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즉흥예술가 케이티 덕
창작 도구이자 공연 전략으로서의 즉흥
  • 일    시
    2025. 5. 16(금)
  • 장    소
    서울 대학로
한석진_춤학자, 비평가

제25회 서울국제즉흥춤축제 개막식을 하루 앞 둔 5월 16일, 봄비가 꽤나 세차게 내렸던 날 즉흥 예술가 케이티 덕(Katie Duck)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올해로 서울국제즉흥춤축제에 네 번째 초청된 그녀는 즉흥 퍼포먼스로 국제적 명성을 가진 예술가이다. 올해 행사에서 케이티 덕은 5월 19일 25주년 기념 국제 즉흥잼 – 즉흥아티스트 네트워킹의 밤, 20일의 국제 릴레이 즉흥 행사에 출연하였고 18~21일 즉흥워크숍을 열었다(댛가로예술극장 중연습실). 미국 출신으로서 서유럽에서 수십년간 활동해왔던 그녀는 현재 암스테르담을 기반으로, 춤, 연극, 음악, 영상을 융합하여 작업하는 다학제적 즉흥 예술가이다. 73세 나이가 믿기 힘들 정도로 여전히 활발한 교육, 공연, 창작 활동을 펼치는 그녀에게 구성(composition)과 즉흥의 관계, 다학제적 공연, 협업의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하신 지 꽤 되셨는데, 오랜만에 한국에 다시 오신 소감이 어떠신가요?
장광열 감독 덕분에 다시 오게 되어 좋네요. 그는 항상 저에게 친절했어요. 그가 지금까지 이 페스티벌을 계속하고 있다는 게 정말 기쁘고, 동시에 안무계에서 큰 변화가 없다는 것도 느껴지네요. 우리는 여전히 즉흥을 필요로 한다는 의미겠죠.

