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립현대무용단, 김보라 〈내가 물에서 본 것〉
주도권이 상실된 취약한 몸에 대한 환기
김혜라_춤비평가

국립현대무용단이 제작하고 김보라가 안무한 〈내가 물에서 본 것 What I Sense in the Matter〉(8.14,세종시예술의전당)은 난임 여성이 보조 생식 시술 중 겪은 몸의 변화를 토대로 구성한 작업이다. 여성 몸에 관한 내용이나 무용수들은 여성성을 보이기보단 성별에 구분을 두지 않는 물질로서의 몸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들의 형상은 독립적이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휩쓸리고 위태롭게 존재하는 비결정적인 몸의 상태를 드러낸다. 올록볼록한 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은 비정상적인 살갗, 복수(腹水)로 가득 차 부풀어 오르고 멍든 몸통, 구토 같이 물을 바닥에 쏟아내는 행위가 낭자한 무대는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하게 한다. 낯선 상황과 무대(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외부(의료 기기)에 영향을 받는 몸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무엇을 제시하고 싶은 것일까.

작품 제목 ‘내가 물에서 본 것 What I Sense in the Matter’에서 물인 matter는 인위적으로 임신을 유도하는 물질들이 물의를 빚어내는 내 몸속 현장이다. 또한 의료 기술에 수동적으로 몸을 맡기며 겪어야 했던 안무가의 체험이기도 하다. 여성의 몸이 공간화되나 몸이란 영토는 약물과 기기에 잠식되는 전쟁터가 된다. 때론 상징적으로 때론 노골적으로, 역동적이고 말끔한 춤이 아닌 정상성에서 이탈한 움직임으로 꾸려진다. 이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무용수들은 통상적인 힘의 균형감에서 먼 동작을 주로 한다. 중심이 뒤편으로 쏠리기도 하고, 몸통은 기괴한 덩어리 같은 분투적인 형상들로 움직임이 진행된다. 어떤 의식을 체현하는 것이 아닌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의 흐름과 상황에 대응하는 양태가 가시화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을 해체하려는 신유물론은 인간중심으로 정의되었던 물질의 행위 능력을 재구성한다. 물질이 인간(의식)에 지배받는 수동적인 대상이 아니라 저마다의 실재성과 행위성이 있기에 인간과 상호작용을 통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태도다. 신유물론적 관점이 녹아든 작품은 의식에 지배받는 몸이 아니라 몸과 정신의 위계가 해체된 물질적 존재로서 몸을 새롭게 조명한다. 이를 토대로 김보라는 자기 체험에서 비롯된 의식의 지배와 무관한 몸의 성질 및 존재들을 촘촘하게 포착해 나간다. 스스로 반응하는 체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 이를테면 세포, 혈류, 호르몬 반응 같은 실체적인 물질들로 야기되는 몸의 변화에 주목한다. 시술과 약물에 노출된 저항할 수 없는 몸이 작품 전면에 나서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의학적 잣대에 의해 정상과 비정상을 오가는 저항 불가한 상태이며, 아픈 몸에 가까우나 질병이 아닌 상태인 난임 여성의 몸을 말한다.

이러한 안무 접근은 기술과 몸에 대한 상보적이거나 우열을 주장하는 시선(몸의 주체성을 강조하며 기술에 맞서거나 정복되지 않는)과 달리 몸이 처한 다중적인 상황과 실태에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관심에서 배제되었던 몸의 존엄이 닿지 않았던 특수한 상황에 놓인 몸에 주목하여, 우리 몸(생명)이 (의료 기술 환경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조명한다. 기술적 처지에 반응하는 몸속 물질들의 미세한 움직임과 변화를 경험하며 정상도 비정상도 아닌 위치에 서 있는 물질로 이뤄진 몸들이 춤으로 조직되어 구체화 된다.

푸른 비닐로 뒤덮인 언덕 같은 무대가 의료 기구를 포장한 필름(포장)일 거라는 생각은 작품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서 알아차릴 수 있다. 무대 중앙에 배치된 거대한 장치는 안무가의 의도대로 무언가를 들여다보기 전의 상태이다. 무용수들은 비닐을 찢고 벗기는 데 한참의 시간(15분)을 사용한다. 신경을 거스르는 인위적인 소리와 함께 금속 면이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판 위에서 무용수들은 배회하고 미끄러진다. 중력에 순응하는 동작이 아니라 어떤 자극에 따라 움직이고 뭉쳐지고 흩어지는 유기체처럼 체내에서 변화하는 물질들 그 자체를 표현한다. 우리는(관객은)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직관적인 판단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무대는 점차 체내 물질들이 출렁이는 어떤 공간으로 여겨지며 무용수가 몸 안의 어떤 집합체로 인지된다. 무용수들은 세포조직처럼 하나의 띠를 구성하기도 하고 두세 명 몸이 끊임없이 연결된 모습을 보인다.

