분석해 30년간 맥그리거의 안무 움직임 아카이브에서 AI가 학습한 결과를 바탕으로 움직임을 제안해 준다. 이 작업은 구글 예술문화연구소(Google Arts & Culture)와의 장기적인 협업 결과물의 하나로 완성된 〈리빙 아카이브 Living Archive〉(2019)의 라이트 버전이다. 2019 버전이 AI가 카메라에 인식된 사용자의 포즈를 맥그리거의 안무 아카이브와 비교해 동일한 포즈를 찾아 타임라인 키 프레임으로 배치하여 일련의 애니메이션을 생성하고 저장하도록 한 방식이었다면, 2025 버전은 이에 더해 통계적 예측범위를 생성하고 사용자가 창작 자유도를 선택하여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도록 심화한 버전이라 하겠다. 인터랙티브 플랫폼 형식을 통해 관객은 AI가 제안하는 움직임과 자신의 움직임을 비교하며 패턴화된 움직임을 벗어나 창의적인 안무를 유희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 이러한 배면의 기술적 진보는 경험의 과정에서 상당히 가볍고 투명해져 관객에게 알고리즘 논리의 이해를 구하거나 당위를 드러내지 않으며, 그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며 3D에서 평면의 점선으로 얇아진 물질(stick figure)의 까딱거림으로 소급된 자신의 춤 움직임을 저장해 소장하고 배포할 수 있는 창작자로서의 역할과 지위를 간명하게 경험하도록 한다.
춤과 기술로 읽어낸 안무가의 존재론 〈딥스타리아 Deepstaria〉
전시에서 충분히 안무가의 기술 논리를 온몸으로 흠뻑 이해하였다면 무대에서는 그 구체화된 세계를 맞이하게 된다. 맥그리거는 작품에서 기술로 안무적 논제를 철저하게 뒷받침하며 ‘존재-생명-움직임’이라는 화두를 ‘해파리’라는 생명체에 빗대어 안무가적 탐구의 시선으로 냉철하게 논증해가고자 한다. 미국 잠수함 ‘딥스타 4000’을 타고 4,000피트 아래 캄캄한 심해를 누비며 맞닥뜨린 신비한 해파리속 생명체 ‘딥스타리아’를 처음 발견한 연구자들이 가졌을 호기심과 두려움, 경외를 관객의 눈앞에 춤으로 펼쳐 보인다.
빛으로 생성되는 공간
무대는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초흑(ultra-black)을 보여주기 위해 벤타블랙(Vantablack Vision®) 기술로 꾸며진다. 빛을 99.965% 흡수해 색이 아닌 색의 없음, 즉 있으나 있지 않은, 또는 있으나 감각 할 수 없이 펼쳐진 무대는 심해, 그리고 우주의 블랙홀과 같은 미지의 공간을 상정한다. 무로부터 생명의 탄생과 인간의 근원에 대한 안무가의 존재론적 물음은 그렇게 공간으로부터의 생성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본다. 암흑 속에 스며들어 드러나는 빛들은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배웠던 빛의 원리를 설명하듯,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무지개 등 공간과 물질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프리즘의 굴절색들을 다채롭게 바꾸어가며 무대 위 무용수의 존재를 비춰 감각하게 하고, 모든 색의 근원인 투명한 빛줄기를 퍼트려 그 가늠한 가시의 공간을 열어 보였다. 안무가는 지극히 철학적인 의도의 심오한 탐구를 애쓰기보다 지나치게 명쾌하리만치 원색적 감각의 나열로 존재론의 사유를 관객 앞에 그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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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맥그리거 〈딥스타리아〉, GS아트센터 제공 ⓒphotograsshopher |
움직임으로 드러나는 존재 그렇게 생성된 빛과 어둠의 대비로 창조된 공간 속의 무용수는 움직임으로 그 존재의 필연과 논리를 확립해 간다. 절대 멈춰있을 수 없는 흐름의 공간 속에서 심해 연구원들이 보았던 딥스타리아의 넘실대는 움직임은 넘치는 에너지, 정밀한 움직임, 고도로 조율되는 신체의 기교, 최소한의 의상만으로 드러난 단련된 맥그리거표 무용수의 신체를 통해 끊임없이 생성된다. 그 움직임은 랜덤 댄스 시절부터 탐닉하였던 그만의 신경증적인 움직임 질감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여러 국립발레단과의 작업으로부터 녹아든 클래식한 움직임들로 한층 단정해진 매무새로 연결되었다. 암흑과 빛의 반복되는 교차 속에서 때론 솔로로, 때론 이인무, 삼인무, 군무로 결합하고 흩어지고 만나고 소멸하는 움직임들은 빛으로 만물의 이치를 설명하고자 한 종교와 과학의 깨달음을 예측할 수 없는 순간 속 찰나의 춤으로 증명해 내고자 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랜덤하게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무용수들은 잔뜩 날 선 해파리의 촉수처럼 신체의 감각을 한껏 치켜세워 움직임으로 존재의 흔적을 새기며 지침 없이 움직인다. 