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MELTING〉
발레의 라인 미학 탈피, 기후위기 직썰하다
김채현_춤비평가

백연의 안무작 〈멜팅〉(Melting·녹아내림)은 여러 면 단도직입적이다. 공연에서 안무자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동시에 내적으로는 발레 미학의 관성적 인체 라인을 따돌렸다(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2. 12~14.).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들은 입장할 동안 얼음조각가가 무대 앞 한켠에서 전기톱으로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크루즈 유람선 모양의 얼음 미니어쳐를 다듬어내는 실황을 1인 퍼포먼스로 전개하는 작업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공연 내내 관람 시야에 노출되는 크루즈 유람선이 대변하다시피 극(極)지방 관광객들의 관광 행태가 소재로 묘사되었다. 〈멜팅〉에서는 여행이 관광으로 득세하도록 해온 그간의 소비 문명이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막대한 요인이라는 것 또한 감지된다.

〈멜팅〉의 무대는 바닥과 벽이 하얀 소재로 덮어져서 빙하와 빙판 이미지가 투사되곤 하였으며 무대의 허공에는 푸른 색조의 날카로운 레이저빔(공연 중 여러 색조로 바뀌고 명멸한다)이 위를 향해서 비춰졌고, 객석 앞쪽 한 부분에는 이끼로 뒤덮인 벽을 연상하게 되는 비닐막이 천장에서 바닥으로 드리워졌다. 공연장에 입장함으로써 곧 극지방 관광 현장으로 직행하는 분위기이며, 공연이 진행될 동안 관객은 관광객이면서 기후위기 사태의 목격자 그리고 당사자가 된다. 4개의 장으로 진행되는 공연은 극지방 관광객의 동태를 그려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앞서 소개된 얼음조각 작업에 잇따르는 공연 서두에 하얀 패딩(후드가 달렸다)을 걸친 마임이스트 퍼포머가 얼음조각 작업 현장을 기웃거리던 중에 둥글며 큼직한 얼음공을 발견하여 갖고 노는 듯하니 호들갑을 떤다. 공에 박힌 도화선에 불을 붙여보거나 이리저리 살펴보고 발로 차는 시늉 들을 하던 중 마침 등장한 다른 이에게 공을 맡긴다. 얼음공을 뭔가 위험한 물체로 직감한 두 사람이 꺼림칙한 이 물체를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행동을 거듭한 끝에 얼음공을 객석으로 가져와서 사람들 품에 이리저리 떠넘기는 법석이 벌어진다. 법석에 가담한 일행들이 문제의 얼음공을 갖고 함께 무대에 올라 얼음공을 살피던 도중 어느 사람이 얼음공을 크루즈 얼음조각상 위에 올려놓자 사람들은 얼음 부스러기들을 장난치듯이 그 얼음조각상 위에 놓아 보기도 하고 즐거운 미소를 띠며 단체 샷을 찍고선 크루즈 유람선을 무대 한켠으로 옮기며, 이 유람선은 공연 내내 그 자리를 지킨다. 이 장면을 안무자가 ‘폭탄 돌리기’라 명명한 것처럼, 얼음공은 그 도화선과 연관해서 어떤 시한폭탄을 의미한다. 단적으로 그것은 기후위기의 폭탄을 상징할 것이고, 그 누구라도 기후위기를 책임져 선뜻 나서기는커녕 타인들에게 떠넘겨 순간순간 위기를 모면하고 다시 말초적 관광 소비에 몰두하는 오늘 문명의 세태를 다그치는 대목이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MELTING〉 ⓒ김채현



이후 사람들이 벗어놓은 하얀 패딩들을 겹겹이 뒤집어쓴 캐릭터가 오케스트라 피트 앞 무대 아래 공간을 느릿느릿 왕래하며 배회할 동안 무대에서는 갈색조의 스킨슈트를 착용한 출연자 예닐곱 명이 빙판 조각들이 떠다니는 이미지 위에서 엉키며 버둥대는 모습들을 이어간다. 버둥대는 무리들이 퇴장하고 그 캐릭터가 홀로 무대에 올라 이동하자 패딩들이 미끄러져 내리고 누군가가 패딩들을 다시 덮어주기를 반복하지만 끝내 패딩이 벗겨진다. 아마도 허우적대는 무리들은 극지방의 동물들을, 자꾸 벗겨지는 패딩은 대책 없이 녹아내리는 빙하를 암시하는 듯하다.


