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순열선생님 紙上 특강Ⅰ
지금 우리에게 사라진 것은 ‘우아함으로 날아 오르려는’ 그 무엇
  • 일    시
    2026. 5. 25. 오전 10:00
  • 장    소
    경기도 퇴촌면 이순열 선생님 댁
진행·녹취·정리│ 이지현_춤비평가

선생님께서는 작년에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ASSIST) 석좌교수가 되시며 교수 대상의 특강을 하셨고, 그때의 강의 내용은 이미 소개한 바 있다. 당시 특강은 교내의 반응이 좋아 한 차례 더 요청되었으나 필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할 수 없었고 그 아쉬움이 이번 인터뷰를 하게 된 한 이유이기도 하다. 

올해 찾아뵙고 인터뷰를 하려던 일정은 1월 말 선생님께서 낙상으로 대퇴 골절 수술을 하시게 됐다는 소식으로 4달 정도를 미뤄져 이번에 진행되었다. 

선생님께서는 근래에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문명의 핵심에 대해 마지막으로 정리하고 무용인들과 나누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고, 나는 이전에 선생님께 인상깊게 들었던 알렉산더 포프의 〈비평론〉과 중국의 문학비평서인 〈문심조룡〉까지 포함해 말씀해 주시기를 요청드렸다. 

요즘에서야 집안에서 워커를 밀고 걸으며 재활 중이신 선생님께서 2시간 동안 의자에 앉아 놀라운 집중력으로 인터뷰라기 보다는 ‘지상 특강’을 해주셨고, 그 내용을 2편으로 나누어 싣는다. 

      

이지현: 선생님 잘 회복 중이셔서 다행입니다. 몸이 많이 불편하실텐데 이 시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컨디션이 허락되는 만큼 진행하면 되니 불편해 지시면 말씀 주세요.

지난 ASSIST 특강에서 파이데이아(Paideia)까지 들었습니다. 



  

이순열, 베르나 예거(Werner Jaeger)의 〈Paideia_The Ideals of Greek Culture〉 1권 ⓒ이지현



이순열: 파이데이아를 제쳐놓고 그리스 문화를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옆에 놓여있던 베르나 예거(Werner Jaeger)의 〈Paideia_The Ideals of Greek Culture〉 1권을 들어 보여주신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 사람들처럼 많은 걸 남겨놓은 민족은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리스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정말 각박한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그 비좁은 땅은 바위 투성이고 비옥한 땅이라고는 별로 없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 바다는 계속 으르렁거리고 포효하고... 그러니까 땅도 각박하고 또 그 땅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는 포효하는 그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거기서 그 사람들의 지혜가 생겨난 건데, 그게 ‘파데이 마토스(Pathei mathos)’ 라는 말 속에 압축되어 있어요.  

이는 아이스킬로스(Aeschylus)라는 비극 작가의 〈오레스테이아(Oresteia)〉 3부작에 나온 말인데 고난 속에서 빛을 찾고 지혜를 얻는다는 뜻이야. 그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기본 사상으로 무르 익었지, 그리스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 참 우리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 것들이 수없이 많아.


토포테지아는 현실을 넘어선 꿈의 세계, 우리 상상력 속에서 창조된 세계


그리스 역사가들은 별로 이야기 안 한 거지만 그리스 정신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토포그래피(Topography)하고 토포테지아(Topothesia)라고 생각해요.

토포라는 것은 장소(place)인데 토포그래피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우리들이 목격할 수 있는 땅의 모습이고, 이걸 넘어서 꿈의 세계 우리 상상력 속에서 창조된 세계가 토포테지아야. 폴 디일(Paul Diel)이라고 하는 프랑스 철학자는 토포그래피하고 토포테지아를 banalisation하고 elevation이라는 개념으로 풀어요.

그 banal이라는 프랑스 말은 그냥 평범한 진부한, 꿈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거야. 그래서 그들은 이 척박하고 속된 세계에서 이걸 벗어나려고 하는 엘리베이션 ‘고양’ 그러니까 토포테지아를 향해 날아 오르려고 했던 거예요.  

