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임스 전 〈클라라 슈만〉
춤으로 헤아린 세 마음의 깊이
권옥희_춤비평가

두 마음이 있다. 하나는 최초의 우주이며, 또 하나는 그 물질성(한 곳만을 향하는)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는 애끓는 마음이다. 이 애끓음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빛났던 춤. 제임스 전의 〈클라라 슈만〉(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12월26일~ 27일).



제임스 전 〈클라라 슈만〉 ⓒ잔나비와 묘한계책



딱, 딱, 딱 극장의 공기를 흔드는 박자를 세는 메트로놈. 푸른색 조명 아래 피아노 4중주 악기가 배치된 공간과 클라라와 그녀의 아버지가 서 있는, 두 공간이 드러난다. 아버지가 들고 있던 악보를 클라라가 찢는다. ‘클라라 슈만’의 작품 〈로망스〉가 흐른다. 사랑을 선택한 클라라의 자유의지를 보여주는 프롤로그. 클라라(이윤희)와 로베르트(정운식) 그리고 브람스(알렉산드로) 이들 세 사람이 춤으로 빚는 삶과 음악, 사랑의 깊이 측정(메트로놈)을 위한 은유로 보이는 메트로놈. 음악과의 갈등을 보여주는가 하면, 시간을 돌리듯 거꾸로 회전시켜 로베르토와 클라라의 ‘사랑의 시절’을 소환한다.

갈등하는 클라라의 내면을 보여주는 군무와 로베르트와 클라라가 추는 ‘사랑의 시절’, 아름답고 슬프다.

그러고 보면 아름다움이나 슬픔만큼 복잡하고 복합적인 감정도 드물다. 어쩌면 모두 다른 방식으로 이 복잡하고 복합적인 감정의 춤을 볼 것이기에, 춤으로 그려내는 이들의 세계는 마치 춤을 보는 이들의 삶의 연장같거나 혹은 나만이 알고 묻어두었던 이야기가 무대에 그려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그리고 묻어두었다는 것은 그 일에 관해 서로에게 분명한 의견이 없었다는 것이며, 거기서 내가 해방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 춤이 어떤 형식으로 기억되며 그 기억이 어떤 춤과 어떤 방식으로 만나 표면에 떠오를 것인가, 아니면 더 깊은 곳으로 사라질 것인가.



제임스 전 〈클라라 슈만〉 ⓒ잔나비와 묘한계책



‘운명의 만남’.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춤으로 그려내는 남녀 커플들의 춤. 돌아서 있는 남자. 클라라의 아버지와 로베르토 그리고 클라라. 이들의 갈등으로 연결된 세계, 음악을 은유하는 피아노의 검은색 건반이 내려와 걸리는 무대. ‘나와의 사투’ 장, 안무자(제임스 전)가 독백의 형태로 배치한 클라라의 솔로는 시적 언어에 가깝다. 이윤희(클라라)가 그려내는 춤 감정의 선은 놀랍다. 작품에 몰입을 돕는 긴 춤(몸)선이 빚어내는 삶과 사랑, 갈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온몸으로 춘다. 여기서 온몸은 비유적 표현이 아닌 실제의 춤몸이다.

그리고 무용수의 등. 춤을 춘 뒤 의자에 돌아앉아 보여주는 보여주는 클라라의 등. 둘의 춤을 우두커니 서서 보고 있는 브람스의 등. 클라라와 같이 춤을 춘 뒤 죽음의 ‘천사의 손짓’을 예감한 듯 이내 돌아앉는 로베르트의 차가운 등. 같은 동작으로 추는 위태로운 감정, 서로의 모습을 마치 거울로 보듯 등을 맞대고 추는 섬세한 등들. 작품 〈클라라 슈만〉에서 무용수의 등은 삶과 사랑에 대한 가장 극심한 저항이며, 갈등이자 고통, 죽음이자 슬픔의 열거다.



제임스 전 〈클라라 슈만〉 ⓒ잔나비와 묘한계책



또 그리고 시선. 안무자는 등을 보이는 로베르토를 쫓는 클라라의 시선에 무게를 두고 춤을 풀어낸다. 클라라는 로베르토를, 브람스는 클라라를 그림자처럼 쫓는 시선으로 로베르토를 향한 클라라의,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대책없는 사랑을 그려낸다. 로베르토를 쫓는 클라라의 눈을 자신의 손으로 가리는 브람스에게서 로베르토를 향한 클라라의 사랑의 깊이를, 그 현실을 가리고자 집중하는 순간의 브람스의 춤에서 투명한 비애가 묻어나온다. 애끓는 열정, 그 열정에 눈멀어지기라고 불러야 할 것도 같은 이 동작은 시지포스처럼 깊이없는 사랑에 얼굴을 처박고 보람없는 감정에 짐을 밀고 가야 할 고통의 시간이 자신에게 주어졌지만 클라라의 눈을 가리는 용기를 얻는 것, 그 선택 또한 음악(춤)처럼 그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피아노 4중주가 배치된 작은 무대가 중앙으로 이동. 비올라가 빠진다. 푸른색의 무대 배경으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연주자들의 실루엣, 무용수들의 그림자로 그려지는 춤은 그림자놀이 같다. ‘이별의 시간’. 로베르토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검정색 의상의 남자와 흰 의상의 여자, 로베르토의 내면이거나 죽음 이후의 세계로 읽히는. 로베르트의 정신병을 암시하는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와 로베르트. 흰색 의상을 입은 여자의 춤이 단단하다. 다소 늘어지는 춤의 서사.

