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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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6년 5월 12일(화) 13:00~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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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예술가의집 다목적홀(서울 대학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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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회
- 김혜라_<춤웹진> 편집장
발제│ 장지영_국민일보 기자
박경숙_전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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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오후에 있은 국공립 무용단체장 선임 방식에 대한 긴급토론회, 예술가의집,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 ⓒ춤웹진 |
김혜라: 현재 우리 무용계는 주요 국공립 단체의 예술감독 자리가 공석이거나 차기 인선을 앞둔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그동안 누적되어 온 예술감독 임명 방식의 문제를 진단하고, 예술 현장과 행정 시스템 사이의 간극을 줄이는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한국춤비평가협회와 CID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를 이끌고 계신 이종호 선생님의 모두발언으로 토론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종호: 국공립 예술단체장의 선임 방식과 시기에 대한 논의는 오래된 현안입니다. 오늘 토론회는 특정 인사의 적격성 여부를 따지는 정치적 논쟁을 넘어, 무용 분야의 특수성을 살리면서 조직을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실무적 대안을 찾고자 마련되었습니다. 나아가 기존 단체들이 향후 시도해볼 만한 새로운 활동과 사업 방향성까지 폭넓게 제안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동안 무용계는 타 장르에 비해 현안을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가 상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오늘 토론회가 무용계의 담론 형성을 북돋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귀한 시간을 내어 참석해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립니다.
김혜라: 기조발제와 토론을 맡아주신 참석자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기조발제는 장지영 국민일보 선임기자님께서 맡아주시겠습니다. 이어서 지정토론에는 장석류 국립인천대학교 문화대학원 교수님, 김채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님, 그리고 전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이신 박경숙 감독님께서 함께해 주시겠습니다. 현장의 고견을 기대합니다.
한국 국공립무용단 현황
장지영(국민일보 기자): 저는 국민일보에서 공연을 담당하고 있는 장지영 기자입니다. 국공립 예술단체장 선임 문제는 수년 전부터 여러 차례 기사나 칼럼으로 다뤄온 주제이며, 이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게 우리의 의무인 것 같습니다. 이번 자리는 국공립 무용단체장 선임에 대한 것이지만, 사실 국공립극장과 다른 장르의 국공립 예술단체에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안입니다.
- 한국의 국공립 무용단 창단 역사
먼저 한국 국공립 무용단의 현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 국공립 무용단은 1962년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원무용단이 창단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이후 2024년 서울시발레단이 창단되기까지, 국립·도립·시립·군립 무용단을 모두 포함하면 국내 국공립 무용단은 대략 27개에서 30개 정도로 파악됩니다. 숫자가 유동적인 이유는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시즌제인 부산오페라하우스 발레단, 시민 강좌 중심의 종로구립궁중무용단 등을 어디까지 포함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적 근거도 단체별로 달라서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원무용단은 행정규칙을 따르는 반면,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은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을 따르고 지자체 소속 무용단은 각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근거합니다.
- 국공립 무용단의 운영 형태
국공립 무용단의 운영 형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공공극장 또는 공공기관 전속 단체입니다. 국립무용단, 국립국악원무용단, 서울시무용단, 경기도립무용단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국립국악원은 단순한 극장이라기보다 공연, 연구, 교육 기능을 함께 가진 기관이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공공극장 소속 단체와 함께 묶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둘째, 독립 재단법인 형태입니다.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셋째, 지자체 소속 단체로 대전시립무용단은 대전예술의전당에 상주하지만 행정적으로는 별도 운영됩니다. 부산시립무용단은 지자체가 부산문화회관에 위탁한 형태이고, 울산시립무용단과 광주시립발레단은 지자체 사업 소속으로 공공극장에 위임된 구조입니다. 강원도립무용단은 시 소속 예술단에 포함된 형태로 운영됩니다. 이처럼 모두 지자체 소속이지만, 극장과의 관계나 자율성의 정도는 각각 다릅니다. 넷째, 지자체 문화재단 소속 단체입니다. 홍성군립무용단, 종로구립궁중무용단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운영 형태가 다양하게 나뉜 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공예술단체는 단체가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극장이 생긴 경우가 많아, 이후 통합 시도가 있었음에도 무용단 및 예술단 단원들이 공무원 신분을 잃는 것을 우려해 재단법인 편입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극장과 단체가 완전히 통합되지 못한 구조가 유지된 것이며, 문체부 소속기관인 국립극장 역시 사무국 직원들은 대체로 재단법인화를 찬성하지만 산하 예술단 단원들은 신분 변화 문제로 반대하는 편입니다.
- 무용단 운영 형태에 따른 단장ㆍ예술감독 제도
다음은 무용단 운영 형태에 따른 단장과 예술감독 제도입니다. 관행적으로 ‘단장’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무용단이 법인격을 가지고 있을 때만 맞는 호칭이며 지금은 ‘예술감독’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지자체의 경우 전체 예술단의 단장은 지자체 단체장이나 부단체장이 맡고 무용단에는 예술감독을 두는 경우가 많으므로 ‘예술감독’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국립민속국악원과 국립남도국악원의 경우는 조금 특수합니다. 이들 기관은 국악연주단 안에 기악·성악·무용단이 함께 포함되어 있어 전체 예술감독은 주로 소리꾼이나 기악 연주자 출신이 맡고, 무용단에는 별도의 예술감독을 두는 대신 임기제 보직단원을 두어 일종의 상임안무가처럼 활동하도록 운영하고 있습니다.
