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미 공연했던 작품을 어떤 형태로든 새롭게 구성해 재공연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재공연 작품이 전작(前作)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다반사인 우리 춤계의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이미 정해놓은 틀을 바꾸기가 어렵고, 이미 짜놓은 움직임을 버리기 아깝고,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다져진 춤의 앙상블을 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에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추가되어야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할 수 있는 상상력의 부재와 용기 부족도 그 요인이 될 수 있다.
모헤르댄스컴퍼니가 10년 전에 초연해 꾸준히 재공연을 시도해 온〈집 속의 집〉을 〈집 속의 집:문밖의 문〉으로 제목까지 바꾸어 새로운 버전으로 공연한다고 했을 때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섰던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단독 컴퍼니가 제작한 기존 작품을, 그것도 꽤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다른 무용단의 댄서, 협력 안무가와 함께 새롭게 제작한다는 발상, 그것도 합류한 컴퍼니가 자신들의 독창적인 색깔을 선명하게 가진 컴퍼니라면, 그 협업 작업은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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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헤르댄스컴퍼니 〈집속의 집: 문 밖의 문〉 ⓒBAKi |
그러나 이 같은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제작진들은 초연 후 수차례의 재공연을 통해 업그레이드시켰던 기존 작품을 뛰어넘는 새 작품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소스(Source)들이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버무려졌고, 무엇보다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 극장예술로서의 무용예술의 특성들이 촘촘하게 엮여져 있었다.
안무가의 메시지는 억지로 강요되지 않았고, 프로시니엄 극장 공간은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오브제로 활용되는 움직이는 무대장치, 그리고 계산된 연출로 인해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음악은 댄서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맞물릴 때 적지 않게 파생되던 음악과 춤의 그렇고 그런 매칭에서 오는 식상함을 적절한 악기의 융합으로 기막히게 피해갔고, 더 나아가 작품 전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구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2020년에 초연된 원작 〈집 속의 집〉은 아르코예술극장,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등 공연장을 바꾸어가며 조금씩 진화하더니 이번 토월극장 무대에서 만개했다. 몇 가지가 보완된다면 당장 세계 춤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높을 만큼 예술적 완성도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우리나라 춤 계에서 좀처럼 찾기 드문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될 만한 대형 장편 작품이 탄생했다.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3월 13~15일, CJ토월극장, 평자 15일 관람)의 성공 요인은 안무자 서연수와 협력 안무로 참여한 김보람, 연출을 맡은 강요찬, 음악을 작곡한 김재덕 4인방의 협업이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 데서 기인한다. 여기에 차별화시킨 색감의 무대미술(김종덕)과 의상 조명을 활용, 극장예술에서 필요로 하는 시각적 효과를 살려 낸 시노그라피(정승재)의 감각도 힘을 보탰다.
컴퍼니의 상징처럼 된 검정색 선글라스를 작용한 앰비규어스 8명 댄서의 합류로 인해 춤추는 공간은 객석까지 확장되었고, 어깨와 팔의 라인, 발목과 종아리까지, 댄서들이 만들어 내는 다른 질감의 춤은 풍성함을 더했다. 안무가 서연수는 적절한 범위에서 기존 작품 속 춤들과의 변별력을 살린 춤들을 작품 속에 더했고 협력 안무가로 참여한 김보람은 앰비규어스가 갖고 있는 빠르고 진폭이 큰 춤 그대로가 아닌, 짧게 끊어지는 대중적인 춤의 요소들을 자제하면서 기존 작품에는 없는 춤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녹여냈다.
안무가 서연수는 원시적이고 제의적인 분위기의 춤, 사각 조명을 따라 물 흐르는 듯 군무의 대형을 변화시키면서, 군무진들의 무대 접점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키고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안무 감각을 보여주었다. 특히 9명X9명이 자유자재로 공간을 점하도록 한 군무는 압권이었다. 안무가 김보람은 스타일화 된 앰비규어스 컴퍼니의 춤의 유형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려는 움직임 구성을 시종 빠른 템포가 아닌 중간 혹은 느린 속도감에 맞추어 배열하는 영민함을 보여주었다.
작품 후반부에 김재덕의 스타카토로 분절시킨 음악에 맞추어 남녀 8인무를 몸을 비틀면서 발끝을 세우고 뒤꿈치를 드는 연속 동작으로 매칭시킨 것은 이전 앰비규어스 컴퍼니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도였다. 뒤로 갈수록 비트가 강한 음악과 만나면서 앰비규어스 스타일로 확장되긴 했지만, 고음보다는 중저음을 택한 안무가의 움직임 조합은 전후에 맞물린 모헤르댄스컴퍼니 댄서들의 화려한 군무와 대비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했다.
