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태상프로젝트 〈소크라테스의 변명〉
수사학적 신체의 사유
노영재_춤이론가

고전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고대 아테네 재판정에서 소크라테스가 남긴 철학적 변론을 그의 제자 플라톤이 재구성한 것으로 서양 철학 사유의 출발점이자 핵심을 담고 있다. 안무가 이태상은 이 고대 법정 서사에서 착안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3월 7일 부산금정문화회관 금빛누리홀). 소크라테스가 남긴 그 유명한 델포이 격언 “너 자신을 알라”는 인간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는 데에서 진정한 성찰이 일어남을 의미한다. 소크라테스가 지지한 철학적 성찰의 방식은 바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답, 즉 ‘문답법’이다.

이태상프로젝트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현대춤의 언어로 고쳐 쓴다. 안무는 법정 서사의 재현을 택하기보단 진정한 사유의 본질, 즉‘질문하는 존재’와 ‘판단하는 구조’ 사이의 긴장을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불경죄처럼 국가가 완고해졌을 때 개인의 목소리를 문제 삼듯, 여기서 질문은 개인에 의해 발화되고 구조는 사회를 유지하는 철옹성 같은 거대 담론을 연상시킨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작품은 질서와 균열, 힘과 저항, 응집과 해체의 과정을 통해 구조 속에서 흔들리는 집단의 신체를 탐구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태상프로젝트



막이 오르면 무대 중앙엔 상자가 여러 개 놓여있고 한 남자는 상자를 어깨에 메고 등장한다. 이어서 상자를 든 무용수들이 하나둘 무대로 모여들고 작은 상자들은 중앙에 맞물리며 안정된 바닥을 형성한다. 그 위 올라선 무용수들은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하고 약간의 높낮이와 시선의 변화만을 주며 밀도 있게 자리를 잡는다. 하나의 입체적인 구조가 단단히 형성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합일을 이루던 신체들은 제각각 서서히 느슨해지고 디디고 있던 잘 맞물린 바닥마저 그 형태가 와해됨으로써 구조는 파열을 암시한다. 질문하는 존재는 여기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집단에서 간헐적으로 이탈하는 무용수들은 상체와 호흡을 충분히 활용하여 호소력 있는 제스처를 이어가고 다소 도발적으로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체화된 개인의 질문은 의견이자 비판이며 마치 누군가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타진해 보려는 듯하지만 연결보다는 좌절이 묻어난다. 문답의 사유라지만 답은 부재하거나 유보되는 듯하다. 계단에 올라 위를 주시하는 사람, 한편엔 독백하듯 끊임없이 외치며 움직이는 사람, 벽 뒤에 몸을 숨기며 교묘하게 손가락질하는 모습, 막막함의 순간에서 발현되는 기도의 자세 등 무대는 질서를 서서히 교란하는 분위기 속에서 개인과 집단이 변주되는 모습을 그린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태상프로젝트



수직적으로 또 수평적으로 다양하게 분리, 결합, 변형되는 상자 형태의 세트는 어느 한 사람의 질문이 명확히 전달되거나 닿을 수 없는 장벽, 혹은 장애물로 다가온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종류의 소품이건만 이 상자의 색, 질감, 느낌, 그리고 구조가 오묘하다. 안무가는 특정 시대나 인물을 묘사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지만, 상자의 활용은 때론 시간의 퇴적이 드러나는 고대 건축물의 느낌과 계층이나 심리적 장벽 같은 현대적 메타포를 복합적으로 상기시키며 오히려 다층적인 감각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무용수에 의해 자주 구도가 바뀌는 세트는 밀착된 동작과 효율적인 동선으로 매끄럽게 전환됨으로써 쉬이 사라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집단의 완고한 속성을 짐작하게 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태상프로젝트



작품 중반부에는 혼란이 잦아들고 잠시 일렬로 정렬한 무용수들이 합일을 이루는 듯하나 이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쏟아내는 음향에 몸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제각각 분리되는 모습을 통해 질문은 한층 미궁과 고민에 빠지는 듯하다. 무거운 선율 속 이 알 수 없는 언어는 ‘변론’의 내용을 전혀 파악할 수 없게 하지만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한 심정을 표현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어서 LED 조명이 무대 전체를 날카롭게 구획을 지으며 대립과 단절에 힘을 싣는다. 후반부 한 번 더 연출되는 LED 조명의 안개 효과 속에서 몸은 격렬함을 잠시 내려놓고 혼돈의 무게를 체감한 듯 숨 고르기를 하며 낮게 부유한다. 마지막은 다시 완벽했던 구조로 회귀하는 듯하지만, 무용수들이 밟고 오른 상자는 무너지고 그 형태가 처음과 같지 않다. 엇갈린 박수 소리와 함께 일제히 객석을 응시하고, 또 다른 질문을 던지는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은 질서와 해체, 충돌과 변형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그리지만 전체적인 순환 과정에서 각 장면의 유기적 연결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나 파격적인 연출이나 극적인 내용은 부재하기에 상대적으로 춤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무용수들의 고른 기량으로 밀도 있게 채워졌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흐름 속에서도 흥미로웠던 부분은 ‘수사학적 신체’, 즉 의견을 제시하는 로고스적 신체의 재발견이다. 소크라테스가 추구한 문답의 사유는 진리에 도달하고자 하는 과정으로, ‘말재주’의 기술인 소피스트 수사학과는 거리를 둔다. 그런 맥락에서 이 춤은 풀리지 않는 난제를 끌어안고 투쟁하는 신체, 설득과 주장이 점철된 신체를 직관적으로 또 관계의 역학으로 집요하게 제시하며 주제에 화답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태상프로젝트



철학적 성찰이란 행위는 종종 정적이며 고립과 무게로 다가오지만, 문답법을 체화한 이 수사학적 신체는 한편으론 보편성과 확장성을 획득한다. 누구나 가슴속 풀리지 않는 질문을 품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해답을 구하는 적극적인 외침은 사회 속 존재로 살아가면서 쉽지 않기도 하고, 닿을 수 없는 허무를 맛보기도 한다. 이태상프로젝트의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그러한 보편적인 심정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신체 언어를 선택하여 폭넓은 공감을 타진함으로써 현대춤의 대중적인 이해를 도왔다. 설득의 절실함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신체 감각이 역으로 사유의 자극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작업이었다.

노영재

춤이론가 및 비평가. University of California, Riverside에서 무용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신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인문학과 심층심리학적 관점에서 춤을 조명하는 비평적 연구와 함께 지역 춤문화를 기록하는 현장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저서로 평론집 『춤, 언어의 춤』, 『발레 너머 예술』, 『현대 무용이론의 지형』 등이 있다.​

2026. 4.
사진제공_이태상프로젝트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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