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상무용단 〈청명〉
김주희_댄스&미디어연구소

「지역 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 들여다보기

비상무용단의 〈청명〉이 8월 14일과 15일 나주시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되었다. 이 공연은 「2025년 지역 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다. 「2025년 지역 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역 전문예술단체의 안정적 활동을 위해 194억 원을 투입한 정책 사업이다. 지원 금액이 적지 않은 만큼 65개 지역의 122개 예술단체가 공모하였고, 32개 단체가 선정되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전라·제주권 9개, 경상권 8개, 충청권 7개, 경기·인천권 5개, 강원권 3개가 선정되었으며, 분야별로는 클래식 음악 8개, 연극 11개, 전통예술 9개, 무용 4개 단체가 수혜를 입게 되었다.

사업 목적 자체가 지방 공연예술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예술인들의 기회를 확대하여 공연예술 생태계의 균형적 발전을 이루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어 함께 제시한 몇 가지 우대 사항이 눈에 띈다. 그 조건을 보면 ‘서울 단체의 지역 유치’, ‘지역이 가진 인물 이야기, 명물 등을 소재로 창·제작하는 경우’, ‘지자체가 단체에 별도로 공연장, 공연 연습장 등 현물 지원할 경우’, ‘2024년 지역 대표예술단체 선정 단체’, ‘인구 감소 지역에 위치한 공연 단체일 경우’ 각 5점의 추가 점수를 받는다. 그런 점에서 이 공연이 나주의 삼색유산놀이와 앙암바위 전설을 모티브로 내세운 지점이 수긍되었다.

지역 고유의 정체성과 문화자원을 공연예술로 조명하게 한다는 이 사업의 취지는 이해된다. 하지만 정부가 창작의 주제를 범주화한다는 것은 앞으로 이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있어 고려돼야 할 부분이다. ‘예술인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 보장’은 문화 정책과 예술인들의 권리를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한다. 어떤 작품을 제작할 것인지는 오롯이 예술가의 자율 영역임에도, 치열한 선정 과정 안에서 추가 점수 1점이라도 아쉬운 입장에 놓인 대상자들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역 예술은 홍보 안내판이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지역 예술 콘텐츠 발굴 지원 사업은 다양한 형태로 이뤄져 왔다. 그때마다 간과하고 있는 점은 지역 스테레오타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인이 제약 없이 받은 영감을 통해 제작된 창작 작품이 충분히 그 지역의 대표 예술 콘텐츠로 발전할 수 있다.

이 사업이 3년째 시행되고 있는 만큼, 지속 가능한 지원사업으로 발전되기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의 위계를 지니고 있지는 않은지, 단순히 예술을 관광 홍보용으로 소비하는 것은 아닌지 두루 살필 시기가 되었다고 본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작년 사업에서 보완된 부분으로 비평과 같은 기록의 단계를 연계시킨 것이다. 단순한 비평 매칭 외에도 심층적인 후속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과정을 의무화하고, 지역 예술이 확장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나주의 하늘을 만나다

나주의 첫인상은 ‘하늘이 아름답다’였다. 맑은 하늘은 서울에서도 많이 봤지만 나주는 그 맑음의 수준이 달랐다. 청청한 하늘에 하얗고 하얀 구름이 이렇게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단 말인가? 고결한 천공과 장쾌한 기세를 지닌 나주 땅에 오니 절로 흥이 났다.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을 품은 유려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곳, 구시가와 신시가가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는 도시였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공연된 비상무용단의 신작 〈청명〉은 ‘나주’ 그 자체를 무대 위에 올린 작품이었다. ‘청명(淸明)’은 ‘맑고 밝음’을 뜻하는데, 나주에서 이 작품을 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 제목이 추상적으로 다가왔을 것 같다. 작품의 제목에 대해 쓰다 보니, 옆자리에 앉으신 여자분이 생각난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제목이 〈청명〉보다는 〈월광(月光)〉이 더 어울린다”는 말을 건네셨다. 그러고 보니 달을 상징화한 듯한 조형 장치도 그렇고 달빛 아래에서 추는 주인공들의 듀엣도 달이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달에서 비치는 빛’의 의미를 지닌 ‘월광’도 제법 어울리는 제목 같아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월광〉은 작품 스토리와 맞닿아 있다면, 〈청명〉은 나주를 담아내고 있는 제목 같았다. 제목은 그 작품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텍스트이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작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만든 안무자의 영역이다. 청명이든 월광이든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나주의 하늘과 닿아 있다는 것이다.