수십년 간 즉흥 작업을 해오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즉흥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제가 아마 15살 즈음이었을 거예요. 10살 때부터 연극을 공부하고 있었고, 당시 연출가가 처음으로 말해줬어요. 대사를 외우고 인물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의상을 입고 리허설을 하면서 더 많이 즉흥적으로 해보는 거라고요. '즉흥적으로 한다'는 게 뭘 의미하느냐고 물었죠. 그는 "그냥 연기하는 거야"라고 했고, 그래서 해봤어요. 그걸 통해 제가 맡은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대본에 없던 상황 속에 캐릭터를 넣어보며 놀았어요. 다시 그 역할을 연기할 때,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훨씬 깊어졌고, 마치 그 역할을 내 것으로 만든 느낌이었죠. 그때 즉흥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그걸 정말 즐겼어요.
그리고 다음으로 즉흥을 접한 건 음악에서였어요. 제 어머니는 재즈 가수였거든요. 어머니가 노래하다가 “두두두 두 세라~”하며 즉흥적으로 바꾸는 걸 보면서, "지금 뭐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즉흥이야"라고 하셨어요. 그걸 계기로 음악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작곡되는지에 대해 궁금해졌어요. 특히 연주자들이 공연 중에 즉흥을 하는 순간들에 흥미가 생겼죠. 6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미 헨드릭스를 봤는데, 스피커 쪽으로 가더니 급진적인 소리를 내더라고요. 그것도 즉흥이었어요. 그때부터 연주자들이 언제 즉흥을 하는지를 관찰하게 되었고, 찰리 파커 같은 재즈 뮤지션들을 더 많이 듣게 되었어요. 많은 음악가들이 멜로디를 연주한 후 즉흥 연주로 전환하죠.
이후에 유타대학교에서 모던댄스를 공부했어요. 존 케이지와 머스 커닝햄이 공연하러 왔는데, 똑같은 복장을 입은 무용수들이 정해진 동작을 하는 걸 보며 소리 자체에 귀를 기울였어요. ‘이건 무슨 소리지?’ 하고 눈을 감고 들으면서 즉흥인지 아닌지 구분하려 했어요. 그게 바로 제가 처음으로 '우연성‘(chance)이라는 개념을 접한 순간이었죠. 19살 무렵, 여전히 모던댄스를 하고 있었지만 그 길이 제 예술가적 길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어요. 의상이나 기법이 저에게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마임 극단에 들어갔고, 거기서는 모두가 자신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어요. 저도 솔로 작품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유머를 발견했어요. 연극에서도 유머를 표현하곤 했는데, 관객을 웃기는 건 타이밍에 달려 있어서 어렵지만 매우 즐거웠어요. 마임 극단에서는 어떻게 관객을 웃기는지를 연구하게 되었고, 저만의 어두운 유머 스타일을 발견했어요. 저는 가볍고 밝은 유머보다는 건조하고 어두운 유머를 좋아했어요. 이런 유머를 제 작업에 녹여낼 수 있었고, 또한 제가 직접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저는 무대에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움직이고, 관객을 웃기는 장면도 만들었어요. 유럽으로 초청되어 가게 되었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훌륭한 연출가이자 유머가 넘치는 사람인 카를로스 트래픽(Carlos Traffic)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어요. 그는 어두운 유머를 지닌 분이었고, 그와 함께 작품 〈러브스토리〉를 만들었죠.
카를로스와 작업하면서 많은 걸 배웠고, 점점 더 솔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즉흥은 제 작품을 만드는 방식에 이미 통합되어 있었죠. 그저 창작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공연 그 자체 속에 즉흥성을 집어넣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왜냐하면 매번 관객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정해진 타이밍으로는 적절한 타이밍을 잡을 수 없거든요. 타이밍이 정해져 있다면 맞출 수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관객은 다르고, 상황도 매번 다르기 때문이죠. 그 순간에 어떻게 제 예술적 언어들을 전환할 수 있을까? 정해진 시간이라면 불가능하죠. ‘느껴지는 시간’이어야 해요. 그리고 관객과의 관계 역시 그 안에 있어요. ‘내가 관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타이밍에 열려 있어야 했고, 그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들으면서 제가 언제 무엇을 할지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심지어는 무엇을 할지조차 바꾸게 됐죠. “오늘 밤은 그건 안 해도 되겠어”라고 생략하는 일도 생겼어요. 이렇게 관객과 작품을 ‘느끼는’ 과정을 통해서, 저는 실시간 공연을 하게 되었어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90년대까지 음악가들이 저를 즉흥 공연에 초청해서 함께 작업했어요. 그 공연들에서는 제가 움직임이나 텍스트로 참여했죠. 만약 음악가들이 즉흥 속에서 멜로디를 찾기 위해 너무 충동적으로 가고 있다 싶으면, 저는 무대를 떠나거나, 마이크로 가거나, 그냥 멈춰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 그들도 알아채고 멈추게 됐어요. “그녀는 어디 갔지?”하고요. 마이크로 “다들 조용히 해요. 이건 엉망이잖아요”라고 말하기도 했죠. 그 과정을 통해 저는 즉흥 음악이 얼마나 쉽게 충동적이 될 수 있는지를 듣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어요.