투명한 금속판에 선 무용수들은 약물로 인해 호르몬이 교란되어 발생하는 부작용을 가감 없이 표현하는 듯하다. 침과 분비물을 토하고 기어다니거나 쓰러지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이러한 징후는 무용수들이 입은 살색 바디수트에 피부 표면이 부풀어 오른 듯한 구형이 주렁주렁 달린 의상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정상적인 몸의 상태가 아닌 상황에서 외부의 자극이 이들을 더욱 분주하게 한다. 조명으로 대체된 수십 개의 주삿바늘 내지는 초음파 불빛이 비칠 때마다 무용수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서 연쇄적으로 이동하고 다시 결합하는 반응을 보인다.

동시에 스피커에서는 시시콜콜한 말과 의료 기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나온다. 사전에 무용수들이 직접 녹음한 말과 호흡, CT나 MRI 촬영에서 들리는 소리로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해 실시간으로 조작되어 나온다. 또한 시술 후 마취에서 깨어나 몽롱하게 들리는 병원에서 자주 접했던 클래식 음악도 나온다. 이 작업에서 소리는 춤을 위한 보조장치가 아니라 실시간으로 컴퓨터 프로그램이 생성해 해는 청각적 행위자이다. 더불어 소리는 병원 환경이라는 상황을 재인지 시키는 심리적 장치로써 역할도 있어 보였다. 물을 마시거나 목구멍을 타고 꿀꺽꿀꺽 넘어가는 액체 소리도 그 자체로 자기 행위를 하는 물질로 강조된다. 즉물적인 몸짓과 소음 같은 소리와 함께 직접적인 행위가 삽입된 무대는 몸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을 하나의 사건으로 가시화 한다.

무대 천장에서 현미경 렌즈로 보이는 장치가 내려와 무용수 입속과 목구멍을 비춘다. 조명과 소형 장치는 몸을 움직이게 하는 외부 기기로 이에 반응하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과장되어 보이는 입은 기구에 맡겨진 제 기능을 상실한 구멍일 뿐이다. 아마도 성공적인 임신을 위해 몸의 주도권을 의료 기구에 맡겨야 했던 구체적인 행동이리라. 주체적인 인간이란 생각이 허영이 되는 행위로 오브제를 상징적으로 활용한 예이다.(우리도 병원에 가면 의료진의 처지에 따르며 수술대 위에서 아무런 선택을 할 수 없는 무기력을 경험한바 있을 것이다)

피폐해지는 정신적 고통은 자조적인 퍼포먼스로 이어진다. 전반부의 장면이 주로 몸의 부위나 내재된 물질성이 강조되었다면, 이어지는 퍼포먼스는 다소 은유적인 장면으로 구성된다. 남성 무용수들은 계란판을 머리에 이고 등장한다. 조심스럽게 달걀 여러 개를 바닥에 굴리고 여성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달걀을 피해 뛰어다닌다. 이어 여성 무용수는 달걀을 바닥에 던지는 퍼포먼스를 이어간다. 깨진 달걀로 엉망이 된 무대에서 펼쳐진 난장 행위에서 숱하게 버려지고 실패한 수정되지 못한 생명체들을 은유함을 알 수 있다. 난임 시술을 경험한 여성만이 느꼈을 허무한 현실이 연상된다. 아름답지도 건강하지도 매끈하지도 않은 몸들이 집단으로 소송하듯 수정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토로하는 것 같다. 일련의 퍼포먼스를 통해 수정과 생명 잉태라는 고귀한 결과에만 주목했던 우리의 모습과 사회적 현실이 환기된다. 다만 초반 호기심을 일으킨 물질들의 수행적 태도는 후반부로 갈수록 기존 춤 안무에서 펼치는 내용을 대변하는 연출로 변한다. 물론 주제를 포착하기에는 용이하나 초반부 형식적 시도와 방향성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윤리적 기준보다는 의료 기술 실행의 장소로서의 물질적인 몸, 성공과 실패로 재단되며 그 과정이 묵과된 몸,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몸에서 일어나는 일(mattering)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김보라는 3년 동안 난임 시술을 받으며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가고, 배아의 상태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특수한 의료환경에 놓인 몸을 비판적으로 톺아본다. 실패를 거듭한 여성의 몸은 구토와 어지럼증 같은 약물의 부작용도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환대받지 못한 대상이다. 실제 반복적인 시술로 인해 누적된 무기력과 상처를 복기하는 안무가는 자신의 경험을 길어 올려 작품으로 탄생시켰다. 전략적으로 취약한 몸을 전면에 내세우며, 몸에서 일어난 일을 낱낱이 들춰 보겠다는 안무가의 의도가 작품에 잘 투영되었다.

