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박준형ㆍ금배섭ㆍ김용걸
도파민의 시대, 극장으로 가야하는 이유
이지현_춤비평가

창작은 예술과 관계된 단어라고만 알고 지냈는데, ‘크리에이터들’이 이리도 왕성하게 나대고 득세하는 시대를 본 적이 있었을까?

단언코 없었다. 그것도 내 손바닥안에서 그들의 온갖 재주를 언제 어디서라도 볼 수 있다는 건 아직 그것이 가진 문제 정도는 코웃음을 치며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게다가 그것은 그 끝을 알 수 없도록 순간순간 확장되고 발전되어가고 있으니 그 속도를 놓치면 낙오될 거 같은, 아니 그런 생각은 집어치우고라도, 나도 모르게 들고 터치하는 최소한의 행위와 에너지 만으로 가장 효율적인 쾌감을 주는 세계속으로 나는 어느새 들어가있다.

맞다, 도파민 중독이다.

나에게 이 중독의 증상은 초기에는 누워서 보다가 얼굴에 떨어 뜨리는 정도에서 지금은 온전히, 단독으로, 은밀하게 폰을 마주 대하는 시간을 하루 중 가장 성스럽고 필수적인 시간으로 마주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극단적인 편리함과 쾌감 앞에서 왕복 3시간의 거리와 비용 등 수많은 진입장벽을 뚫고 극장에 가서 공연을 마주한다는 건, 그것도 충족이 될지 안될지 예측불가능성을 안고 극장으로 향한다는 건 우리 모두에게 점점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한 여름을 지나 가을 시즌을 맞아 공연이 점점 늘어가고, 그것이 겁나 늘어갈 것이 느껴지는 요즘, 나는 이 대조되는 두 세계의 한 측을 담당하고, 좀비처럼 도파민 중독자가 된 무리를 피해 극장에 성소를 만들고 그 무대를 채워가는 극장 예술가들, 안무가들에 어느 때보다 경의를 갖게 된다. 그리고 우연인지 아니면 무슨 신호인지 도파민보다 훠얼씬 여운이 강한 공연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잔잔하나 놀랍도록 멀리 퍼지는 수면파(水面波)의 진동 : 박준형의 〈서서히, 결〉(In the Grain)

제32회 창무국제예술제(예술감독 최지연) 개막 공연에서 만난 박준형의 〈서서히, 결〉은 작년 ‘창무 프라이즈’ 최우수상 수상작이다. 전년도 수상작은 차년도 개막 공연에 초청되는 조건이기에 올해 메리홀(2026.8.18)에서 다시 볼 수 있었고, 초연작이어야 함을 기준으로 삼는 5회를 맞는 ‘창무 프라이즈’ 수상작들은 첫 무대보다는 이듬해의 초청 무대에서 안정감이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관례가 되어가고 있기에, 어느 정도 기대는 했으나 올해 박준형의 〈서서히, 결〉은 그 이상의 무대를 보여주었다.

박준형은 탄츠테아터원스(TanztheatreOnes)의 여러 작품에서 항상 무대 한켠을 듬직하게 채우며 조용한 존재감을 보여준 춤꾼이었고 2023년부터 〈지속적 프로젝트〉를 이어가는 박스 오운 비젼(Paks Own Vision)의 독립 크리에이터였다. 그의 즉흥춤은 상대에 대한 감응을 예민하게 드러내지도 않고, 포착된 순간에 그리 흥분하지도 않는다. 그저 무대 안에 존재하고 모든 순간에 헌신한다. 그래서 그는 무대 어딘가에서 있었고, 빈 부분을 메워주며 무게 추를 고려하는 춤꾼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그가 두각을 나타내지 않는 춤꾼은 아니다. 2025년엔 제28회 서울무용제에서 연기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고, 유명 뮤지컬에서 조안무를 맡으며 한발 한발 자기의 길을 가고 있었다. 이번에 〈서서히, 결〉을 다시 보면서 즉흥을 기반으로 이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이 있었던가 하는 질문이 떠오를 만큼 무대 위에 큰 연꽃을 피어올린 것처럼 충만한 순간들을 보여주었다.





박준형 〈서서히, 결〉 ⓒ박준형



유영선, 정선아, 이유진 등 3명의 여성 퍼포머와 박준형은 서로 하나인 듯, 각자가 하나의 점인 듯 서로를 연결해 간다. 그렇다고 그가 컨택을 주로 하는 건 아니다. 컨택하지 않는데 그들의 연결성은 강화된다. 그들은 주로 줄을 이루고, 연차적으로 움직이며, 서로를 느끼며 춤춘다. 이런 유대감은 점점 강화되고 그 강화의 연결점엔 아담 셀릭 한즈(Adams Cellik Hannz)첼로 연주와 고현경의 보이스가 있다.







