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연구

동시대 춤의 수용과 창작방식1
숏폼의 춤, 규범과 권력 사이의 자율성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을 중심으로
김현희_무용학자

동시대 춤의 무대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스마트폰 화면, 디지털 아카이브, 그리고 초연결된 미디어 환경 속에서 소비되고 확장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댄스&미디어연구소와 〈춤웹진〉이 공동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춤이 마주한 예술적, 사회적, 제도적 쟁점들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춤은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예술의 본질과 창작 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김현희 무용학자의 글 '숏폼의 춤, 규범과 권력 사이의 자율성'을 통해 동시대 춤의 창작과 수용 방식에 미치는 영향과 그 미학적 의미를 탐색합니다. 팬데믹과 포스트 팬데믹을 거치며 숏폼 공간에서 대중이 신체의 상호의존성과 취약성을 바탕으로 안무를 인용·변주해 온 양상을 살피고, 알고리즘과 타자의 선호라는 디지털 권력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율성의 공간을 개척해 나가는 춤추는 몸의 역동성을 조명합니다. - 편집자 주



춤추는 대중을 바라보기

기존의 무용학 문법에서 대중의 존재는 주로 '대중화'와 '관객 활성화'의 논의에서 거론되어 왔다. 때문에 '대중'은 춤추는 몸을 바라보는 존재로 혹은 예비 관객으로 위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춤을 소비하는 누군가로서가 아닌 이들에게 추어지는 춤을 바라본다면, 춤추는 몸의 대중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대중춤이라는 장르로 걸러내거나 관객이라는 위치로 고정하지 않고 춤적 현상의 주체로 이들을 바라보는 것이다. 춤을 향유하는 주체들의 너른 현상은 보다 많은 몸을 시야에 들이므로 결국 '우리'에 대한 이해에 가닿을 것이다.

이 연구는 광장에서 춤을 추는 대중에 주목하며 시작되었다. 아마 많은 이들의 뇌리에도 2024년 탄핵 시위에서 반짝이는 응원봉을 들고 춤을 추던 이들의 모습은 선명히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독특한 모습은 국내 언론은 물론 많은 외신들의 주목을 받았다. 마치 콘서트 현장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 정치적 현장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확실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먼저, 8년 사이에 확연히 변화한 시위 문화이다. 2016년의 탄핵 시위는 촛불을 들고 발걸음을 옮기는 상당히 절제된 움직임으로 행해졌기에 그 간극은 사뭇 크다. 다음은 춤추는 대중에 대한 인식이다.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꽤나 오랜 시간 대중의 춤은 일탈의 경로이자 억압해야 할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이다.

진지한 태도로 임해야 했던 정치적 장에 불현듯 나타난 춤추는 대중은 꽤나 낯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문화로 수용되었다. 어쩌면 대중의 '드러내기'는 이미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것이 아닐까? 뒤늦게 대중을 목격했다는 조급한 마음을 내려두고 대중의 춤추는 몸이 모여드는 공간인 숏폼에서 이들의 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춤들을 단순히 유행의 형태로 이해하기 보다는 또 다른 개념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 디지털 공간의 춤을 살아있는 수행으로 보고 그 주체인 대중에게서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이다.


수행하는 젠더에서 연대하는 신체로

정해진 규범을 비틀거나 벗어나는 반복적인 몸의 수행성(performativity)은 대중의 춤을 보다 선명히 바라보도록 한다. 주디스 버틀러에게 젠더란 본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고정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행위하여 생성되는 다소 불안정한 것이다. 즉 타고난 것이라기 보다는 거듭된 수행으로 생성되는 나의 일부이다. 이를 폭넓게 이해하면 '우리'를 규정하는 것들은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닌 지속적인 생성의 과정에 놓인다. 또한 그 과정에서 몸은 반복된 수행에서 스스로를 생성하는 주체가 된다. 물론 몸은 규범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권력관계에 놓여있기에 분명히 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주체는 몸을 통해 그것을 체화하여 다시금 구성해나간다. 몸이 무엇인가를 수행한다는 것은 대체로 제시된 무언가를 인용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유한 몸은 같은 수행을 의도해도 때때로 원본과 어긋나기 마련이다. 때문에 반복되는 수행이란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질 가능성을 지니게 되고 이곳에 전복 가능성도 잠재되어 있다.