- 예술감독 임기와 선임 시기
다음으로 예술감독의 임기와 선임 시기를 보겠습니다. 국내 국공립 무용단 예술감독의 임기는 대부분 2~3년이지만, 최근 지자체 무용단에서는 단체장의 임기와 맞추기 위해 기존 임기 종료 후 1년 단위로 단기 연장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국립 단위의 경우, 문체부가 2014년 ‘후임 임명 때까지 임기 연장’ 조항을 정관에 넣도록 했으나, 2025년 3월 ‘문체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만 직무를 수행’하도록 정관 변경을 지시하면서 정권에 따라 운용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국립현대무용단은 후임 미정 상태에서 전임 단장이 임기 종료와 함께 물러난 반면, 국립무용단은 국립극장장 공석으로 공모를 진행하지 못해 임기가 끝난 김종덕 단장이 여전히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국립무용단은 후임자 미결정 시 장관 승인 없이도 1년 내에서 임기를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해외와 달리 국내 국공립 무용단에는 차기 예술감독을 최소 1~3년 전에 미리 선임하여 인수인계 기간을 보장하는 ‘사전 준비 시스템’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 국공립 무용단 예술감독 선임 방식
- ‘국립’무용단 : 문체부장관 직접 임명 또는 임명 승인
다음으로 선임 방식을 보겠습니다. 제가 여기서 ‘국립’이라고 묶은 것은 국립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등 국립 단위 무용단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이들 단체는 모두 문체부 장관이 직접 임명하거나, 적어도 최종 임명 승인권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비공모 방식입니다.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원래 2001년 김대중 정부 시기 문체부는 국립예술단체장 공모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국립발레단의 경우 김긍수 단장, 박인자 단장, 최태지 단장 등이 공모를 통해서였습니다. 다만 최태지 단장 경우 3년 임기를 마친 2011년 별도의 절차 없이 문체부가 연임을 결정했습니다. 2008년 시작된 이명박 정부의 유인촌 장관 시기부터 다시 공모 없는 임명 방식으로 바뀌었고, 2014년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이 이러한 비공모 임명 방식 아래 선임됐습니다.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은 독립 재단법인이기 때문에 이사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해외에서는 보통 이사회가 예술감독을 선임하는 핵심 기구로 작동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사회가 예술감독 임명 과정에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공모 방식으로 운영되는 단체는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원무용단입니다.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이 각각 공모를 진행하고, 최종 후보자에 대해 문체부 장관 승인을 받은 뒤 국립극장장과 국립국악원장이 임명하는 형태입니다. 도립·시립·군립 무용단은 지자체 단체장이 직접 임명하거나 최종 승인하는 구조입니다.
-도ㆍ시ㆍ군립무용단 : 지자체 단체장 직접 임명 또는 임명 승인
최근에는 지방이 오히려 형식적이라도 공모를 거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투명성의 명분은 갖추는 것이죠. 물론 실질적으로 보면 이미 결론이 정해진 상태에서 절차를 밟는 경우도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느껴지는 사례도 있습니다. 다만 일부 지자체 단체들은 나름의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립무용단은 공모 후 도지사 승인을 거쳐 극장(경기아트센터) 대표가 임명하는 구조를 지니며, 광주시립발레단은 발레단과 시가 각각 3명씩 추천해 구성한 청빙위원회가 최종 후보를 정하면 시장이 임명하는 '청빙제'를 도입했습니다. 또한 부산시립무용단은 1차 통과 후보자들이 실제로 단체와 작업을 한 뒤 그 결과물을 평가해 최종 후보를 정하는 '예술감독 선정평가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울산시립무용단도 이와 유사한 방식의 평가 절차를 도입한 바 있습니다
해외 국공립 무용단 예술감독 선임 방식
- 프랑스 파리오페라발레
이제 해외 국공립 무용단 예술감독 선임 방식을 보겠습니다. 해외는 대체로 극장장과 예술감독이 구분된 체제로 운영되는데, 프랑스 파리오페라극장 소속 파리오페라발레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현재 예술감독인 호세 마르티네즈는 2022년 12월에 취임했습니다. 전임자 오렐리 뒤퐁의 6년 임기를 마치고 2022년 7월 말 갑작스러운 사퇴 발표로 선임 절차가 다소 빠듯하게 진행되었으나, 알렉산더 니프 총감독은 즉시 이사회 의장과 프랑스 국립안무센터(CCN) 전·현직 감독 경험을 지닌 무용계 석학들(에투알 출신 안무가 샤를 주드, 안무가 카롤린 칼송, 앙쥴랭 프렐조카주)로 '예술감독 선정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한 달간의 공모와 추천 과정에서 후보자들은 10쪽 분량의 운영 및 비전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는데, 중요한 점은 선정위원회 구성부터 지원 방식, 평가 흐름이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되어 외부에서 확인 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선정위원회는 9월 초 1차 후보자 면접 뒤 최종 후보를 총감독에게 추천했고, 총감독이 최종 결정을 내려 10월 말에 발표했습니다.
-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다음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입니다. 이곳은 국립이라기보다 주립극장 안에 발레단, 오페라단, 연극 부문이 함께 있는 구조입니다. 이곳의 이사회는 2018년 퇴임 예정이던 예술감독 리드 앤더슨의 후임을 3년 전인 2015년에 이미 결정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주립극장 이사회는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문화부 장관, 주의회 문화예술 관련 의원, 극장 경영감독, 오페라·발레·연극 세 부문의 예술감독으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존 노이마이어 당시 함부르크발레단 예술감독을 위원장으로 하는 '예술감독 추천위원회'가 먼저 만들어졌고, 여러 후보자 가운데 당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부감독이던 타마스 디트리히를 최종 추천하자 이사회가 무기명 찬반투표를 통해 선임을 결정했습니다. 타마스 디트리히는 2018년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지금까지 발레단을 이끌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추천위원회’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공모를 하는 것보다, 실제로 실력 있는 사람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 집단에게 후보 추천을 받는 방식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이 충분히 후보군을 검토하고 의향을 타진한 뒤 절차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제가 예전에 독일 언론에서 봤던 기사에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차기 예술감독 후보군이 20명 안팎으로 거론됐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강수진 단장의 이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출신이고, 한국에서 예술감독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언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아주 좁은 후보만 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1차 후보군을 설정한 뒤 검토해 나가는 방식인 것이죠.
