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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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11월 9일(일)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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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서울시 공공한옥 놀이터(종로구 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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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고리에 토슈즈〉展 포스터 ⓒ댄스브릿지 |
깜짝 놀랐다. 〈저고리에 토슈즈: 1980년대 대한민국무용제와 한국적 발레〉, 춤비평가 정옥희가 마련한 전시 타이틀이다. 계동 골목의 이색 공간에서 열리는 작고 단순한 전시회로 생각하고 갔었는데 내게는 한 편의 창작 작품이자,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로 다가왔다.
전시장에는 1980년대에 만들어진 창작발레 작품 영상이 안무자의 인터뷰와 함께 구동되고 있었고, 〈춤〉지 등 각종 인쇄 매체의 기록과 증언들이 채집되어 있었다. 1980년대 춤 계의 상황이 ’극장국가‘ ’대한민국무용제‘ ’창작춤‘ ‘동문무용단‘ ‘한국적 발레’의 키워드로 나뉘어 세부적으로 조망되고, 당대 프로그램북 등에서 발췌한 전시물에 본인의 해석을 포스트잇으로 부착하는 등 곳곳에서 발견되는 창의적인 작업이 참으로 놀라웠다.
독특한 콘셉트의 전시를 기획하고 마련한 주인공 정옥희를 전시공간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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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옥희 ⓒ댄스브릿지 |
장광열: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아 무척 궁금했는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새롭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넓지 않은 전시 공간에 적지 않은 자료를 배치한 아이디어나 담아낸 재질의 선택, 자료의 성격을 고려한 공간 구성 모두 창의적이다. 단순한 자료 수집과 보존에서 벗어나 춤 아카이빙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가시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100년 무용사에 남을 만한 하나의 춤 프로젝트로 생각된다. 어떤 계기로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는가?
정옥희: 한국적 발레는 발레전공자였던 제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이다. 이는 저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자 제가 속한 세계를 조망하는 과정이었다. 석사과정 때 유니버설발레단 〈심청〉에 대해 소논문을 쓴 이래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다.
최근에는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논문 아니면 공연’으로 귀결되는 무용계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쌓였고, 구술채록사업 경험과 전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더해졌다. 사실 이런 작업은 공공무용단이나 공공단체가 하면 더 좋을 텐데 관심이 더딘 것 같아 개인으로라도 시도해보고자 했다.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지원금을 받은 것이 큰 동력이 되어 기초조사를 한 후 유채영 큐레이터를 섭외해 두 달간 함께 작업했다.
한옥으로 꾸며진 공간에 서양에서 들어온 발레 장르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부터 신선한 발상이다. 전시 장소는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는가?
300만원의 지원금으로 개인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구술채록과 작은 공유회를 할 생각이었다. 자연스럽게 무료 또는 저비용 공간을 찾던 중 공공한옥을 발견했다. 한옥이라는 공간이 한국적 발레라는 주제에 딱 맞을뿐더러 공간의 구조나 배치가 상상력을 자극하여 고민 없이 대관했다. 공간이 워낙 예뻐서 전시도 당초보다 확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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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브릿지 |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네킹에 입혀진 의상 한 벌과 토슈즈 세 켤레가 눈에 들어왔다. 창작발레 〈심청〉 작품에서 무용수 안지은이 입었던 의상이었다. 어떤 의미를 담아 선정했는가?
전시에서 당대 실물자료가 주는 힘은 거대하다. 하지만 이리저리 수소문 해봐도 실물자료를 구할 수 없었다. 〈심청〉 의상은 ‘저고리에 토슈즈’라는 전시 제목을 가장 선명히 보여주는 실물이자 1980년대 대한민국무용제 공연작 중 하나라는 점에서 전시 프롤로그에 적합하다 생각했다. 의상과 함께 배치한 오리지널 리플릿 또한 중요하다. 관객이 ‘저고리에 토슈즈 신은 심청’을 적극적으로 상상하도록 이끄는 장치로, 한국적 발레가 여전히 낯선 것임을, 그럼에도 강박적으로 매달렸던 시대정신임을 상징한다고 생각했다. 토슈즈는 공간에 맞춰 설치한 오브제로 내가 무용수 시절에 신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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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브릿지 |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차별화된 내용의 자료들이 꼼꼼하고 세밀하게 배열되어 있다. 어떤 주제로 공간을 나누었는가?
