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26년 6월 13일 서울무용센터 상반기 입주예술가 작업공유회에서 만난 임은정의 작품 〈Shoot〉은 관람 이전부터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촬영하다와 쏘다라는 뜻을 가진 ‘슛’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사건, 공연 중 퍼포머의 상반신 노출이 포함되어 있다는 안내문, 그리고 성적인 의미로 기호화된 신체 부위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정치학을 다룬다는 작품 설명이 불러일으키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이윽고 서울무용창작센터의 블랙 박스 공연장에 진입한 순간, 기시감이 드는 시노그래피적 공간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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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Shoot〉 ⓒ서울문화재단 |
천장에 매달린 분홍색 천으로 둘러싸여 비밀스럽게 밀폐된 공간, 그리고 그 안쪽에 무언가가 존재함을 흐릿하게 보여주는 바닥에 깔린 미러 비닐, 그리고 네 개의 모서리에 설치된 모니터가 있다. 무엇보다도 관객을 압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퍼포머의 거친 숨소리이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숨소리의 발원지인 분홍색 천 근처로 다가가고 이내 천에 뚫린 작은 구멍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구멍 너머로 마주하는 장면은 상의를 탈의한 채 검정 트레이닝복 차림의 검정 긴 머리 여성, 안무가 임은정이다. 화장기 없는 퍼포머는 앉거나 엎드리고 서는 등 자세를 바꿔가며 상체를 터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이는 의도적으로 중력에 의해 흔들리는 가슴의 움직임을 부각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숨소리가 연상시키는 다분히 성적 이미지와 대조적으로 그녀는 무표정으로 어떠한 외부적 시선을 개의치 않는 듯 단순 노동에 가까운 행위를 지속적으로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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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Shoot〉 ⓒ서울문화재단 |
아이러니하게도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사람은 안무적 장치에 따라 관음증적 시선의 주체가 되어버린 관객이다. 분홍색 천 밖 주변을 맴도는 카메라맨은 구멍 내부의 퍼포머를 촬영하거나 그녀를 응시하는 관객을 찍는다. 그리고 카메라가 포착한 이 모든 상황은 네 개의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송출된다.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대상을 객체화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되어버린 상황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작품은 이러한 관음증적 시선의 주체와 객체가 특정 위법적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고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부지불식간에 폭력적 응시자 혹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구조적, 인식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모니터를 통해 교차 송출되는 전지적 시점의 탑 샷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시각적으로 투영한다.
여성 신체를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성 그리고 이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작품 〈Shoot〉은 필자에게 예상 밖 행보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2025년 임은정의 개인전 《housing possession gathering》에서도 페미니즘적 관점은 명징했으나, 이번 신작은 내용과 스타일 측면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가령 영상 작업 〈이모〉(2024)는 안무가의 고향인 속초 아바이마을 여성 노동자들의 삶에 주목하여, 그들의 일상적 샤머니즘이 근대적 합리주의 아래 어떻게 미신으로 낙인찍혀 왔는지 질문하고 비합리적인 것으로 ‘합리화’되어 온 그들의 삶을 조명했다. 또 다른 영상 작품 〈소금더미〉(2024)에서 여성들은 비조형적이고 부드러운 오브제를 쌓아 올리는 제의적 행위를 보여준다. 수행 과정에서 동원되는 불안정하지만 섬세한 감각과 공동체적 연대에 집중하는데, 이는 가부장적 기호 체계로는 설명되지 않는 시각적 형태 너머 촉각적 경험을 강조한다. 이렇듯 임은정의 이전 작업은 여성적 서사와 신체적 감각에 집중하고 시적이고 추상적인 표현 방식을 채택해 왔다. 〈렌즈〉(2024)에서 역시 이러한 작업의 결이 이어지나, 통제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여성 신체라는 문제의식을 보다 선명히 드러낸 바 있다. 물의 굴절과 뒤집힌 카메라 앵글을 통해 물 속 수영복 차림의 여성 신체를 관음하고 억압하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주체적 신체와 객체적 신체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권력 작동을 포착했다. 공연 〈Shoot〉은 영상 작업 〈렌즈〉의 연장선상에서, 관객을 개입시키는 장치를 통해 보다 도발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여성 신체에 대한 시선의 폭력성을 전면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25분 동안 진행되는 〈Shoot〉의 전반부는 앞서 언급했듯이 가슴을 의도적으로 터는 행위를 수행한다. 노출된 여성 가슴의 움직임이 즉각적으로 발생시키는 성적 의미는 퍼포머가 내뿜는 거친 숨소리에 의해 증폭된다. 하지만 몸의 자세, 동작, 리듬을 변주해가면서 가슴의 수직 운동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그 신체 부위와 행위가 지니던 기호학적 의미는 점차 탈각되고 오직 물질의 운동만이 남는다. 