- 영국 로열 발레단
다음은 영국 로열발레단입니다. 영미권은 이사회 기능이 매우 발달해 있습니다. 로열오페라하우스 이사회는 2012년 퇴임 예정이던 발레단 예술감독 모니카 메이슨의 후임을 2011년에 이미 케빈 오헤어로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 그룹의 추천과 예술 분야 전문 헤드헌터의 추천을 함께 받았습니다. 로열오페라하우스 이사회는 경영진, 예술계 전문가, 금융 및 기업 전문가 등 총 17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영미권은 프랑스나 독일처럼 국가 중심의 예술정책이 강한 대륙 유럽과 달리 민간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강하기 때문에, 이사회 중심의 선임 구조가 더 발달해 있습니다. 이사회 아래에는 재정위원회 등 여러 위원회가 함께 움직이며 조직을 뒷받침합니다.
- 일본 신국립극장
일본 신국립극장 발레단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비교 사례입니다. 신국립극장재단 이사회가 극장 경영진과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예술감독선정위원회를 꾸려 예술감독을 선임합니다. 예술감독 임기는 4년으로 정해져 있고, 연임 여부나 차기 감독 선임은 2년 전에 결정됩니다. 만약 현 감독이 연임한다면 그 기간을 2년에서 4년 사이에서 정할 수 있고, 새 인물을 선임한다면 그 역시 2년 전에 결정됩니다. 그리고 이 2년 동안 차기 감독에게 ‘예술참여’라는 직함을 부여해 극장과 단체의 운영을 익히게 합니다. 단순히 취임 발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업무를 인수받고 조직을 이해할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현재 신국립극장 발레단을 이끄는 요시다 미야코 역시 이런 절차 속에서 선임됐고, 취임 전부터 준비 기간을 가졌습니다. 그 덕분에 단체 운영의 연속성이 확보되는 것이죠. 독립 단체 방식의 사례도 있습니다.
- 독립 단체
ABT, NYCB 같은 미국 발레단이나 영국 ENB 등은 극장 소속이 아니라 독립 운영 재단법인 형태입니다. 이런 단체일수록 이사회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공적 지원이 없거나 적을수록 이사회는 재정위원회 등과 함께 단체 운영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이들 단체는 보통 경영감독과 예술감독을 분리해 두고, 이사회가 두 감독을 직접 선임합니다. 예를 들어 ABT의 경우 케빈 맥킨지 예술감독이 2021년 3월, 30년간의 재임을 마치고 2022년 말 은퇴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ABT 이사회는 2021년 여름부터 후임자 물색에 들어갔고, 2022년 5월 수잔 제프가 12월부터 임기를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예술감독의 퇴임이 알려진 뒤 후임을 찾고, 실제 취임 전까지 충분한 준비 기간을 두는 방식입니다. 우리와 가장 크게 다른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사전 준비와 연속성입니다.
국공립 무용단 예술감독 선임 개선
: 인사권 독점 방지와 문화행정 개혁의 필요성
단기: 예술감독 선정(심사)위원회 위원 공개로 투명성 획득
이제 국공립 무용단 예술감독 선임 개선 방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현재 정부가 예술감독 선임 권한을 거의 모두 쥐고 있습니다. 이 인사권 독점을 막으려면 선임 절차를 시스템화하는 ‘문화행정 개혁’이 필요하며, , 행정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계속 문제를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예술감독 선정(심사)위원회 구성원을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현재는 선정위원이 비공개되거나 비공모 시 위원회가 생략되기도 하며, 캠프 출신이나 특수관계인 기용으로 유기적인 평판 검증 절차가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선정위원회 위원을 공개하고 절차를 투명하게 만들면 인사의 정파성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고, 정권이나 지자체장 교체에 덜 흔들려 연임이나 사전 임명도 훨씬 자연스럽게 가능해집니다.
실제 문체부가 2025년 5월 국립예술단체장 공모와 사전 선임 방침을 밝힌 바 있으나, 추진한 사전 선임 방안은 검증 절차가 불투명해 '자기 사람 심기'라는 의심을 샀습니다. 문체부 관료가 임명되는 산하 기관(예술경영지원센터 등)에는 정작 같은 수준의 검증(후보자 공개 PPT)을 적용하지 않는 모순을 보여 예술계의 호응을 얻지 못한 채 정권 교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 문제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중기: 무용단 이사회에 감독 임명하도록 해야
중기적으로는 이사회가 있는 국립 단위 무용단의 경우 이사회가 예술감독 임명권을 행사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는 문체부가 예산과 이사회 구성 전권을 휘두르고 있어, 이사회는 정부 정책을 승인하는 협의체나 명예직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이사회를 구성할 때 국립발레단이나 국립현대무용단의 추천을 받거나 현장의 의견을 어느 정도 반영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해외 이사회가 후원 유치와 조직 전략에 책임 있게 관여하는 반면, 우리나라 이사회는 1년에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 외에 별다른 역할이 없습니다. 국립발레단과 국립현대무용단 역시 문체부 예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자율성을 요구하기 어려우므로, 관료주의적 통제에서 벗어나 이사회의 권한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합니다.
