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X〉
인간과 기계가 교합한 미지의 생명체,
그것은 비체(卑體)의 미학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한석진_춤학자, 비평가

2025 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선정작 중 하나인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의 〈X〉(2026.3.19.~22.,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포스트휴먼을 둘러싼 문제의식을 주제로 한다. 2021년 창단 이후 한국 춤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빠르게 성장해 온 SAL의 예술감독이자 안무가인 배진호는 인간의 몸을 둘러싼 성적 욕망과 쾌감, 물질적 교감을 자극적이면서 도발적인 방식으로 표현해 왔다. 전작에서 성애화된 신체와 쾌락적 욕망을 분출하는 몸짓 그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번 작품 〈X〉는 이를 인간과 기계 간의 경계라는 주제 내에서 펼쳐낸다. “X”의 일반적인 용례가 미지의 것 또는 특정되지 않는 대상을 지칭하듯, 작품 〈X〉는 유기체와 기계, 인간과 비인간이 교차하면서 그 교합의 결과로 탄생한,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생명체의 존재를 상상한다.

사실 이러한 서사는 대중문화, 특히 SF 분야에서 익숙하게 다뤄져 왔던 소재이자 동시대 포스트휴먼 담론의 핵심적 내용이다. 서구 문명 속에서 인간의 이성적 주체를 위협하는 인공적 생명체는 유기체와 기계가 조합되어 만들어진 사이보그로 대표되곤 했으며, 그 상상적 원형은 19세기 초 메리 셸리 소설 〈프랑켄슈타인〉 속 피조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급격한 기술 발전이 추동한, 인간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할 수 있는 미지의 존재 가능성은 근대적 공포를 자극하고 디스토피아적이고 아포칼립스적인 세계관으로 형상화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도나 해러웨이에 의하면, 사이보그는 서구 이분법적 경계를 흔들어 놓는 정치적 메타포이자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는 혼종적 존재라는 점에서 지배와 억압의 질서를 해체하는 힘으로 작동할 수 있다. 해러웨이식 사이보그 개념은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 영역을 의심하는 포스트휴머니즘적 사고로 확장되었다. 인간은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비인간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성의 상태로 보는 포스트휴먼 신유물론적 사유로 나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SAL이 그려내는 미지의 존재 ‘X’는 어떤 모습일까? 인간과 기계는 어떠한 관계로 상정되며 그 안에서 몸은 어떻게 위치하는가?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X〉, SAL 제공 ⓒ최랄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막 앞에 흰 붕대를 머리에 두르고 찢어진 흰 타이즈를 입은 남성 무용수가 어색한 표정과 경직된 자세로 서 있다. 그는 마치 실험실에서 갓 탄생한 인공물처럼 자신의 존재와 세상을 지각하고 알아가는 듯하다. 이어서 평상복을 입고 장바구니와 같은 일상적 소품을 들고 다소 과장된 행동을 하는 인물들, 동물 가면과 속옷만 착용한 채 사족보행하는 생명체, 인간이 들어갈 만큼 큰 사이즈의 가방을 끌고 다니는 인물 등이 객석 곳곳에서 등장한다. 흰 의상의 남성이 마치 신적인 존재이자 통제자처럼 인간들을 불러 모으는 제스처를 취하자 무대 위로 하나둘씩 올라가 그에게 신체 검색을 받는다. 그는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두려워했던 바로 그 이유, 인간을 지배하는 자가 된 듯하다.