이때 숨소리 역시 움직임에 따른 인과적 반응이 아니라 신체와 기계적으로 결합한 소리로 다가온다. 이러한 의미론적, 경험적 전환에 의해 여성 퍼포머는 관음증적 시선이 닿는 성적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바닥에 놓인 비닐에 반사되어 기괴하게 휘어지고 왜곡된, 퍼포머의 비인간적 신체 형상은 남성적 욕망이 투사된 여성화된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는 은유로 거듭난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움직임의 마찰 소리와 숨소리만 들려오던 중, 올드 팝송에 울려 퍼지고 퍼포머는 이전에 수행하던 움직임 시퀀스를 계속 반복한다. 1980년대 에어로빅 홈비디오 열풍을 연상시키는 음악에 맞춰 동작이 펼쳐질 때, 가슴을 흔드는 움직임은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착취적 퍼포먼스가 아닌 물리적 에너지를 동원하는 역동적인 노동 행위가 된다. 동시에 가슴은 성적 의미를 잃고 운동성을 발휘하는 신체의 일부에 불과해진다. 즉 작품은 남성 지배적 관점에서 코드화된 여성의 가슴이, 안무적 장치와 맥락을 통해 다른 무엇이 ‘되는’ 수행적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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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정 〈Shoot〉 ⓒ서울문화재단 |
공연 후반부에 이르러 퍼포머는 움직임을 멈추고 노트를 펼쳐 시를 낭독하기 시작한다. 김혜순 시인의 시와 임은정, 지영서의 글을 바탕으로 발췌, 재구성한 이 텍스트는 두 사람의 몸이 뒤엉켜 애무하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둘의 신체적, 심리적, 정서적 관계를 복합적으로 담아낸 이 텍스트는 이내 주체의 몸과 타자화된 몸의 관계를 담아내는 중의적 표현으로 확장된다. “포개어 겹쳐져 있는 몸. 떨림을 주고 받는 몸의 풍경을 그려보시오. 슬픔을 참고 부둥켜 안아 보시오. 가위를 가지고 무엇을 오릴지 생각해 보시오.... 다른 속도와 리듬으로 서로를 짐승 취급 하시오. 도려내고 싶을만큼 싫어했던 내 가슴만큼 당신을 내 것으로 만드시오.” 여성의 몸은 ‘보는 주체’인 동시에 ‘보이는 객체’라는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하기에, 결코 떼어낼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 속에서 증오하면서도 결속될 수 밖에 없는 양가적 감정을 드러낸다. 이어서 퍼포머는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는 시선과 구멍 틈새를 통한 바라보아지는 시선 간의 차이가 존재함을 말한다. 하지만 결국 너의 몸, 나의 몸, 그녀의 몸 모두가 그저 ‘물건’이라고 선언함으로써, 이데올로기적 기호 체계로부터 탈주한 물질로서의 몸을 말한다.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퍼포머는 카메라 피사체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몸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촬영의 객체이지만 주체가 되는 순간으로, 나이면서 내가 아닌 상태를 비유하는 다양한 장면을 연출한다. 바닥에 가슴을 맞대었을 때 미러 비닐에 반사되어 마치 두 개의 가슴이 마주하고 있는 듯한 장면은 타자화된 가슴과의 공존을 드러낸다. 퍼포머가 가슴, 배 등 자신의 몸을 다양한 앵글로 클로즈업하며 사회적 기호가 아닌 물질 그 자체로 감각하게 만들면서 퍼포먼스는 끝이 난다. 작품 속 천의 구멍들과 카메라는 여성의 신체를 관음하는 외부적 시선을 상징한다. 처음에는 내부와 외부, 주체와 객체를 경계 짓는 장치로 작동하지만, 작품이 전개됨에 따라 안팎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그 안에 내재적 이중성을 드러내는 장치가 된다. 먼저 천 구멍의 경우, 관객으로 하여금 관음증적 시선을 유도하여 퍼포머를 대상화하는 장치로 시작한다. 하지만 퍼포머가 가장 성애화되기 쉬운 신체 부위인 가슴의 운동성을 강조하고 탈코드화하는 순간, 구멍은 여성의 언어가 터져 나오는 통로이자 기성 질서가 규정하지 못하는 폭발적 에너지가 응축된 전복적 공간으로 잇는 사이공간이 된다. 카메라 역시 마찬가지다. 퍼포머가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순간, 그녀의 몸은 주체와 객체가 공존하는 가역성을 지닌 존재가 되는 동시에 새로운 질서로 감각되는 대상이 된다.
임은정의 〈Shoot〉은 남성적 응시의 대상으로 성애화된 여성의 신체라는 주제적, 구조적 측면에서 페미니즘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남성적 응시’ 개념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카메라, 캐릭터, 관객의 시선을 남성 주체로 상정하고 스크린 속 여성은 절대적인 수동성의 위치에 묶어두는 멀비 이론은 남성/주체/시각과 여성/객체/촉각이라는 이분법적 환원주의, 비남성적, 비이성애적 시선에 대한 간과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임은정의 작품이 설정한 가시적 구도 역시 이러한 비판의 함정을 빠지기 쉬워 보였다. 하지만 안무가는 여성을 수동적 위치를 고정하는 멀비식 도식을 파괴하고, 스스로 카메라의 주인이 됨으로써 시각적 주체를 남성으로 상정하는 공식을 벗어난다. 나아가 여성의 몸이 주체와 객체가 공존하는 가역적 상태로 현현함으로써 가부장제의 이원론적 구도를 성공적으로 타파해낸다. 물론 형식적 측면에서 볼 때 장면 간의 유기적 연결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고 흐름이 단절된다는 약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조적 결함를 보완하는 것은 퍼포머로서 임은정이 지니는 압도적 프레젠스였다. 가슴을 노출한 채 취약한 위치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카메라의 시선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높은 밀도로 탈코드화된 몸의 물질성과 운동성에 집중하게 만드는 퍼포먼스 역량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 강렬한 현존이야말로 페미니즘 이론이나 담론을 예증하는 데 그치는 춤이 아닌, 온전히 체화된 상태로서 스스로 발화하는 춤의 진면목일 것이다.
본고는 2026 서울무용센터 입주예술가 사업 아카이브 자료집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