박준형 〈서서히, 결〉 ⓒ박준형



중앙에는 있으나 뒤돌아 앉아 존재감을 숨기고 시작된 첼로 연주는 장면을 달리하면서 앞쪽으로 이동하고 무용수들과 가까워진다. 고현경도 마찬가지다. 머리에 보라색 터번을 쓰고 퍼포머들 속에 섞여 등장한 고현경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이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걸까라고 물을 만큼 고현경의 존재는 숨어있었고, 소리는 공기에 묻혀있었다. 그래서 소리의 뿌리는 ‘자연’에 있음으로 느껴졌다. 이런 통일된 뽐내지 않는 결이 박준형이 생각하는 서서히 결을 따라가고 싶은, 서서히 결이 되어가는 모습을 드러내 주는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





박준형 〈서서히, 결〉 ⓒ박준형



퍼포머와 뮤지션들이 함께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무대는 점차 강렬해지고, 숨을 쉴 틈 없이 고조되어 가면서 처음의 잔잔함은 커다란 동심원이 되어 무대를 채워나갔다. 처음의 작은 수면의 한 점이 마치 오랫동안 점점 큰 동심원을 만들어가는 경이로운 장면처럼, 첼로의 왈츠 선율과 그 위에 사뿐히 노니는 새소리 같은 보이스는 점점 춤추기 좋은 환경이 되어갔다. 박준형의 모두를 감싸안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려는 동분서주의 성실함과 여성 퍼포머들의 진정성은 춤이 되어갔다. 꼭 깨질 정도로 두드리고, 물량으로 몰아붙인다고 클라이맥스에 올라가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오랜 여운은 천천히, 깊이, 너그럽게 존재할 때 그래서 개체가 그 안에 온전히 잠길 때 안정감과 해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나의 결이 되어가는 과정은 밀도가 높았고, 그 밀도 만큼 멀리 퍼져나가는 감동의 물결이 되었다.

조용하고, 묻혀있으며, 티가 나지 않게 솔선수범하는 퍼포머이자 크리에이터는 오랜만이다. 그래서 이런 감동도 오랜만이었다.


‘배따라기’의 마술적 수행성 : 금배섭 〈바흐〉

2026년 신작인 금배섭의 〈바흐〉는 하우스 콘서트를 통해 바흐와 바흐 연주자를 만날 기회를 얻었고, 고창, 함안, 영도 등 순회공연을 가졌으며 해외용 쇼케이스를 마친 작품이다.





금배섭 〈바흐〉, 창무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잔나비와묘한계책



이번 창무국제예술제의 폐막 공연(2026.8.24. 포스트 극장)의 컨셉인 ‘중년 남성 솔로’에 초청된 〈바흐〉(드라마터그 김풍년, 음악 옴브레)는 단정하게 무대 하수에 자리를 잡고 튜닝을 하는 젊은 바이올린 연주자 박진수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이내 작은 극장에서 관객 가까이 선 연주자로부터 울려 나오는 강력한 ‘바흐의 BWV 1001’의 1악장 아다지오의 선율은 순간적으로 강력하게 우리를 안정감이 있고 검증된 세계로 신뢰 있게 인도하였다. 넉넉한 흰 셔츠를 입은 금배섭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등장하여 어떤 MSG 없이 걷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가 상수의 백스테이지로 갔을 때 비치해 둔 일상에서 흔히 쓰는 흰색 테이프를 뜯어 바닥에 선을 표시하기 시작하고 그 선은 점차 어떤 도형이 되어간다.

마치 거대한 대지 위에 일정한 힘이 작용하여 만들어진 기하학적 형상을 보면서 우리가 미스테리함과 ‘해독되지 않음’ 속에서 경외심에 도착하는 것처럼, 그가 만들어 내는 도형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어느새 언어의 세계에서 떠나 다른 세계로 가있다. 춤이 언어를 떠나, 그 너머에 존재하는 ‘Beyond words’에 당당하게 닻을 내리고 있기에 춤은 사람들에게 해방감을 주고 ‘해방의 열락’을 잊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많은 춤꾼과 안무가들은 그 너머로 가는 길을 아는 자들이고 그들에 대한 존경과 찬사는 바로 그 길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금배섭이 우리를 언어 밖에 세계에 데려가는 경로는 특이하다.

MSG, 즉 과장이나 과대한 포장, 과시가 플러스(+) 방향으로 자극하는 거라면 금배섭이 택한 길은 담담함으로 과장을 덜어내고, 과시로 빚어지는 환상을 덜어내는 마이너스(-)의 길을 택한다. 그래서 맛은 담백하고, 산만하지 않아 그의 행위에 집중해 그를 따라는 편안한 여정을 제공한다. 그런데 그 편안함의 끝에 그 ‘배’ 앞에 있게 될 줄이랴 누가 알았겠는가….