장기: 예술기관 통합과 기능 조정 따른 문체부 통제 최소화
-문체부에 직접 소속된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의 재단법인화
장기적으로는 최근 논의되는 예술기관 통합 및 기능 조정과 관련해 문체부의 통제를 최소화하는 방향을 고민해야 하며, 그 방안 중 하나가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의 재단법인화입니다. 문체부 직속 기관 구조에서는 본부의 인사를 위해 공무원들이 파견되는 모양새여서, 국립극장 직원들 사이에서는 본부 선호도가 낮은 인력이 산하로 온다는 불만이나 6개월 만에 자리를 옮기는 등의 문제가 지적됩니다. 더 큰 문제는 고위직을 문체부 공무원들이 독점하면서 공연기획자나 프로듀서 같은 내부 실무 인력이 성장할 통로가 막힌다는 점입니다.
물론 전속단체 단원들은 공무원 신분 변화 문제로 재단법인화에 반대하는 반면, 사무국 직원들은 자율성 확대와 승진 기회 측면에서 이를 원해 입장이 갈립니다. 지난해 유인촌 장관이 국립극장 재단법인화 방향성을 언급했으나 후속 조치는 없었습니다. 국립국악원 역시 과거 과장급이 오던 자리에 지금은 국장급 기획운영단장이 파견되는 등 고위직 파견 구조가 심화되었고 국립박물관도 비슷합니다. 특히 2025년에는 국립국악원장 자리에 문체부 실장 출신 인사를 앉히려는 움직임이 있어 저와 국악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결국 좌절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저도 그 과정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했고, 국악계가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막아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 국립예술단체 통합 이슈
다음으로 국립예술단체 통합 이슈가 있습니다. 문체부는 2025년 국립발레단, 국립오페라단, 국립합창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심포니 등 예술의전당에 상주한 국립예술단체들의 통합 사무국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단체별 이사회 정관까지 바꾸고, 새로운 이사진과 사무국장 임명도 하지 않은 채 통합을 전제로 움직였습니다. 당시 국립예술단체들은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와 관련해 제가 국민일보에 “극장 없는 국립예술단체 사무국만의 통합은 타당성이 낮다”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과거 보고서를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후 국회에서 이 문제가 추궁되자 유인촌 당시 문체부 장관은 반대하면 안 하겠다고 물러섰으나, 정권 교체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으며 통합 사무처장을 맡기려던 국립오페라단 사무국장만 현재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사실 국립예술단체들은 예술의전당과의 통합 자체에는 찬성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만약 통합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해외 오페라하우스처럼 대표는 정부가 임명하되 각 단체의 예술감독은 이사회가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선임하는 구조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현 정부의 문체부가 이 문제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국가예술위원회 변환
또 하나, 무용계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이야기되지 않지만 연극계 등에서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국가예술위원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습니다. 문체부의 산하기관 통제를 제한하고, 예술위원회의 자율성을 높여 현행 예술지원 체계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기초예술 분야의 예산 집행을 문체부가 아니라 국가예술위원회가 맡도록 하자는 주장입니다. 영국의 경우 국립예술단체들이 예산의 상당 부분을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즉 ACE와 3년에서 5년 단위로 계약해 지원받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직접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물론 한국처럼 관료주의가 강한 환경에서 이런 방식이 실제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현재 구조를 바꾸자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늘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이런 자리를 몇 명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예술계 전체의 단합된 행동 필요
결국 예술계 전체의 단합된 행동이 필요합니다. 지난해 국립국악원장 인사 문제 때를 보면, 제가 기사를 쓴 뒤 국악원 전임 원장과 연구실장들이 성명서가 나오고, 이후 비대위 간담회, 국악 교수들과 지휘자들도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등 국악계 전체가 움직였기 때문에 문체부도 물러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국공립예술단체장 선임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음에도, 대한무용협회나 한국연극협회 같은 주요 단체들은 물론 소위 업계의 원로나 중견들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목소리도 내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침묵이 반복되다 보니 정치인들은 기관장 자리를 논공행상의 전리품처럼 여기고, 문체부는 퇴직 관료의 일자리처럼 활용하는 구조가 계속됩니다. 예술계 역시 그동안 이런 인사에 대해 정권이나 문체부, 지자체와의 밀착을 통해 예산을 확보하면 된다는 식으로 묵인해온 측면이 있습니다. 어떤 예술가들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정치 캠프에 줄을 서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구조가 한국 예술계의 쇠퇴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를 일으키려면 장르별 협회와 예술단체들이 한목소리로 나서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국립국악원장 사례가 사실상 드문 예외에 가깝습니다. 해외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탈리아 라 페니체 극장입니다. 라 페니체는 베네치아에 있는 유서 깊은 오페라극장으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손꼽히는 주요 극장입니다. 그런데 2025년 9월, 극장 이사회가 1년 뒤 취임할 음악감독으로 35세의 지휘자 베아트리체 베네치를 임명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해당 극장에서 작업한 경험이 없고 자격 논란이 있었으며, 그의 아버지가 조르자 멜로니 총리와 가까운 정치가라는 점 때문에 정치적 인사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이사회 멤버인 베네치아 시장도 외부 압력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으나 총리실과 문화부는 이를 부인했습니다.
