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AI(인공지능) 시대는 이미 시작된 미래이다. 시대 변화가 급격하되 그 결과가 막연할수록 불안감이 깊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AI시대는 오히려 그 패러다임을 상당 부분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기대 반 우려 반의 복합 감정을 촉발하고 있다. 일례로 단순 노동이 대대적으로 축소되는 반면 사회 양극화의 심화와 인간 능력의 퇴화를 예견하는 목소리가 심상찮게 들려온다. 김관지는 안무작 〈킬링 하이라키〉(Killing Hierarchy·위계 죽이기)에서 AI시대 문명을 미리 끌어당겨 그 시대의 막중한 이슈에 대해 정면 돌파를 감행하였다(7월 24~27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공연 소개문에서 그는 “인간과 AI의 초인적 합일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라는 가정에서 미래의 신과 소통을 시도하는 제의를 벌인다”고 밝혔다. AI문명에 대해 메스를 가하는 이 공연에서는 우리 춤계에서 춤판의 지각 변동까지 추구하는 결기도 분출되었다. 공연의 핵심 주제는 제목 그대로 위계(질서)의 파기(破棄)이다.
관객이 공연장에 입장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진즉에 극장 로비에서는 위계 파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관객들에게 나눠준 종이 전단 유인물에는 ‘전국관객노동 파업결의문’ 제목 아래 “우리(관객)는 관객의 시선과 시간, 신체와 감정, 침묵과 박수, 해석과 비평이 생산조건임을 선언한다... 우리는 체스판 위의 말이 아니다, 우리는 아티스트가 의도한 대로만 반응하지 않는다... 관객의 노동으로 완성되는 작품은 그 노동을 명시하고 저자권(authorship)과 크레딧을 분배해야 한다... 의미의 생산 수단은 관객에게 있다”는 문구들이 담겨 있었다. 출연자-관객 간의 수동적이며 일방적인 위계의 파기. 관객의 위상과 권리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경우는 아주 간혹 있으나, 이처럼 명시적인 유인물을 배포하고 선언 내용이 파격적인 점에서는 〈킬링 하이라키〉가 가장 급진적이지 않나 싶다. ‘파업결의문’의 정신에 맞춰 공연에서는 관객 참여의(immersive) 이벤트도 설정되었다.
이와 동시에 몇몇 출연자들은 로비에서부터 관객들 사이를 지나다니고 관객의 입장을 인도하였다. 안내에 따라 관객이 입장하면 이미 출연자들이 무대를 배회하고 있었다. 무대 한 켠에선 욕조가 보였고 가운데에는 조명기나 공연 소도구가 테이블에 놓였으며 악사들은 2층 테라스에 배치되었다. 무대 가장자리에는 이동형 스탠드 거울이 늘려 있었다. 어둑한 와중에 묵직하게 웅웅대는 소리가 들리고 탑라이트에서 커다란 원형 조명이 테이블을 비추며 다른 빔 샤프트가 천장을 향해 빛줄기를 뿜는다. 출연자들의 복색은 각자 다르되 느슨한 편으로 일부는 마치 수렵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테이블 주변에서 어슬렁 배회하는 출연자들 사이를 지나치는 관객, 무대를 가로지르는 관객도 있고 관객들은 객석에 착석하거나 플로어 가장자리에 둥글게 앉거나 서는 등 선택하게 된다. 그러자 무대는 점차 원형극장 혹은 마당판으로 탈바꿈하면서 자유롭고 다소 신비스런 분위기가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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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지 〈Killing Hierarchy〉,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
