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Karl Georg Büchner, 1813~37)는 영웅적 서사와 정제된 문어를 추구했던 당시 독일 문단의 성향에서 벗어나 사회적 약자, 빈곤층, 혁명, 권력 구조 등을 다루면서 정치적이고 비판적인 색채를 과감하게 드러내는가 하면 짧고 단편적인 장면 구성 같은 파격적인 형식으로 현대극의 선구자로 일컬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획을 그은 과업이 단 24년(정확히는 23년 4개월)을 살다 간 작가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후대인의 칭송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이러한 게오르크 뷔히너의 탄생 212주년을 기념하여, 아트커뮤니티 아비투스는 그의 대표작 「보이체크」를 현대무용극으로 재구성하여 11월 14일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2시 30분과 7시 두 차례에 걸쳐 〈관대한 현대무용_보이첵〉이란 제목으로 선보였다.
「보이체크(Woyzeck)」는 게오르크 뷔히너가 1836년 집필하기 시작해 1837년 장티푸스로 사망하면서 미완성 상태로 남겨진 희곡이다. 자본주의 도입 초기에 사회 불평등과 인간성 상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영웅적 서사를 주로 다루었던 당시의 추세와는 다른 관점으로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한 최초의 희곡 중 하나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인물의 내적 갈등을 강렬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표현주의 연극의 시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19세기 초 독일의 현실을 배경으로, 가난한 하급 군인 보이첵이 사회의 억압 속에서 파멸해가는 과정을 그린다. 실제로 있었던 한 하급 군인의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잔혹한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무너져내릴 수 있는지를 고찰한다. 하급 군인 보이첵은 가난에 허덕이다 자신을 극한의 실험 대상으로 내던지고 연인 마리와의 관계도 균열을 보인다. 정신적인 붕괴 속에서 군악대장과 바람을 저지른 마리를 칼로 찌른 후 자신도 물에 빠지는 결말로 치 닿는 단편 소설이다. 그동안 연극으로는 빈번하게 무대화(化)되었으나 무용 장르에서는 잘 채택하지 않은 소재였는데, 아비투스가 원작의 주요 내용과 주제 의식을 현대무용극으로 실제화하였다. 아비투스의 〈보이첵〉은 2011년 초연한 작품으로 올해 10월 31일 자유소극장에서 리;바운드 축제의 일한으로 재연되었고 2주만인 11월 14일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작품성을 한층 끌어올려 무대화하였다. 이번 공연의 제목 앞에 ‘관대한 현대무용’이 붙은 이유는 ‘관객과의 대화로 이어지는 유쾌한 현대무용’이라는 뜻을 담은 기획의 일한이기 때문이다.
보이첵과 마리의 관계를 드러내는 첫 장면은, 그(선종락)의 발등 위에 그녀(김서영)가 발을 얹어 포옹하듯이 춤을 추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뚜렷하게 묘사된 그들의 친밀한 관계는 여섯 명의 남녀무용수로 이루어진 군무의 등장과 함께 음울한 분위기로 점철된다. 삭막한 만월 영상을 배경으로, 경직되고 압제적인 느낌의 조직적인 군무가 강한 인상을 남긴다. 바로 그때, 호주의 록밴드 ‘버진 블랙(Virgin Black)’의 강렬한 사운드가 격양된 뉘앙스까지 돋운다. 무용수들은 구성적 틀에서 각자 움직이기도 하며 하나의 커다란 조형적 구조를 이루기도 한다. 그들은 손에 든 촛불을 무대 왼쪽 구석에 모아 둔다. 여섯 개의 촛불은 무대가 화려하고 현란하게 펼쳐질 때는 있는지조차 모르지만 어둡게 가라앉을 때면 뚜렷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전형적인 나쁜 남자 스타일의 군악대장(최원준)은 뺀질거리며 마리를 바라보고, 마리 역시 붉은 란제리풍 드레스를 입고 유혹하는 듯한 자세로 그를 대한다. 둘의 듀엣은 서로 몸을 엉켜 구르면서 본격화된다. 이내 욕정과 정념을 은유하는 듯한 움직임이 끈적거리고, 격양되고, 폭력적일 정도로까지 나아간다. 헤비메탈 음악에다가 온통 붉게 물 들은 영상으로 인해 둘의 비도덕적인 행위가 더욱 선명하게 각인된다. 군악대장은 마리에게 반짝이는 귀걸이를 쥐여 주고 간다. 남녀, 여여 커플들이 등장하여 끈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마리는 자신의 그릇된 일탈을 괴로워하다가 현실을 직시하는 등 복잡한 감정을 표현적인 신체 움직임으로 묘사한다. 이윽고, 다시 군무가 합세하여 마리의 감정을 증폭하여 강조한다. 괴로운 감정은 소리 없는 절규와도 같은 몸짓으로 새겨진다. 무대 왼쪽 한 편에서 빛나는 여러 개의 촛불이 다시 한번 새겨진다.