패딩이 벗겨진 캐릭터는 갈색조의 스킨슈트 차림이며 이 캐릭터가 선 상태로 느리게 상체를 일렁이는 동작을 지속할 동안 비디오 카메라맨이 등장하여 그 모습을 라이브로 중계하자 빙하 이미지와 오버랩된다. 그 사이에 바닥에 널브러진 하얀 패딩들을 누군가가 챙겨나간다. 이끼가 덮인 벽면에는 초록색이 비치되 빙판 조각들이 표류하는 동영상이 흘러내리고, 그 캐릭터가 카메라를 가로채어 퇴장하는 것에 때맞추어 하얀 패딩의 무리들이 여남은 명 등장하여 무동 태우기, 줄지어 이동하기 등으로 무리 지은 모습들을 여러 포맷으로 전개한다. 이 무리들의 패딩은 등 부분이 올록볼록하게 처리되었고 다들 펭귄 모양으로 양팔을 까닥이며 종종걸음을 걷는 스타일의 움직임으로 군집을 이룬다. 그 모습이 아둔한 인간 이미지와도 엇비슷한 이 무리들은 망원 렌즈로 사방을 관찰하는데 마침 카메라를 빼앗겨 촬영을 갈구하던 그 카메라맨이 망원 렌즈를 발견해서 촬영 자세를 취하면 무리들은 스스로 그의 촬영 대상으로 나서며 카메라맨과 뒤섞여 어울리고 카메라맨을 찍어주기도 한다. 극지방의 동물들을 암시하는 듯한 이들 무리가 모두 퇴장해도 카메라맨이 망원 렌즈로 촬영을 지속하자 북극곰의 눈알이 무대 정면에 클로즈업되고 그 눈알 속에서 어느 캐릭터의 모습이 라이브로 움직인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MELTING〉, 18th ARKO SELECTION 제공 ​Sang Hoon Ok

 


상체만 하얀 패딩을 걸친 집단이 등장하여 카메라맨과 서로 촬영에 몰두하는 도중 무대는 어느덧 붉은 조명으로 물들고 허공에 붉은 레이저빔이 나타난다. 여기에 잔잔하며 빠른 금속성 굉음(이 굉음은 〈멜팅〉의 주제곡인 듯이 여러 차례 길게 들렸다)이 최면제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그런 촬영 행동이 중독 증세에 빠졌음을 느끼게 하며 또 그들이 촬영-관광에 몰두하는 사이에 기후위기는 깊어만 간다. 이 대목은 또한 오늘날의 샷 강박 세태도 연상시킨다. 한참 후 무대 정면에서는 빗살이 촘촘히 박힌 금속성 수직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대형 고드름 같은 기다랗고 예리한 3각형 물체가 바닥을 향해 천장에 매달리고 물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빙하 같은 그 무엇이 내려앉는 듯한 쿵쿵 소리가 울리며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소리도 들린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MELTING〉, 18th ARKO SELECTION 제공 ​Sang Hoon Ok

 


그런 와중에도 계속 촬영에 골몰하는 카메라맨을 만류하는 자가 나타나 카메라맨과 몸싸움하는 기세로 실랑이를 벌여 망원 렌즈를 가로채 카메라맨을 비추면 바닥에는 표류하는 빙판 이미지가 흐르고 카메라맨과 망원 렌즈는 퇴장한다. 조용히 녹아내리고 무너지는 빙하의 아우성과 더불어 밀려드는 파국을 냉담하게 예고하는 듯이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가 진중하게 또박또박 들려오고 그에 맞춰 2인무, 3인무가 아다지오 템포로 전개된 끝에 한 사람이 남아 쓰러져 몸뚱어리를 바닥에 뒹굴었다. 넓혀보자면, 인간뿐 아니라 극지방의 동물과 생명체가 뒹굴었을 것이다. 어둡고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두 사람이 더 등장하여 쓰러진 사람과 3인무를 하고선 남은 한 사람이 독무를 하는 부분은 어떤 절규의 몸짓으로 다가오며 빙하가 붕괴하는 무거운 굉음, 날카롭게 찢어진 빙판 이미지들과 함께 사라진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MELTING〉 김채현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MELTING〉, 18th ARKO SELECTION 제공 ​Sang Hoon Ok

 


다시 무대에서는 빙판 조각들이 흘러가는 대양의 물결 이미지가 바닥에 넘쳐 흐르고 벽에는 빗살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내고 대형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여남은 명의 스킨슈트 집단이 상체를 뒤흔드는 동작 위주의 움직임으로 서로 밀착하거나 엉키고 흩어지는 다양한 구성의 행렬을 전개하는 와중에 비발디의 곡 〈사계〉가 빠르게 울린다. 촉박하게 흐르는 곡조, 위기는 그만큼 급박하게 당겨진다. 그러는 사이에 빗살 구조물을 뚫고 나오는 강한 조명은 붉은색, 노란색으로 바뀌곤 하며 무대 양쪽의 아래에서 위를 향해 여러 줄기의 레이저빔이 투사된다. 그 집단이 춤에 몰입할 동안 크루즈 유람선의 녹아내림-해체를 암시하듯 얼음 큐브들을 마임이스트가 무대 앞쪽에 흩뜨려 놓으며 출연자들은 쓰나미 급류에 휩쓸리다시피 하게 모두 미끄러지듯 무대를 내려와서 객석으로 내몰린다.

