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공개 심층 인터뷰: 박은화
현대무용가 박은화 공개 심층 인터뷰 2
  • 일    시
    2025. 10. 18.(토) 17:00 ~ 20:00
  • 장    소
    예술가의집(서울 대학로)

인터뷰이│ 박은화       ​ 

인터뷰어│ 김채현·채희완·권옥희 

후   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튜닝의 전개

김채현: 참고로 말씀드리면은, 튜닝이라는 작품의 첫 시작은 2000년도이고, 그다음에 튜닝이라는 말을 접한 것은 언제이지요?

박은화: 첫 작품 하기 전부터였습니다.

김채현: 전후는 있어도 같은 해였죠. 그리고 튜닝 시리즈 6의 연도를 확인하니 2003년입니다. 튜닝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조짐을 보였지요. 그러니까 당시 2000년부터 2003년 사이에 튜닝에 완전히 몰입하기 시작하면서 튜닝 시리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로 잰 듯이 매끈하게 재단하는 튜닝이 아니라 튜닝 5, 6부터는 튜닝을 대하는 마인드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말씀이죠. 리듬에서부터 튜닝까지 소개가 쭉 흘러왔는데요. 더 궁금한 건 미루고, 다른 점도 짚어봐야 겠습니다. 권옥희 선생님 말씀 부탁드리지요.
 

권옥희: 저는 작품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저는 튜닝 시리즈를 〈몸〉부터 16번째 작품 〈꽃〉, 〈불〉까지 봤습니다. 볼 때마다 이전 작품에 대한 인상을 버리고 무대에 올려진 그 작품에만 애써 집중해 보려고 했습니다. 몸을 주제로 한 작품 〈소마〉와 〈꽃〉은 내 속에 있는 진정한 자기자신, 즉 자아을 만나고 바라보는 작품으로 해석되었는데. 특히 〈꽃〉은 선생님의 춤 철학이 그 안에 다 들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의도하시던 춤 철학이나 생각이 〈꽃〉에 집약되었다고 보는데, 꽃 그 자체가 아니고 만다라라는 불교 철학으로 풀어낸 것으로 봤습니다. 제가 그때 쓴 리뷰를 찾아봤더니, 작품을 정확하게 봤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것은 그만큼 작품이 잘 구현되었다는 뜻이죠. 작품 안에 사용한 의자는 자아를 이야기한다고 봤고 이렇게 썼었습니다. 잠깐 읽겠습니다.
“어쩌면 죽음 속의 삶, 또는 살아 있는 죽음이 더 활달하게 개화할 수 있는 것은 자아의 깨어짐. 말하자면 논리적 선회에 의지하는 교훈적 경구가 아니라 춤의 변용에 의해, 자아가 마련해주는 사고의 환경속에서 자아가 깨지는 것과 같은 본질적인 자기 변화를 그리는 춤이기 때문이다.”
의자를 자아로 보고, 공중에다 걸어두고 그 자아가 깨어지고 난 다음에야 피어나는 것이 만다라이고 깨달음이라고 저는 그렇게 본 것이죠. 제가 왜 그렇게 서술했느냐 하면 세상을 바쁘게 사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무엇이냐는 거죠. 그거는 거기 있지도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것이지만 박은화가 그것을 보았기에 그 시선은 환시적이고 주술적이다, 저는 리뷰에서 이렇게 썼었습니다. 그래서 박은화 작가의 작품은 매우 주술적인, 동양적으로 이야기하면 신비하다, 신비라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선생님에게 신비는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가 인터뷰 직전에 선생님한테 “종교가 뭡니까” 물어봤고 기독교라고 하면서 덧붙여 모든 종교를 섭렵했습니다고 말하셨지요. 그 근저에 뭐가 깔렸는가 하면 성장과정에서 보고 접한 것, 그런 것이 상당부분 작품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한 점이 해소된 지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춤 작가들 작품 보면서 작품이 그 사람이라 보거든요. 그래서 한 가지 묻자면, 작품 속에서 선생님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표정을 짓는데,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크게 벌리는 것이 작품에 자주 등장합니다. 선생님이 소리를 배경으로 춤추시는 것 같은데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었어요. 튜닝 〈돌〉 작품노트에서 돌이 내는 소리는 자신이 하는 노래로, 언어와 소리는 다르다고, 소리는 경계가 없다고 쓰셨어요. 그러면서 공연 중 내는 소리에 대해서 “내가 나도 알 수 없는 나의 이야기를 계속한다” 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면 그 소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작업은 자연스럽게 자연의 춤으로 연결되고 해석은 열어놓은 것으로 이해됩니다만 여전히 어렵습니다. 언어와 소리에 대해 어떻게 인식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질문은 자아와 개별성을 어떻게 인식하십니까. 무용가들마다 개별성이 있어야 하는데, 선생님 작품을 보면 자아가 깨어져야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으로 구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자아와 개별성의 관계를 어떻게 인지하고 작품으로 구현해내는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말파와도 연결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여하튼 매우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또 하나 덧붙이면, 춤 작가들이 튜닝 시리즈처럼 동일한 제목 아래 작업을 계속하지요. 그런데 대개는 선생님처럼 하나의 시리즈, 제목 내에서 아주 다른 것들을 다양하게 그려내는 그런 식이 아니거든요. 말하자면 형식은 단순히 내용위에 걸쳐진 옷이 아니라 의미의 공간을 밀고 당기는 살이고 몸매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튜닝은 탁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채현: 질문이 세 가지인데요, 첫 번째로 박 선생님의 작품에서 영상으로 제공된 자료에서도 자주 보이는 무언의 외침 연기, 입을 벌린다든지 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지요. 그에 대한 생각부터 잠시 들어보죠.


