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흐름

〈티노 세갈〉展
지금 여기에서 세갈의 의미
박주성_미술연구자

“디스 이스 컨템퍼러리.” 리움 입구에 들어서자 직원으로 가장한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This Is So Contemporary)〉(2004)의 연기자, 아니 해석자들이 몸을 흔들며 다가와 말한다. 동시대(contemporary)라는 공허한 말은, 이곳에서 국내 첫 개인전 〈티노 세갈(Tino Sehgal)〉(2026.3.3.~6.28., 리움미술관)을 개최한 티노 세갈(Tino Sehgal, 1976-)에게로 되돌아갔다. “티노 세갈은 동시대적인가?”

세갈과 그의 언어가 동시대 예술의 문법에 깊이 뿌리내린 지금, 리움에서의 전시는 흔한 외국 대형 작가의 회고전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비기록성과 같은 그의 개념이 예술적 담론보다는 대중을 향한 마케팅 문구로 소비되는 현실은 이 전시가 처한 난관을 보여준다. 경력 초기 주요 작업을 다수 포함하기에 회고적인 성격을 온전히 부인할 수 없음에도, 전시는 서두에 동시대라는 화두를 던져 그 지향이 과거가 아닌 현재임을 선언했다.


낡은 동시대의 폐허 위에서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의 공개 이후 20여 년이 지났고, 동시대는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를 통칭하는 미술사적 용례의 유효성을 의심케 할 정도로 급변했다. 세갈이 딛고 있던 동시대의 지반도 낡아버렸다. 90년대 후반 니콜라 부리요(Nicolas Bourriaud)의 ‘관계 미학’이라는 낭만적 상상은 공중(public)의 피상성, 사회성의 물화라는 지적에 힘을 잃었고, 입구에서의 피상적이고 일방적인 관계 맺기는 그 비판을 확인해 주었다. 실재를 잠식한 디지털의 가상은 물질 과잉 시대의 반동적 산물인 그의 비물질적 작업의 존재 의미를 되물었으며, 그의 작업이 인터넷에 포섭되어 유통되고 있는 현실은 “기억에서 기억으로”라는 그의 모토를 퇴색케 했다. 현재로의 재배열이라는는 전시의 야심과 달리, 어느 순간 리움의 긴 경사 입구는 20년 전 낡은 동시대의 폐허와 같았다.



티노 세갈의 '구성된 상황'이 펼쳐지는 전시장 입구, 리움미술관 제공 ⓒ김상태



확장된 상황, 구성된 혼란

전시는 하나의 거대한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이었다. 세갈은 그가 자신의 작품을 통칭하는 데 사용하는 이 개념을 공간 전체로 확장했다. 그는 물질의 전당인 리움에 그의 ‘비물질적’ 작품 8점을 배열했고,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물질적 오브제를 세심하게 선별하여 그의 작품과 병치했다.

물질과 비물질의 혼합 사이로 세갈은 시간을 교차했다. 관객의 동선에 맞춰 초기 대표 작업과 근작 및 신작이 번갈아 배치되었다. 입구의 〈이건 너무 현대적이야〉를 지나 로비에 들어서면 관객 사이로 뒤섞인 신작 〈(무제)(Untitled)〉(2026)의 해석자들을 마주하게 된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의 비즈 커튼 작업 〈“무제”(시작)("Untitled"(Beginning))〉(1994)을 통과해 M2 전시장에 들어서면 축구 선수와 자전거 선수, 바이올리니스트, 무용수라는 전문인이 해석자로 등장하는 〈이 입장(This Entry)〉(2023)이 배치되어 있다. 〈이 입장〉은 6주마다 순차적으로 〈이 환희(This Joy)〉(2020), 〈이 당신나나당신(This youiiyou)〉(2023)라는 두 근작으로 교체된다. FGT의 비즈 커튼으로 구획된 전시장 안쪽에는 두 남녀가 바닥에 누워 키스하는 〈키스(Kiss)〉(2002)가 작품의 미술사적 참조인 로댕의 조각들과 함께 배치되어 있다. 위층에는 브루스 나우먼과 댄 그레이엄의 역사적 움직임을 파편적으로 참조하는 〈무언가 당신 코 앞에 나타나게 놔두는 대신 춤추는 브루스와 댄 그리고 다른 것들(Instead of allowing something to rise up to your face dancing bruce and dan and other things)〉(2000, 이하 〈무언가〉)이 근대와 동시대, 추상과 구상의 인물상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폭 넓은 시대를 다루는 리움의 물질적 오브제와의 병치는 미술사적 참조가 강한 그의 작업을 과시적으로 설명하는 듯했다. 무엇보다 그의 작업, 특히 정적인 〈키스〉와 〈무언가〉는 아우라를 가진 조각상들 사이에서 살아있는 조각으로 그들을 둘러싼 다른 오브제들과 마찬가지로 미학화되었고, 그가 과거 농당스의 탈아우라적인 접근을 과거의 향수로 남겨둔 것처럼 느껴졌다. 세갈의 동시대성은 비물질에 대한 배신과 아우라로의 회귀일까?



