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나는 그동안 미술관에서 행해지는 이른바 ‘개념무용’으로 불리는 퍼포먼스에 그리 너그러운 편이 아니었다. 화이트 큐브의 권위에 기대어 빈약한 움직임을 난해한 관념으로 포장하거나, 극장의 스펙터클과 기존 테크닉에 종속된 몸을 비판하며 사유를 내세우나, 정작 자신에게만 매몰되어 관객의 이해에는 소극적인 시도들을 숱하게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수현의 신작 〈세계〉, 2026 (3.13. 서서울미술관)은 나의 비평적 회의를 재고하게 한 작업이었다. 이번 작업은 안무가가 지속해온 신체감각의 전이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었다. 안무가는 개념 작업 특유의 지적 난해함을 소리의 공명으로 정면 돌파한다. 퍼포머들이 내뱉는 웅얼거리는 음성과 울부짖음은 화이트 큐브의 정적을 찢어발기며 공기의 흐름을 요동치게 했다. 불안정한 맥락의 소리가 쌓여 구축된 그 세계가 내 안으로 제멋대로 비집고 들어올 때, 나는 이것이 보는 공연이 아니라 내 몸(감각)을 타격하는 구체적인 경험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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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세계〉, 2026, 서서울미술관 제공 ⓒ최형락 |
온몸으로 느껴지는 이러한 감각적 침입은 기존 극장 문법에 익숙한 우리의 협소한 감각 체계를 뒤흔든다. 대개 극장 춤이 주는 감동이란 관객석에 앉아 무대 위 이미지를 바라보며 느끼는 시각적인 긴장, 즉 ‘관조’의 범주에 속한다. 극장이 무대라는 유리 벽 너머의 환영을 응시하게 했다면, 황수현은 그 유리 벽을 산산조각 내어 파편화된 소리의 진동을 관객의 피부 깊숙이 밀어 넣는다. 이는 안무가가 정해 놓은 의미를 머리로 읽어내는 단계를 가뿐히 건너뛰어, 퍼포머와 관객의 몸을 하나의 감각 네트워크로 엮어내는 경험이다. 관객과 퍼포머가 뒤섞이는 형식이 비단 새로운 것은 아닐지라도, 관객은 기존 극장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감각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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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세계〉, 2026, 서서울미술관 제공 ⓒ최형락 |
황수현의 안무 여정은 이처럼 신체의 감각을 역추적하는 집요한 탐구의 과정이었다. 전작 〈검정 감각〉이 시각을 차단한 채 청각과 촉각의 재발견에 집중했고, 〈카베에(Caveae)〉가 동굴이라는 폐쇄적 공간 안에서 군무진의 잠재된 감각을 응시하게 했다면, 〈싱크 디 싱크(Sync d Sync)〉는 언어의 의미가 거세된 성대를 중심으로 주체의 감각을 탈동기화 한 작업이었다. 이러한 내밀한 탐구를 거쳐 도달한 신작 〈세계〉는, 이제 그 감각의 파동을 퍼포머의 몸 안에 가두어 두지 않고 관객에게 직접 전이시키는 확장적 수행성을 획득했다.