그렇게 막이 오르면 눈 앞에 기괴함이 가득한 타블로 비방(Tableau Vivant), 즉 살아있는 그림이 펼쳐진다. 무대 가운데 흰 의상의 남성 옆 검정 전신 수트를 입은 한 인물은 엉덩이를 보인 채 동물처럼 네 발로 지탱하고 있으며, 또 다른 옆에는 장바구니를 든, 하이힐을 신은 임산부가 담배를 피우고 서 있다. 무대 하수에서는 줄 서 있는 인간들에게 주유건으로 기름을 주입하고 있다. 인물들이 착용한 찢어진 치마, 검정 타이부츠, 하네스 벨트 등은 성적 패티시와 연관되어 시각적 기호로 작동하며, 신체의 여러 부위에 주유하는 행위는 다분히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연출된다. 이 장면은 기름을 연료삼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인간, 금기된 성적 욕망의 표출, 동물이 된 인간, 모성애를 상실한 여성 등을 그려내면서 인간의 본성을 잃은 인간으로 상징된다. 즉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모호해진 이유는 사회적으로 인간에게 요구하는 본성, 즉 이성적이고 모성애를 가지며 자율성을 가진 주체에서 벗어나 비인간과 유사해졌기 때문이다.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X〉, SAL 제공 ⓒ최랄라



기계 작동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모호해진 경계는 점차 더 명백해진다. 일상복의 인물들은 흰색 의상의 남성의 통제를 받아 자율성을 상실한 객체가 되고 반인반수, 복부에 유방 또는 남근을 연상시키는 오브제들이 달려있는 검정 생명체 등이 등장한다. 생명체과 무생물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로서 재생산 능력을 가진 임신부조차도 점차적으로 분절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움직임을 수행하면서 비인간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채찍질과 비명이 난무하고 집단 성교가 일어난 후 임산부는 살덩어리로 쌓여진 언덕 위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출산을 한다. 마치 자궁에서 나온 아이처럼 언덕 사이에서 한 생명체가 빠져나온다. 이어지는 모유가 아닌 기름을 주입하는 장면을 통해 갓 태어난 생명체가 혼종적 존재임을 암시한다. 이는 마치 영화 〈티탄〉에서 주인공 알렉시아가 자동차와의 성관계로 임신을 하게 되고 기계 기름을 하혈하고 메탈로 된 등골을 가진 새로운 종의 생명을 출산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X〉, 18th ARKO SELECTION 제공 ⓒ​Sang Hoon Ok



공연의 중반에 이르면, 인격이 소멸된 기계화된 인간이 강렬하게 재현된다. 강한 비트의 사운드 아래 대각선으로 한 명씩 걸어나오는 무용수들은 공장 컨베이어 벨트 위 생산물이자 거대한 기계 장치의 부속품이 된다. 어디론가 향해 전진하며 통일된 움직임을 수행하던 그들의 입에는 검정 테이프가 붙여져 있고, 다른 생명체와 인간을 구분짓는 문명을 만들어낸 말과 언어는 지워진다. 이어서 등장하는 천장에 매달린 수많은 메탈 봉의 완벽한 매끄러움, 결여된 온기, 반사된 빛은 공간을 압도하고 그 아래 크롭티를 입은 남성은 몸부림치지만 보이지 않는 외부 힘에 의해 무력하게 제압되어 버린다. 얼굴이 보이는 검정 전신 수트를 입은 여성이 등장하고 그 남성의 몸에 페인트칠을 하는 행위는 결국 개별성을 지워 기계가 되는 순간을 상징한다. 인류가 종말하는 아포칼립스적 세계관은 인간이 검정 생명체에 의해 피 묻은 흰색 천에 쌓인 채 줄로 묶여 끌려가고 유린 당하는 장면에서 분명해진다. 기계로 대변되는 검정색과 대비되는 흰색 의상의 남성이 죽임을 당한 인간을 안고 오열하고 검정 기름이 흘러내리는 기계 심장을 손에 쥐고 있는 장면에서 이 미지의 인물에 대한 새로운 성격이 부여된다. 흰색 의상의 남성은 인간을 대신해 복수를 수행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기계이자 인간성을 수혈받은 생명체로서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공연 후반에 가짜 가슴과 배를 매달고 있는 기계에게 아기가 전달되는 순간은 기계의 출산 능력을 암시한다. 이후 얼굴은 노출한 채 검정 전신 수트를 입은 인간화된 기계의 세상이 펼쳐진다. 쉼 없는 펌프질로 에너지를 창출하고 극한의 가속성과 운동성을 생성해내는 검정 무리 중에는 흰색의 그도 함께한다.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나 초인적 존재가 된 그들은 인간을 연기하기도 하지만, 공연 말미에 흰색 의상의 남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목에 남겨져 있는 숨겨진 검정 마크는 기계로서 정체성을 재확인시켜주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X〉, 18th ARKO SELECTION 제공 ⓒ​Sang Hoon Ok