춤과 소리, 언어
 

박은화: 우리가 하는 소리는 언어처럼 명료한 의미를 두지는 않죠. 그러나 소리 안에는 관련한 공간성, 리듬, 시간성, 에너지, 이런 것들이 다 들어있어요. 자기도 모르는 무엇이 있지요. 그래서 표현할 길이 없을 때, 그 소리의 외침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들이겠죠. 지난달에 일본 공연에서도 제 사진을 보니까 계속 입을 벌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제 안에서 토해내고 싶은, 말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이런 것들이 외침의 의미로 들어가겠습니다. 언어는 전달력을 가졌잖아요. 피나 바우쉬의 작품은 언어를 많이 쓰더라고요. 제가 독일에 한 달 연수를 갔을 때, 무용 공연을 보면 온통 언어가 가득하고, 반면 연극 공연을 보러 가면 언어가 하나도 없어요. “독일,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나”며 얘기를 했는데, 아마 자기 영역에서 전달의 한계를 확장시켰을 때 아마 연극에서는 언어보다는 무언의 몸짓으로밖에 대체할 수 없었을 것 같습니다. 피나가 사용하는 언어는 뜻을 전달하려는 것들이 아니라 거기 나타난 리듬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그 사람이 가진 것들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얘기를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사용의 방법론 면에서 조금 다르다고 봅니다.

김채현: 박 선생님의 의견을 정리하면, 소리는 언어가 담지 못하는 그 이상의 차원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여기서 언어라는 것은 연극에서의 대사, 또는 일상생활에서 나누는 언어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뛰어넘는, 초월하는 그런 차원을 소리는 갖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권옥희: 작가 본인의 의견을 듣고 싶었어요. 저는 어떻게 이해했냐면 이성의 폭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언어로 설득하는 게 아니고 몸으로 하는 놀이로서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 전혀 다른 경험의 춤이 발전해서 춤으로 설득을 하는 것이 아니고 놀이의 차원으로 넘어간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혹은 무녀들의 공수이거나. 선생님의 작품은 상당히 철학적이에요. 비합리성을 가지고 춤을 추는데 이게 원천적으로 동양에서 연유한 사고이고, 철학의 배경이고, 그런 것이 아나겠는가.

박은화: 언어는 보통 약속이잖아요. 타말파 작업 안에 Talk to movement인가, 말을 하면서 움직임을 하는 그런 방법론이 있어요. 말은 하고 있지만 몸의 움직임은 무의식의 이야기를 하거든요.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그 무브먼트에서 더 섬세하게 되지요, 언어로 전할 수 없는. 그런데 언어는 우리가 약속한 언어일 뿐이기 때문에 그 말을 하면서 내 움직임을 하면 완전히 다른 것들을 받아가요. 그래서 무의식의 얘기까지도 내가 전하고 싶을 때 훈련 방법을 가지고 훈련을 해요. 몸의 리듬을 타면서 얘기를 할 때 그 사람이 정말 이런 걸 말하고 싶은 거구나. 사실은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가 아니고 움직임에서 오는 그 의미를 말하고 싶구나. 우리가 그걸 보고 “너가 그렇게 말하고 움직일 때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때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난 이러한 것들을 느꼈어”하며 서로 말로 전하지 못한 무의식의 이야기를 전달받곤 하거든요. 춤이라는 것은 몸의 동작 언어로 하잖아요. 호흡의 맥박, 피의 흐름, 이런 것들이 일종의 리듬을 타면 동작이 되어서 그것들이 춤의 영역으로 옮겨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추상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언어로 설명할 순 없어요. 컴퓨터에 쓰레기통 아이콘이 있잖아요. 그걸 보면 우리는 쓰레기통에 어떤 걸 해야 하는지 다 알거든요. 쓰레기통이라 안 적어 놓아도요.
 