이후 라 페니체 극장의 단원과 스태프들이 파업을 벌여 10월 공연이 취소됐고, 저명한 음악가들도 비판에 나섰습니다. 2026년 신년음악회에서 단원들은 항의 배지를 착용했고 다른 오케스트라들도 연대했습니다. 여론이 악화되는 가운데 베네치가 언론 인터뷰에서 라 페니체 오케스트라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자, 결국 극장 이사회가 이를 계기로 계약 취소를 통보하며 취임 자체를 무산시켰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해외라고 해서 정치적 인사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에서도 그런 시도는 벌어집니다. 하지만 예술계가 단합해 문제를 제기하고, 여론을 형성하면 실제로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을수록 문체부나 정치권은 ‘이 정도까지는 괜찮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음에는 더 나아갑니다. 지난해 국립국악원장 자리에 문체부 실장을 앉히려 했던 것도 그런 흐름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이 사건은 그나마 국악계가 힘을 합쳐 막아내기는 했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예술계가 계속 목소리를 내고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이상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요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김혜라: 짧은 시간 안에 국내외 주요 극장과 단체의 예술감독 선임 방식을 폭넓게 개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결국 핵심은 관료주의적 통제를 벗어나는 '문화행정 개혁'이 관건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또한 마지막에 강조하신 것처럼, 무용계를 포함한 예술계 전체가 단합해 한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이 문제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한 번에 모든 것을 바꾸기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예술감독 선임 절차와 차기 리더의 운영 청사진 정도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이것조차 요구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오늘 함께해 주신 토론자분들과 참석자 여러분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선임절차보다 시급한 과제, 국공립 무용단의 부실한 운영 구조
김채현(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국공립 예술감독 선임 문제는 아주 오래 계속 말해온 해묵은 문제입니다. 한국에서 최초의 공공무용단체인 국립무용단이 생긴 것이 1962년 2월 6일이니 올해로 65년째에 접어든 셈인데, 이 문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씀드리면, 국공립 무용단 운영 전반이 난맥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예술감독 선임 자체도 굉장히 허술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중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선임 과정의 허술함보다 더 근본적인 '운영의 부실함'을 중시해야 합니다. 운영이 느슨하니 선임도 느슨해지고, 그 결과 역량이 부족한 사람까지 예술감독직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지자체장 후보나 지자체장과 손을 잡고 예술감독으로 선임되는 풍토가 지난 20년 동안 더욱 심화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운영을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입니다. 선임 문제만 떼어놓고 볼 것이 아니라, 바탕에 놓인 운영 구조 자체를 함께 봐야 합니다. 한국춤비평가협회는 이미 2015년에 단원 대상 여론조사를 진행하는 등 이 문제를 장기간 다루었고,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타개하고자 2024년에는 춤웹진 좌담을 세 차례 마련해 이 사안을 더 깊이 다루었으니 이번 논의에서 함께 참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다면 운영의 난맥상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앞서 장지영 기자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이사회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또 예술감독 선임과 관련해서는 선정위원회가 아예 없거나, 설령 있다 하더라도 외부에서는 그 구성과 작동 방식을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이사회가 일정한 책임과 권한을 갖고 선임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사회가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운영에 있어서든 예술감독 선임에 있어서든, 뚜렷하게 책임을 지고 방향을 제시하며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일을 추진하는 주체가 사실상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즉 제도가 임의적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국무회의에서 다뤄질 정도의 사안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한심스럽게도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국무회의에서 이 문제를 이야기해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 예술인들의 연대 서명을 받든지, 국민신문고와 같은 제도적 장치를 활용하든지 해서 사회적 여론을 환기할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예산 규모로 봐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국립극장의 1년 예산이 약 500억 원(4개 예술단체 포함)이고 국립발레단 연간 예산도 약 120억 원(2024년도 입장료 수입 약 25억 원) 규모입니다. 반면 세계적인 뉴욕시티발레단은 연간 예산이 약 1,600억 원, 입장료 수입만 약 700억 원에 달하며 공공 지원은 약 250억 일부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규모만이 아니라 투명성입니다. 뉴욕시티발레단은 약 40페이지에 걸쳐 전년 대비 증감 내역까지 세세하게 공개하는 반면, 우리 국립극장의 활동보고서는 상당히 형식적이고 내용 파악도 어려울 정도로 허술합니다. 혹시 저의 착오인지 모르겠습니다만, 2024년과 2025년 국립극장 홈페이지에는 연보조차 올라와 있지 않을 정도로 운영이 들쭉날쭉합니다. 이는 국정감사 차원을 넘어 엄중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입니다.
어떤 곳은 운영이 거의 구멍가게 수준이라고 해야 할지,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상당수 눈에 띕니다. 따라서 운영 자체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해야 합니다. 구조를 고쳐야지,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처럼 “이사회를 잘 운영해 달라”, “선정위원회를 제대로 해 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으로는 상당한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국공립 예술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이든, 관련 법령의 정비든, 보다 엄중한 운영 시스템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국공립 예술기관이 보다 책임 있게 운영될 수 있고, 예술감독 선임 문제 역시 그 틀 안에서 제대로 다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뉴욕시티발레단의 사례가 우리와는 엄청 달라서 비현실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글쎄요. 바람직한 사례는 연구하고 본받을 점을 간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진정한 능력이라 보며, 무능하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미학적 의사결정권자의 선임 구조 혁신
장석류(국립인천대 문화대학원 교수): 저는 인천대 문화대학원의 장석류라고 합니다. 문화행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오늘 발제 내용을 행정학적 관점에서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인 공공조직의 리더는 행정·경영 이해도나 문제 해결 역량을 기준으로 임명됩니다. 그러나 국공립 무용단체를 비롯한 예술단체의 장은 단순한 행정 책임자가 아니라, 조직의 미학적 비전을 이끌고 방향을 결정하는 '미학적 의사결정권자'입니다. 현재의 여러 문제는 그런 자리를 문화부나 행정이 임명하고 있다는 데서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 결정과 책임의 비대칭성
첫 번째 문제는 결정과 책임의 비대칭성입니다. 의사결정을 한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예술단체장 선임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명의로 임명되더라도 실제 결정 과정에 대통령실의 의중이나 실·국장의 안이 얼마나 반영되었는지 외부에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에 대해 답변하거나 책임질 주체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만약 선임 과정이 공개된 선정위원회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결정됐는지 어느 정도 보이나, 비공개이면 기준과 절차가 드러나지 않아, 결국 인맥 중심의 밀실 추천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문화비서관이나 문화부 내부 네트워크를 통해 자신들과 가까운 사람 위주로 논의가 오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면, 현장에서 예술가들은 이러한 사적 네트워크가 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결정은 이뤄지지만 책임은 흐려지는, 결정과 책임의 비대칭성이 생깁니다.
