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시간의 토대는 기억이다. 기억이 작동해야 시간도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휴먼스탕스(안무: 길흥)의 근작 〈이윽고〉는 마음 속 시간에 대해 존재론적 물음을 던졌다(아르코예술극장, 1. 9~11.). 자칫 고답적으로 흐를 수 있는 명제를 공연은 다양한 무대 스펙터클로 풀어보였다. 한국무용과 전통적 요소들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공연은 보는 즐거움에 멋스러움을 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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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탕스 〈이윽고〉 |
〈이윽고〉는 두 사람이 동떨어져서 각자 가진 판자와 테이블을 이리저리 매만지며 찬찬히 퍼포먼스를 몇 분 동안 펼치고 나서 등불을 든 사람들이 배회하면서 그 무엇을 찾는 듯한 상황으로 시작하며, 사람들이 바람에 맞서서 옷자락을 휘날리며 주로 허공을 향해 갈구하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공연작의 근저에는 순풍과 역풍이라는 (인생) 시간의 항로에서 인간들 사이의 이런저런 만남이 언젠가는 이윽고 긍정시되리라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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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탕스 〈이윽고〉 |
명확한 스토리와는 거리를 둔 상태에서, 〈이윽고〉는 만남의 모습들을 밝고 다양하게 펼쳐내는 전반부 그리고 사람들이 주로 일체화된 움직임으로 집단을 이루어 자신들의 심경을 표출하는 후반부로 구성된다. 전반부는 전통적인 복색과 요소들을 활용한 데 비하여, 후반부는 기다란 엘이디 조명바와 테크노 비트의 전자 사운드로 시작하여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굳이 말하면, 전반부에서는 전통적인 색채가, 후반부에서는 현대적인 색채가 뚜렷하였다. 만남이 시간 의식의 형성에서 주요한 요인이라는 점에 착안해 본다면, 이 작품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시간이 생성되는 계기들을 전반부에서 짚고 후반부에서는 시간이 급히 흐르는 오늘날의 세태 그리고 시간의 흐름을 감내하되 돌이켜 보는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 표현된다. 작품에 내포된 시간의 은유는 〈이윽고〉를 돋보이도록 하는 점이다. 전통 소재들이 높은 비중을 점하는 전반부는 국제적 시각에서 봐도 현대적 감각과 세련미가 완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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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탕스 〈이윽고〉 |
전반부에서 사람들은 넉넉한 주름바지와 민소매 셔츠를 착용하고 남녀가 구애할 적에는 남자는 복건과 쥘부채, 두루마기, 여자는 쓰개치마를 착용하였다. 이들 전통적 장식은 〈이윽고〉의 정체성이 한국무용 계열에 속한다는 것을 명시한다. 이와 연결하여 음미해볼 점으로서, 〈이윽고〉 전반부의 뒷부분에서 여창 가곡이 반주음악으로 오래 지속되었다. 허밍처럼 들리는 여창 가곡은 간간이 철금 또는 신디 류의 멜로디와 섞여 영롱한 음색으로 분위기를 이끈다. 여창 가곡의 미적 특질로 꼽히는 느림과 절제 같은 정조(情調)는 전반부의 시간을 고즈넉한 시간으로 물들인다. 한국무용의 유려하면서도 때로는 날렵한 움직임들은 이 여유로운 시간, 느긋한 만남들에 이유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형체를 부여한다. 상당히 서정적인 이 부분은 산조와 가까워 보이되 산조 이상이며 한 편의 독립된 소품으로도 가능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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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탕스 〈이윽고〉 |
전반부 전체에서 사람 키 높이의 얇은 널판지는 소품으로서 그 역할이 컸다. 출연진들은 널판지를 한 장씩 들고 등장하여 커다란 바람개비처럼 공중에서 돌리거나 바닥에 여러 가지 포맷으로 배열한다. 널판지들로 무대 위에 사각형의 빈 공간이 조성되면 그 속에서 사람들은 춤으로 놀아간다. 또 그것들은 가야금 같은 가상의 악기가 되다가 징검다리가 된다. 그리고 몇 장이 모이면 화문석이 되어 춘앵전을 추는 춤판이 된다. 돌려지는 널판지가 시간의 흐름도 암시할 테지만, 그것은 그 안에서 그 위에서 춤추는 공간이 되고 악기가 되고 사람들의 만남을 잇는 징검다리가 됨으로써 널판지에서 생성되는 시간들이 환기하는 느낌은 상큼하다. 또 하나의 소품으로서, 대형 거울 크기의 나무틀은 그것을 통과하는 사람이 어떤 환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입구가 되고 바닥에 놓인 그 틀 안에서 춤추면 환상의 춤판이 된다.