그들의 몸과 팔과 다리는 그 생성적 가치를 내보이기 위해 어떤 움직임도 주저함 없이 펼쳐 보이도록 진화된 기능을 장착한 듯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작품 후반부 해파리를 연상케 하는 의상과 함께 보였던 움직임들은 전반부의 그것과 극렬한 대비를 이루는데, 뻗거나, 돌거나, 들어 올리거나, 높게 뛰어오르거나, 사족보행의 동물적 걸음걸이를 하거나, 수족관 유리 속 해파리 떼의 모이고 흩어져 유영하는 모양새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식별 가능한 동작들로, 춤 움직임에 지시체(referent) 그 이상의 의미를 일괄 삭제시켜 버리는 단순한 구조와 조형, 상징, 표현에 머물며 공감각적 존재의 사유를 시각적 직관으로 일축함을 감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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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맥그리거 〈딥스타리아〉, GS아트센터 제공 ⓒphotograsshopher |
소리로 생성되는 유일무이한 시간
시간은 존재의 ‘움직임으로 있음’을 가능케 하는 필연의 요소로서 작품 속 음악으로 자리한다. 인공지능 오디오엔진 ‘브론즈 AI’가 만들어 내는 다소 기괴한 비생명체적 기계음 같은 낯선 소리들은, 뚜렷한 리듬이나 멜로디나 마디가 없이 전개나 발전 또한 가늠의 영역을 전제하지 않는다. 녹음된 소스들을 실시간 변형하여 음악으로 생성해 낸다는 지능형 기술은 예측불허한 실시간적 생성으로 무용수의 움직임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세워 움직이도록 독려한다. 존재의 움직임으로서 춤이 비록 시각적 유사성과 패턴으로 일시적인 의미들이 읽혀지도록 보일지라도, 움직임에 의해 무한히 변형되고 생성되는 음악은 그 패턴의 순간성, 유일무이한 사건적 가치에 근거를 마련해 준다. 어둠과 빛의 공간 속 무용수들의 움직임의 떨림은 소리의 파장으로 공감각화 되며, 마치 이진법의 오르골 표면의 점자 무늬처럼 무대 위 파도의 빛의 굴절을 그려 심연 공간 속 존재의 있음을 명백히 드러내 주었다. 물론 관객들은 단 1회의 감상만으로 매 공연 바뀌는 음악에 따른 무용수들의 생동함을 간파하기 쉽지 않으며, 발생적 가치 외의 의미가 삭제된 반복과 변주에서 오는 미감적 지루함을 진득이 앉아 참아내야 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조응하는 듯한 단선적인 음향의 무한 변주는 외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를 넘나드는 것 같은 묘한 분위기로 생성과 소멸에 깔린 긴장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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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맥그리거 〈딥스타리아〉, GS아트센터 제공 ⓒphotograsshopher |
융합과 협업으로 완성된 안무가의 예술론, 신체지능 탐구
〈딥스타리아〉에 담긴 맥그리거의 예술론은 ‘혁신’, ‘거장’, ‘최첨단’ 등 자극적인 홍보문구의 수식어로 장식하기엔 오래고 깊다. 1991년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이 작품 〈트래커 Trackers〉 안무를 위해 3D 캐릭터 애니메이션 소프트웨어 라이프폼즈(Lifeforms)를 보조도구로 활용한 것과 같이, 1999년 윌리엄 포사이스(William Forsythe)가 자신의 즉흥 방법론 이해를 돕기 위해 ‘즉흥 테크놀러지(Improvisation Technologies: A Tool for the Analytical Dance Eye)’를 개발해 활용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예술-기술 탐구는 1992년 무용단 창단 이래 움직임 본질을 통한 인간 이해의 예술철학적 궤도를 꾹꾹 밟아온 여정과 함께한다. 그에게 기술은 분명 몸으로 할 수 없었던 것을 기술로 포장해 보여준다기보다, 몸이 이미 해왔던 고유하고 정교하고 미묘한 것들을 증폭시키거나 드러내 주는 포스트휴먼적 비전을 배태한다. 인간이기에 가능한 것, 춤 예술이기에 할 수 있는 것, 움직임이기에 발휘되는 것을 기술로 일깨우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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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인 맥그리거 〈딥스타리아〉, GS아트센터 제공 ⓒphotograsshopher |