- 적재의 실종
두 번째 문제는 적재의 실종입니다. 핵심은 그 자리에 정말 맞는 사람인가, 필요한 역량을 갖추었는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를 검증하려면 후보자들이 임기 동안 단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미학적 비전을 공개적으로 제시하고, 여러 후보자의 비전이 서로 경합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비전을 검토하고 검증할 절차가 거의 없습니다. 임명된 사람도, 임명되지 못한 사람도, “나는 이런 일을 하겠다”거나 “나에 대한 이런 오해는 사실과 다르다”고 방어할 수 있는 공식적인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술단체의 리더를 뽑으면서도 예술적 비전보다는 예술 외적인 기준이 더 많이 작동합니다. 학교를 어디 나왔는지, 어느 계열과 가까운지,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명분이 있는지, 이전에 어떤 경력을 가졌는지, 혹은 “저 사람은 그래도 사고는 안 칠 것 같다”는 식의 안전성 판단이 앞서게 됩니다. 결국 미학적 비전보다는 예술 외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 경쟁의 실종
세 번째 문제는 경쟁의 실종입니다. 과거 문화예술국장과의 인터뷰에서 기재부 실·국장들은 장관을 꿈꾸며 경쟁을 통해 서로 성장하는 반면, 문화부 실·국장들은 그 자리를 정점으로 여겨 더 이상 꿈꾸지 않는 구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문제는 예술계에도 그대로 대입됩니다. 예술가들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가 단장이 된다면 어떤 미학적 비전을 펼치겠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선배들의 리더십을 보며 다음 세대가 “나도 언젠가 저 자리를 준비해야겠다”고 꿈꿀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현재의 예술감독들과 미래의 후보군 사이에 건강한 경쟁이 존재하고 그 경쟁이 생태계를 자극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경쟁 구조가 실종되어 있습니다.
- 선정위원 권위·비전 제시 의무화·권고와 결정 분리
그렇다면 어떻게 처방할 것인가. 앞서 장지영 기자님께서 여러 형태의 선정위원회 사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선정위원회를 도입한다는 형식만으로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우리도 많은 위원회를 만들지만,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사후 논리를 맞추는 '거수기'로 전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제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려면 그 안에 담긴 운영의 DNA를 봐야 합니다. 해외 사례를 통해 본 선정위원회의 성공 조건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선정위원의 권위입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경우 심사위원들이 무용예술계 현장에서 깊이 존경받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그 권위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행정 관료의 비중이 과도하게 크거나 형평성을 이유로 물타기가 이뤄지면 선정위원 권위와 전문성이 떨어집니다. 미학적 리더를 알아볼 수 있는 위원들의 예술적 권위가 매우 중요합니다.
둘째는 비전 프로젝트의 의무화입니다. 해외에서는 후보자가 공식적인 시간과 조건 속에서 운영 구상과 미학적 비전 계획서를 발표하고 경합합니다. 반면 우리는 평가가 뒤에서 이뤄지고, 추천을 받더라도 무엇을 하겠다는 사람인지 충분히 듣지 못한 상태에서 판단이 이뤄집니다. 평가의 기준 자체가 불분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선정위원회를 운영하더라도, 후보자가 자신의 비전과 운영 구상을 공식적으로 제시하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셋째는 권고와 결정의 분리입니다. 파리의 사례처럼 위원회가 최종 후보군을 압축해 권고하고 최종 결정권자가 선택하는 이중 심사 구조입니다. 최종 선택권자가 이 권고를 거스르려면 공개적인 설명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문화부 장관이 명확한 설명 없이 '해당자 없음'으로 명확한 설명없이 기각하며 위원회를 무력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정위원회가 제도로 작동하려면, '선정위원의 권위', '후보자의 비전 설명 의무화', '권고와 결정의 분리'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하나의 세트로 움직여야 합니다.
- 내부 구성원의 역량 요구안 제도화
여기에 한 가지 의견을 보태자면, 제 연구에서는 행정인 부족, 기획인 부족, 예술인 부족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서로 다른 직업 정체성과 언어를 가진 집단이 존재한다는 뜻이며, 지금 논의는 예술인 부족의 리더를 뽑는 문제입니다. 예술감독이 실제로 함께 일할 주체는 단원과 예술가들이므로, 이들이 조직에 필요한 리더의 역량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제도로 보장해야 합니다.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와 무용수 노동조합(AGMA)의 단체협약 사례가 좋은 예입니다. 선임 절차가 시작되면 단원들에게 특정인을 지정하는 인기투표가 아니라, "동시대 예술감독에게는 어떤 기준과 역량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견을 제출하도록 요청합니다. 이는 예술인들이 행정에 의해 일방적으로 관리되는 대상이 아니라,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주체로 존중받기 위한 중요한 장치입니다. 따라서 선정위원회 모델 안에 단원 대표, 기획·창작, 프로듀서, 마케터 등 다양한 내부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입력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이전에 '어떤 사람이 와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행정 리스크 감소를 위한 자문 구조
이 부분은 행정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필요합니다. 장관이나 예술국장도 독단적 임명에 따른 비판을 피하고 적절한 사람을 찾고 싶어 하는 욕구가 분명히 있습니다. 현재 문화부 장관이 혼자 의사결정하기 어려워 대중문화 쪽이나 K-컬처 관련 위원회 같은 자문기구를 두는 것처럼, 예술단체장 선임에서도 선정위원회 같은 제도화된 자문 구조가 있어야 장관과 문화비서관 라인의 부담과 리스크를 줄일 수 있습니다. 흔히 직접 임명이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말하지만, 절차가 튼튼하지 않으면 오히려 의사결정에 자신감이 없어 임명을 미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유인촌 전 장관은 문화예술 분야를 잘 안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상대적으로 거침없었습니다. 반대로 어떤 영역을 잘 모른다고 느끼면, 제도화된 위원회가 없는 상태에서는 임명 자체를 미루게 됩니다. 겉으로는 직접 임명 방식이 빠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적재적소의 효과성도 낮아질 수 있습니다.