김채현: 참고로 생각을 해본다면, 언어보다는 소리가 몸의 내면적 차원과 직결이 되어있다는 거죠. 언어는 간접적일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죠. 그러면, 두 번째로 자아가 깨뜨려진다는 질문을 하셨어요. 자아와 개별성이 깨뜨려지는 차원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박은화: 자아는 보통 ‘ego’라는 말을 쓰고, 자기는 ‘self’라는 말을 쓰잖아요. 자아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자신을 만나는 얘기로서 제 튜닝은 자아와 자신 간의 싸움이지 않나 생각해요. 근데 나중에 그게 조율이 되고 흔들림이 있을 때 ‘그렇게 나타나는 자아도 너다’ 이런 것으로 놀기 시작하면서 작품을 만들죠. 과거에는 자아는 없애고 깨지고 self를 만나야지 하는 작업을 초반기에 했다면, 나중에는 자연과 함께 튜닝을 하다 보니까 self가 내 안에 있지만 그 자아조차도 나였구나. 두 가지 모두 흔들며 조율하니까 아주 재미있는 얘기 들이 나오더라고요. 에고와 셀프 안에서의 조절 과정이 저의 개별성이 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까 의자 말씀이 나왔는데, 튜닝 주인공은 의자예요. 의자가 튜닝 1부터 시작해서 계속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보신 〈꽃〉에서는 레고로 의자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레고가 바닥에서 떨어져 탁 흩어지고, 그래서 무대감독님이 고생했어요. 그것을 주워서 또 조립을 해야 했지요. 튜닝 5에서는 스티로폼 의자가 100개가 나옵니다. 제가 무대 위에서 100개를 다 깨뜨리는 작업을 해요. 허상 같은 자리에 늘 앉고 싶어 하는 제 모습을...

권옥희: 의자라는 것이 사회 안의 자기 위치라든지 이런 것도 얘기하고 하는데, 〈꽃〉에서는 자아로 등장했더군요. 의자를 100개를 깨뜨린다고 했는데 허상을 깨는 것도 있지만 그 가운데서 이게 나야. 저게 나야, 이게 나이고, 저게 내가 아니야 하듯이 이런 모든 것을 깨뜨린다는 면에서 보면 심오한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를 더 질문해보자면 아주 평온한 시기에 어느 날 갑자기 ‘이게 맞나?’라고 느꼈다 고 하셨어요. 선생님은 삶이, 세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불교식으로는 우리의 삶은 ‘고’라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의 세계관은 어떠한가요? 이 세계를 어떻게 보시는가요?

박은화: 크게 고민해보지는 않았고, 순간순간 사는 사람이거든요. 저한테 주어지면 재 식대로 재밌게 사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돈이 조금 있으면 작은 돈으로, 많으면 많은 대로 재밌게 살고. 그래서 ‘돈을 많이 가지고 싶다’ ‘내가 돈이 없어서 못 한다’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지요. 작품을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없으면 내가 만들어 하고, 제 팜플렛을 보면 춤/의상/무대 전부 제 이름이에요. 제가 종이 의상을 매일 만드는데, 무당 같아요. 그래서 내가 타고난 무당이라고 매일 아이들에게 그렇게 얘기하곤 하는데. 주어진 대로 무대를 제가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의상도 제가 만들고 합니다.

김채현: 두 가지만 제가 질문하고 영상을 보며 멘트를 더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첫째는 방금 말씀하신 인생관입니다. 2000년도 들어와서 사는 게 뭐냐? 굉장히 고민스러웠다는 거죠. 그래서 그때 이야기를 하다 보니 튜닝이란 말이 귀에 쏙 들어오더라 하셨지요. 그 시기에 삶이라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이었기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 과정에서 삶에 대한 관점이 2000년에 들어서서 대전환이 일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하는 인생관이나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한 관점을 볼 수 있지 않나 싶고요. 둘째는 대학원 졸업하고 나서, 1995년입니까? 자유 무용단을 창단했지 않습니까? 창단하게 된 연유나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창단

박은화: 1989년도에 중앙대 졸업생들로 전문 무용단을 제가 만들었어요. 졸업하고 난 뒤에 무용단을 만들어서 작업을 계속해왔었어요. 그러다가 부산대 교수가 되어 부산으로 가게 되고. 부산에서 1, 3학년을 맡아서 가르쳤는데. 그런 친구들이 졸업하게 되지요. 80년대부터 동인단체들이 한창 붐을 일으켰지요. 그런데 발레단이나 한국 무용단은 국립, 시립이 있는데 현대무용단은 그런 단체가 없었어요, 대구에 대구시립무용단이 있기는 했지만. 80년대 이후 현대무용이 무용계를 창작으로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학생들이 졸업하면 다 흩어지는 겁니다. 교수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졸업생들도 작품 할 수 있게끔 동인 단체들이 학교마다 만들어지지요. 중앙대학에서도 80년대 후반에 저도 힘을 모으고 해서 푸름무용단이 결성되었습니다. 자유무용단은 부산에서도 가장 늦게 만들어진 단체 중 하나로, 1995년에 졸업생들이 나오면서 자구책으로 결성된 단체였죠. 저도 작업을 하려면 졸업생 제자들이 있어야 하고, 제자들 또한 자기들 작업 하려면 필요했지요. 마치 두레 같은 거였어요. 이 무용단이 프로의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서 외부의 댄서들도 오디션으로 뽑았고 꼭 부산대 졸업생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게 운영했지요. 요즘은 국제적으로 나가는 단체가 되었기 때문에 개념 자체가 동인 단체에서 프로페셔널한 단체로 바뀌어가는 중입니다.