ㄷ자 형태의 한옥 내부가 두 공간으로 나뉘는데 이 안에서 어떻게 관람의 기승전결을 만들 것인가 고민했다. ‘공간 1’은 ‘1980년대 무용계 배회하기’를 주제로, 1980년대 무용계 전반의 맥락을 제시함으로써 한국적 발레가 만들어진 이유를 보여주고자 했다. ‘공간 2’는 ‘한국적 발레를 만든다는 것’을 주제로, 대한민국무용제 출품작 중 한국적 발레 3편을 집중 조명하여 당대 안무가들의 창작 배경과 안무 과정, 예술적 실험을 시도했는지 조명했다.
원래 마당이었던 낮은 공간에는 카펫을 깔고 책상을 두어 관람객이 여유 있게 전시를 음미하도록 꾸몄다. 벽에는 엽서를 작성해 붙이는 참여공간을, 책상에는 전시에 활용된 1차 자료물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깊게 읽기, 깊게 보기’ 코너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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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브릿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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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열 |
‘1980년대 무용계를 탐색하는 다섯 가지 열쇠’란 제목을 단 각기 다른 내용을 담은 다섯 종류의 엽서도 그 자체로 독특한 전시물이었다. 이는 어떤 연구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것인가?
처음엔 막연히 1960-80년대 한국적 발레 레퍼토리를 폭넓게 탐색했으나 범위가 너무 넓고 기준도 모호하여 대상을 좁힐 필요가 있었다. 한국적 발레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80년대이고 1990년대 이후엔 소련과 수교하며 고전발레 중심으로 재편되기에 1980년대로 국한했다. 월간 〈춤〉지를 뒤지다 보니 대한민국무용제 이야기로 가득했다. 지금의 무용계를 형성한 중요한 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고 발레 역시 의식하든 안 하든 그 파장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보았다.
대한민국무용제를 염두에 두니 1980년대를 관통하던 다양한 힘이 드러났다. 군사정권 체제가 만든 관 주도의 문화예술정책,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 등의 메가 이벤트를 통해 국가 이미지를 쇄신하고 국민결속을 이루고자 했던 정부의 욕망, 그리고 이에 대한 무용계의 호응과 비판, 서로 다른 맥락에서 강화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 근대화와 선진국화에 대한 열망, 무용계 내의 세대교체와 갈등, 민속춤과 창작춤의 구별 짓기, 대학 동문무용단과 직업무용단의 창설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힘들을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논문이라면 이를 선형적으로 서술하겠지만 전시는 이를 입체적으로 공간화 할 수 있다. 원문이 지닌 강한 힘이 그대로 전달되길 바랐기에 56개의 발췌 인용문으로 압축해 격자로 배치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모여 하나의 시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것이 연구자가 의도적으로 선택하고 배치한 것임을 드러내기 위해 키워드와 기호, 그리고 짧은 해제를 담은 엽서를 제공했다. 관람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역사를 읽어내고 스스로 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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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브릿지 |
창작 발레 작업 자체에 국한하지 않고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단 축제와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무용예술과 무용가들에 대한 내용도 담는 등 당대의 춤 생태계를 연계해 조망한 것도 전시의 범위를 확장하는 의미가 있었다.
지금껏 한국 발레사나 한국적 발레에 대한 연구물을 보면 대개 장르 내부에서 개별 작품의 특징을 분석하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나는 시야를 넓혀 사회적 맥락 속에 위치 짓고 싶었다. 장르의 계보에서 벗어나 무용계, 나아가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역동 속에서 바라볼 때 한국적 발레가 무엇인지, 왜 그런 모습으로 만들어졌는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매달리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발레 무용가들이 당시 정치사회에 대해 분명히 발언한 사례가 드물고, 장르 간 협력도 드물었다. 그럼에도 시대의 파장에 반응하고 행동해왔다는 점에서 거시적인 조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QR 음성 파일을 통해 구술 채록문과 안무가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자료를 보는 것에서 벗어나 듣고 보도록 한 이 같은 작업은 시간이 굉장히 많이 소요되었을 텐데….