우리들이 이 속된 세계에 이렇게 침몰해 있는 것은 생명이 없이 죽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거기서 치솟아서 다른 세계 우리 상상의 세계로 날아오르려고 할 때만 인간은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토포테지아를 꿈꾸면서 신화를 만들어 내고 그걸 믿었어요. 그 신화 속에 가장 근간을 이룬 것이 바로 이 엘리베이션, ‘고양’이 근간을 이루지요.

그러면 날아오르려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되나? 날개가 있어야죠.


그리스 신화의 가장 근본적인 것은 늘 ‘날개’가 있어


델피의 아폴로 신전도 굉장히 각박한 땅인데 거기가 파르나소스 산이야 뮤즈들의 고향이지. 그리고 뮤즈는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로 날죠. 제우스의 사자(使者) 심부름꾼 헤르메스는 온몸이 날개로 가득 차 있어요.

머리에는 페타소스라는 날개 돋친 모자를 쓰고 손에는 카두세우스라는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그 지팡이에도 날개가 있어요. 마지막으로 발에 신고 있는 샌들, 탈라리야에도 날개가 있어. 온몸에 날개 투성이야. 그리스 사람들이 엘리베이션, 토포테지아 그 꿈의 세계로 날아오르기 위해서 그런 신들을 만들어낸 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 사람들은 각박한 땅에서 날아오르는 그 꿈의 세계와 그곳으로 날아오르기 위한 날개를 신화를 통해서 만들어낸 거지.

그리스의 모든 것은 역사가 흐르면서 시간이라는 먼지 속에 묻히죠. 그 묻힌 것을 캐낸 것이 고고학인데 그 고고학 중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는 슐리만 같은 사람이 땅에서 유물을 찾아내는 유형 고고학이고, 또 하나는 문화, 사상, 꿈, 철학 이런 무형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파묻혀 버리는데 그걸 파내는 것이 ‘무형 고고학’이지. 그런데 그 유형 고고학보다도 무형 고고학이 훨씬 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해요. 


르네상스라는 것도 바로 그 무형 고고학의 개가야. 무형 고고학에서 캐낸 것 중에 소중한 것 중에 하나가 ‘파이데이아’야. 그리스 문명이라든가 문화가 사라지면서 완전히 묻혀버리고 잊혀져 버린 것이었지. 그것을 발굴하기 시작한 것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키케로(Cicero)부터 시작하지만 파이데이아를 발굴하는 데 애를 많이 쓴 사람이 바로 이 책을 쓴 ‘베르나 예거’지.


파이데이아, 아테네의 교육방식

이 파이데이아야말로 그리스 사람들이 구축해 놓은 가장 뭐랄까 눈부신 업적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그냥 표면적으로 보면 파이데이아라는 것은 아테네 교육의 방식이야.

말하자면, 한 고랑 한 고랑만 일궈 가지고는 밭이 안 된다. 여러 고랑을 합치고 융화하고 종합하고 그렇게 해야 열매가 제대로 맺을 수 있다는 것이 파이데이아의 정신인데,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파이데이아에 깊숙이 심어놓은 것이 칼로스(kalos)라는 미, 아름다움이야. 


그리스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거의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게 “By no people has the beauty been so highly esteemed as by the greek” 그리스에 대한 책을 읽으면 여기저기 이 말이 나와요. 역사상 모든 민족 가운데 그리스인 만큼 미를 소중하게 여긴 민족은 없었다는 얘기지.



아름다움은 지속적인 ‘정화’로부터

그러니까 그 그리스의 파이데이아 라든가 토포테지아 라든가 그 안에 전부 다 아름다움 깔려 있어요. 트로이 전쟁도 결국 미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아프로디테 비너스를 최고의 여신으로 여긴 것도 그들의 미의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끊임없이 그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가 하면 거기에 purification ‘정화’라는 것이 깔려있어요. 

그러니까 아름다움은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화하고 다시 깨끗하게 해서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산물인 거지. 아프로디테가 쉬지 않고 바람을 피우잖아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을 수 있는 비밀은 아나디오메네(anadyomene)라는 수식어 속에 숨어 있어요. ‘아프로디테 아나디오메네’ 그것이 진짜 아프로디테지요.

아나디오메네란 ‘물에서 태어난’이란 뜻인데 아프로디테는 아무리 바람을 피워도 물속에 들어가 목욕만 하고 나오면 깨끗한 처녀로 다시 태어난다는 거지요. 