나주의 〈지젤〉, 아랑사와 아비사의 사랑 이야기

발레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지젤(Giselle)〉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다. 어린 시절 보던 만화부터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트 경기 프로그램까지 지젤은 다양한 문화예술 안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초연 당시 〈지젤〉은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이 모여 만든 한 편의 종합예술이었다. 독일의 전설을 수집한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의 글을 보고 영감을 받은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의 기획 아래 생 조르지(Saint-Georges)의 각색, 장 코랄리(Jean Coralli)와 쥘 페로(Jules Perrot)의 안무, 아돌프 아당(Adolphe Adam)의 음악, 샤를 시세리(Charles Cicéri)가 무대 디자인을 맡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대작이 탄생할 수 있었다.

1841년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이래로 지금까지 큰 사랑을 받고 발레의 상징이 된 이 작품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골 마을의 소녀 지젤과 귀족 신분을 숨긴 청년 알브레히트의 사랑, 그리고 이들의 사랑을 질투한 동네 청년 힐라리온. 힐라리온이 알브레히트가 귀족이며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충격과 절망에 빠진 지젤이 죽어 윌리(Wili)가 된다. 지젤의 무덤 앞에 나타난 알브레히트를 다른 윌리들이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지젤의 희생으로 그를 지켜낸다.

비상무용단의 〈청명〉도 앙암바위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 이 시놉시스를 읽자마자 ‘나주의 지젤’이라고 생각했다. 앙암바위는 회진에서 영산강을 따라 영산포 쪽으로 올라오다 보면 깎아지른 듯이 있는 바위 절벽이다(나주문화관광 사이트). 주변 경관이 참으로 아름답지만, 강물이 소용돌이 치는 바람에 영산강을 다니던 배들이 자주 침몰하게 되었고 옛사람들은 바위 밑에 용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유려한 풍경 속에 많은 사연들이 쌓인 만큼, 삼국시대부터 전해져 온 앙암바위 전설로 아랑사와 아비사의 사랑 이야기가 있다. 이들의 사랑을 질투한 마을 청년들이 아랑사를 앙암바위 아래로 밀어 버리고, 죽은 아랑사의 넋이 구렁이가 되어 아비사에게 나타나 다시 사랑을 나눈다. 이를 알게 된 마을 청년들은 다시 이 연인을 바위 밑으로 떨어뜨리고 마을 청년들이 하나씩 죽게 되는 재앙이 닥친다. 마을 사람들은 아랑사와 아비사의 혼을 달래주는 씻김굿 하늘에 올려 마을의 평화를 되찾는다.

이 두 이야기는 인간의 본질을 담지하는 전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띠고 있다. 지젤과 알브레히트 사랑/아랑사와 아비사의 사랑, 힐라리온의 질투/마을 청년들의 질투, 지젤의 죽음/아랑사의 죽음, 윌리가 된 영혼/구렁이가 된 영혼, 고난을 극복하는 초월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닮아 보이지만 평화를 찾는 과정에서 구분된다. 〈지젤〉은 개인의 희생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지만, 앙암바위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억울한 연인을 위로하는 공동체 의식으로 평화를 되찾는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서양 문화권의 개인주의와 ‘우리’라는 연대와 화합을 핵심 가치로 이루는 한국의 정서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아무리 현대 사회가 개인주의로 가다 못해 핵개인화 시대로 변했다지만, 사회적 집단이 갖고 있는 순기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넘어 모두를 아우르는 아랑사와 아비사의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의미 있게 전달된다. 〈지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버전의 작품이 공연되고 있듯이 아랑사와 아비사의 사랑 이야기도 시대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조명될 수 있으며, 지역의 전통과 현대의 감각을 잇는 무대로 확장할 수 있는 내러티브의 힘을 갖고 있다.