김채현: 이제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난 10월 18일 오후에 있은 춤작가 박은화 초빙 비평시각 공개 심층 인터뷰, 예술가의집, 서울 대학로, 한국춤비평가협회 주최 ⓒ춤웹진



김채현: 공연 자료 영상 코멘트 시간을 진행하겠습니다. 부분적으로 박은화 선생님께서 코멘트를 해주시면 영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것 같습니다.

박은화: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이 몇 개 있었는데, 잘 되지 않아 일부만 보여드려 안타깝습니다. 이 작품은 〈무위〉입니다. 노장 사상의 무위라는 것, 행하는 것이 없는데도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그런 것이지요. 이 작품은 1998년 민족춤제전에서 선보인 것인데, 그때는 주최 측이 무용가들에게 공통 주제를 주셨어요. ‘여성 그리고 모성’이라는 주제를 던져 주셨어요. 저 뒷모습은 저입니다. 긴 머리로 둥글고 부드러운 춤을 추고 있네요. 저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을 아주 어색해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꾸민 듯 안 꾸민 듯 이런 것은 이정희 선생의 영향 같은데, 시골스럽고 작고 그런 것들을 형식화하는 데 있어 영향을 받았지요. 어떤 그림이 어디에 걸리느냐에 따라서 달라지잖아요. 그것처럼 제 움직임도 무대미술이나 이런 것들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고민하면서 쌓아 올렸습니다. 이때는 무용수가 저 포함한 4명이었어요. 동작은 일상 동작이고, 애기처럼 기저귀를 차고 손가락을 빨고, 그러다가 여인이 되는 순환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나무에서 꽃이 떨어지고 이러면서... 발끝이나 이런 움직임을 아주 한국적으로 했었어요. 그래서 제가 한국 창작무용을 미리 접했다면 현대로 전공을 바꾸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동아무용콩쿠르로 나갈 적에도 도살풀이를 연습해서 현대무용으로 상을 받았어요.







박은화의 춤 〈Tuning-Xiii 그림자〉 2015.11.20.~21., 예술지구 창작공간P 초청공연



박은화: 그다음 작품은 〈그림자〉로 튜닝 13번째이고, 2015년도 것입니다. 부산의 창작공간 P라는 미술관에 초대받은 작품입니다. (바닥에 빨간색 동그라미가 크게 놓여 있다) 미술관 천장이 뻥 뚫린 채로 있었는데, 거기에 그림자를 조명으로 사용했어요.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의 삶의 자원이 되어서 전환할 수 있다는 주제입니다. 제 개인적 shadow도 나오지만, 민족적 shadow도 나오고 또 댄서들 하나하나에게서 나오는 shadow가 있어요. 그래서 댄서들이 그림도 그리고,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댄서들이 한지에 그림을 그리고, 또 그걸 갖고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타말파에서 하는 자화상 같은 그림들이 무대에 전시되고 그걸 갖고 관객들 사이에서 불쑥불쑥 춤을 추기도 하고 관객들이 무대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제가 꽁지 머리를 하고 다닐 때 출연한 공연이지요. 댄서 세 사람이 저렇게 벽에다 빨간색 점을 크게 찍어놓으면 제가 벽 전체에다 다른 물감으로 산을, 바다를 그리지요. 이틀 동안 공연 때마다 벽에 한지를 새로 입혔습니다. 창하는 사람이 반주했지요.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그림자는 또 다른 뭔가가 들어오면서 긍정적인, 새로운 자원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하는 그런 퍼포먼스였습니다.

채희완: 저 그림을 생각하신 건가요, 아님 즉흥적으로 그리신 거예요?

박은화: 즉흥적으로요. 의상도 다 제가 만들었어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나와서 연주도 해줍니다. 바이올리니스트와 듀엣을 하기도 하고, 빨간 스타킹을 신은 부분도 있지요.



