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주빈 〈마주하기까지: 순간〉
컨템퍼러리성이 강화된 안무, 경이로운 ‘순간’을 붙들다
김혜라_춤비평가

김주빈이 안무한 〈마주하기까지: 순간〉(7.19~20, 대학로예술극장대극장)은 상대와 마주하기까지의 정서적 시간과 거리가 좁혀지는 과정이 묘사된 작품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여러 감정적 파편들을 짜임새 있게 조합해 궁극적으로 삶의 지속을 위한 긍정적인 시선이 투영된 작업이다. 작품에서 움직임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한데 안무자는 춤꾼들의 (사주 팔자에 기인한)타고난 기질을 바탕으로 성향에 맞게 동작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춤꾼 각각의 개성이 잘 드러난 편이었고, 한 명 한 명을 주의 깊게 보게 했다. 어찌 보면 싱거울 정도로 평범해 보이는 마주하는 행위를 감각적 사건으로 길어 올린 김주빈의 예민한 통찰력도 주목하게 된다.



김주빈 〈마주하기까지: 순간〉 ⓒ전희준



또 하나 이전 김주빈의 스타일과는 다른 안무적 접근도 흥미롭다. 종종 한국춤 창작에서 발견되는 전통적 소재나 춤사위의 변용(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에 따라 클리쉐가 되기도 한)이 하나의 문법으로 용인되는 방식에서 자유로워진 점이다. 최근 한국춤을 전공하고 컨템퍼러리 작업을 하는 젊은 안무가들과 현대춤 전공자와의 안무 차별점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물론 경계를 나눌 필요는 없지만). 오히려 한국춤으로 단련된 안무가들의 창작 스펙트럼이 현대춤 전공자들보다 넓어지는 경향이 현재의 추세이지 싶다. 지향점에 따라 표현 방식을 취사선택하여 한국적인 특성을 살리기도 하고 때에 따라 현대적이고 세련된 기법으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한국춤을 전공한 김주빈이나 이번 작은 상당히 오늘의 춤 감수성으로 소통하는 컨템퍼러리 성향이 강화된 작업에 속한다.





  

김주빈 〈마주하기까지: 순간〉 ⓒ신귀만



2019년 초연한 〈마주하기까지〉를 재창작한 작품은 ‘순간’이란 찰나적 측면에 더욱 집중한다. 따라서 인위적인 군무는 지양되고 듀엣, 트리오를 중심으로 교류하며 교감한다. 기량이 출중한 춤꾼들(강민지, 기무간, 김시원, 김원영, 김현우, 김효준, 성주현, 추세령, 홍은채, 황서영, 한지원)에 힘입어 밀도 높은 춤으로 해석되었기에 전체를 조망하기 용이했다. 특히 스테이지 파이터(tvn에서 방영한 서바이벌프로그램)에서 이미 검증된 남성 춤꾼들만이 아니라 여성 춤꾼들의 집중력과 표현력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김주빈 〈마주하기까지: 순간〉 ⓒ전희준



작품은 크게 세 단계의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관계에 대한 여러 양상들을 탐색하는 초반부 춤은 각자 다른 질감으로 표현되기에 누구를 봐야 할지 시선이 분주해지나 동시에 더욱 집중하게 했다. 개별적으로 차이가 있는 감정의 층위가 직설적으로 부딪히는 관계로, 대면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관계로, 망설임의 연속 같은 상황들로 한 공간에서 달리 전개된다. 내면에 응축된 정서적 표현에 충실했던 긴장된 전반부와 달리 중반부는 확연하게 달라진다. 질서정연한 왈츠 곡에 맞춰 춤을 추며 긴장이 완화된 밝은 시공간으로 바뀐다. 어떤 댄서는 객석을 무심하게 응시하기도 하고 특정 관객과 눈을 맞추기도 한다. 이내 중앙으로 관객을 모셔와 춤을 권한다. 낯선 사람과의 아이 컨택으로 관계를 시작해 보고, 의도적이나 신체 접촉을 통해 물리적인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이다. 대상을 나에게서 가까운 관계로 나아가 낯선 타자로 확장하려 한 듯하다. 의도는 이해되나 그럼에도 전체 흐름에서 관객 참여가 필요한 장면이었는지 의문도 든다. 다시 장면이 전환되고 무대 중앙 테이블 위에서 남녀의 숨막히는 갈등이 펼쳐진다. 이어지는 관계는 좀더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잡고 만지고 쓰다듬고 안고 기대고 매달리는 일상에서 쉬이 접하게 되는 몸짓 대화이다. 끊임없는 접촉과 회유가 반복되고 댄서 혼자 무한대로 돌기 시작하고 끝날 즈음 어떤 매듭이 풀어지는 인상을 받게 된다.