애초에 연구의 목적이 구술채록이었기에 여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2022년도에 아르코예술기록원 구술채록사업에 참여하면서 구술채록의 실무를 경험하고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기록원의 사업은 덩치가 크고 까다로워 개인 연구자가 행하긴 어려운 방식이라는 점을 느끼며 개인이 수행할 수 있는 단출한 방법론을 탐색하고 싶었다. 6-7월에 기초조사를 하고 인터뷰이를 선정해 8월에 인터뷰를 진행했다. 채록 후 인터뷰이의 확인을 받아 발췌문을 만들었고 영상편집 및 구술사운드 편집을 직접 했다. 음성 파일과 영상 인터뷰는 텍스트로 전달되지 않는 수행적, 체현적 지식을 담을 수 있기에 가치가 크다. 채록이나 사운드/영상 편집은 물론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힘들은 일은 인터뷰이를 섭외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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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브릿지 |
인터뷰 및 모니터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세 편의 창작발레 작품들은 영상의 편집 방향 등에서 고민한 흔적들이 보였다.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했는가?
앞서 말했듯 수많은 한국적 발레 중에서 1980년대 대한민국무용제 출품작으로 한정하니 총 18편이었고, 그중에서 안무가 본인이 인터뷰에 응하는지와 공식적인 경로로 작품 풀 영상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추렸다. 긴 탐색과 서류 작업, 설득과 조율 끝에 신정희 안무가의 〈끈으로 이어지는〉, 박인자 안무가의 〈승천〉, 조윤라 안무가의 〈길 떠나는 바람〉을 선정했다. 세 분 모두 발레계의 어르신이고 이후 더욱 활발히 활동하셨지만 이 전시에선 당시 20-30대의 젊은 안무가로서 어떤 열망과 어려움, 시대의식과 안무적 야심을 가지고 작업했는지에 초점을 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주요 연표를 정리한 자료들이 처마를 따라 천장에서 길게 늘어뜨려져 있는 다섯 개의 족자에 담겨져 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넘어 천으로 제작된 특별한 질감이 느껴져 공들인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설치물 대부분이 천 인쇄물인데 이는 한옥에 어울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한옥 공간에 못을 박을 수 없고 대형 설치물을 제작·설치할 돈과 시간, 인력이 부족하여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야 했다. 또한 연구전시이다 보니 텍스트가 많은데 좁은 공간에 빼곡히 담기 어려워 다양한 연출을 고민했다. 그 결과 1980년대 대한민국 및 무용계의 연표를 다섯 개의 족자로 만들어 중첩되도록 설치했다. 각 주제가 독립된 계보를 이루면서도 서로 교차하면서 80년대가 흘러갔음을 공간적으로 감각하도록 했다.
“만약에 내가 1980년대 발레 안무가였다면 말야” 라는 제목으로 관람객들이 자신들의 생각들을 적어보는,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코너도 눈에 띄었다. 또 바닥에 앉아 자료집과 영상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한 코너도 재미있었다.
연표나 발췌문, 이미지 전시 등 1차 자료를 많이 활용하다 보니 자칫 객관적 자료의 나열처럼 보일 우려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고자 연구자로서의 해석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포스트잇에 손 글씨로 써서 붙이기도 하고 자료집에 형광펜으로 일일이 밑줄 긋기도 했다. 매끈한 구경거리가 아니라 연구자의 너저분한 책상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듯, 마음의 소리를 엿듣는 듯 거칠게 연출했다.