그럼에도 작품을 보면서 맥을 잡지 못하는 부분은 프로그램 북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공연 이후 글을 찬찬히 읽으며 오히려 역으로 놓쳤던 여러 장면의 의미를 짚어보게 되었다. 기록된 글은 거의 소논문같이 각주와 참고문헌을 인용하며 전문적인 의료 용어로 설명한다. 더불어 시술 일지 형식으로 김보라의 상황과 감정이 선명하게 담겨있다. 그리고 김보라는 12번의 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겪은 몸 상태를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2024년 2월에서 6월까지 출현진과 리서치 과정을 거치며 함께 논의한 질문들과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협업한 드라마투르그(윤민화)와 사운드디자이너(장재호)의 고민과 방향성도 프로그램북에 공유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익숙하지 않은 낯선 현상이나 개념과 감각의 영역을 다루는 컨템퍼러리 춤일수록 관객은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많은 독해 불가능한 내용을 나열해 놓는 뻔한 프로그램 북과는 달리 성의 있게 기록된 글로 인해 작품과 안무가의 의도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몸을 쓰고 몸으로 감각하고 사유하는 무용이나 임신 성패의 경계선에 선 여성이 겪는 고된 몸의 서사나 신체 담론으로는 다뤄지지 않았다. 아니 미처 보듬지 못했던 영역인 것 같다. 더불어 생명을 연장하는 전도유망한 의료사업에는 이목이 쏠리나 의학계에서 행해지는 의료 기술의 반인간적인 처치에는 침묵해야 하는 사회 가장자리 현실을 안무가의 창작물을 통해 생각하게 한다. “임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는 제 몸이 도구화되었다고 느꼈어요”라는 김보라의 고백에는 자발적인 시술을 선택했으나 그 과정에서 특히 실패했을 경우 직면하게 되는 복잡한 심경이 담겨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의료 기술 도구들, 약물들, 의사와 같은 행위자들에 의해 통제받는 몸 그리고 그 몸을 이루고 있는 물질들의 행위를 춤으로 엮어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시술 과정에서 여성의 몸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배회하는 대상이고 배제된 존재였음을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김보라의 작업은 그간 여러 작품에서 동시대 철학적 담론을 내세우며 선도적인 실험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녀의 대표작인 〈소무〉에서도 여성 몸에 대한 탐구와 예민한 신체 감각을 신선하게 조명했다. 이후 〈꼬리 언어학〉, 〈점〉, 〈무악〉 등에서도 동시대 미학적 담론을 신체감각과 접목하는데 누구보다 선도적이었다. 물론 의미 있는 도전이고 성과도 있었으나 때로는 춤과 담론의 부조화로 감응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 신작은 김보라의 이전 작업에 비춰보면 특별히 파격적이거나 도발적이진 않다. 2000년대 초기 벨기에 안무가 얀 파브르가 이미 무대에서 침과 땀과 체액을 쏟아내었던 작업도 이미 철지난 실험이지 않은가. 신작을 통해 김보라는 전작에서 보여온 개념과 실험성보다는 취약한 몸의 속성과 사적 발화에 주력한 안무에 중점을 두었다. 자신이 경험한 몸의 궤적을 짚어 진보된 기술 환경 아래 가려진 취약한 몸의 양태를 펼쳐 보인 것이다.

무엇보다 의미 있는 건 이번 작품이 물질적 몸에 대한 담론을 실천하면서도 사회적인 시사점과 인간적인 울림이 있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내보이는 용기로 작품은 공허한 구호가 아닌 한 여성 몸 존재성에 대한 깊은 숙고와 몸부림으로 다가왔다. 아픔이 만연했던 자신의 시간을 성찰하며 고통의 감각을 질료로 승화했다. 우리는 다양한 삶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통해 우리는 소외되었던 여성 몸의 세계를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용도성을 잃은 강등된 난임 여성으로 생물학적 잣대로 재단 받는 대상이 아니라 취약한 있는 그대로 ‘몸의 존엄’이 무엇일지 안무가는 질문을 던졌다. 전력을 다하는 예술가의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보다 넓고 깊게 그리고 다양하게 보게 된다.



본 비평문은 「2025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 주관측 제공 비평문으로서 춤웹진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 -편집자

 

2025. 12.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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