초록 가운 차림에 날카로운 인상의 의사(도민호)가 등장하여 어리숙해 보이는 보이첵을 인간 실험체로 마구 다룬다. 보이첵 역의 선종락은 의사에 휘돌리고 뒤집히거나 머리로 물구나무를 서는 등의 몸짓을 통해 실험의 대상으로서의 적합성을 관찰 및 검사당한다. 현대무용뿐 아니라 브레이크댄스나 아크로바틱을 넘나들면서도, 단순히 기술적인 과시가 아닌 그 상황에 대한 표현과 버무려진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예술적 순도가 높아 보인다. 선종락의 다각적인 역량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강압적인 중대장(이영훈과)의 관계 역시 보이첵에게는 엄청난 압박으로 다가온다. 이때 제시되는 의자는 자리, 지위, 권력을 상징하는 기재로 작용하리라 본다. 구조적인 무기력함에서 영혼이 병들어가는 보이첵에게 군무가 코러스처럼 “보이첵, 보이첵, 보이첵”이라고 속삭이듯 외친다. 블랙박스형 공연장의 객석과 무대를 넘나들면서 움직이는 군무는 그 장면의 부조리를 강조하듯 끊임없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인간의 정체성이나 존엄성에 대한 최후의 보루 같은 외침이다. 이어지는 군악대장과의 결투 역시 보이첵의 패배로 돌아가면서 항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철저하게 비참해진 그에게 주어진 것은 수술대였다. 갖가지 수술 도구로 분한 무용수들과 춤을 추면서 하나씩 획득한 의사는 보이첵을 개로 만드는 실험을 단행한다. 원래 연기자인 도민호가 맡은 의사는 자신이 환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진다는 점을 권력화하여 약자를 압제하는 분위기를 짙게 조성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자기 몸을 실험체로 내몰 수밖에 없었으나 긴장, 불안, 고통 등 가장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 역시 보이첵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이첵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신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마리와의 마지막 장면은 보이첵의 사랑, 증오, 좌절, 절망 그리고 광기가 한데 뒤섞인 복잡미묘한 감정 표현 속에서 결국 마리를 안고 목을 찌르는 행태로까지 한 번에 쭉 연결된다. 군무가 가세하여 그들의 핏빛 사랑을 처절하게 표현한다. 마리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고 저주하고 또 사랑하는 보이첵의 감정이 관객으로 전이된다. 그때 등장한 군무는 무대 왼쪽에 놓아둔 촛불을 하나씩 잡고는 숨을 거둔 마리를 끌어안고 망연자실하는 보이첵을 둘러싼다. 촛불이 모두 꺼지면서 마리의 생명이, 인간의 존엄이, 사회의 양심이 꺼짐을 상징한다. 동시에 작품도 종결된다.
이러한 아트커뮤니티 아비투스의 〈관대한 현대무용_보이첵〉은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이체크」가 쓰인 지 188년이 지난 이 시대에 현대무용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재구성된 부분들이 있다. 우선, 기독교적 윤리에 관한 죄책감과 더불어 이상과 규범이 인간을 어떠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지를 포괄적으로 그려내고자 했다. 또한,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의 괴롭힘을 부각하려고 했다. 의사라는 인물을 통해서는 지식 권력의 문제점들을 파헤치고자 했다. 사랑함에도 현실적인 무게로 그릇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암울한 상황에 대해서는 마리라는 인물을 통해 그려낸다. 마지막으로, 국악대장이 보이첵을 이기는 결말을 통해 정의가 상실된 시대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다.
11월 14일 공연에서는 가장 두드러진 요소는 캐릭터를 맡은 무용수들의 열연이다. 보이첵 선종락, 마리 김서영, 중대장 이영훈, 악대장 최원준, 의사 도민호는 각 인물의 성격과 심리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상관의 강압적인 명령과 모욕이라든가 의사의 비인간적인 실험 과정으로 인해 점점 인간의 존엄을 잃어가는 보이첵 선종락의 움직임 표현은 상당히 짙게 표현된다. 사랑하는 연인 마리의 배신을 알게 되면서 그의 내면 갈등이 절정에 오른 독무에서는 신체 이곳저곳에서 힘줄이 도드라질 정도다. 사랑, 증오, 좌절, 광기가 뒤섞인 심리 상태 속에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는 그는 개인의 도덕을 넘어 사회 계급과 권력 앞에서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까지 짓밟힐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가 던지고자 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실존주의적인 물음까지 새겨진다.