이러한 안무적 확장은 서서울미술관 지하 전시실의 압도적인 층고를 만나 더욱 강력한 실재감을 보여준다. 높은 천장 아래 짙게 깔린 어둠과 그 정적을 뚫고 울려 퍼지는 미세한 음성의 서늘함은, 관객으로 하여금 곧 마주하게 될 세계에 대한 팽팽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두운 전시장 벽을 둘러싼 10여명의 퍼포머는 벽을 보고 선 채로 웅얼거린다. 관객은 그들 가까이 다가가 목적을 간파하기 어려운 행위를 관찰하게 된다. 텅 빈 공간을 채우는 발화의 밀도는 의미와는 무관하게 역설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한 물성을 띠며, 우리가 발을 딛고 선 이 전시관 지하를 미지의 시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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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세계〉, 2026, 서서울미술관 제공 ⓒ이동웅 |
공기 중의 입자를 흔드는 소리의 진동 속에서 퍼포머들의 행동은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허리춤에 있던 폰을 꺼내 들고 퍼포머들은 플로어를 배회한다. 느리게 읊조리던 음성에 속도가 붙자 몸의 반경도 커지며 각자의 행위가 전체의 흐름으로 휩쓸린다. 소리를 따라 퍼포머가 움직이는지, 움직임이 소리를 낳는지 모를 위태로운 걸음들, 걷다 자빠지고 무릎이 꺾이며 허리가 접히는 신체적 파열이 이어진다. 소리로 전달되는 감정의 소요는 강도가 더해질수록 포효하듯 내지르는 비정형의 음성과 뒤틀린 몸짓이 전염되어 나의 온몸으로 파고든다. 급기야 전시장 바닥에 앉은 관객 곁으로 다가와 시적인 문장을 읽어주는 퍼포머들의 행위는 이질적인 교감의 어색함을 넘어 어떤 진공의 장소성을 획득한다.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퍼포머와 관객은 이 낯선 만남 속에서 점차 익숙함으로 나아가며, 그들이 거주하는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요동치는 에너지와 소리의 공명이 전시실 밖 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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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세계〉, 2026, 서서울미술관 제공 ⓒ최형락 |
이 지점에서 나는 현대 무용의 해체주의를 이끌었던 자비에르 드 루아(Xavier Le Roy)를 떠올린다. 2018년 독일 탄츠플랫폼에서 만난 드 루아의 〈Temporary Title〉이 관객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며 사회적 관계를 물었다면, 황수현은 소리의 진동을 통해 신체적 실재를 묻는다. 드 루아가 신체의 시각적 변형으로 인간 너머의 풍경을 제시한다면, 황수현은 소리의 공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감각적 풍경을 전시관 내부에 제시한다. 두 안무가는 관객과 퍼포머의 비위계적 섞임을 지향하며, 지금 이 순간 소리와 몸이 어떻게 세계를 탐험해 나가는지 그 과정 자체를 공유한다. 결국 황수현이 설계한 이 세계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하는 감각의 격랑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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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현 〈세계〉, 2026, 서서울미술관 제공 ⓒ최형락 |
황수현의 작업은 마치 쓰나미가 휩쓸고 간 뒤 마주하게 된, 물리적 변형은 없으나 감각적으로는 완전히 뒤바뀐 공간과도 같았다. 애써 의미를 맞출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너무나 편안한 해방감을 선사했다. 그저 몸을 열어두는 것만으로도, 공간에 나의 마음과 몸을 맡길 때 미지의 세계가 열리는 묘한 경험. 마침내 상부 커튼이 열리며 쏟아지는 눈부신 빛 속에서 공원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할 때, 내가 방금 감각의 우주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황수현이 열어젖힌 이 〈세계〉는 우리 몸에 새겨진 새로운 감각의 지도가 되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감각하는 법을 다시금 일러주었다.
서서울미술관 지하 전시실에서 목격한 이 이질적인 감각의 전이는, 동시대 춤이 미술관이라는 장소를 빌려 보는 극장 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미학적 성취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을 입증하는 것은 지금 이순간, 살아 숨 쉬는 우리 관객의 몸, 그 자체가 바로 세계의 장소다.
나아가 2026년 3월 12일 개관한 서서울미술관(SeMA)이 과거 군부대 부지이자 산업화의 기억을 품었던 독산동이라는 장소가, 이제 비물질적 예술을 통해 지역의 역사적 맥락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계승하고 재편할 수 있을지, 우리는 이 '뉴미디어 특화 공간'이 안무가들에게 제공할 미학적 거점을 흥미롭게 지켜볼 일이다.
김혜라
현장 비평가로 2012년 한국춤비평가협회를 통해 등단했다. 월간 <춤웹진>과 <더프리뷰>에 정기적으로 컨템퍼러리 창작춤을 기고하고 있으며, 국공립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재단에서 심의와 평가도 병행하고 있다. 세종시문화재단 자문위원이며 중앙대에서 비평관련 춤이론 수업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