비상무용단의 〈청명〉은 이러한 특징을 놓치지 않고 과감하게 무대 위에서 풀어내었다. 다양한 춤 장르(현대무용, 한국무용, 스트릿댄스)를 조화롭게 묶어 화합과 치유의 장으로 무대를 장식하였고, 이 흥겨운 춤판에 관객도 기꺼이 하나가 되었다. 무엇보다 무용이라는 장르가 대중들에게 다소 모호하게 다가올 수 있는데, 〈청명〉에서 보여준 나주의 전설이 갖는 서사와 무용수들의 응축된 표현으로 전달되는 감흥은 지역민들에게 경계 없이 춤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다만, 나주시문화예술회관의 무대 크기가 이 흥겨운 춤판을 담아내기에는 협소하였다. 춤과 관객을 매개하는 방법은 다양할수록 좋다. 비상무용단이 선택한 객석 출입구에서 풍물패가 등장하여 무대로 진입하는 연출 외에도 이 극장의 구조를 면밀하게 고려한 창의적인 공간 활용이 필요하다. 무용수들의 인원보다 무대 크기가 작아 상수에서 하수까지 일렬로 서는 대형은 무대 스퀘어를 벗어나 윙에 무용수가 겹쳐 있었다. 나주시문화예술회관의 시설이 노후 하여 리허설 진행을 하는데 있어서도 어려움이 발생했다고 하니, 나주 예술가들의 완성도 있는 작품 활동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나주시의 적극적인 보수와 시설 보완이 시급해 보였다.

공연이 끝나고 출입문을 나서는데, 흥이 오른 어르신들이 “순대국 집으로 가자”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저마다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워하였다. 사람 냄새 나는 낭만 있는 이 공연은 지역민들의 한마당 축제이자 즐거운 사랑채였다. 무용 공연을 본다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이렇게 우리 삶 속에서 크고 작은 공연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경계 없이 춤에 노출되는 반복적인 경험이 시민들에게 필요하다. 분절된 사회 속에서 〈청명〉은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지역 커뮤니티의 연결고리이자 나주인들의 정체성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자산으로 뿌리내리는 작품이었다.


서정적 움직임과 힘 있는 군무의 조화

작품 시작에 앞서 총연출을 맡은 박종임 대표가 무대로 올라와 작품에 대해 간단한 해설을 해주었는데, 지역 시민이 관객의 대다수였던 점을 고려해 볼 때 현명한 운영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대표의 낭창한 목소리가 정겹고 친근하게 전달되었고, 순발력 있는 말솜씨 또한 돋보였다. 앞으로도 이 공연이 재공연되거나 재창작된다면 보다 업그레이드된 해설 가이드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객석의 분위기나 관객들의 태도를 볼 때, ‘관객과의 대화’를 추가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해설과 더불어 무용 공연이 익숙하지 않은 일반 관객들에게 모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것이 팸플릿이다. 무용에서 제공하는 팸플릿의 글이 지나치게 인색하여 추리를 해야 하는 경우나 안무자가 지나치게 감정에 매몰되어 과도한 은유와 상징적인 표현으로 작성되는 경우 관객들은 춤을 난해한 예술로 받아들이고 더 이상 공연장을 찾지 않게 된다. 예술이라는 것이 정답은 없지만 기초적인 정보 제공은 필요하며, 관람객에 따라서는 자세한 설명과 해석으로 이해를 도와주는 것 또한 중요하다. 〈청명〉의 팸플릿은 작품의 의도와 창작의 모티브를 함께 소개하고, 창작자가 전하고자 하는 예술적 메시지와 더불어 각 막의 내용과 현대적인 재해석 부분을 친절하게 작성하였다.

무용수들의 전체적인 연습은 잘 되어 있었고, 특히 아비사 역을 맡은 여성 무용수의 움직임이 유연하여 서정적인 표현력을 무리 없이 소화하였다. 아랑사 역을 맡은 남성 무용수도 훈련이 잘 되어 있었지만 상체의 유연성이 보완된다면 보다 완성도 있는 듀엣이 될 것 같았다. 공연에 참여한 대다수의 무용단원은 동신대학교 무용학과 재학생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였다. 일체된 군무의 호흡에서 에너지를 과감하게 전달하였고, 공연의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큰 몫을 해주었다.

