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멘터리 연극이라는 용어는 많이 일반화되었지만 ‘다큐멘터리 춤(공연)’이라는 용어는 아직은 낯설다. 내가 ‘다큐 퍼포먼스(Docu Performance)’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만난 것은 무브먼트 당당이 2009년부터 시작한 ‘기억의 몽타주’ 시리즈 중 하나인 〈오래된 기억〉(김민정 안무‧연출. 2013.7.5-7. 문화역 서울 RTO)이었다.
당시 당당은 ‘기억의 몽타주’ 연작을 기획하면서 ‘다큐 공연’이라 스스로 칭했던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시도했고 이런 형식은 그들이 기억하려던 역사, 그 중에서도 더 많이 망각되고 소외된 디아스포라 고려 이주민 이야기를 다루기에 적합한 형식이었다. 그 당시의 사료가 공연 안에 보여지고 말해진 것은 물론이고 배우들이 직접 역사와 관련된 물건을 찾아오거나 당시의 내밀한 그들의 기록 등으로 공연 공간은 고려 이주민의 외침이 들리는 듯한 시공간으로 강력하게 변해 갔던 기억이 있다. 연극과 춤의 경계에서 작품을 하던 무브먼트 당당이 이미 15년도 전에 다큐 연극을 먼저 접하고 춤과 연극의 경계가 없는 ‘다큐 공연’을 시도한 것은 그들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무용 씬에서는 기록조차 드문 일이었다.
개인 서사와 춤의 라이브니스
한편 국립현대무용단은 안애순 예술감독이 부임하면서 12월에 〈2013 춤이 말하다〉를 시작한다. 〈춤이 말하다〉는 댄서로 살아 온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말이 다해지면 춤으로 보여주는, 춤과 말이 교차하는 형식이었고 그 두 가지는 댄서의 한 몸에서 일어나는 춤이라는 장르의 이점을 한껏 살린 공연의 포맷이었다. 춤은 원래 말을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언어와 그것을 발화하는 행위는 춤이라는 매체와 매우 이질적이어서 자칫 이 둘이 잘못 섞이면 서로를 방해하고 파괴하는 속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획은 이 둘을 아주 노골적으로 섞고 공존시켜 버린다. 게다가 무대 위에서 댄서들의 일상과 내면의 감정이 토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리얼에 가깝고 그만큼 흥미를 유발한다.
김운태(한국전통춤), 이나현 이선태(현대무용), 김기헌 안지석(스트릿댄스), 오철주(한국전통춤), 차진엽 김설진(현대무용), 김영숙(한국전통춤), 예효승 김설진(현대무용), 김지호(파쿠르) 등 2016년의 이 공연의 출연자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 〈춤이 말하다〉는 하루 공연에 서너명이 출연하여 개인이 15-20분 정도의 무대를 만들어 내는 옴니버스 형식이었고, 출연자에게는 부담이 적고 관객에게는 댄서로 명성이 있는 이들을 한 공연에 여럿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기획의 성공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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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컴퍼니 〈춤이 말하다_문소리✕리아킴〉 문소리, 안애순컴퍼니 제공 ⓒ이민옥 |
거의 1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한 〈춤이 말하다_문소리✕리아킴〉(2026.1.22.-23. 강북소나무홀)는 문소리와 리아킴 두 명에게 집중하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고, 서로 색다르면서도 강력한 퍼포머인 이 둘이 채우는 ‘춤이 말하다’는 좀 달랐다. 10여 년간 예열했던 ‘춤이 말하다’의 형식이 미니어처라면 문소리와 리아킴의 연이어진 무대는 각 40분이 넘는 시간을 혼자 끌고 하는 막중한 긴장감과 충족되는 내용의 무게감으로 이 포맷의 완성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매우 서로 보완적인) 두 명의 스타 퍼포머를 무대로 올려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사건들, 그리고 내밀한 느낌을 끌어내고(글‧구성 김혼비) 그것을 춤과 섞어 무대 위의 공연으로 무리 없도록 만들어 낸 것을 그저 대중성 있는 재미있는 공연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개인-다큐-춤공연’이라는 새로운 형식 실험의 결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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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애순컴퍼니 〈춤이 말하다_문소리✕리아킴〉 리아킴, 안애순컴퍼니 제공 ⓒ이민옥 |