김주빈 〈마주하기까지: 순간〉 ⓒ전희준



그리고 작품 후반부 10여분을 남겨둔 때에 이르러 드디어 대망의 ‘마주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이 순간을 대하는 방법도 모두 다르다. 미소를 짓는 이, 무심하게 바라보는 이, 만지고 쓰다듬는 이, 모두가 대면하는 방식은 달라도 감각이 통하는 순간을 공유하며 무대는 생기 있는 현장으로 탈바꿈된다. 타인과의 만남에서 무수한 모습으로 변해 가는 심리적 변화 양상을 때론 슬로우 무비처럼 때론 순간을 캡처한 사진처럼 안무가는 포착했다. 전반부에서부터 서서히 쌓이기 시작한 에너지는 관계 저마다의 서사를 떠받치다 하나의 사건으로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다. 관객은 빛나는 순간을 바라보게 되고 춤꾼들의 충만한 시선도 보게 된다. 이 순간을 맞기까지 춤꾼들의 격정적이었던 춤을 되짚어 보며 우리가 누구와 지긋하게 마주하는 일이 역설적으로 쉽지 않은 일임을 환기하게 했다.





김주빈 〈마주하기까지: 순간〉 ⓒ전희준



김주빈은 그간 트렌디한 형식적 시도에 적극성을 보여왔다. 팬데믹 시기에 유용했던 댄스 필림으로 만든 〈새다림〉(제주도 굿판에서 영감을 받고 북청사자놀음의 사자탈을 재해석)이나 벨기에 컨템퍼러리 서커스 씨어터(Peti Dish)와 협업으로 한국적 소재와 서구의 연극적 요소에서 접점을 찾으려 했던 〈귀신날〉(전통적인 세시 풍속과 민속 놀이의 재해석)이 대표적이다. 이번 작품도 공간성의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를 감행한다. 자칭 일반 객석에서 보는 ‘바라보기 존’과 무대 양 옆으로 관객을 배치시켜 가까이서 댄서를 보게 하는 ‘마주하기 존’이 그것이다. 무대 중앙에는 간이막이 설치되어 있고 전반부는 분할된 공간에서 펼치는 춤만을 볼 수 있다. 바로 옆 공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호기심을 일으키는 효과는 있었다. 이는 지각방식의 변화를 의도한 조치로서 구간을 나누어 보이진 않지만 상상하고 감지하게 하려는 장치인 것이다. 작품 중반부에 간이막이 열리면 바라보기 존의 관객은 댄서를 보는 무대 위의 관객까지 전체를 보게 된다. 의도적으로 무대에 착석한 익명의 관객에게 조명 빛을 모아 주며 춤꾼을 바라보는 자신을 자각하게도 한다.



김주빈 〈마주하기까지: 순간〉 ⓒ전희준



관객이 관객을 바라보며, “공연의 구조 속에서 관계라는 키워드의 일부가 되어 마주하게” 하려 했던 안무자의 연출이 효과적이었는지는 관객에 따라 다를 듯하다. 나로서는 오히려 공연 거의 마지막에 춤꾼들이 무대 뒷면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동료를 보고 오가는 짧은 순간이 연출의도에 부합해 보였다. 실연자가 착석하여 또 다른 관객이 되어 역할이 바뀌기도 한 직간접적인 행위가 말이다. 분할된 공간에서 관객의 색다른 바라보기 경험을 유도한 연출이 개인적으로 대단히 실험적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형식적 변화를 추구하는 도전에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게 된다.

김주빈은 관객이 “내가 지금 누구와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자문하길 바란다고 했고, 그의 의도가 필자에게는 적중했다. 사소한 순간에 무한한 울림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지 않는가. 비대면 일상이 편리해지며 갈수록 관계성을 쌓는 일이 부담되는 시대에 김주빈은 마주하기를 독려하며 우리가 상대를 향한 지금 실천할 수 있는 환대의 행위임을 느끼게 했다.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2025. 8.
사진제공_전희준, 신귀만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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