아쉬운 부분은 현대무용의 움직임을 구사하는 데 있어 다채로운 동작 개발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안무자의 작품 모티브가 된 나주의 문화유산인 ‘삼색유산놀이’를 되새기는 것에서 더 나아가 관련된 연구자료를 찾아 분석하고 현대적 움직임으로 발전시킨 부분을 명료하게 드러내야 한다. 삼색유산놀이가 신분과 나이에 상관없이 어우러지는 풍류와 태평성대를 꿈꿨던 문화였다면, 그 안에서 유추할 수 있는 특징적인 동작을 바탕으로 창작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춤을 장르별로 나누어 구성하기보다는 장르 간 움직임의 경계를 희석시키는 시도도 해 볼 만하다. 특히 왁킹(Waacking)을 하는 무용수들의 경우 작품의 분위기에 녹아들기보다는 단독적인 공연처럼 보였다. 이미 동시대 무용예술 현장에서는 스트릿댄스를 컨템퍼러리 댄스 작품으로 진화시키는 작업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스트릿댄스 고유의 춤 스타일에서 벗어나 다양한 춤 예술과 만나 유기적으로 발전되는 모습이 있을 때 시너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크로스오버가 무난하게 잘 이루어 졌다.


춤을 통해 빛나는 나주로 거듭나길

이 작품의 관람을 선택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나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현대무용단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와서 보니 박종임 대표가 재직하는 동신대학교와 지역 무용학원이 깊은 유대를 갖고 협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용수 대부분이 동신대학교 졸업생 혹은 재학생으로 구성된 듯 보였고, 대학 내의 협조가 긴밀해 보였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무용학과가 힘든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방 무용학과의 운영은 더욱 어렵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동신대학교 무용학과의 활동은 무용단 활동으로 인해 더욱 활기 있어 보였다. 앙암바위 전설에 대한 작품 아이디어는 윤병태 나주시장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동신대학교 관계자들과 나주의 인사들이 공연 양일을 연속 관람하였다는 사실에서 이 지역이 얼마나 무용에 큰 관심과 기대를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지역사회의 지지는 나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비상무용단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다. 지역마다 예술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홍보에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직접 공연 현장에서 호흡하고 같은 눈높이에서 동행해야 그 도시에 걸맞은 예술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비상무용단이 현대무용 단체라는 것도 나주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고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혀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20세기 초 활동한 로이 풀러(Louise Fuller)는 긴 치마와 전기 조명을 이용한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하여 ‘빛의 마술사’로 불렸다. 전기 조명을 활용한 기술은 당대 최고의 과학기술과 춤이 만나 무용을 한 단계 발전시킨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낯선 이방인의 시선에서 나주는 빛가람을 비롯해 한빛, 빛누리 같이 ‘빛’이 들어간 명칭이 많은 것이 신기했다. ‘빛가람’을 찾아보니 ‘빛을 내며 흐르는 강’이라는 뜻을 갖는 순우리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한국전력공사라는 한국의 대표 공기업이 터를 잡은 곳에, 전기 빛을 활용하여 새로운 현대무용을 선사했던 풀러의 정신을 되살려 이곳 나주가 현대무용의 대표 도시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청명〉은 작품의 주제와 구성, 운영에 있어 지역 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에 선정될 만한 가치와 역량을 갖고 있는 작품이었다. 지역 대표예술단체 지원사업의 사업 운영을 무리 없이 이행되었으며 지역 간의 문화예술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일조하였을 뿐 아니라 지역민들의 문화예술을 향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또한 지역의 무용예술을 확장하고 지역민과 춤을 경험할 수 있는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상무용단의 앞으로의 활동이 주목되는 바이다.



본 비평문은 「2025 지역대표 예술단체 지원사업」 주관측 제공 비평문으로서 춤웹진의 편집 방향과 무관함. -편집자

2025. 11.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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