이때 저는 춤 기법들도 배웠어요. 그리고 즉흥 음악과 함께 공공의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 집중을 잃게 되면 더 이상 ‘멈추기’ ‘퇴장하기’ ‘마이크 앞으로 가기’ ‘전환하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왜냐하면 움직임 역시 충동적인 활동으로 저를 끌고 가기 때문이에요. 저는 춤 기법들이 제 몸에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죠. 춤 기법을 배우는 것은 몸의 가동범위를 넓히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실시간으로 움직임을 창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더 깊이 즉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충동성과 직관성의 차이를 탐색하게 되었어요. 물론 제가 찾고 있었던 건 제 직관이었고, 영감이기도 했어요. 이런 단어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이건 의식의 상태이기도 하고, 창의성의 상태이기도 해요. 그리고 대중과의 공감, 감정적 연결이죠. 하지만 충동적으로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돼요. 공감 능력도 사라지죠. 그래서 ‘이게 도대체 뭘까?’라는 질문이 저를 포스트모던 무용가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끌었어요. 그건 1980년대쯤이었고, 저는 스티브 팩스턴을 만났어요. 그는 접촉 즉흥을 했었죠. 저는 접촉 즉흥를 배운 적이 없어요. 제 몸에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스티브와 함께 춤을 추고 작업도 했어요. 희한하게도, 그가 저와 작업할 때는 실제로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조금은 접촉했지만, 그 정도였어요.
그리고 저는 메리 풀더슨을 만났고, 그녀는 저에게 포스트모던 댄스에서 BMC(바디 마인드 센터링), 같은 것들을 소개했어요. 그들은 신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 있었고, 저는 그것을 보고 ‘이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또 다른 테크닉을 배우고 싶지 않았어요. 스티브의 접촉 즉흥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커닝햄 테크닉도 했고, 마사 테크닉도 했어요. 하지만 이건 몸에 대한 연구였어요.
메리 덕분에 다팅턴 예술대학에서 선임강사로 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제 커리어를 잠시 멈추고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어요. 저의 연구는 다학제적이었어요. 음악가들과 작업하고, 세계의 음악을 공부했죠. 저는 이런 다학제적 작곡 방식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존 케이지 워크숍에도 가서 우연성 개념도 배웠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가 깨달은 건, 무용에 과학을 끌어오려는 과학자들에게 저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쪽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어요. 제가 찾고 있던 것은 그게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한동안 좀 방황했어요. 그러다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느낌의 진화』 (The Feeling of What Happens)라는 책을 소개 받았어요. 그는 많은 책을 썼고, 만약 윤리학에 관심 있는 철학자라면 정말 읽어야 할 사람이에요. 그의 스피노자 관련 책도 정말 훌륭하죠. 신경과학자이지만요. 저는 점차 발달하는 뇌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이것은 제가 오늘 이야기한 주제의 시작점이기도 했어요. 충동이란 무엇인가, 직관은 무엇인가. 한 뛰어난 신경과학자가 말했어요. 두 사람이 길을 건너며 대화를 나누다가 왼쪽에서 차가 오는 걸 보고는 갑자기 몸을 뒤로 물러나 살았어요. 그건 충동이죠. 자기 자신을 살리는 작용. 그리고 뇌의 뉴런 패턴 안에 이런 기능이 꼭 필요하죠.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돌아보니, 두 살짜리 아이를 쳤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 순간 책임이라는 감정이 생기고, 공감이 발생해요. 그러니까 충동에는 결과가 없어요. 충동 이후에, 아이를 넘어뜨렸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비로소 결과가 발생하죠. 그리고 거기서 공감이 생겨요. 공감은 직관과 맞물려 있고, 이 둘은 서로 영향을 주죠. 신경과학적으로 정말 지혜로운 구조예요.그러니까 충동은 자기 자신을 살리려는 작용이에요. 제가 무대에서 몸으로 충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건 즉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지만, 결국 자기보호 본능이죠. 그렇게 되면 저는 공감 능력을 잃고, 직관도 잃고, 듣는 능력도 잃게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창작 과정에서도 이런 충동적 상태는 절대 허용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제 워크숍에서는 즉흥이라는 단어가 항상 문제가 돼요. 그런 ‘흥분 상태’는 허용되지 않아요. 저는 실제로 멈추라고 시켜요. “지금 당신이 그런 상태에 있음을 인지하라” 그리고 그것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죠. 그건 대부분 ‘멈추기’ ‘아기처럼 서 있기’ ‘나가기’ 같은 것들이에요.