공연 소개문에서 김관지 안무자는 “무대 위에 픽스된 움직임은 전혀 없다. 8명의 퍼포머는 자신의 삶을 지배해 온 타성을 마주하고 단 한 번의 일격으로 내려치며, 9명의 라이브 아티스트는 굿판의 악사처럼 그 현상을 감각하고 증폭시키며 하나의 판을 함께 만들어 간다”고 밝혔다. 그래서 매 공연은 단 한 번 존재하고 무엇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세한 구성이 정해져 있지 않고 대략의 줄기가 설정된 상태에서 공연이 진행되므로, 즉 출연자와 악사에게 상당 부분 일임된 셈이다. 여기서는 이제 안무자-연출자-출연자 간의 위계가 파기된다. 게다가 이리저리 무대를 누비는 출연자들 곁에서 자유로운 관람 시선으로 강렬한 빛, 울려대는 음향을 들이켜는 관객들은 출연자들과 함께 서서히 몽환적 상황에 젖어 들어서 공연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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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지 〈Killing Hierarchy〉,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
여러 모양의 레이저와 서치라이트 용도의 플래시들이 난무하는 강렬한 빛과 사운드가 뒤섞이는 다소 격한 마당판에서 춤과 위압적인 동작, 규율을 벗어난 동작, 꿈틀대기, 비틀대기, 아등바등 버둥대기, 숨넘어 가는 듯한 포즈, 엉켜붙기 등이 난무하는 판은 즉석의 난장 그 자체이다. 관객이 우선 면전에서 목도하는 것은 양자컴퓨팅처럼 순간순간의 수행 요소들이 부지불식간에 호응하는 열린 난장이다. 다만 시각적 요소나 청각적 요소뿐 아니라 움직임과 몸짓의 운용에서 과유불급은 피해야 할 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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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지 〈Killing Hierarchy〉,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
열기가 그득한 무대에서 명확한 내러티브는 부재한다. 그렇긴 해도 도드라지는 캐릭터들에서 서사의 얼개는 확인된다. 그 캐릭터들은 채찍을 거머쥐고 휘두르는 남성, 여의봉 같은 대형 기물을 어깨에 걸친 남성, 그리고 욕조에서 시종일관 교대로 꿈틀대는 여러 여성들이다. 두 남성은 각각 절대권력자, 권력의 유포자로, 여성들은 피억압의 화신으로 풀이된다. 이들을 축으로 해서 출연자들은 규율(과 통제)을 이탈하는 움직임과 몸짓들을 원초적인 몸 에너지로 뿜어내는 데 스스럼이 없다. 하지만 공연에서 움직임과 몸짓의 파노라마를 관통하는 어느 정도의 연계 고리는 필요해 보였다. 놀이와 예술이 그것대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규율로써 요소들이 의미를 갖도록 묶는 연계 고리가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킬링 하이라키〉는 AI문명에서 억압과 거부가 서로 충돌하는 양상들을 미리 그려내는 것에 이어 그 거대한 부조리가 타개 치유된 새 문명을 모색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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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지 〈Killing Hierarchy〉,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
공연 후반 초입 무렵 객석으로부터 건장한 남성이 큼직한 갑옷 같은 철릭(天翼)과 장검, 삿갓 모양의 넓적한 모자를 착용하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온다. 철릭 위에는 겹겹의 기다란 자락들이 장식처럼 치렁치렁 달렸다. 은박으로 치장한 철릭과 자락들, 장검, 모자는 번뜩대며 모종의 후광을 발산한다. 공연 맥락에 비춰 그는 샤만으로 해석된다. 안무자가 상정한 AI문명의 신일 것이다. 절대권력자였던 캐릭터가 샤만을 주시하다가 굿에서의 신대(神竹) 같은 기물을 흔들며 그를 맞이했고, 이와 더불어 샤만이 무대 바닥 레이저 광선 속에서 힙합 계열의 움직임으로 때때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신들린 춤을 추자 공연 분위기는 일변한다. 그간의 억압이 동요하고 새 상황이 도래할 조짐이 감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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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지 〈Killing Hierarchy〉,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