르네상스, 정화를 통해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것


퓨리피케이션을 통해서 다시 태어나는 것, 그 그걸 이렇게 껍질을 벗겨보면 그리스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 얼마나 정교하고 의미심장한 것들이 그 속에 숨어 있는지 참 놀라게 돼요.

그리스인들이 그 아름다움을 형성하는 주춧돌로 다듬어 놓은 것이 ‘파이데이아(Paideia)’지. 파이데이아란 압축해서 이야기 하자면 교육에서 어느 한가지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양분을 두루 섭렵해서 전인교육을 지향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즘 자주 거론되는 인문학이라는 것도 파이데이아가 그 묘상(苗床)인 셈이지. 

파이데이아와 대칭되는 교육이 바나우소스(banausus)인데, 오직 한 가지에만 집착하는 일종의 기술교육이지. 다른 것 모두 외면하고 춤만 추면 된다고 주장한다면 바나우소스의 저격(低格)으로 추락하고 마는거야. 

그런데 그리스 문화의 뿌리였던 그 파이데이아는 그리스의 매몰과 함께 망각속으로 묻혀버리고 오랫동안 encyclopedia라는 말 꼬리에 붙어있는 pedia로 겨우 그 흔적이 남아있을 정도였거든. 그러던 중에 베르너 예거가 그 파이데이아를 캐내면서 파이데이아에 대한 관심도 되살아나게 된 거지. 



‘지고지선’을 추구하는, 아레테

파이데이아 3부작 세 권으로 된 이 대작 가운데 맨 처음 첫 장이 뭐로 시작하냐면 노빌리티(nobility/고귀함)와 아레떼(Arete/지고지선)라는 걸로 시작해요.

파이데이아의 그 밑바탕에 뿌리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까 아름다움 (칼로스/Kalos),라고 했는데 칼로스와 함께 노빌리티-고귀함과 아레떼-지고지선이 그리스 문화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야.



아레떼의 인덱스 ⓒ이지현



알렉산더대왕이 저 방글라데시까지 아나바시스 대원정을 거치고 돌아오면서 오피스(Opis)라는 곳에서 대연회를 베푼 적이 있는데 거기서 아레떼에 대한 알렉산더의 명언이 터져 나왔지.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인들은 세상에는 그리스인과 변두리의 이민족 – 그것을 그리스인은 바베어리언이라고 불렀는데 처음에는 야만인이라는 뜻은 없었고 그저 그리스 역외의 이민족 정도의 뜻이었어요.
 

아무튼 그리스인과 그리스인 아닌 종족으로 양분된다고 생각했어요. 은연 중에 그리스인의 우월성을 풍기고 있는 거지. 나치당이 세상은 순수한 아리아인과 그 밖의 다른 잡종들로 나뉜다고 주장하면서 잡종들을 열등족(untermensch)라고 폄하했던 것과 비슷해요. 

그런데 알렉산더 대왕은 세상에는 그리스인도 없고 바베어리언도 없다. 오직 아레테를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을 뿐이라고 폭탄선언을 한 거야. 

동양의 덕(德)과도 알맥 상통하는 아레테의 여러 뜻을 베르너 예거는 〈파이데이아〉라는 저서 곳곳에서 수도 없이 많이 페이지에 걸쳐 설명하고 있지만, 그리스인들은 결국 드높음에 대한 그들의 갈망이 짙게 깔려있는 지고지선(至高至善)의 이미지를 그 말 속에 함축시켜 놓았던 거야.

모든 것은 정점을 지나면 조락(凋落)의 계절을 맞게 되고 그리스 또한 폴리스 사이의 분쟁 등으로 서서히 기울다가 마침내 궤멸하자 그 뒤를 로마가 잇게 되지. Golden Age로 일컬어지는 전성기의 로마에서는 베르겔리우스, 호라시오, 오비디우스, 키케로 등이 그리스의 꿈을 다시 소생시키려 했고, 그 기운이 훗날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르네상스로 폭발한 거지. 그레상스는 흔히 15. 16세기의 현상이라고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단테(1265-1321)부터 싹트기 시작했어요. 

“인생 여정의 한 복판에 이르러 나는 깜깜한 숲속(selva oscura)에서 길을 잃어 버렸다.”   