티노 세갈이 큐레이팅한 리움미술관 소장품, 리움미술관 제공 ⓒ김상태



문턱의 미학

세갈은 그의 상황을 투과와 문턱으로 구성했다. M2 전시장 지하 1층 전체를 감싼 FGT의 비즈 커튼은 작품의 형태를 반쯤 모호하게 가리는 반투과성 스크린이 되어 물질과 비물질 작업의 경계를 흐리며 하나의 장면으로 엮었다. 빛으로 가득한 이 유사 스크린이 제공하는 이미지는 하나의 회화처럼 아름다웠으며, 충만했다. 한편, 〈이 입장〉의 해석자들이 공간을 오가며 만드는 소리, 바이올린 연주부터 축구공이 땅에 튕기는 소리 또한 커튼 사이를 지나 M2 전시장 전체를 울렸다.

이미지와 소리는 관객이 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스며들도록 했지만, 비즈 커튼은 FGT가 이를 문턱으로 설계한 것처럼 얕은 장막이 되어 관객의 결심을 요구했다. 스크린으로서 커튼이 형성하는 이미지는 결국 픽셀의 집합일 뿐인 스크린이 그러하듯, 광선이 비즈를 투과하며 굴절되어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덧없음을 딛고 문턱을 넘어서고자 할 때 장막은 그 아름다운 이미지가 깨어질 것임을 경고하며 관객의 시도를 방해하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관음의 기회, 즉 엿보기의 에로틱한 즐거움을 제공하여 실재로의 진입을 다시금 좌절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그들이 문턱을 넘기를 결정했을 때, 작은 구슬이 몸에 닿으며 느껴지는 촉각은 입회의 경험을 제공했다. 얇은 막을 통과해 스크린 너머의 실재를 대면했을 때, 그의 ‘구성된 상황’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태도가 형식이 될 때

가냘픈 물질성을 지닌 FGT의 커튼이 제공하는 문턱의 경험은 관객이 태도를 갖추었는지를 묻는 장치다. 가상 세계가 제공하는 안락함은 디지털 스크린을 벗어나 실재를 맞이할 용기와 눈을 마주칠 마음, 지루함을 견뎌낼 굳은 결심을 잃어버리도록 했다. 그의 작업은 상황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고 말하지만, 오늘날 집중력을 잃어버린 관객에게 사진 촬영조차 할 수 없는 ‘구성된 상황’들은 지루하고 진부하다. FGT의 커튼은 이와 같은 관객에게 피상성을 버리고 밀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묻는 장치와 같았다. 문턱을 넘어 긴 시간 함께하며 밀도를 형성하고자 하는 태도가 굳어졌을 때, 세갈의 작업 그리고 전시의 풍경이란 두 구성된 상황은 보다 깊은 층위를 보여주었다.

〈키스〉의 두 남녀는 로댕의 조각이 결코 제공할 수 없는 사랑의 체온과 몸의 생명력을 드러냈다. 〈이 입장〉의 해석자들은 전문화된 몸이 드러내는 집요한 훈련의 흔적을 그들이 공간을 혼란스레 오가며 만드는 리듬을 통해 청각적으로 보여주었다. 리움의 상징적인 로툰다 아래에서 관객과 얽혀 있는 〈(무제)〉의 해석자들은 비로소 그 실체가 선명해지면서, 그들이 연주하는 몸의 얽힘이 가시화되었다. 시간은 밀도를 형성했고, 온라인이 매개하는 피상적 관계의 허망함을 벗겨냈다. 그러나 세갈에 의해 강하게 규율되는 그 만남의 친밀성이 얼마나 가까운지는 여전한 의문이다.

세갈이 제시하는 동시대성은 관계미학의 피상적 관계마저 사라진 지금 시대, 스크린을 넘어 대면할 수 있는 용기, 밀도를 이겨낼 인내로 보였다. 관계 미학의 잔해 위에서 세갈은 시대의 문제를 포용하면서 관계와 참여를 갱신해 동시대로 나아갔다. 물론 전술한 바와 같이 정교하게 기획된 상황에서의 만남의 진실성에 대한 여전한 의문이 있으나, 관객은 세갈이 구축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온전히 규율할 수 없는 대상이기에 기획의 공백이자 가능성이다. 관객이 스크린의 문턱을 넘어 대면을 통한 상호작용을 구축할 수 있는가는 온전히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세갈은 관객에게 그저 그 문턱을 넘을 용기가 있는지 물을 뿐이었다.

*이 글은 3월 4일 전시를 관람한 후 작성되었으며, M2 B1의 두 교체 작업과 정원에서의 〈이 당신(This You)〉(2006) 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람하였습니다.

박주성
퍼포먼스부터 정치적 이미지까지 동시대 예술과 시각문화를 연구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를 졸업하고 서울문화재단 RC프로젝트에서 무용 부문 비평가로 활동했다.
2026. 4.
사진제공_리움미술관, 김상태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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