마리 김서영은 세상의 풍파를 맞으면서 이상과 현실, 사랑과 물질, 양심과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며 갈등해야 했던 한 여인의 절규를 온몸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마리는 단순히 불륜을 저지른 여자로서가 아니라 19세기 전반기에 가부장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탈출구가 거의 없었던 하층민 여성의 심리를 깔고 있다. 중대장 이영훈, 악대장 최원준, 의사 도민호는 서로 다른 권력의 모습으로 보이첵을 압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정신적 붕괴로 이끈다. 각각 상류계급의 위선, 남성적 욕망과 폭력성, 지성 권력의 냉혹함 등을 상징하는 3인 3색의 악인이 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작품의 전개를 좀 더 입체적으로 조성하였다. 궁극적으로는 보이첵으로 대변되는 소시민을 억압하는 사회적 구조를 예리하게 찌르는 것이다.
작품에서 주목할 또 다른 역할로 군무를 꼽을 수 있다. 후옥걸, 임송하, 최혜원, 김승희, 문가령, 최새봄으로 이루어진 군무는 장면의 분위기나 뉘앙스를 짙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때론 전개의 상황을 극적으로 돋우고, 때론 두 인물의 관계적 갈등을 증폭하고, 때론 정서적 붕괴를 효과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극의 분위기를 더하고 상황을 전달하며 작가나 관객의 생각을 대변하는 등의 역할을 하는 코러스와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마사 그레이엄의 〈밤의 여행〉에서 전개상의 복선, 긴장 고조, 마침내 드러남 등을 더할 나위 없이 표현한 코러스로서 군무의 역할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장소적인 측면에서도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의 경우 블랙박스형 소극장이다 보니 가까운 거리에서 등장인물의 춤과 연기와 제스처를 감상할 수 있었으며, 따라서 세부 묘사를 좀 더 면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군무를 중심으로 객석 뒤나 옆으로부터 등·퇴장을 하기도 하면서 관객의 좀 더 작품 가까이에 끌어들이려고 노력하였으며 이는 주효하였다.
제작진으로 총감독 및 안무 장구보와 부감독 김유미를 필두로 무대 이호준, 조명 박상현, 음향 이현민, 음악 신계화·칼라스뮤직, 영상 임상일·최주용·김현준·김준호·픽스원, 의상 윤관디자인 그리고 해설 및 대본 차성수 역시 각 영역에서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전문성을 발취함으로써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엇보다도, 제작진과 출연진 대부분이 지역에서 출생, 재학, 소재했거나 3년 이상 활동한 이들로 구성되어 진정한 의미의 지역 예술단체로서의 활약이었다는 점에서도 순도 높은 성취로 여겨지는 바다.
아트커뮤니티 아비투스는 지역 출신 무용수들로 구성하여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문예술단체다. 2000년 구보댄스컴퍼니로 창단한 후 202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매해 새로운 창작 작품을 발표하여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확보하고 있으며, 공연 활동 이외에도 예술교육과 문화서비스 측면에서도 지역과 소통하고 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오면서 부평아트센터 상주단체, 지역형 예비사회적기업 지정,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 우수 전문예술법인단체 인증, 인천아트마켓 브랜드 창출, (사)인천아트마켓 조직 설립, 지역대표예술단체 선정 등으로 명실공히 인천을 대표할 만한 현대무용단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사반세기 이상 아비투스를 이끌어온 현대무용가 장구보는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와 청운대학교 연구교수를 비롯하여 안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 인천중구 꿈의무용단 무용감독을 겸직할 만한 왕성한 대외 활동상을 보임에도 불구하고 예술단체의 본분인 창작과 실연에 있어서 퀄리티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아트커뮤니티 아비투스의 열과 성이 느껴지는 레퍼토리 〈관대한 현대무용_보이첵〉은 컨템포러리댄스가 만연한 시기에 현대무용적인 성향의 무용극이 일반 관객에게 차별화된 감흥을 줄 수 있음을 확인시키는 작품이며 특히 지역 현대무용으로서는 하나의 대표 사례로 거론될 수 있을 만하다.
본 비평문은 「2025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 주관측 제공 비평문으로서 춤웹진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 -편집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