 

금배섭 〈바흐〉, 창무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잔나비와묘한계책



바흐의 곡이 청각을 점령해 아다지오에서 푸가, 그리고 시칠리아노를 거쳐 프레스토로 흘러가면서 감성을 자극하고 요동치게 해 폐부를 향해 고조될 때, 불순하게 얘기하자면 금배섭은 우리를 홀리게 하여 모두 강물에 빠뜨리는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우리를 어느새 바다 앞에 끌고 가 버리는 유혹을, 마술을 부려버렸다.

우리의 문화 유전자 안에 있는 ‘배따라기’는 헤어짐이고, 죽음이고, 상실의 슬픔과 맞닿아 있는 아물지 않는 상처이다. 그리고 10년이 넘었지만, 그 배 앞에서 망연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느새 그가 입은 흰 셔츠 하나는 승무의 고깔이 되었다가 저 솟아있는 배 끝에 돛처럼 걸려 있다. 아니 초혼 의식의 도포 자락처럼 혼을 부르며 휘날리는 장면과 중첩된다. 그리고 배의 후미에서 금배섭의 몸은 한 번 더 안에 겹으로 입고 있던 셔츠를 탈피한다.





금배섭 〈바흐〉, 창무국제공연예술제 제공 ⓒ잔나비와묘한계책



그러자 상체를 앞으로 깊이 떨궈 숙인 왜소하고 굽은 상체가 드러난다. 하지만 그건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팔은 원숭이처럼 길게 늘어뜨려져 있으며 몸체는 작고 굽어 있으니, 셔츠를 입었을 때의 그 몸과 다른 몸으로 인식된다. 유일하게 금배섭이 MSG를 치는 부분은 여기이다. 하지만 그것도 인식하기 쉽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곧 그 공간을 떠나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동안 우리는 그 배 앞에서 서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마음속 ‘배따라기’를 줄줄이 줄줄이 캐낼 수밖에 없었다.

이 마술에서 깨어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언제나 조심해야 할 존재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의 매직은 유튜브에서 만날 수 없다는 거다. 다른 것이 끼어들 틈을 가지지 않은 진짜니까.


그가 쓴 에세이 한 편이 모든 걸 낯설게 했다 : 김용걸 〈Essai〉

발레를 보면, 발레의 역사성이 느껴지고, 400년이 넘게 탄탄하게 자신을 유지하며 사랑받는 모습에 탄복하다가, 실제 그들을 무대에서 만나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 마음의 저변에는 발레라는 형식을 익히기 위해 그들이 견뎌내야 했을 몸의 고통과 그 고통을 담고 반복 연습했을 수많은 시간의 무게감에 대한 경의가 있을 것이다.

발레와 인연이 깊던 노원구에서 새롭게 시작된 ‘노원발레페스티벌 2026’(2026.8.21.-8.30, 노원문화에술회관)은 축제답게 공연뿐 아니라 경연, 전시, 강연 등을 만날 수 있게 짜여져 있었으며, 발레리나이자 영화감독인 강예나, 몬테카를로 발레단 수석 무용수인 안재용, 뮤지컬 배우이자 발레리나인 스테파니 김 등이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상한가를 치고 있는 발레에 집중된 이목을 노원구로 끌어오기에 손색이 없는 진용을 갖추었고, 공연으로는 서울시 발레단의 〈지젤〉, 컨템포러리 발레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김용걸댄스시어터의 〈Essai〉, 창작 발레에 댄스시어터 샤하르의 〈한여름 밤의 호두까기 인형〉을 진용을 짜 관객들에게 핵심적인 발레의 맛을 볼 수 있도록 선별하였다.



김용걸댄스시어터 〈Essai〉, 노원문화재단 제공 ⓒ신기만



김용걸의 사회로 진행된 〈Essai〉(2026.8.25.-26)는 ‘해설이 있는 발레’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것을 넘어 아예 새로운 형식으로 탄생된 것으로 느껴졌다. 아주 적절한 제목인 에세이의 불어인 〈Essai〉는 그간 김용걸 안무의 8개의 작품이 차분하고, 고백적인, 그러면서도 무겁지 않게 녹여져 소담한 그릇에 담긴 정성스러운 한상차림처럼 우리 앞에 펼쳐졌다. 여기서도 이건 다 모두 그냥 내가 그때 만들고 싶은 것들을 마음 따라 만든 에세이 같은 거야.. 근데 그때 나는 이런 걸 생각했었어.. 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처럼, 이 고백적 에세이의 발레 역시 철없는 과장은 몸에 안 좋은 기름기 빼듯이 쏙 뺐고 완숙한 담백함으로 발레를 음미하게 만드는 신선한 모습이었다.