즉흥은 당신의 작업에서 어떤 의미를 갖나요?
저에게 즉흥은, 제 거대한 구성 안에서 미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어떤 것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다학제적 연구자이기 때문에 음악의 작곡 방식을 공부하면서 바로크, 고전, 재즈, 힙합, 팝, 케이팝까지 다양한 장르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안의 아주 미세한 지점에서 즉흥성을 발견할 수 있어요. 즉흥은 그만큼 작지만, 분명히 존재하죠. 저는 즉흥을 제 작업의 일부라고 보지 않아요. 저의 과정은 ‘실시간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워크숍을 통해 공연 예술가들을 훈련시켜, 그들이 실시간 선택을 할 수 있는 기술과 숙련도를 갖추도록 하는 것이죠. 그걸 할 수 없다면, 제 작품에 참여할 수 없어요. 그들이 할 수 없다면, 저는 작품을 더 타이트하게 만들죠. 오늘날 많은 안무가들이 느슨한 리허설을 하다가 매우 짜인 작품을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하는 것을 자주 봐요. 하지만 저에게 창작은 느슨함에서 타이트함까지 아우를 수 있는 과정이에요. 중요한 건, 그 퍼포머가 실시간으로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죠.

즉흥은 공연 중에 발생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겠군요?
맞아요. 즉흥은 퍼포머가 책임을 지고 수행해야 할 일부이며, 그건 창작자의 방식에도 함의되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즉흥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보는 게 더 좋아요. 즉흥은‘하는 것’이지 ‘무엇’이 아니에요. 명사로 보는 순간 문제가 생겨요. 춤에서는 말 그대로 ‘즉흥 컬트’ 같은 것도 존재해요. 즉흥은 안무의 반대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 도피처가 되기도 해요.저에게 즉흥은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이건 이분법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즉흥과 안무는 같은 거예요. 서로 다르게 연구되었을 때는 다른 모습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아요.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에게 즉흥성이 내포되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발레 같은 기존 구조를 모방하게 돼요. 구성이 없으면 결국 충동적이 돼요. 아이들이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구르기를 배우려는 것과 같아요. ‘구성’이란 바로 창의성이 필요한 요소예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때, 당신의 생각을 어떻게 공유하시나요? 모두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졌는데, 당신이 작품을 만들 때 그들과 어떻게 협업하시나요?
먼저, 사람들을 깨우는 것이 중요해요. 예를 들어, 무대에서 한 번도 말해본 적 없는 무용수들도 있죠. 그들은 처음엔 상상도 못하다가 “아, 나도 할 수 있네!”라는 걸 깨닫게 돼요. 그 다음 단계는 읽고 써야 한다는 걸 아는 거예요. 무대에서 그냥 말할 수는 없어요. 글을 써야 하고, 그걸 외워야 하고, 글을 이해하려면 책을 읽어야 해요. 저는 평생 희곡 전체, 시, 노래 가사를 외워왔어요. 셰익스피어의 독백도 몇 개는 암기하고 있고요. 사람은 글을 쓴다고 해서 작가가 되는 게 아니에요. 글을 읽고 글을 사랑할 때 작가가 되는 거예요. 무대에서 말할 수 있다는 것, 창피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말해야 할 무언가’가 있어야 해요. 그게 무용으로만 말할 수 있다면, 무용에 머물러야 하고요. 음악으로만 말할 수 있다면, 음악에 머물러야 해요. 그래서 결국 중요한 건 개별 예술가예요. 그들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해요. “나는 복합적인 표현 수단이 필요한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거예요: “당신은 관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어떤 예술가든, 그 질문이 출발점이어야 해요. 그리고 “말하지 않으면 관객에게 도달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단순히 “말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안 돼요. 그걸 공부해야 하고, 구성에 대해 공부해야 해요. 말을 쓰려면 희곡을 공부해야 해요. 왜냐하면 연극에서의 언어는 작곡, 시, 음향학, 독백, 대화와 연결되니까요. 이건 다 극장에서 발생하는 일이에요. 따라서 이 특정 분야의 글쓰기 훈련이 필요해요. 학문적 글쓰기와는 완전히 달라요. 저도 교수로서 학술 글쓰기를 공부했지만, 이건 완전히 다른 영역이에요. 말로 표현될 것이므로, 발성 훈련도 어느 정도는 해야 해요. 마이크를 사용할 거라면, 마이크 사용법도 익혀야 해요. 음악가들과 협업하거나 밴드의 일원이 될 경우엔, 악보를 읽고, 음악을 공부하고, 음악의 역사를 살펴봐야 해요. 제가 다학제 작업을 하는 건 유행이라서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그렇게 된 거예요. 물론 다학제 안에서도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예술가들도 존재하죠.
그리고 저는 모든 안무가들에게 자신만의 사운드트랙을 만드는 능력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항상 음악가에게 “내 작품에 맞는 음악 좀 만들어줘”라고 부탁만 하지 말고, 직접 음악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협업할 때 충돌이 생기는 건 흔한 일이에요. “이게 정말 내가 원한 작품인가, 아니면 작곡가가 원하는 건가?” 이런 질문이 생기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 소리를 만들고, 사운드에 흥미를 가지라고 말해요.