시간 즉 만남이 돌변하는 후반부는 시작 지점에서부터 빠른 테크노 리듬을 배경으로 하고 기다란 엘이디 조명바들이 대형의 사각형 구조물로 설치되었다. 현대의 도시 문화를 연상시키는 분위기 속에서 검정옷을 입은 사람들의 일체화된 움직임들은 급하고 에너지가 강하며 공세적인 느낌을 유발한다. 한참 지속되는 이런 순간들에 이어 사람들은 실신하며 배회하고 저마다 겉옷을 벗고 물러난다. 다시 착의해서 등장하지만 배회하며 방황하는 기색이 여전한 분위기에서 모두들 물러간다. 여기서 탈의는 습성화된 부정적인 시간, 다시 말해 자기 상실의 상황을 벗어나려는 몸짓을 시사할 테지만 다시 착의하는 데서는 그러한 시도가 여의치 않다는 것이 암시된다. 이어 등장하는 남녀들은 망사 같은 천을 두르고 있어서 송풍기 바람에 옷자락이 줄곧 흩날리는 장면이 쏟아지는 조명 아래 오래 연출된다. 대체로 후반부에서는 질적으로 퇴행하는 현대의 시간이 묘사되고 그런 시간에 선뜻 순응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가 표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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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탕스 〈이윽고〉 |
공연에서 전반부에 비하여 후반부는 움직임들이 우선 단순하고 전달되는 의미 또한 상식에 준하였다. 전반부에서 후반부로의 이행이 급변으로 치달을 수 있겠으나, 전반부에서 만났던 다양한 장치나 소재가 후반부에서 부분적으로 되새김되는 구성을 가정해본다면 후반부의 의의는 달라졌을 것 같다. 전반부와 후반부를 관통하는 것은 시간 의식(意識)이나 삶의 행로 같은 추상적인 소재였을 뿐 양쪽을 연결하는 구체적인 고리나 장치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단절된 상태에서 후반부의 단순화로 인하여 전반부의 느낌 또한 유감스럽게도 반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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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탕스 〈이윽고〉 |
기억의 내용이 시간의 품질을 좌우할 것이고 만남은 기억을 채우고 구성하는 활동이라면, 만남과 기억과 시간은 상호맥락적이다. 마음 현상으로서 시간이 세상 속의 만남과 밀착된다는 점에서 시간의 항로를 추적하는 〈이윽고〉는 만남에 관한 서사이기도 하다. 인생 시간의 항로에서는 본성적으로 순풍과 역풍이 있어 인간의 숙명 같이 당연시되는 역풍도 흔하다. 그런 것을 좁은 범주의 실존적 조건이라 하는가. 그러나 전통사회와 현대 문명의 시간을 대조시키는 데서 뚜렷하다시피 〈이윽고〉에는, 말하자면, 숙명 너머의 역풍, 오늘 문명이 조장하는 역풍을 되짚어 보는 뜻이 찾아진다. 〈이윽고〉를 숙명 일변도로 대하면 자칫 간과하게 되는 점일 것이다.
일상적으로, 오늘 문명에서 심화되는 시간의 퇴행에 직면하여 만남의 회복이라는 숙제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가중되고 있다. 시간의 숙명에 더하여 시간의 퇴행이 깊어가는 시대에 누구든 자기 상실의 처지를 이겨낼 방도로서 만남의 길을 묻곤 하겠으나 그 답은 실상 간단치 않다. 힘겹더라도 계속 묻지 않을 수 없는 일이며, 〈이윽고〉가 물음을 폭넓게 제시하면서 펼쳐 놓은 움직임과 장치를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