  

박은화의 춤 〈Tuning-Xv 몸〉 2017.11.27.~28., 부산대아트센터



박은화: 그 다음 작품은 튜닝 15번 〈Soma〉(몸)입니다. 2017년도 것입니다. 수제천 음악을 갖고 만들었습니다. 오방색 한지들을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고 한지 위에 종이 달렸지요. 그래서 무용수들이 스치기만 해도 방울 소리가 났어요. 우리 움직임이라는 것은 삶이라는 것, 그 안의 호흡과 맥박의 리듬을 탈 때 우리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바람이 날리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고, 소리를 만날 것이라는 취지로 ‘몸’을 주제로 다룹니다. 작년 연말 다른 미술관에 초대받아 협찬금을 받아 명확한 작가로서 전시했습니다. 올해는 연극에도 이 설치를 활용해서 제가 안무로 도움을 주었지요. 교육용으로 어린 아이들이 춤을 출 수 있게끔 하고, 떨어지는 종이가 있다면 거기에 자신의 소원을 적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하는지 실험하기도 했어요. 댄서들마다 자신의 에너지, 공간에서 만나는 것들을 작업을 통해 풀어냈습니다. 마지막에는 한지를 가위로 다 자릅니다. 흔적이나 기억들을 다 자른다는 것이지요. 그 아래서 춤이 지속됩니다.


몸, soma

김채현: 튜닝에서 지금까지 18편 작품을 하셨는데, 여기에서는 제목을 〈몸〉이라 붙였단 말이죠, 〈Soma〉. 여기에서 특별하게 염두에 둔 몸 개념이 있습니까? 안 그러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Soma를 염두에 둔 것인지..

박은화: 몸을 얘기할 때 body라는 단어로 충족하지 못한 상황일 때 soma라는 단어가 세상에 드러나지요. 물질적인 단어가 아니고,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 있고, 생명력 있고, 체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몸에 대한 단어가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토마스 하나가 그리스 말에서 soma라는 단어를 찾아냈지요. 살아서 생명력이 있는 몸, 그 얘기를 하고 싶었죠. 그래서 우리에게 있는 그림자조차 우리의 몸이고, 그것이 내 자원이 될 수 있고, 내가 된다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 불상처럼 아이가 앉아있어요. 광섬유를 몸에 감았죠. 우리 몸은 생명력 있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박은화의 춤 〈Tuning-Xvi 꽃〉 2019.10.24.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김채현: 이상으로 영상 멘트는 마치겠습니다. 두 패널께 추가 질문을 부탁드립니다.

채희완: 튜닝 18편의 시리즈를 관통하는 것이 있다 봅니다. 자료를 보면, 내 속에 있는 나를 찾아가는 작업으로서 시작했다 그러셨지요. 혹시 찾으셨나요?

박은화: 성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완성된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이 과정을 가져가듯이...
 

채희완: 나와 영혼의 만남으로도 얘기를 하셨는데요, 처음에는 내 속에서 나를 찾는 과정을 이야기하다가 뒤로 갈수록 나와 대상(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는 것으로 옮겨온 것으로 얘기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와 대상의 합일 관계로 진전돼온 것이라는 그런 주제 의식의 변화들이 제목에서 보입니다. 처음에는 나를 찾는 과정으로서 물질을 생성시키는 기본 요소인 물이나 불이나 그것의 기능을 만물 생성의 조건으로 보는 것이었지요 거기서 불은 카오스라고 얘기하셨던 일이 기억나세요?혼돈이지요.그 혼돈의 불꽃 같은 강으로 흘러가면서 속으로 타오르는 그 무엇이 곧 새로운 생성의 에너지라고 표현한 것이 한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고 그 절정에 꽃이 있다고 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드디어는 몸이라든지 생명이라든지 그야말로 나의 신체를 지시하는 다른 단어를 새삼 찾아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주제를 바꾼 것 같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것이 그럴듯합니까?


관점의 조절과 변동

박은화: 주제가 바뀐다기 보다는 제가 본 관점이 바뀐 것 같아요. 튜닝이라는 것이 처음에는 정답이 있는 것처럼 생각해서 무언가를 없애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사실은 책에서나 보던 혹은 사회에서 추구하던 것들을 추구하였다면, 나중의 작업에서는 제 개인에게 일어나는 것들이 매 연도마다 달라집니다. 튜닝 5 같은 경우에는 제가 의자 100개를 만들어 부쉈고, 그 전해에 튜닝 4로 부산무용제를 참가했어요. 그런데 상을 못 받았어요. 그래서 “아, 부산 사람들아, 부산을 떠날 거야” 이러면서 화가 났어요. 그러다 부산의 제1회 공연예술제에서 저를 초대를 한 거예요. 제가 이걸 받을까 말까 고심했었어요. 괘씸해서요. 그런데 또 나를 보니깐 “너가 진정한 예술가인가? 작품을 상 받으려고 만드는 거냐?” 하면서 또 다른 내가 나와서 엄청 책망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차 하는 순간에 그것을 하겠다고 해서 솔로로 30분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 강의가 파하면 연습실에 촛불을 켜두고 혼자 밤새 촛불이 다 탈 때까지 한 달을 연습했어요. 그때는 나에 대한 얘기로 저의 정체성과 일반 사람들이 가진 정체성을 이야기하면서 그 다음부터는 자연과 함께 작업을 할 때에는 튜닝을 정말 한 거죠. 흐트러진 모습도 나네? 상을 받고 싶어 하는 모습도 너야, 하면서 조절해가는 식이었죠. 그래서 주제 자체가 변화한 것은 아니라 봅니다.