춤과 신체, 움직임으로 발휘되는 순수예술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탐구와 예술철학적 깊이는 거듭된 상의 개수만큼이나 단단히 얇게 다져졌으며, 이와 융합하는 최첨단 기술의 작동 논리와 구현 가능성의 무게는 한껏 투명해지고 가벼워져 대중 관객들의 감각적 몸짓을 이끌고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안무가, 무용수가 창작 과정과 무대 위에서 발휘하는 움직임 능력, 그리고 관객이 춤을 보며 발휘하는 움직임을 감각하고 공감하는 능력, 이른바 맥그리거가 작품 속에 암시적으로 인용하는 신체지능(Physical Intelligence)은 무용예술 고유의 영역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의 존재론적 능력임을 선언한다. 기술을 통해 창의성을 발휘하고자 한 그의 작업은 “우리는 움직임이다 We Are Movement”(2025년 출간된 안무가의 저서 제목) 라는 하나의 명제를 설득한다. 질문을 던지는, 난해한, 혹은 해체적인, 또는 춤 스스로에 대한 예술철학적인 태도, 즉 춤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기 위한 예술 행위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동시대 춤과 선명히 대비되는 맥그리거의 예술론은 춤의 감각을 이제는 보편적이며 일반론이 된 일원론의 명제로 귀결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명료해진 생각과 투명해진 기술로 한껏 고양된 보편적 이해는 동시에 예측불허함과 혁신을 품은 창의성에 대한 기대에 아쉬움을 남긴다.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상의 수차례 수상으로 곱씹어져 거장이라 새삼 부르기에도 식상한 뒤에나 이루어진 무대이기에 그 기대감이 더욱 배가된 탓일지도 모르겠다. ‘연 매출 56억’2) 자본의 뒷받침과 스튜디오 웨인 맥그리거(Studio Wayne McGregor)를 구성하고 있는 무용수, 기술자, 과학자, 예술가, 연구자, 교육가 등 다양한 공동 작업자들의 집단지성을 통한 협업의 결과물은 매력적이고 쉽사리 도달할 수 없는 완성도를 이루지만, 그 숙련은 지극히 압축되어 극장이라는 전통적인 프레임 속에서 춤 감각에 지각의 칼날을 들이댔다. 전시에서의 감각적 체험과 무용수가 춤춰 생성한 미지의 세계와는 철저하게 분리된 채 관객들은 오직 관찰자로서 무대 위 재현을 마주한다. 우주의 심연을 그린 벤타블랙은 프레임에 잡아당겨진 사각형의 천에 불과하며, 각막을 자극하는 강렬한 레이저 빛의 번쩍거림은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고, 반복되는 지루함에 몸을 비틀고 하품하는 옆자리 관객의 디지털 시계의 불빛은 완벽한 암흑의 공감을 일순간 깨뜨리고, 생동적 움직임 감각은 무용수의 훈련된 기능적 신체와 다듬어진 몸매로 매끄럽게 덮이며, 유려한 춤은 무대에 기술이 차지한 만큼 자리를 내어주며 때론 위축되어 버리곤 한다. 더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 동시대 춤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존재론적 사유일까, 기술적 진보의 용례일까,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대중적 이해일까, 아니면 오직 춤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첨예한 실천일까. 쉽사리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 많은 관객의 공감과 이해를 성실히 끌어낸 가운데 여전히 맥그리거의 작품과 함께 객석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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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병호, “웨인 맥그리거 ‘인공지능·3D영상···몸의 새로운 움직임 찾아”, 이데일리, 2017년 5월 26일,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138166615932856 (검색일: 2026년 4월 10일)
2) 박선민, “인터뷰, 웨인 맥그리거 무용단 경영감독 레베카 마셜”, 객석, 2026년 3월 6일, https://auditorium.kr/2026/03/안무가-웨인-맥그리거-ai-시대를-춤추게-하다/ (검색일: 2026년 4월 10일)
이지선
춤연구자, 비평가.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초빙교수, 댄스&미디어연구소 연구원으로 동시대 춤 미학과 비평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실천연구에 관심을 갖고 공연현장에서 크리에이티브 퍼실리테이터로서 안무리서치, 기획 및 아카이빙 등에 참여하고 있다. 2004년 국제공연예술제 제1회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춤웹진, 몸, 춤과사람들, 춤in 등에 기고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