무브먼트 당당이 사회적, 역사적 사건과 그 주제에 천착하고 그것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현재에 재연하기 위해 ‘기록으로서의 다큐’를 끌고 들어왔다면, 〈춤이 말하다〉는 철저히 개인의 몸에 공존하는 춤과 개인사의 엉켜있는 지점을 포착하고 ‘서사가 춤으로 연결되는 길’ 또는 ‘사람과 춤을 밀착시키는 길’을 찾아내 생생함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춤에 있어서도 개인 서사라는 매력은 퍼내도 퍼내도 줄어들지 않는 마르지 않는 샘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다큐와 가상의 팽팽한 긴장
모든컴퍼니의 〈씨름〉(2025.12.26.-27. 메리홀대극장)은 또 다르게 씨름이라는 주제를 조망하고 있었다. 김홍도의 씨름 민속화를 LED 화면에 띄운 것에서 시작하여 『난중일기의 씨름의 의미와 재해석』(공성배‧이태현 공저, 2024, 대한무도학회지)과 『식민지 시기 ‘전통’놀이 씨름의 근대화 과정과 특징』(임동현, 2024, 한국독립운동사연구) 등을 참고하여 역사적인 조망을 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EBS 역사채널e 〈씨름〉에서 빌려온 피바다가극단의 씨름춤과 1983년 문화영화 〈씨름〉의 장면들을 보여주며 공연 공간을 마치 씨름 박물관처럼 꼼꼼한 고찰의 공간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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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컴퍼니 〈씨름〉, 모든컴퍼니 제공 ⓒ최근우 |
공연 〈씨름〉에서 가장 압도적인 재연은 씨름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래 씨름판이 무대로 설정된 중앙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메리홀의 객석은 사라졌다. 그리고 나무로 된 단 위에 의자를 놓고 객석을 3면에 만들었고 그 가운데 모래주머니와 원형의 벽을 쌓은 모래판이 있었다. 피나가 〈봄의 제전〉에서 무대 위에 진흙을 다져 깔고 그 위에서 뒹굴며 춤을 춘 것, 카네이션을 무대가 좁도록 깔아 꽃밭을 만들고 그것을 짓이기거나, 낮게 물을 채워 물 속에서 춤을 춘 것 등 무대를 플로어가 아닌 다른 물질로 채워 다른 공간으로 변신시킨 것처럼, 〈씨름〉의 무대는 충실한 다큐의 방식만큼이나 공연이라는 가상과의 긴장을 창출했고 안무가와 출연자들은 그 긴장의 칼 위에서 끝까지 고투했다.
앞에 예를 든 것처럼 우리는 피나 바우쉬의 환상적인 무대의 변신을 기억하고 그것을 모범적인 전형처럼 여기고 있다. 그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씨름〉의 무대 변화는 날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무대를 낯설어하는 견해 속에서 어떤 춤계의 보수적 생각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연을 직업처럼 만들고 보는 사람들에게서 발견될 때 솔직히 절망감을 느낀다.
젊은 안무가의 무모함에 가까울 수 있는(특히 무용계의 보수적 감각에서 보면) 도전에 나는 가슴이 묵직함을 느꼈다. 그런 결정과 시도를 위해서는 ‘기존’이라는 ‘관습’이라는 벽과 부딪혀 그것을 뚫는 힘이 적지 않게 필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기존과 관습 속에서 예술은 시들고 나약해져 간다. 예술이 나약하면 나비의 날개짓이 언젠가 어디선가 태풍이 되는 것처럼, 예술의 창의성을 보장해주지 못할 때 우리의 삶은 어디선가 낡고 병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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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컴퍼니 〈씨름〉, 모든컴퍼니 제공 ⓒ최근우 |
〈춤이 말하다_문소리✕리아킴〉과 〈씨름〉이 흥미로웠던 것은 역사, 현실, 지금, 개인에 다가가 그 안의 다양한 시각들을 무대로 데려왔다는 것인데, 그 방법이 예전처럼 모호하지도, 추상적이지도, 얼버무리지도 않고 다큐 형식이라는 강력하고 믿을만한 틀에 기대어 작품을 풀어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작품에 걸맞은 자율적인 방법론을 만들어 가며 찬찬히 ‘현실과 춤’을 ‘사람과 춤’을 연결시키는 노련함에서 많은 위안과 기대를 느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서 울고 웃으며 함께 즐기는 〈관객〉이 함께 있다는 것은 희망이었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