스스로를 살해하고야 말겠다는 듯 격렬한 감정으로 치닫는 로베르토의 춤을 브람스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로베르토의 곁에 선 클라라, 클라라 옆에 선 브람스, 로베르토를 따라다니는 클라라의 눈을 자신의 손으로 가린다. 로베르토의 곁을 지키고 있는 죽음의 전령같은 검은의상의 남자.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열정과 감각을 다시 끌어올리려는 듯한 로베르트의 춤은 순간 사랑의 형식을 띠다가 이승의 기억을 잃은 듯, 춤은 감각의 착란처럼 보이기도. 자신의 광기와 고통의 연원을 모르는(알고 있는지도) 로베르토의 춤은 어느 순간 오히려 순결해보인다.



제임스 전 〈클라라 슈만〉 ⓒ잔나비와 묘한계책



바이올린 선율에 얹은 브람스와 클라라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춤을 로베르트가 지켜본다. 같은 공간의 세 사람. ‘죽음과 애도’의 장을 ‘클라라 슈만’ 작품음악으로 배치한 안무가 제임스 전으 의도.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클라라의 감정에 무게를 둔 것이다. 흰색 의상의 여자무용수와 로베르토. 죽음을 이끄는 손짓에 흔들리며 죽음과 삶을 넘나드는 춤. 로베르토 얼굴에 검정색 천이 덮히자 클라라가 떨어져나와 무너지듯 비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로베르토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의사와 브람스, 클라라가 추는 세 명의 춤.

느낀다는 것과 확인한다는 것은 같지 않다. 클라라가 의자 위에서 아래로 몸을 푹 가라 앉았다가 다시 올라오기를 반복하는 춤.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는 슬픔과 고통의 춤으로 춤을 추는 순간은 그 무한이 허무로 떨어지는 시간인 동시에 유한한 세상으로서의 죽음과 브람스가 있는 세상을 통해 저 무한한 예술의 세계와 관계를 맺는 춤으로 전환된다. 클라라가 의자 위를 위태롭게 걸어다니자 징검다리를 놓듯 디뎠던 의자를 빼서 클라라 발 앞에 끌어다 놓는 것을 반복한다. 이는 죽음과 다른 시간의 경계에 섰을 때, 그것을 파악한다기보다 그것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춤으로 해석된다. 〈카페 뮐러〉에서 눈을 감은 여자를 위해 의자를 끝없이 치워주던 그 처절한 사랑과 고통의 관계같은. 이들이 못다 춘 또 다른 사랑의 형태와 감정의 관계를 남녀 두 커플과 여자무용수가 그려보인다. 아름답게.



제임스 전 〈클라라 슈만〉 ⓒ잔나비와 묘한계책



9장, ‘심연의 사랑’. 첼로연주로 시작되는 춤. 요하네스 브람스의 〈Piano Quartet No.3 in c minor, op.60 Scherzo piano〉(로베르트 슈만이 정신질환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에 작곡한 작품). 고증을 거친 음악선택으로 안무자 제임스 전의 미학적 성과와 치열한 춤의식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푸른색 배경막과 검정색 피아노 건반을 배경의 군무진의 춤. 그 가운데서 스윽 위로 솟아오르는 클라라.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사랑과 고통을 그려낸 브람스와의 춤, 아름다웠다. 고통스럽지만 분명 행복한 삶이기도 했을 클라라를 향한 브람스의 복합적인 감정을 잘 녹여낸 발레리노 알렉산드로의 춤, 빛났다. 가망없는(?) 사랑이란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사랑의 감정 앞에 매번 돌아오는 이의 열정은 어느 누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 의해 창조된다. 그는 자신의 불행에 좌절하지 않는다. 알렉산드로의 춤은 자신의 사랑보다 높은 곳에 있는 듯하다. 청년의 얼굴을 한 맑은 눈빛으로 추는 단단한 춤. 클라라가 남자의 손을 잡았다가 놓는다. 혼자 서기 위해.

마지막, ‘새로운 시작’. 무대 한 켠에 서 있는 마른 나뭇가지는 죽음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생명을 은유하는 장치다. 클라라의 새로운 시작과 연결이 되는 지점이다. 무대 가운데서 객석을 향해 뒤돌아서는 클라라. 로베르트가 없는 또 하나의 세상에 대한 열망이 담긴 담담하고 의연한 몸짓. 클라라를 춘 무용수 이윤희는 가벼운 춤몸으로, 가장 잘 활용된 감각으로, 허락된 춤언어로 로베르토와의 사랑과 고통을 섬세하게, 브람스로 인해 흔들리는 내면을 시적이고 투명하게 그려냈다.



제임스 전 〈클라라 슈만〉 ⓒ잔나비와 묘한계책



〈클라라 슈만〉. 세심하게 그려낸 연출과 안무로 관객들의 마음에 균열을 낸 작품이었다. 애끓는 마음의 구체성과 형이상학을 동시에 떠맡은 로베르트의 죽음과 클라라와 브람스. 거울처럼 마주보며 어찌하지 못하는 두 세계와 그리고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음악. 이 마음과 음악이 또한 서로를 비추는 거울임을. 어쩌면 예술가가 세상에 순응하는 것은 세상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부족한 것만을 자신에게 제시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도. 하여 예술가로서의 순응은 일종의 본질적인 반항, 반항의 형이상학일지도. 영화 같은 춤이었다.

권옥희

문학과 무용학을 공부했다.​​​​​​​​​​​​​​

2026. 2.
사진제공_잔나비와 묘한계책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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