 

김용걸댄스시어터 〈Essai〉, 노원문화재단 제공 ⓒ신기만



〈Essai〉에서 이목을 끌었던 건 역시 ‘On the wat to...’를 춘 18, 19살의 박윤재와 김하은의 무대를 보는 것과 김용걸의 파리 시절을 담은 ‘망각’에서 안재용과 김다운의 듀엣을 보는 것일 것이다. 발레에서 주역의 힘은 어느 춤보다도 큰 것이고, 장막 발레가 아님에도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보는 즐거움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일 거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김용걸의 작품 안에 따뜻하게 잘 녹아들어 있었고, 그와의 인연, 준비 과정에서의 생생한 이야기들과 잘 버무려져 여느 갈라 공연과는 다른 감흥을 주었다.

20세 이전의 발레 댄서의 경연이 아니라 ‘공연’을 본다는 것은 역시 무대를 꽉 채우는 생명력과 젊음, 그리고 그것에 대한 기대를 주는 것이라 김하은이 부상 때문에 어려운 무대였음에도 관객은 느낄 수 없도록 프로의 면모를 보여주어 좋았고, 안재용의 깔끔하고 세련된 표현의 톤을 보는 것 역시 관객의 눈을 새롭게 높이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김용걸댄스시어터 〈Essai〉, 노원문화재단 제공 ⓒ신기만



김용걸의 솜씨 좋은 한 상차림 발레를 보면서 그간의 시간 동안 그가 완숙한 안무가가 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주업으로 하면서는 작품에 대해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부족했을 터인데 이번 공연이 꽉 찬 느낌을 주는 건 작품마다 많이 다듬어져 있어 완성도가 한층 올라갔으며, 하나의 작품으로서 탄탄하게 정돈하기까지의 시간과 노고가 충분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안무하는 자신만의 길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좀 놀라운 성장으로 보였는데, 그가 터득한 발레의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통과한 작품들에 우리는 진심을 담은 출연자들의 발레를 통해 안무가의 마음을 전달받는 데 부족함이 없는 지점에 도달한 것은 의미 있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작품이 어느 순간엔 무용수들에겐 무리했을 지점들이 꽤 보임에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해내려는 김다운(‘편견’, ‘망각’ 출연)과 김민경(‘이방인’, ‘별’ 출연)의 힘과 테크닉, 그리고 마음을 담은 연기는 김용걸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자산으로 보였다. 이는 김하경(‘제물’, ‘이방인’ 출연)과 이은수(‘헝가리안 랩소디’와 ‘별’ 출연)도 마찬가지다. 존재감 있는 김다운과 김민경과 더불어 ‘헝가리안 랩소디’에서의 박소연은 상큼하고 발랄한 연기를 도맡아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별’에서 김미애의 살풀이는 수건이 살아있는 듯 더 정화되고 놀라울 정도로 깊어져 관객의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김용걸댄스시어터 〈Essai〉, 노원문화재단 제공 ⓒ신기만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안무가가 유명하고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민간무용단, 개인무용단으로 스스로 무용수들을 수급하면서 활동을 한다는 것의 어려움은 부언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노원발레축제에서의 〈Essai〉는 축제와 만나 환상적일 정도로 탄탄한 안무가, 완성도 높은 표현, 게다가 진심이 담긴 에세이적인 다양함이 더 사회 속에 인정받고 대표되는 느낌을 주어 좋았다. 더 많은 축제가 개인 안무가를 보호하고, 에워싸고, 돋보이게 하는 역할의 좋은 사례가 되길 바란다.

김용걸의 〈Essai〉는 매우 나긋나긋했지만 강력했고, 매우 부드러웠지만 성숙한 발레 안무가의 탄생을 고지받는 현장이 되었다. 그리고 안무가의 탄생은 다름 아닌 새로운 발레 관객의 탄생으로 연결된다는 진리를 기억하게 해주었다.

그날 관객은 김용걸의 진실한 이야기와 작품 속에서,
예술적 형식으로 안정된 그의 안무를 통해,
내면의 깊은 감정을 세련되게 만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새로운 관객 주체가 되어,
예술과 만나 작품과 ‘공존적 생존(co-emergence)’하는
놀라운 ‘변형’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옆자리 관객의 훌쩍이는 소리가 아직 귓가에 남아 있다.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6. 9.
사진제공_박준형, 창무국제공연예술제, 잔나비와 묘한계책, 노원문화재단, 신기만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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