- 리더 발굴을 위한 제도적 시스템 구축
마지막으로 예술계 리더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성장시키는 제도적 시스템, 즉 '커리어패스(경력 경로)의 위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흔히 현장에서는 다음 단장이나 감독으로 "앉힐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단지 인물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를 길러내지 못하는 구조적 공백 때문입니다. 앞서 장지영 기자님께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타마스 디트리히는 부예술감독 9년을 포함해 17년간 조직에서 검증받았고, 캐나다 국립발레단 역시 내부에서 오랜 시간 성장한 인물이 리더가 됩니다. 일반 기업처럼 내부자가 부장에서 상무, 부사장으로 경쟁하며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구조입니다. 반면 우리 예술단체는 어떻습니까. 정동극장장이나 예술의전당 사장 인사 때도 “이번에는 누가 될까”가 아니라 “이번에는 누가 오실까”라고 말합니다. 상상 속에서도 내부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리더가 된다는 전제가 없습니다. 각 단체가 차기, 차차기 리더를 계속 키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단지 임명의 문제가 아니라,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경력 경로, 즉 '커리어패스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예술단체는 앞으로 단체장과 수장을 계속 길러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중간 단계에서 부예술감독이나 안무 관련 직책을 맡으며 경쟁하고, 예술감독에 가까운 역할과 경영을 일부 경험하면서 검증되었을 때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흐름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임 이전 단계에서부터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적 경로가 비어 있으며, 이것이 문화행정의 또 다른 공백입니다.
강수진 단장의 경우도, 슈투트가르트 감독 후보군으로 거론됐다는 것은 그 조직 안에서 계속 성장했고, 국립발레단에서도 경험을 쌓았으며, 리더로서의 커리어패스를 밟아온 스토리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경력 경로의 문제를 더 깊이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예술감독 같은 직책을 제도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기존 리더와의 긴장이나 한국적 조직문화 안에서 이름만 얹는 자리가 될 위험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예술계가 행정으로부터 모멸감이나 답답함을 덜 느끼기 위해서는 예술인 내부에서도 다음 후계 리더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예술인들이 서로 견제하기보다 연대하며 함께 성장하는 감각을 가져야 합니다. 예술계가 기획자 집단과 연합해 행정인 집단으로부터 존중받으려면 후계 리더를 키우는 구조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문화부 행정 조직이 실·국장부터 사무관까지 내부에서 인재를 키워내듯, 예술계도 부예술감독 직제나 일본 신국립극장의 ‘예술참여’ 제도처럼 임명 전 일정 기간 조직을 경험하고 검증받는 '학습과 숙련의 시간'을 제도화해야 합니다.
- 정책의 연속성
마지막으로 정책의 연속성 문제를 짚고 싶습니다. 지난해 5월 15일, 정부가 공연예술 정책을 통해 단체장 공개모집, 공개검증, 사전선임 도입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당시 국립예술단체 통합 사무국 이슈를 물타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과 정권 교체기에 대한 우려도 있었으나, 당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영속적으로 추진된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2026년 5월 현재, 당시의 그 발언은 다시 매몰되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 제도 논의로 이어져야 하는 것인지 물어야 합니다. 국립정동극장을 포함한 15개 대상 기관 중 실제로 이러한 공모·선정위원회 방식으로 임명된 사례는 없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정책 발언이 그대로 매몰되게 두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제기된 혁신 방향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다시 묻고, 실질적인 제도화 논의로 연결해 이어가야 합니다.
김혜라: 많은 제안 감사드립니다. 이 가운데는 무용계나 비평가협회 차원에서 이미 제기됐던 이야기들도 있고, 오늘 새롭게 보태주신 좋은 아이디어들도 있었습니다. 특히 단체 안에서 17년 동안 역량을 쌓고 리더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사례가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 국립발레단, 국립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등이 안무가를 키우는 육성 프로젝트에는 상당히 적극적이지만, 기관 안에서 경험을 쌓은 내부 인사가 이후 단체의 리더로 성장한다는 관점은 우리가 그동안 충분히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무용계뿐만 아니라 공무원 조직 등 사회 전반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공무원 조직 역시 내부에서 올라갈 수 있어도 가장 윗선의 자리는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꿈꾸기 어려우며, 대통령실이나 정치권의 인사로 채워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처럼 누구도 가장 위의 리더를 스스로 꿈꾸지 못하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우리의 사고방식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서 실제 광주시립발레단에서 실무를 경험하셨고, 예술감독 공백이 단원들과 단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구보다 가까이서 겪으신 박경숙 전 단장님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박경숙(전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제가 아무래도 현장에서 이 문제를 가장 피부로 느낀 사람 중 한명이기 때문에 현장 경험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광주시립발레단에서 저는 2대 단장으로 총 6년, 7대 예술감독으로 총 4년을 지냈습니다. 2대 시기에는 ‘단장’, 7대 때는 ‘예술감독’으로 명칭이 바뀌는 변화가 있었는데, 현재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자리는 네 달째 공석입니다. 제가 경험한 광주시립발레단의 단체장 임명 방식만 보더라도 세 가지 제도가 혼재돼 있었을 만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임 방식이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가슴 아픕니다.
