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SPE 미나유 초청 안무 〈모션 파이브〉
노장이 내놓은 오늘의 서사시
김채현_춤비평가

 새해 벽두에 있은 <모션 파이브>는 말한다, 미나 유는 여전히 현역이다. <모션 파이브>는 묻는다, 오늘 거대한 도회(都會)에서 제대로들 있기나 한 건가.
 미나유 안무작 <모션 파이브>는 SPE가 올렸다(M극장, 2014년 1월 8-11일). SPE(System on Public Eye)는 단체 이름 그대로 순수예술-대중예술의 경계를 잇는 가교를 표방한다. 작품으로서는 거리감 있다고들 하는 춤을 가깝게 전함으로써, 예술로 다듬은 춤 고유의 영감과 기운, 감각을 공유하자는 이 단체 취지가 눈에 띈다. <모션 파이브>는 SPE의 첫 기획작이다.

 

 


 <모션 파이브>는 다섯 사람의 다섯 모션이 소재이다. 2인무, 3인무처럼 제목은 직설적이고 일견 간단명료하지만, 제목만으로는 불투명하고 제목은 시작일 뿐이다. 여기서 김성용, 기은주, 김지형, 최수진, 김영진 다섯 사람은 모델이나 보디가드에게서 흔히 보는 검정 정장 차림이어서 스타일리쉬한 세대에 속할 것이다. 그들이 놓인 곳은 반면에 스타일리쉬와는 거리가 멀다. 형광등 홀로 밤을 밝히는 그곳은 굳이 말하자면 도시의 뒷골목처럼 어둡고 음침하다. 이를 배경으로 금속성 드럼 소리가 규칙적 소음으로 마구 튕겨지는 환경 또한 내키지 않는 그 무엇을 시사한다.  
 다섯 명의 그들은 신원과 신분이 분명치 않고 익명적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강인하며 곧은 움직임으로 행렬을 지어 함께 배회하고 꺾임, 수그림, 갑작스런 질주 등 같은 동작을 취하며 모였다 흩어지고 또 일시에 멈추는 앙상블들을 변화 있게 반복함으로써 뭔가 공유하는 바가 있다는 느낌을 설득력 있게 환기한다.


 


 메트로폴리스 속의 어떤 미스터리에 홀린 듯이 다섯 그들은 서로 이유를 감지하기 어려운 신경전을 벗어나지 못한다. 헤비메탈 록의 강렬한 부르짖음은 그들 가운데 한, 둘을 몸부림치듯 움직이도록 유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는 듯 하면서도 강한 불일치를 드러내며 끝내 흩어지고 만다. 폭발하는 움직임으로 풍성해 보이는 무대의 겉모습과는 대조적으로 그들 사이에는 메마른 포기나 대립만 남는다. 그들 사이를 메마르게 하는 이유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기은주가 형광등 아래서 잠시 이런 대사를 읊는다. “나는 보기 위해 눈을 감는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네 주변에선 너의 재능을 발휘할 수 없잖아... 세상의 진짜 미스터리는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니라 보이는 곳에 있다... 크레센도의 삶을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는 아니? 나 자신을 즐겨야지 당연히...”
 마치 잠언(箴言)과 흡사한 이런 대사는 지금도 춤 관행에선 드물다. 이렇든 저렇든, 이 대사는 <모션 파이브>의 진실을 정리해볼 단서로서 유용한 이상으로 미나유가 (평소?) 품은 생각의 한 켠을 드러내는 듯해서 매우 흥미롭다.

 

 


 다섯 사람의 스타일리쉬한 모습은 <모션 파이브>의 초점이 오늘의 세태에 맞춰졌음을 말한다. 미나유는 매너리즘에 빠져 미스터리를 놓치고 삶의 주체이기를 포기함으로써 피로감만 쌓이는 오늘의 현실을 다시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션 파이브>에서 헤비메탈의 화려한 사운드와 다섯 사람의 앙상하고도 날카로운 사이는 화려한 불야성의 이면에서 단절과 고립이 쌓여가는 야밤의 정경과 닮았다. 매너리즘이 낮이나 밤이나 때를 가리지 않으므로 굳이 야밤과 직결시킬 일은 아니겠으나, <모션 파이브>는 야밤에 더 잘 돌출되는 오늘날 (도회) 문명과 예술의 세태를 다룬 서사시이다.

 소규모로 제작된 이번 작품은 서너 대목을 압축적으로 펼쳐 객석의 반응을 유도하였으며, 노장 미나유의 솜씨를 다시 보도록 하였다. 미나유의 이전 작품 경향에 비해 <모션 파이브>는 구체성이 덜하며, 그러므로 내러티브가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20여년전부터 국내 무대에 파워와 구축적(構築的) 조형성을 갖춘 작품으로 현대무용의 진폭을 넓혀온 미나유가 이번에 <모션 파이브>에서 이전과 사뭇 달라진 작품 경향을 보이는 것은 주목할 일로 보인다. 정년퇴임이라는 물리적 이력은 아랑곳없이 다시 선뜻 나선 미나유의 사전에는 아마도 고임(停滯)이란 단어가 없을 것이다.

2014. 02.
*춤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