배진호 안무가는 특유의 거침없고 도발적인 표상을 파편적으로 전시함으로써 인간과 기계 간의 경계와 관계를 상징적, 은유적으로 그려낸다. 자율성을 상실한 인간, 인간의 자궁에서 탄생한 혼종적 생명체, 인간의 종말에 분노하고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기계, 출산 능력을 가지게 된 생명체로서 기계를 재현한다. 이를 위해 성적 욕망과 충동이 분출되는 통로이자 기계적 에너지 동력의 원천, 그리고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생물학적 몸을 전면화한다. 여기서 바로 안무가가 상정한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대한 존재론적 인식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안무가는 작품 〈X〉에서 인간과 기계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과정과 그 결과로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예고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무가가 말하는 기계화된 인간은 이성을 상실하고 성적 욕망을 탐닉하며 동물처럼 자율성이 부재한 존재라는 점, 그리고 기계는 출산을 통해서 인간과 유사해진다는 믿음은 이성과 출산 능력이 결핍된 기계보다 우월한 인간의 위치를 내면화하고 있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말한 원본이 사라진 복제물로 가득 찬 세계를 시각화하지만 결국은 보드리야르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 ‘진짜’ 현실로 도달하라는 메시지를 감독이 전하려는 것과 유사하다. 작품 〈X〉는 궁극적으로 인간과 기계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둘 간의 경계과 위계를 확인시켜 준다는 점은 작품 내내 모호했던 두 존재의 경계선이 목의 검정 마크를 통해 명확해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가시화된다.





전복된 해부학적 풍경(SAL) 〈X〉, SAL 제공 ⓒ최랄라



사실 더 문제적인 것은 안무가가 탈인간화된 존재를 그려내기 위해 차용한 성적 이미지와 이것이 생성하는 기호학적 의미이다. 인간의 타락성을 표현하기 위해 대중문화에서 흔히 소비되는, 여성과 퀴어 주체가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착취되는 기호 체계를 작품 속에 박제화하는 것은 시각적 볼거리로 전락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영화 〈티탄〉은 성적 대상이 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내지만 이는 주인공이 파괴하려는 특정 젠더에게 부여된 고정적이고 타자화된 성적 이미지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점에서 당위성을 지닌다. 작품 〈X〉에서 여성과 퀴어 주체는 관음증적 시선 속에서 대상화되고 타락의 기표로만 남을 수 있다는 한계점을 지닌다. 동시에 재생산하는 여성의 몸이 기계가 유기체로서의 위치를 부여받는 중요한 능력으로 간주하면서도 정작 그 몸의 주체의 서사는 삭제되고 인류 존속을 위해 생식적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점 역시도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SAL의 〈X〉는 개별 무용수들의 탁월한 퍼포먼스 역량은 물론, 만 4년밖에 안 된 단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무용수들의 신체가 뿜어내는 감각적 자극과 시각적 상징과 은유가 결합된 스펙터클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러한 강렬하면서도 기괴한 이미지가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감각적 전이와 공유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그 감각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요구된다. 안무가가 만들어낸 비체적 존재가 여전히 타자화된 감각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의 정치성을 획득할 때만이 비로소 비체의 미학이 완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2026. 4.
사진제공_SAL, 최랄라, 18th ARKO SELECTION, Sang Hoon Ok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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