샤만이 등장하기 직전의 단계에서 출연자들은 관객들에게 손을 내밀어 무대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무대에서든 객석에서든 관객들에게는 은박지와 플래시가 주어졌다. 여기서는 억압에 대해 파열음을 내고 어떤 감시로부터 구원을 찾아나서는 집단 형성을 관객과 함께 일구려는 소망이 읽혀진다. 공연의 마무리 또한 이런 선상에서 진행된다. 권력자는 마침내 자신의 기물을 내려놓고 바닥에서 꿈틀대며 강렬하게 나뒹구는 모습으로 무너져내리며 욕조의 한 여성이 권력자 옆으로 이동하여 두 사람이 길게 포옹하고 전체 출연자가 그 주변을 감싸는 순간이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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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지 〈Killing Hierarchy〉, 세종문화회관 제공 ⓒ김신중 |
공연에서 휘둘러지는 칼과 채찍, 여의봉 같은 물리적인 공격적 도구들은 공연 후반에 이를수록 그 용도가 시들해지며 움직임과 몸짓의 역할이 점차 부각된다. 간략히 말하자면 쇠(붙이)로부터 몸으로 이행하면서 해원의 문명을 향한 물길도 커진다. 그러나 그 몸은 그냥 그대로의, 중립적인 몸이 아니다. 〈킬링 하이라키〉의 몸은 규격을 이탈하는 몸짓과 원초적 외침을 일시에 표출하는 몸이자 억압에 맞서는 몸이다. 몸짓에 따라 몸의 격은 달라질 터여서, 위계를 파기하는 데 있어 안무자는 그만한 몸짓을 내세웠다. 안무자의 과감하다 못해 도발적인 지향점에서 퍽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인간과 AI의 초인적 합일을 상정한 〈킬링 하이라키〉는 AI문명을 미리 줌인해 보였다. 공연에서, 그러나, 억압과 위계가 여전할 것이라는 추정적 전망 이외에 AI문명의 실상은 막연하다. 유사한 맥락에서, 막바지에 권력자와 여성이 길게 포옹하고 출연자들이 그 주변을 감싸는 순간은 그간 무대들에서 보아왔던 장면과의 차별성이 옅다. AI시대 이전과 이후가 공연에서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의문스럽다. 다시 말해 AI시대 이전과 이후는 그다지 식별되지 않으며, 공연은 AI시대 이전인 여태까지의 문명에서 벌어졌던 억압과 위계를 소환한 편이다. 다시 말해 공연은 AI시대를 겨냥하면서도 오늘의 지금 우리 시대를 맴돈 것은 아닌지 자문해볼 일이다. AI문명에서도 억압과 위계가 여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설득력을 더하려면 지금까지와는 차이가 나는 다른 모습의 AI시대가 공연 배경으로 구현될 필요가 컸던 것이다. 설령 AI시대가 실제 어떤 양상을 드러낼지 단정하기가 애매할지라도 지금과 다른, 지금껏 흔치 않았던 AI시대의 어떤 양상과 서사는 상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킬링 하이라키〉는 AI시대에도 문명의 억압은 여전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제기하였다. 예술은 감성에 호소하며 그 같은 전망을 환기하고 재고(再考)할 계기를 제공한다. 그 치유의 길을 안무자는 특히 굿에서 착안하고 이를 공연에 적극 활용하였다. 제액초복(除厄招福)과 구원 같은 굿의 핵심 기능을 바탕으로 공연에서 굿, 즉 제의(祭儀)는 복합적으로 활용되었다. 먼저 굿을 통해 해원(解冤)의 메커니즘이 조성되었으며, 아울러 굿에서 출연자-관객이 수평의 위치에서 뒤섞여 자연스럽게 위계 파기가 이루어졌다.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체인지업하는 굿의 신령스런 마법이 〈킬링 하이라키〉에서 재현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킬링 하이라키〉는 춤판을 넘어 디지털-MZ세대 버전의 굿판으로 발돋움한 의의를 품고 있다. 공연의 저변을 짙게 관통하는 잔혹극 류의 기운이 춤판의 진화를 북돋우는 경우로도 거론됨 직하다.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