당신의 작업 구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나요? 작업 사례로 함께 이야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시작점은 어디에서든 올 수 있어요. 제가 말했듯, 저는 작품을 시작할 때 한 단어가 필요해요. 그 단어가 제게 “이건 이런 작품이야”라고 알려줘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느낌이 올 때, 그게 정확히 뭔지 몰라도 감정적으로, 직관적으로 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단어 하나가 떠오르고, 그 단어가 바로 ‘걱정’(worry)이었어요. 그런 다음 저는 그 단어에 대해 쓰고, 조사하고, “걱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뇌에서의 신경작용, 물리적 느낌, 분위기,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주제를 바탕으로 영상을 만들어 무대 배경에 사용했어요. 사실 그 영상이 그 작품에서 제가 하는 퍼포먼스나 음악보다도 중요했어요. 어떻게든 그 영상이 모든 걸 설명해줬어요. 그게 바로 그 작품이에요. 그 안에 있는 모든 이미지, 이미지 간의 전환까지 모두 제가 만들었어요. 영상을 통해 작품이 명확해졌고, 이제 저는 누군가와 함께 그 작품을 공연할 수 있어요. 라이브 음악도 있었고, 사운드트랙도 있었고, 다양한 형식이 있었어요. 그 작품을 잘 아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죠.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 때는 스스로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 열어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만든 또 다른 작품은 〈Cage〉라는 작품인데, 검정 드레스 하나에서 시작되었어요. 발목까지 내려오는 드레스였고, 그 이미지에서 출발했죠. 그 작품은 억압에 대한 거였어요. 지금 이 세상에서 감정, 제도화, 모든 것이 억압되고 있죠. 그게 작품의 주제였어요. 사람들은 이 작품이 존 케이지에 관한 것인 줄 알았어요. 물론 어떤 면에서는 맞지만, 진짜는 우리의 감정이 감옥(cage)에 갇혀 있는 것에 관한 거예요. 그 작품에는 텍스트 5개, 가발 3개를 가지고 전 세계를 돌며 공연했어요. 매번 다른 나라의 사람과 듀엣으로 했어요. 그녀는 리허설 동안 자신의 부분을 쓰고, 함께 공연했죠. 그래서 〈Cage〉는 세계 곳곳에서 협업 형태로 수행됐어요. 사운드트랙도 매번 그 나라에 맞게 바꿨어요. 영상, 검정 드레스, 가발 3개, 의자 하나, 그리고 그녀가 가져온 텍스트, 그리고 질의 해부에 관한 텍스트가 포함되어 있었어요. 그 텍스트가 있었기 때문에, 저는 늘 여성과 함께 공연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그 작품은 꽤 페미니즘적인 작업이 되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낙태 합법화 이틀 전에 공연했어요. 거기에서 저는 그 프로그램을 주도한 여성과 인터뷰도 했을 때 들었던 것은 관객 대부분이 페미니스트였다는 것이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연 중 하나였어요. 그 여성은 공연을 정말 멋지게 해냈고, 그 나라의 유명한 팝스타 음악도 사운드트랙에 넣었어요. 그녀는 마이크에 서서 멋지게 발언했죠. 이런 방식으로 〈Cage〉는 저에게 국제적인 프로젝트가 되었어요. 일본에서도, 홍콩에서도 했고, 세계 곳곳에서 했죠. 그리고 그건 늘 “나는 방문자고, 당신이 이 나라의 주인공입니다.”라는 태도로 이루어졌어요. 제가 가져간 것은 스코어와 작품뿐이었죠. 그건 실시간을 활용하는 흥미로운 방식이에요.

이전 인터뷰에서 공연에서의 즉흥 상황에서 경험하게 되는 ‘굴욕’은 나쁜 게 아니라고 하셨잖아요. 관객 앞에서 말할 때의 굴욕감, 그건 자연스러운 거고, 솔직한 거고, 절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요.
맞아요. 그리고 충동적인 행동이나 흥분 상태를 피하려면, 먼저 그런 굴욕감을 받아들여야 해요. 그게 치유의 시작이죠. 굴욕은 정상적이에요. 사람들이 충동적으로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취약함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걸 그냥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해요. 그리고 매번 겪을 때마다 치유적인 경험이 돼요. 만약 공연 중에 그런 걸 겪지 않는다면, 저는 오히려 안타깝다고 느껴요. 항상 정해진 구조 속에서만 작업한다면, 언젠가 몸에 부상이 올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30살쯤에 무릎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죠. 저는 취약함과 굴욕감이 우리를 보호한다고 생각해요. 공공이나 국가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 몸을 지키는 데 필요한 감정이에요. 아무도 우리에게 이런 걸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자발적으로 이걸 선택한 거예요. 이건 종교적 고행이 아니에요. 십자가에 매달리는 그런 게 아니죠. 그냥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굴욕적인 일이에요.