채희완: 언어나 말이 아니라 소리라든지 그림이 아니라 빛깔이라든지 원초적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십분 활용하면서 나의 숲이 있는 그곳을 찾아가는 방식은 소리와 빛깔의 이미지의 섞임과 충돌을 통해서 물질적 상상력이 잘 발휘돼서 짜였을 때에는 충격과 감동을 받는 경우들이었거든요. 튜닝의 방식, 연결 지점 또는 질서 속에 움트는 불꽃 같은 혼돈 기분이 조금 덜하게 나왔을 때에는 현장감도 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나의 건강이나 마음가짐이라든지 좋을 때에는 오히려 조금 덜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보면서 저 자리에 있는 나도 그 길 속에서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더러 있었습니다. 보는 사람의 조건에 따라서 달리 느껴질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조금 더 밀착된 질감을 느꼈을 때에는 무대공간에서 채택한 사물이 굉장한 물질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때에는 현장감뿐만 아니라 같이 작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관찰자로 있지 말고 나와 같이 길을 걷자”고 열린 참여의 길을 열어놓는 방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은화: 예술작품 자체가 고정된, 죽어있는 물체가 아니잖아요. 그것의 의미는 관객들에게 갔을 때, 관객들의 고착된 사유나 감정들을 흔들어서 이사도라가 “춤추고 싶어지도록 하는 것들이 정말 춤이다”고 얘기한 것처럼 그 작품은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이들의 마음에 따라서 또 다르게 살아나는, 그래서 그 사람의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훌륭한 작품이라 생각하거든요. 그 현장에 같이 있는 경험을 할 수 있길 바라죠. 그래서 〈불〉 같은 경우는 아이들이 진짜 사과를 던지고 먹고 그럽니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 어떤 접점을 이루고 함께 느끼느냐를 안무자로서 바라보는 것들이에요.

채희완: 이정희 선생의 큰 스케일과 열린 공간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하셨지요. 제가 봤던 이정희 선생의 작품 성향은 상황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과 반응을 포착하는 춤이어서 보는 사람들이 자기 동일시되는, 극적인 상황 속에 동참하는, 그래서 아주 와닿고 잘 느껴지는 춤이었던 것 같아요. 많은 부분 박 선생님의 성향은 관찰자적 입장에서 일정한 거리감을 두어서 하는 예가 많기 때문에 제가 방금 말한 같이 걷고자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하고는 조금 다른 스타일인 듯합니다. 의도적으로 채택된 소리와 빛깔과 사물이 생동감을 던져 주는 리듬성이라고 해야 할지 생명 율동감이라 해야 할지, 동양에서는 기(氣)라고 하는데 그것이 무대 현장에서 강렬했을 때는 관중이 관찰 자리에만 있기 어렵지요. 말하자면 감정이입이나 참여 동기가 격렬해지기도 합니다.다만 기에는 색감이나 감각적 요소 같은 것이 빠져있기 때문에 기로만 얘기하기는 어렵고, 박 선생님 작품에서는 기의 율동이라고만 얘기하기에는 약간 섭섭한 점들이 있거든요. 입체감 또는 색채감 또는 소리의 질감 등등의 인간의 오감이나 육감들이 기의 움직임과 같이 있을 때 아주 강렬해지는데, 관찰자적 의도가 강렬할 때에는 결과적 반응이 덜 와닿았다고 제가 스스로 판단하기도 하는 거죠. 이게 선생님의 의도에 맞는 얘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은화: 원래의 의도는 전자처럼 에너지적인 것들을 얻어가길 원하였는데, 시각적인 것들이 보여서 그것들이 해소되기가, 강하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채희완: 그러니깐 기의 율동감과 함께 색채감, 소리의 감각적 질감이 같이 뭉쳐져서 들어왔을 때가 아주 생생하게 들어왔었다는 것이지요.

김채현: 기가 감각적 질감과 함께 작동할 때 생생하게 수용될 것입니다. 그것은 넓은 의미로는 감성적인 활동의 일환일 것이고, 좁은 의미로는 직접적인 감각 작용의 소산이겠지요.