신곡은 그렇게 시작되는데, 그 깜깜한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그가 암흑 탈출의 안내자로 모신 분이 그리스에 흠뻑 빠져 있던 로마의 시인 베르겔리우스였지. 그 베르겔리우스를 안내자로 모시면서 단테는 지옥에서 연옥을 거쳐 빛으로 가득찬 천국으로 향하게 되는데, 단테가 세상을 떠난 뒤, 그 빛의 천국이 르네상스로 솟아 오른 거지. 

단테의 배턴을 이어 받은 페트라르카(1304-1370)가 떠 받들었던 분은 로마 Golden Age의 빛나는 별이었던 키케로였어. 키케로도 베르겔리우스처럼 그리스에 흠뻑 심취해 있었으니까, 피렌체 출신의 단테나 페트라르카는 로마를 거쳐 그리스로 그들의 숨통을 이어가고 있었던 거지. 그리스는 파이데이아에서 그 정수를 뽑아 인문학(humanitas 또는 studia humanitas)의 체계를 확립했고, 이 인문학이 르네상스의 뼈대로 뿌리 박은 거지. 





이순열 ⓒ이지현



그리스 학자들을 두 손 벌려 받아 들였던 곳, 피렌체


단테와 페트라르카가 싹트게 한 그리스 문화 부활의 기운에 살루타티(Coluccio Salutati, 1332-1406), 브루니(Leonardo Bruni, 1370-1444)등이 기름을 부어 그 기운을 더욱 드높여 르네상스를 위한 발효가 시작되고 있었을 때, 1453년 고대 그리스의 명백을 이어왔던 비잔티움이 멸망하게 되지. 그 때 갈 곳이 없어진 그곳의 그리스 학자들을 두 손 벌려 받아 들였던 곳도 피렌체였어. 그 후원자가 메디치 가문을 융성으로 이끌었던 코지모(Cosimo de Medici, 1389-1464)였는데,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르네상스 개화에 공헌했던 사람이야.

그가 끔찍이 사랑했던 별장 카레찌(Careggi/ 현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조차도 가장 후미진 곳만 자신의 몫으로 남겨 두고, 나머지는 송두리째 피치노(Marsiliv Ficino, 1433-1498)에게 양도하여 ‘플라톤 아카데미’를 개설하게 했던 거야. 그곳에 화가 보티첼리를 비롯한 모든 인재들이 모여들어 그리스의 예술, 문화, 철학, 꿈을 탐구했는데, 많은 르네상스 맨(Renaissance man)이 여기서 탄생하게 돼요. 르네상스 맨이란 오직 한 우물만 파는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관심을 갖고 지식을 쌓은 통섭형 인재를 가리키는 말인데, 르네상스 맨이 파이데이아라는 묘상에서 영근 열매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지.


플라톤 아카데미에서 배출된 인물 중에 가장 매력적이고 대단한 존재가 삐코(Giovanni Pico della Mirandola, 1463-1493)였어. 수많은 언어에 능통했던 다국어 능력자(polyglot)였던 그는 뭐든 한번만 보아도 사진기처럼 정확하게 복사해내는 놀라운 기억력의 소유자이기도 했는데, 그가 후세에 높이 평가되는 까닭은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르네상스 선언문’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담론’이라는 탁월한 글을 남겼기 때문이야. 

여기서 특히 돋보이는 것이 scala naturae(존재의 계층)에 대한 그의 탁견(卓見)인데, 낮은 데서 높은 데까지 모두 제자리가 정해져 있는 세상의 존재 중에 유독 인간만 정해진 자리가 없다는 거야. 그 계층(scala)의 자리라는 것을 다른 말로 하면 격(格)인데, 원숭이 자리는 원격(猿格), 돼지 자리는 돈격(豚格), 벌레 자리는 충격(虫格)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신이 만물을 창조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고 보니, 자리가 꽉 차서 인간에게 고정된 자리를 줄 수 가 없어, 네들 자리는 네들이 알아서 마음대로 고르도록 했다는 거야. 인격(人格)의 가변성을 부여한 것인데 딱하게도 많은 인간들이 날아오르려 하지 않고 원격, 돈격, 충격 등 저계층(低階層)의 진탕 속에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 물으면서 허용된 최상의 자리로 날아 오르라는 펄펄 끓는 메시지를 삐코는 scala naturae에 담아냈던 거야. 르네상스 정신에는 항상 드높음과 고양(高揚)에의 갈망이 짙게 깔려 있어요.