얼음을 흩뜨린 출연자가 얼음을 다시 주워담는 사이 객석의 집단은 무대로 돌아가서 같은 동작들로 무리를 짓는다. 얼음 큐브를 주워담은 투명 박스를 마임이스트가 객석으로 갖고 내려와서 멍하니 살펴보고 객석을 응시할 동안 무대 위의 집단은 사라진다. 어두워진 무대에서 하얀 패딩을 걸친 어느 출연자가 빗살 구조물 앞을 뚜벅뚜벅 통과하고 나자 빙산이 무너지는 굉음이 계속 들리고 크루즈 유람선, 빗살 구조물, 대형 고드름, 낙하하는 물방울로 생성되는 둥근 파동 이미지만 남은 상태다. 얼음 박스를 들고 무대로 되돌아간 마임이스트가 박스를 치켜들고 크루즈 유람선을 향해 얼음 큐브들을 쏟아붓는 것과 동시에 빗살 구조물에서 엄청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대형 고드름은 바닥까지 하강하며 바닥에는 빙하-빙판의 파열을 나타내는 찢어진 이미지가 투사되는 대파국이 빚어진 상황에서 무대는 여전히 기후위기를 남긴 채 마감한다.







백연발레프로젝트와이 〈MELTING〉, 18th ARKO SELECTION 제공 ​Sang Hoon Ok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었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빙하의 진리마저 명명백백하게 전복되고 있다. 녹지 않는 것에서 녹는 것으로. 전복되는 빙하의 진리, 그것은 기후위기를 나타내는 확연한 지표가 되고 있다. 그 임계점에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멜팅〉은 자연을 향해 휘두르는 권력이 관광을 비롯한 크고 작은 소비 행위에서도 만연하고 그렇게 소비하는 공모 행위로부터 누가 벗어날 수 있겠는지 묻는다. 공모가 만연한 탓에 자연에 대한 폭력 감각이 무디어지고 급기야 빙하가 녹아내려야 하는 엉뚱한 진리를 대면하게 되었다. 자연에 대해 행사되는 인간의 힘이 궁극에 폭력이 되는 이 문명의 사태를 과연 우리는 정지시킬 수 있을까. 그 단초로서 안무자는 인간중심의 편협한 바라보기의 생태학적 한계를 경고한다. 〈멜팅〉에서 주요한 구실을 하는 망원 렌즈는 인간이 바라보는 도구이자 인간이 바라보이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 사태에 직면하여 안무자는 인간이 자신을 자연에 의해 바라보이는 대상으로 역전시켜 스스로의 행태부터 바라볼 것을 수시로 강조한다. 자연 절경, 비경을 찾아 바라보고 감탄하며 촬영하고선 박제화하는 일방적인 행태(와 폭력)를 멈추고 자연의 아우성을 경청하라는 것이다. 그러자면 비단 관광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연과의 편파적 관계가 다시 가다듬어져야 하고, 문명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은 물론이다. 이에 관해 〈멜팅〉은 단서를 제시한 반면 그 해법은 상당히 유보된 편이다.

기후위기 음모론이 없지도 않으나 반박되고 있다. 〈멜팅〉은 녹아내리는 빙하를 직시하라고 한다. 오늘의 지구 문명에서 가중되는 기후위기의 과제로부터 지구인 누구인들 예외일 수 있는가. 시한폭탄 같은 얼음공을 들고 객석에서 법석을 떠는 일은 빙하의 녹아내림이 정작 관객 당신의 문제인 것을 환기하고 관객을 끌어들이는 요령 있는 방법으로 쓰였고 출연진들은 두어 차례 더 객석으로 내려갔다. 여러 겹의 역할이 주어진 관객들에게 마치 불편한 진실을 공유하자는 듯이. 공연이 계속해서 묻는 것은 지구를 살아가는 인간의 윤리와 책임의식이다. 안무자의 위기의식에 맞추어 〈멜팅〉에서 수시로 바뀌는 조명 색조와 레이저빔, 바닥에서 흘러 떠다니는 빙판의 디지털 이미지, 객석에 드리워진 벽을 뒤덮어 색조 변화로 기후위기를 나타내는 이끼 형상은 〈멜팅〉에 입체감을 더하였다. 그리고 공연에서 움직임들은 불안정하며 찰나적인 행태들을 다양한 포맷으로 그려내는 열기를 보였던 한편으로, 빙하가 녹아내리는 위기의 양상들이 스펙터클한 구성을 통해 육박해오는 것과 발맞추어 출연진의 움직임이 몸의 조형미와 대형의 배열 면에서 더러 임팩트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멜팅〉은 기후위기 현실에 당면하여 생태 존중의 존재론을 축으로 특히 년전의 〈바디 시뮬라크르〉의 연장선상에서 발레의 라인 미학을 더욱 탈피하여 오늘의 방관과 무개념을 반추하도록 한 공연으로서 의의를 갖는다.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2026. 4.
사진제공_김채현, 18th ARKO SELECTION , Sang Hoon Ok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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