연출가 강요찬은 30명이 넘는 출연 댄서의 춤과 동선, 적지 않은 움직이는 오브제를 적절한 타이밍에 배열하고 토월극장의 무대 깊이와 구조를 활용, 관객들로 하여금 유형과 무형의 틀과 경계를 직관과 감각으로 즐기도록 세밀한 연출력을 더했다. 공연 시작 전과 후에 한 명의 퍼포머를 통해 집과 문이 갖는 공간적 이미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상징적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풀어냈다. 작곡가 김재덕은 장편 무용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전자음악과 타악, 인성(人聲)을 그 자체로 변환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도구를 합성해 변화무쌍한 음악으로 치환했다. 초반부에 나무 바닥을 두드리는 타악을 섞어 무용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신디사이저 음악의 식상함에서 탈피시키더니 작품 중반부에는 전통음악인 정가와 일정한 템포로 끊어지는 전자음향을 가미하고 후반부로 가면서는 인성(人聲)과 강한 비트를 더 해 작품의 이미지를 증폭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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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헤르댄스컴퍼니 〈집속의 집: 문 밖의 문〉 ⓒBAKi |
아쉬운 점도 있었다.
집과 문의 이미지를 담아낸 사각형의 여러 개 대형 오브제를 댄서들이 움직이도록 하면서, 전환과정에서 파생되는 순간적인 단절, 천장에 매달린 두 개의 라이트와 하나의 스팟 라이트 아래 솔로 댄서의 춤과 이어지는 군무 사이의 지나치게 짧은 간극, 군무의 비중이 많고 작품이 전체적으로 시종 빠른 템포로 일관되었던 점이 그것이다. 몇몇 장면에서 잦은 무대세트의 이동은 공간을 변화시키는 효과는 있었지만 부분적으로 산만함을 생성하는 요인이 되었고 관객들로 하여금 오롯이 춤에 집중할 수 있는 흐름을 단절시켰다. 모헤르와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가 함께 춤춘 28인무는 이전 작품보다 스펙터클은 더해졌지만 춤의 엑스타시는 이전의 군무, 2024년 요코하마 동아시아댄스플랫폼(HOTPOT)에서 모헤르댄스컴퍼니 댄서들이 보여준 폭발적인 에너지의 다른 질감의 춤에는 미치지 못했다. 군무가 많을 경우 홀춤이나 2인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반대급부의 편성이 더해진다면 상대적으로 스펙터클한 볼거리가 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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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헤르댄스컴퍼니 〈집속의 집: 문 밖의 문〉 ⓒBAKi |
모헤르댄스컴퍼니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파트너로 초대해 시도한 안팎의 충돌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은 성공했다. 잘 만들어진 오페라 공연을 뛰어넘는,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예술이 가진 극장예술로서의 경쟁력이 그 어떤 장르보다도 부족하지 않음을 관객들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전작과 크게 달라진 점은 관객과의 소통 강화, 확연한 차별성을 보여준 움직임의 조합, 상상력과 함께 어는 순간에는 드라마까지 읽혀지는 음악의 힘이었다. 다양한 프레임을 펼치면서 생길 수 있는 산만함을 적절한 타임에 완급을 통해 조절한 연출의 힘도 빼놓을 수 없다. 공연 장소가 이전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의 높고 넓은 구조에서 중극장 규모의 토월극장으로 옮겨진 것도 공연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던 요인이다. 제작진들은 오케스트라비트, 회전무대, 관객들이 더 가까이서 무대와 마주할 수 있는 토월극장의 구조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공연 리플렛에는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과 함께 나란히 ‘다르지만, 다르기에 함께’라는 글이 씌어져 있었다. 이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었다. 강요찬과 서연수, 김보람은 드나들면서 안주하는 ‘집’이란 공간을 움직임과 연계해 각기 다른 시각으로 풀어놓았다.
이 같은 완성도 높은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지원사업의 다년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일 년 단위로, 어쩌면 탈락될 수도 있는 제작비 확보의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은 춤 단체로하여금 긴 호흡으로 작품을 계획하고 이를 제작으로까지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만만치 않은 소프트웨어를 갖춘 한국 춤 계의 현실을 감안한, 적절한 지원 시스템 운용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 이 글의 일부 문장은 〈객석〉 4월호에 필자가 쓴 해당 공연의 리뷰와 중복됨을 밝힙니다.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