차기 예술감독 선임이 지연되면 당장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혼선이 오고 단체의 비전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해 단원들은 불안해집니다. 지도자가 없는 단체에서 준비가 부족한 공연이 무대에 오르면 결국 그 피해는 세금을 낸 시민들에게 돌아가며, 이는 단순한 행정 지연이 아니라 예술의 질 저하로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 처음 2대 단장으로 선임될 때는 비공모 임명제 방식으로 들어갔고, 그 중간에는 공모제에도 지원해 봤으며, 마지막 7대 예술감독 때는 청빙제를 통해 선임되었습니다. 그때그때 지자체장과 행정 책임자들의 입장, 예술에 대한 관심, 심지어는 개인적 취향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모습을 예술가로서 참 가슴 아프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선임된 당사자로서 오로지 피해자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할 부분은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정비라고 생각합니다.
- 선임 방식의 조례 명시가 해결책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선임 방식을 조례에 명시하는 것입니다. 최소한 예술감독 임기 종료 1년 전에는 어떤 방식과 절차로 후임을 선임할지 조례에 분명히 규정해야 합니다. 조례는 의회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쉽게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단체장이나 시장이 바뀔 때마다 제도가 흔들리지 않고 일정한 원칙 아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또한 단체 운영의 유연성을 위해서도 조례 정비가 필요합니다. 지난해 ‘광주예술의전당’으로 명칭이 바뀐 이곳에는 8개 상주 단체가 소속되어 있지만 하나의 조례만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단원이 공무원과 유사하게 60세 정년을 보장받는 구조입니다. 이는 창극단이나 오케스트라에는 적용 가능할지 몰라도, 신체적 한계가 명확한 발레단이나 합창단에는 맞지 않습니다. 발레단원의 경우 40세 이후에는 한계가 오기 마련인데, 캐릭터 중심 배역을 맡는다 하더라도 새로 배출되는 젊은 무용수들의 기회가 줄어들어 단체의 순환이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 크게 달라진 것은 노조의 힘입니다. 제가 2대 단장을 맡았을 때는 강한 지시와 카리스마로 단원들을 이끌며 “속눈썹 방향까지 맞는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군무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년이 지나 7대 예술감독으로 돌아왔을 때는 노조가 결성되어 그 힘이 점점 강해진 완전히 다른 세계였습니다. 노조위원장이 바로 찾아와 일종의 ‘단장 길들이기’부터 시작하는 분위기였습니다. 2대 단장을 마치고 7대 예술감독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이 지났는데, 그사이 노조가 생겼고, 그 힘도 점점 강해졌습니다. 특히 특히 리허설 시간이 크게 줄어 현재는 오전 클래스 후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단 3시간만 리허설을 진행합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신작 전막 안무와 연습을 모두 해야 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빠듯합니다. 집중해서 진행한다는 장점은 있지만, 예술감독 입장에서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더 연습시키고 싶어도 규정된 시간과 휴일 대체휴무 보장 제도 등으로 인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1분만 넘어가도 신호가 올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예술감독의 열정과 카리스마로 단체를 끌고 갔다면, 지금은 노조와의 조율과 화합이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여기에 최근에는 안무 저작권 문제도 커졌기 때문에, 안무자와의 협의나 레퍼토리 계획 수립도 훨씬 더 일찍 진행해야 합니다. 적어도 1년 전에는 다음 시즌 계획을 짜야 하는데, 예술감독 선임이 늦어지면 이 모든 준비가 막히게 됩니다. 저도 임기 중에 최소한 2년 전부터 차기 감독 선임을 준비하고, 적어도 1년 전에는 후임 절차가 시작돼야 한다고 시와 최종 임명권자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정치 일정에 따라 시립예술단체가 큰 영향을 받는 현실을 계속 체감해야 했습니다. 특히 선거와 맞물리는 시기에는 여러 예술감독 자리가 동시에 비어 있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과거에는 정치와 예술은 별개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둘이 매우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참 답답합니다.
비공모 임명제는 낙하산이나 보은인사 논란이 뒤따르고, 공모제 역시 심사위원 구성이나 절차의 투명성 면에서 형식적이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됩니다. 단체와 시가 각각 전문가를 위촉해 청빙위원회를 꾸리고 최종 후보 두 명을 시장에게 올리는 청빙제 또한 절차적 장치는 있어 보이지만 정치적 입김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습니다. 요즘에는 정치 캠프의 보은인사로 내려보냈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들릴 정도인데, 이는 지금의 선임 구조가 얼마나 불신을 받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강조하지만,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선임 방식과 시기, 절차를 조례로 제정해 제도적으로 못 박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예술 분야는 전문성이 최우선되어야 합니다. 순환 보직이 필요한 공무원 조직과 달리, 특히 발레단 예술감독은 단순히 교수 경력을 넘어 토슈즈를 신고 파드되를 하거나 전막 작품을 지도할 수 있는 ‘최소 10년 이상의 실무 현장 경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전막 작품을 몇 개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단원들을 지도할 수 있겠습니까. 토슈즈를 신고 파드되를 한 번도 제대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발레단을 이끈다는 것은, 단순히 교수 경력과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내려오는 낙하산 인사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며, 현장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정당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독립성, 자율성, 중립성도 반드시 보장돼야 합니다. 이제는 무용계 전체가 힘을 모아 이런 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BTS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무용계도 성인 발레, 어린이 발레가 확산되고, 성인 발레 콩쿠르까지 생길 정도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공연의 티켓 파워도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가와 예술가의 노력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과 시민들의 힘까지 함께 모아 사회적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이러한 선임 제도가 하루빨리 현장에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야 합니다.
- 다음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