소통과 춤

권옥희: 처음에 시작할 때 김채현 선생님께서 무엇이 해소가 되었느냐고 질문하셨지요. 그중에서 제가 두 가지만 말하자면 어떠한 고통이 있었기에 타말파의 활동 같은 치유의 춤을 췄는가 하는 점입니다. 지금은 사회 더 나아가 지구도 여러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것보다도 개인적으로 무슨 고통에서 비롯해서 치유의 춤으로 발전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품 속에 나타나는 주술적인 부분은 어렸을 때부터 문화적으로 자연스럽게 습득한 것에서 연유한 것이 있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방금 작품 영상을 보면서 느꼈던 것이 춤은 서술적 설명적인 것보다는 훨씬 허구의 언어가 더 진짜가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자유무용단 이름처럼 자연스러운 게 좋고, 춤 역시 그렇게 자연스러운, 억압되지 않은 것, 박 선생님 자신과 세계에 대하여 억압이나 그런 것이 아닌 거기에서 벗어나고 질식하지 않기 위해 항상 통로를 열어놔야 한다는 것이 작품 속에 드러나 보입니다. 세계와 연결되어서는 춤으로 사람들과 사물들을 연결시켜준다는 점에서 봤을 때 작가는 곧 사제가 되겠죠. 춤 작가로서 주술적인 무당의 역할보다는 사제의 역할을 하지 않는가 싶어요. 특히 선생님 작품은 자연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자연에 내재된 에너지부터 여러 가지를 사람과 연결시키는, 춤으로 사물과 자연을 맺어주는 일종의 혼배성사, 사제의 역할이라 할 수 있죠.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지만, 작품에 다양하고 굉장히 많은 색감이 들어와 있는데. 색감을 사용한 것을 보면서 이 작가는 상당히 감각적이고 재주가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어요. 무용수들의 에너지와 시너지 효과가 난다는 그런 말씀인 것 같아요. 미술적 감각도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서 작품의 품질을 높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 다른 질문은 이것입니다.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르겠으나 자신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까?

김채현: 질문들을 요약해봅니다. 첫째 춤을 만드는 사람이 사제의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요? 둘째는 감성 혹은 감각적인 측면의 수용 혹은 구현에 대해 평소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요? 셋째는 관객들에게 작품이 어떻게 수용되었으면 합니까?





Nature Dance



박은화: 안나 핼프린이나 소매틱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타말파에서 도구를 갖는데, Three level awareness라 해서 몸이 가진 세 가지 자각의 수준을 크게 나누어 몸으로 생성되는 감각과 감정과 인지적인 이미지가 우리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이 세계는 하나이지 구별되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이고, 이것들이 예술 작업에서도 방법으로 사용하고 교육도 인간의 형성을 돕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관계성을 할 수 있고 그 관계성이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는 자기를 자각하는 일이죠. 아까 사제라 예를 드셨는데,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저는 Nature Dance를 할 때에도 〈Soma〉라는 작품을 했었거든요. 그때 “평화는 몸에서부터 시작하고 내 몸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튜닝을 한다는 것은 나 안의 신과 만나는 것”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신과 만나고 있는 것들이 너무 좋아요”라는 댓글도 달리곤 했습니다. 신은 허상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한 나와 소통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를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이고 그렇기에 신과 만나고 있는 존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각과 감성의 수용과 구현을 보면, 작가들은 감각적인 자각에서 자신의 이미지나 작품의 주제의 언어를 만들고 자기 삶의 언어를 만들어 가기도 하는데, 누구는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생각에 휘둘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은 이것들이 통합된 것이거든요. 손을 댄 순간 감정이 올라오고, 생각이 올라오고, 행동을 하신다고요. 감각이 몸을 알아가는 통로가 되는 예이겠지요. 이건 절대적으로 예술 교육은 물론 삶을 살아가는 일반 교육에 필요하지요. 우리가 말하지 못하는 추상적인 것들을 색감으로 공간으로 에너지로 움직임으로 소리로 표현해낼 수밖에 없는 것이 예술가의 목적이고 일반 사람들도 그렇게 하면서 소통하고 살아가는 거겠죠.

권옥희: 다시 한번 질문을 정리하자면, 끝으로 갈수록 제가 느끼는 것은 이건 보는 춤이라기보다는 본인이 춰야 하는 춤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연화될 때에는 작품과 관객 사이에 간극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서 작품이 어떻게 보여지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을 드렸던 겁니다.