그렇다면, 무용수가 관객과 만나는 그 이벤트에 열려 있으려면 어떤 자질이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건 ‘듣기’(listening)예요. 태아처럼 듣는 방식이죠. 엄마 뱃속에서 진동을 감지하며 듣는 것처럼요. 듣는다는 건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에요. 그리고 두 번째는 선택(choice), 세 번째는 퇴장(exit)이에요. 항상 나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멈춤, 퇴장 이런 것들이 저에겐 핵심이에요.
이 세 가지를 배우기 위해서는 각각에 대해 수많은 레이어가 있고, 워크숍을 통해 연구해야 해요. ‘듣기’란 무엇인지, ‘퇴장’이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려요. 왜냐하면 이건 금세 흥분 상태로 치닫기 쉽거든요. 무대에 나가는 것 자체가 선택이죠. 그 순간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선택하게 돼요. “나는 선택한다, 선택한다, 또 선택한다.” 하지만 듣지 않고 선택하지 마세요. 충동이 아니라, 직관과 공감에서 선택해야 해요.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죠. 그게 바로 선택이라는 단어 안에 포함된 층위들이에요. 작곡에서의 선택이란, 멈춤, 흐름, 퇴장 같은 것이에요. 멈춤에서 퇴장으로, 흐름에서 멈춤으로, 멈춤에서 퇴장으로. 결국 퇴장이 핵심이에요. 구성이란 결국 퇴장의 기술이에요.

하지만 무용수들이 그 타이밍을 어떻게 정할 수 있죠?
타이밍이 바로 선택이에요. 우리는 시간 안에서 선택하는 거예요.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그건 시간 속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무책임한 행동이에요. 예를 들어 5살짜리 아이를 치는 것처럼요. 하지만 직관, 공감, 인식 안에서 선택한다면, 그건 시간 속에서의 진짜 선택이 되는 거예요. 우리는 특정 순간에 선택을 하게 돼요.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한다기보다는 퇴장을 선택하고 다른 곳에 도달하는 거예요. 그 전체를 그렇게 이해해야 해요. 왜냐면 그건 곧 미래이고, 작품은 경계가 유동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확신할 수 없어요.
그리고 관객에게 중요한 건 당신이 무엇을 앞으로 할 것인지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당신이 무엇을 남겼는가예요.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남기는지 알고 있어야 해요. 그리고 그걸 기억하는 감각내장 기억(visceralmemory), 그건 단지 다음에 무엇을 할지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한 것들이 몸 안에 남는 거예요. 아기가 선 채로 멈춰 있는 순간을 보면, 그건 하나의 시간 속 순간이에요. 그들은 기억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처음 해보는 거죠. 하지만 그 순간에 시간 안에서 그걸 해내요. 정말 기적 같이 멋진 일이에요. 그게 바로 창조성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손가락을 움직이는 법을 배운 것, 그게 우리가 한 가장 창조적인 일이죠.

그럼 당신은 관객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길 기대하나요?
저는 항상 관객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요. 관객에 대해 제가 신뢰하는 것은 정직함이에요. 그리고 그들이 이 자리에 오기로 선택했다는 것 자체도 신뢰하죠. 2025년에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에요. 지금 우리는 모이지 말라는 사회 속에 살고 있죠. 팬데믹, 테러, 이런 것들 때문에요. 그래서 저는 무대에 서기 전, 그들이 모였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를 전해요. 그리고 그 외엔, 저는 관객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요.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해요. 물론 입장료는 기대하죠. (웃음)그런데 진짜 대화는 공연 후에 이루어져요. 누군가 다가와서 “그 작품을 보며 제게 어떤 기억이 떠올랐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고, “그 영상, 그 그림 누구 작품이죠?”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죠. 사람마다 다른 식으로 기억하게 돼요. 그런데 제가 딱 하나 물어보는 게 있어요. “그 공연 몇 분 같았나요?” 저는 보통 한 시간짜리 공연을 해요. 그런데 누군가 “20분 같았어요”라고 말하면, “감사합니다. 미션 성공이에요.”라고 해요. 그들에게 시간의 감각을 없애준 거죠. 그럼 전 “잘됐네요. 이제 그 기억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세요”라고 해요. 하지만 누군가 “1시간 같았어요”라고 말하면, “정말 유감이에요. 중간에 나가셨어야 했어요”라고 하죠. 저는 누군가에게 ‘1시간 같았다’는 인상을 주고 싶진 않아요.

구성을 즉흥과 반대적 개념으로 사용하지 않고 즉흥을 창작 도구이자 공연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는 당신의 다학제적 작업이 매우 흥미롭네요. 다음에 당신의 작품을 직접 볼 기회가 있길 기대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함께 할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한석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무용이론 전공 예술사 과정 후 영국 서리대학교에서 무용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이론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2025. 6.
*춤웹진

select count(*) as count from breed_connected where ip = '216.73.216.235'


Table './dance/breed_connected' is marked as crashed and should be repai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