하나의 몸이 아닌 집단적인 몸에 대한 수행성은 어떠할까. 하나의 몸이 스스로를 생성하며 수행한다면 여러 몸의 사이에서 주체는 타자에 의해 규정된다. 전쟁과 테러에서 그러하듯 어떤 몸은 타인에 의해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버틀러가 집단의 생존에 대해 고민한 이유도 이것이다. 사라져도 괜찮은 몸이란 없다. 시위 현장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연대하여 드러낸 몸을 통해 반대를 표한다. 타자와의 사이에서 몸은 개인의 영역을 넘어선다. 개인에게서 시작되지만 타인에게 취해지고 때로 조직화되는 수행은 정치적이다.

팬데믹이라는 위기는 몸에 닿는 규범을 강화하고 몸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주었다. 버틀러는 이 시기 메를로-퐁티의 상호 엮임을 검토했다. 나와 타자의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이해하려는 인문학적인 탐색의 결과일 것이다. 그만큼 몸의 침투성이 드러나는 이 시기에 몸은 단독으로 존재하기 어려웠다. 오히려 감염된 몸일수록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주체가 지닌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야만 하는 존재적 취약성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쉽게 감염되어버리는 몸은 우리의 몸이 서로 얼마나 얽혀있는지를 체감시켰다. 몸은 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우리'는 지속적으로 타자를 받아들인다. 팬데믹은 열린 경계로서의 몸을 체감시키고 서로를 생존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도록 했다.

정리하자면 대중은 사회적 규범의 사이에서 스스로를 구성하지만 때로는 어긋나며 전복의 공간을 생성한다. 몸은 타인에게 노출된 주체이며 자족적이기 보다는 상호의존적이다. 생성의 과정에서 완결되지 않은 주체는 취약하지만 수행한다. 이제 팬데믹이란 예측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급부상한 숏폼의 공간으로 시선을 옮겨보려 한다. 주체의 수행이 모여드는 이곳에서 춤추는 대중은 어떻게 스스로를 드러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생성하게 된 걸까. 2020년에서 2024년까지 각 해를 대표하는 숏폼에서 공유된 춤의 사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팬데믹과 포스트 팬데믹이라는 시기적인 분류는 대중의 몸에 부여된 규범에 변화가 생겼다는 의미를 지닌다.




 



팬데믹 시기 숏폼의 춤

2020년 3월 13일 선언된 팬데믹으로 전인류는 특수한 몸적 상황을 체감하게 되었다. 같은 해에 폭발적으로 확장된 숏폼은 이러한 몸에게 어떠한 환경을 제공했을까. 팬데믹에 대한 한국의 3T 전략은 검사와 추적 그리고 격리 치료로 대표되는 철저한 감시와 고립의 방향성을 드러냈다. 그리고 같은 해 틱톡(TikTok)에서 추어지던 댄스 챌린지는 유튜브(YouTube)의 쇼츠(Shorts) 그리고 인스타그램(Instagram)의 릴스(Reels)라는 새로운 무대로 확장해 나갔다. 몸의 침투성에 대한 공포와 위기 상황의 상호의존성이 동시에 활성화되는 가운데 타인과 교류는 간접적이어야만 했고 그것이 가능한 무대는 넓혀졌다.

#아무노래



 

가수 지코(ZICO)의 인스타그램에서 시작되어 곧 플랫폼을 넘나드는 춤 현상이 된 아무노래 챌린지는 '느슨한 안무'를 특성으로 한다. 일상적인 동작이 섞인 춤은 장난스러운 놀이처럼 선보여졌으며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인용의 방식도 제시되었다. 지코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안무를 설명하며 강조한 "제약 없는 방출"은 고립된 몸에게 자유로움의 기회가 되었다. 그가 재인용한 다양한 수행들은 제시된 형식을 벗어난 수행이 허용되는 분위기를 생성했다. 또한 경직된 사회적 분위기에서 유희적인 태도와 느슨한 수행은 개인을 가시화하고 타자와 교류하는 방식이고 '실제로 거리를 두고 있기에' 적절하다. 때문에 숏폼에서 주체는 고립되었지만 고립되지 않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주어진 춤 동작을 자유로이 변주하는 유희적 수행은 강화된 몸적 취약함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거듭난다. 팬데믹이라는 급변하는 상황에 힘입은 대안적 수행이지만 분명 어떠한 사이를 활성화시키고 있는 자율적 수행이다.

#헤이마마



 

엠넷(Mnet)에서 방영된 〈스트릿 우먼 파이터〉는 여성 댄스팀의 경쟁을 그려낸 프로그램이다. 여기에서도 #헤이마마는 2화에서 리더 계급 사이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선보여졌다. 안무를 빼앗으려는 전략적인 실천 속에서 각 팀의 리더들에 의해 수행된 안무는 상당한 스펙터클을 제공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어 다시 요청된 선발전을 거치면서도 안무를 지켜낸 노제의 안무는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췄을 때 제일 멋있는 동작"으로 구성되었다. 이때 안무는 몸의 움직임을 스스로에게 유리한 구조에 위치시키는 권력적 형태가 된다. 또한 이것을 재의미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타자의 수행은 틈새를 만들어 전복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 된다.