박은화의 춤 〈Tuning- Xviii 별〉 2024. 9. 6. 부산시민공원 기억의기둥



박은화: 제가 즉흥춤 축제를 부산에서 지속하고 있고, 튜닝의 마지막 작품인 18번째가 〈별〉이라는 작품이었어요. 〈별〉이라는 작품에는 출연하는 댄서들이 우리 졸업생들이 다 나왔어요. 한 시간 넘는 작품이 전체 즉흥이었습니다. 그때 주제는 ‘별은 스스로 반짝거린다. 너희들이 행동하고 이 환경과 관계하는 몸 자체는 별이다. 거기에 너의 생각들이 다 묻어 나온다’ 는 것이었어요. 처음에 자기소개를 하고 나서 자신의 별에 대한 얘기를 하고, 그다음에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요. 나중에는 그룹으로, 모두가 만났을 때는 공동체의 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중간에 관객들도 쏟아져 들어와요. 그 반짝이는 별 안에 자기가 빛나기 시작하고 움직이기 시작할 때 동할 때 무대 위에 나와서 함께하는 그런 컨셉에서는 함께 나와서 하기를 원해요. 그리고 관찰자로서 저의 작품을 보았을 때는 관찰자이긴 하지만 머리와 눈으로만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고착된 생각이나 감각이 깨뜨려지는 상태로 가기 때문에 작품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흐르는 과정 속에 있겠지요. 그런 개념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관찰자로 보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지요. 제가 무대에서 〈돌〉을 했을 때 무용가들이 “너무 눈물이 났다”고 했어요. 고인돌이 마지막에 내려오고 제가 눕는 장면이 있는데 그걸 보고는 평론가 김경애 선생도 한 달 내내 〈돌〉 작품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요. 이유인즉 무용가 선생의 친정어머니가 그 해 돌아가셨고 김경애 선생도 그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거예요. 자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제 작품을 보면서 자기 삶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가는 점도 있다는 것이지요.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요. 특정 작품 안에서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며 삶, 사회를 바꾸어 나갈 에너지를 가졌으면 합니다. 저는 그런 점들을 바라보고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김채현: 관객의 동참, 공감, 소통을 통해서 관객의 깊이 있는 변화를 기대하시는 측면이 많았다는 거죠. 이제는 청중 분들께도 질문을 요청드리려고 합니다.

청중 1: 안녕하세요. 대구에서 온 편세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알게 된 지 오래되지는 않았어요.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선생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인가를 알게 되었고요. 선생님이 작품에서 던지는 화두가 저에게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중 2: 안녕하세요. 저는 타말파 9기 졸업생입니다. 박은화 선생님께 타말파 수업도 듣고, 센프란시스코에도 함께 갔었는데. 질문은요 튜닝 〈몸〉에서 한지가 마치 서낭당의 느낌을 주었거든요. 혹시 거기서 모티프를 받으셨는지? 그리고 서낭당 천이 무슨 의미인지 찾아봤더니 그게 신체성을 가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결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서 질문드립니다.

박은화: 오색 종이는 세포 같은 얘기였어요. 여러 색깔이 모여서 인간의 몸이 되는. 그 세포들이 기억하는 바람, 에너지, 소리 이런 것들을 형상화하는 구체적인 상징물을 가지고 왔거든요. 그런데 서낭당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어린애들조차 그것을 무서워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박은화 ⓒ춤웹진



청중 3: 안녕하세요. 뵙고 싶었던 얼굴을 봬서 기쁘고, 선생님의 춤이 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이 독일에 오셔서 즉흥춤을 추셨었는데, 독일 사람들이 “오리지널이 저기 있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너무 기쁘고 반갑고 감사했습니다.

권옥희: 전반적으로 들으니까 이런 우화가 생각이 나요. 남자애가 있었는데 엄마가 바구니에 사과 세 알을 넣어두면서 얘야 여기다가 사과 네 알을 더 넣으면 몇 개가 될까 물으니 한참 머뭇거리던 남자아이가 “근데 그 바구니는 얼마나 크지?”라고 물었던 우화인데, 우린 늘 그 바구니 크기를 묻는 사람들이잖아요. 방식은 다르지만. 해석은 여기 계시는 청중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채희완: 드디어 마지막 질문을 드리려 합니다. 춤꾼은 저마다 자기의 장단을 타고 태어난다라는 얘기가 있죠. 앞으로 춤 활동이 지속되실 텐데, 선생님은 과연 어느 장단을 타고 노실 건지, 살아가실 건지...

박은화: 저도 마지막에 제 이야기가 아니고, 안나 핼프린이 늘 물어보는 질문으로 답하겠습니다. “오늘 당신의 춤은 어땠나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내 장단을 정해놓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장단에 이런 춤을 췄네, 내일은 이런 장단에 춤을 추고 싶어”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또 다른 날은 새로운 장단을 만나지 않을까. 그렇게 답변을 해도 될까요?

김채현: 오늘 소중한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이전 인터뷰들에서도 그랬는데, 시간 관계상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일단 마치려 합니다. 미진한 점도 있을 터입니다만 인터뷰 시리즈에 성심껏 참여 말씀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현대무용에서 열린 시각으로 춤 세계를 새롭게 다듬으며 애써오신 노고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인터뷰에 참석하시어 진지하게 경청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다른 장단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다면 다음에도 성황리에 진행할 수 있도록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오늘의 장시간 공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5. 12.
사진제공_박은화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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