이지현 : 피렌체에서 불붙었던 그 르네상스의 불꽃은 어디로 튀었을까요?

이순열 : 그 불길은 유럽의 곳곳으로 퍼졌지만, 어느 곳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그 불꽃을 이식하려 했던 곳은 프랑스였고, 그 횃불을 높이 추켜든 사람이 프랑스와 1세였어요. 왕가에서 평민을 며느리로 데려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대였는데도 그가 메디치 가문의 딸 카테리나(Catherine de Médicis)를 며느리로 데려 온 것은 르네상스 이식(移植)의 방편이었지. 

카테린느의 삼촌이자 보호자였던 교황 클레멘스 7세는 그녀를 황실로 시집 보내면서 막대한 지참금을 약속했지만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다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그 지참금이 공수표가 되어 버렸다면 노발 대발해야 마땅할텐데도 프랑스와 1세는 “계집애 하나 얻어 놓고 보니, 온통 발가벗고 왔네 (J'ai reçu la fille toute nue!)”라고 말하면서 껄껄 웃었다는 거야. 카테린느는 지참금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풍요로운 르네상스의 자산, 아태리 건축가들, 화가, 요리사, 무용가들을 데리고 왔거든.

메디치가에서 사라져가던 그리스 문헌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어 르네상스 생성의 텃밭을 가꾸었듯이, 프랑스와 1세도 사라져가는 고문헌을 모으는데 심혈을 기울여 도서관을 꾸렸어요. 그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의 모태예요. 그 별칭이 T.G.B.(Très Grande Bibliothèque) 인데 고속철 T.G.V.(Train à Grande Vitesse) 와 함께 프랑스의 자랑거리지. 

그리고 프랑스와 1세가 만든 것 가운데 또 하나 대단한 것이 ‘콜레쥬 드 프랑스’라는 학교인데 대학마다 모토가 있잖아요. 이 학교의 모토가 도케트 옴니아(Docet Omnia), ‘우리는 모든 것을 가르친다’, 파이데이아 교육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지. 



이순열 ⓒ이지현



이 흐름이 한국으로 올 거라고 생각해

이지현 : 올해 
한국하고 프랑스하고 수교한 지 140주년이 됐다고 해요. 아비뇽 축제에 우리나라 연극 작품하고 무용하고 이번에 초청을 했고 얼마 전에는 프랑스 주요 매체의 기자들이 방문해서 미리 한국의 무용과 연극에 대해 들어보고자 해서 저도 간단한 미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주제가 한국어 특집이라고 해서 아주 신선하게 생각됐어요, 작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순열 : 프랑스로 이어졌던 르네상스의 흐름이 우리나라로 올 거라고 나는 생각해요.우선 세계를 주도하는 흐름이 되려면 그 나라 언어가 이렇게 퍼져야 돼요. 근데 지금은 영어가 그렇지만 영어 전에는 전 세계를 프랑스어가 지배를 했거든. 한때 전 세계 왕가에서는 전부 프랑스 말을 썼어. 앞으로는 한국어가 그렇게 되리라고 난 생각해요. 근데 한국어가 전 세계의 주도적인 언어가 되고, 우리가 문화적인 주도권을 잡으려면 지금 유행하고 있는 K-pop, K-wave 그거 가지고는 안 되고, 격상(格上)을 위한 metamorphosis 변신을 해야 돼요.

어떻게든 격상되어야 하는데, 홍신자씨 남편인 사세라는 사람 그분이 독일사람인데, 그 사람도 지금 한국의 케이팝이 전 세계에 케이웨이브로 넘실거리고 있지만 그걸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 한류가 엄청난 기세로 지금 막 퍼져가고 있어도아주 격이 낮은 거여서 그건 언젠가는 침몰할텐데, 우리의 춤 K-dance가 날개를 펴고 날아 오를 때 제대로 된 K-wave의 여명이 밝아 오리라고 생각해요.


(다음호에 계속)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6. 7.
사진제공_이지현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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