이러한 안무는 숏폼을 위해 제시되지 않았지만 대중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다. 권력적이고 힘이 있는 이 안무를 나의 몸으로 춰보고픈 대중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그 정확한 이유를 모르더라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인용은 수행 주체의 진화를 의미한다. 제시하지 않아도 적극적으로 발췌하고 인용하는 능력의 형성이다. 또 한 가지 특이할 점은 '규범적 권력의 성향인 난도 높은 안무'가 인용되는 과정에서도 '뚝딱이'가 관대하게 수용된다는 것이다. 즉, 안무의 규범을 모두 충실히 이행하지 않아도 괜찮은 장소로서 숏폼은 자율적 표현의 장이라는 성격을 유지한다. 느슨한 것에서 규범적이고 권력적 성향의 안무로 변화되어도 이를 실천하는 수행은 느슨할 수 있다. 그리고 관대한 숏폼의 춤에서 그 인용은 보다 적극적인 성향을 지니게 되었다.

#러브다이브




〈아무 노래〉의 성공 이후 많은 가수들이 챌린지를 마케팅의 방식으로 활용했다. 그중에도 2022년을 대표하는 아이브(IVE)는 공식 틱톡 계정을 통해 각 멤버의 영상을 게시했다. 가사에 맞춘 표정과 립싱크까지 꽉 채워진 안무는 화려하게 선보여졌다. "Narcissistic, my god I love it"이라는 가사에서 드러나듯이 안무는 자신에 대한 애정을 표출하도록 유도한다. 주체를 대표하는 얼굴을 전면에 드러내도록 하는 동작은 그 인용을 '아이브 따라 하기'로 소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주체를 드러내도록 한다. 같음을 지향할수록 드러나는 다름은 곧 고유함을 의미하고 나와 타자 사이의 실천은 스스로를 열어내는 수행이 된다. 같은 수행에 자신의 몸을 포함시키며 확장되는 행위가 동시에 주체를 고유하게 드러낸다는 점은 흥미롭다. 같은 원본을 인용하는 다양한 고유한 몸은 수행하면서 타인에 나의 다름을 노출시키며 타인과 함께한다. 결국 스스로를 #러브다이브의 공간에 포괄시키는 수행은 자신의 밖으로 존재를 확장하는 탈존적 수행이다. 다를 수 있지만 여전히 '우리'인 이 공간에서 주체는 수행을 통해 몸의 규범을 사유하고 이를 변주하며 여유로이 마주하게 된다.


포스트 팬데믹 시기 숏폼의 춤

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WHO)는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종료했지만 이것은 지속적인 감시와 대응을 유지하는 관리 상태로의 전환임을 밝혔다. 포스트 팬데믹의 시기를 맞이하여 공식적인 감시의 대상이던 몸은 스스로 제어해야 하는 몸이 되었다. 손 씻기를 생활화하고 접촉에 예민해진 우리는 몸이 지닌 투과성과 취약성을 알고 있다. 타인에게 열려진 몸은 철저한 고립에서 안전하기도 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타자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제 타인과 가까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양한 위험성을 감내해야 하는 긴장된 경험이 되었다. 그럼에도 숏폼의 춤은 여전히 함께 유희적 실천을 지속한다.

#하입보이




뉴진스(NewJeans)의 〈Hype Boy〉는 팬데믹의 종식 시기에 있어 전환기적 춤으로 보다 특별하다. 소녀 같은 동작인 듯하지만 강한 힘이 요구되는 안무는 큰 동선을 지녔다. 청량하고 발랄하고 자유로운 이 춤의 인용에서는 자연히 카메라의 이동이나 동작의 변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수행의 유연함과 그 자율성은 이때엔 이미 주목할 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 그것보단 이러한 춤현상이 오랜 시간 지속되며 밈으로 진화하고 그 인용의 형태가 변화했다는 점이 도드라진다.

'하입보이 밈'은 주로 행선지를 물으면 "뉴진스의 하입보이요."라고 대답하고 춤을 수행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다. 점차 춤의 수행은 필수적이지 않아지며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인다. 눈에 띄는 것은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과 틱톡(TikTok) CEO의 수행이다. 두 영상은 안무가 주체에 의해 수행되지 않는 경우이자 사회적 권력을 지닌 주체의 수행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이러한 인용의 변화에서 춤이 권력을 지닌 한 명의 주체가 아닌 다수가 어우러지는 방식에 남아있다는 점, 그리고 춤이 보다 용이한 발화 형태로 이행된 사례로 의미를 지닌다. 밈이란 인용되어야 그 생명력을 유지한다. 춤보다 발화의 형태가 더 쉬운 수행이라면 대중은 이제 춤을 추지 않는 것일까?

#APT




로제(ROSÉ)의 곡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 때문에 숏폼의 공간에는 보다 다국적의 대중이 존재한다는 것이 주목된다. 로제는 주로 '아파트 게임'을 알리려고 노력했고 곡에 맞추어진 안무 없이 점차 양손을 교차하는 동작만을 제시했다. 이러한 비워진 안무는 보다 다양한 수행 방식을 양산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수행은 어디선가 나타난 곡에 맞추어 짜여진 안무가 지속적으로 인용되는 모습이다. 원본에서 비워진 안무의 공간은 누군가에 의해 정성껏 채워졌다. 이는 비워진 안무의 공간을 자율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드러내 채우는 수행이다. 숏폼의 공간에서는 다른 사용자인 안무자를 태그하고 이를 다시금 내 몸을 통해 인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안무를 만들어낸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지 보다는 높은 가시성과 영향력을 지닌 수행이 더욱 중시되는 곳도 숏폼의 공간이다. 탈중심화되는 이 공간에서 주체는 타자의 선호를 의식하고 알고리즘의 규범을 체감한다. 확보한 가시성과 선호가 곧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는 숏폼의 공간에서 대중은 타자의 규범적 틀과 수행의 자율성 사이에 있다. 그리고 춤은 지속되고 있다.


규범과 권력 그리고 춤추는 자율성

 

“몸은 생성의 양식으로 존재하고 다르게 생성될 가능성과 함께하기에
무수한 방식으로 규범을 차지하고, 넘어서고, 수정하고 현실의 변화에 열려있다.”


 

버틀러의 논의는 숏폼의 수행을 관통한다. 팬데믹의 환경은 몸을 안전하지 않은 경계지점으로 체감시켰다. 이때 숏폼은 안전한 공간에서 고립되지 않을 장소가 되어주며 몸을 확장하는 방식을 제시해 주었다. 여기서 주체는 제시를 인용하며 타인과의 사이에 스스로 위치한다. 나의 몸을 벗어난 확장된 존재로서의 수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타자의 춤을 보고 이것을 인용하는 과정을 기본으로 두는 숏폼의 춤에서 이 상호작용적 실천은 주체의 몸이 지닌 정체성과 문화를 공진화시킨다.

다섯 개의 사례에서 대중은 대체로 느슨한 춤을 수행하는 경향을 보인다. '비워진 안무'는 하나의 유행으로 보이지만 대중에게 선호된 결과이다. 이를 선호하는 숏폼의 춤이 보여온 성향이 자율적 수행능력의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은 속단일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열어내는 몸의 수행으로서 타자와 어우러지는 방식이 주체를 확장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그 수행이 점차 적극적이고 유연해지는 경향 역시 선명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규범과 권력의 사이를 춤추는 수행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춤이라는 유희적 수행의 방식이 지속되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한편 규범적 권력을 덜어내며 수행력을 갈고닦는 숏폼의 장에서 춤은 주체의 자율적 실천이지만 타자적 규범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규범과 권력의 사이를 넘실거리던 수행은 숏폼의 규범인 알고리즘과 타자의 선호라는 권력관계에 다시 놓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몸은 다시금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고 타자적 권력을 체감한다. 때문에 스스로를 타자와 나의 사이에 드러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이해관계를 고려하며 스스로를 조율해야 한다. 춤추는 대중의 몸이 정체되지 않는 이유도 이러한 과정에 있다. 그럼에도 지속되는 춤추는 몸은 끊임없이 자율성의 공간을 가늠하는 주체의 수행이라 말하고자 한다.


* 이 글은 김현희 「숏폼의 춤, 규범과 권력 사이의 자율성-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을 중심으로」 (무용예술학연구 Vol.99, No.2(2025), pp. 1-13.)를 수정 및 보완하였다. https://doi.org/10.16877/kjds.99.2.202506.1

김현희

춤추는 몸을 통해 한국의 대중과 동시대의 문화를 바라보는 연구자.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박사 수료 후 댄스&미디어연구소 이사로 활동하며 한국 사회와 대중의 춤을 잇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2026. 8.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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