또한 관람객이 전시를 능동적으로 구성하고 해석하면서 관람하도록 연출했기에 마지막에 이를 성찰할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만약 내가 당시에 안무가였다면 어땠을까? 이런 상상을 마음껏 해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납작해졌던 작품들에 생기를 불어넣고 유산이라는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으며 80년대 작품들과 관계 맺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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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브릿지 |
오늘 차담회가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많은 분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1980년대 동문 무용단을 이끌던 분들과 기획자, 예술행정가, 창작발레 작업을 한 안무가들과 무용수, 춤 이론과 춤 비평가 등 참석자들의 면면들이 다양해 춤 비평가 정옥희의 전시회에 쏠린 춤계의 관심이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에 담아낸 창작 발레 작품의 안무가였던 박인자와 신정희 선생이 직접 차담회에 참석해 창작 당시의 상황에 대해 생생하게 들려주었던 시간도 참 좋았다. 전시를 본 관람객들이 어떤 점을 궁금해 했고 가장 많이 남긴 말들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신이 없어서 적극적으로 홍보하지는 못했는데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아마도 박수빈 디자이너가 만든 아름다운 포스터에 홀리신 게 아닐까 싶다. 제 생각엔 연구전시라는 형식과 한국적 발레라는 내용이 특이해서 관심을 많이 가져주신 것 같다. 보통 전시는 규모 있는 무용단의 기념행사 정도에나 꾸리는 재미없는 것인데 개인이 연구의 방식으로 주최한 것, 그리고 으레 등장하는 소재가 아니라 근현대적이고 토착적인 소재를 다루었다는 것에 주목하셨다.
차담회는 인터뷰이가 자신의 목소리로 시대를 회고하는 자리이자 당시에 활동했던 분들이 전시를 매개로 80년대 무용계를 돌아보는 자리로 마련했다. 인터뷰이 중 박인자, 신정희 선생님이 참석해주셨고 조윤라 선생님은 일정상 아쉽게도 못 오셨다. 장소가 협소해 조촐한 규모로 진행했다. 참석자 중에 당대에 활동했던 분들은 자신의 흔적이나 관계성을 찾아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했고, 젊은 세대들은 막연하게 알던 시대를 생생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만나게 되어 신기해했다. 또한 본 전시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인물이나 작품에 어떻게 적용하며 뻗어나갈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공유해주시기도 했다. 연구전시라는 형식에 대한 아이디어를 던진 것 같아 기뻤다. 개인적으론 인용문 중에 가장 와 닿는 것을 골라달라고 여러분께 부탁했는데 본인의 상황이나 관심사에 따라 다양하게 고르신 점도 재미있었다.
전시를 둘러보면서 이런 구성과 창의적인 작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유니버설발레단과 중국 광저우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했던 이력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전 프로페셔널 발레단의 무용수가 안무가(연출가)로 변신해 한 편의 새로운 작품을 만든 것 같은… 전시회를 마치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무용수로 성장하고 활동했던 시간이 제게 큰 자양분이 되었고 그때의 경험들이 지금도 여러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전시를 기획하면서 한 편의 공연을 창작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덕분에 현장 예술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깊어졌다. 한편 전시와 공연은 시간적 호흡이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직업무용단에서 장기공연을 하더라도 공연 자체는 1-2시간인데 전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지켜야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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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열 |
한옥의 대문을 나설 때 즘이면 문득 춤 이론가로서, 춤 비평가로서 정옥희 선생의 다음 전시회 주제는 무엇이 될까? 라는 긍금증이 생길 것 같다. 어려운 작업의 연속이겠지만 후속 작업이 이어지길 기대하는 것은 나만의 바람이 아닐 것이다. 혹시 다루고 싶은 또 다른 주제들이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한국적 발레를 주제로 하는 〈저고리에 토슈즈〉는 시리즈로 이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다루지 못했지만 광주시립발레단의 박금자 선생님이나 국립발레단의 임성남 선생님이 꾸준히 작업한 바 있고 내년이 〈심청〉 40주년이라 관련 전시도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아가 한국 발레사 안에서도 연구전시로 풀 수 있는 다양한 소재가 있다. 여러 해 전부터 소련 발레 유입의 파장을 다룬 〈소련발레스타와 나〉라는 전시를 구상해 왔고, 해방 전후 발레, 한국무용, 스페니쉬댄스를 넘나든 인물들의 초국적 행보를 추적해 보고 싶다. 연구전시가 역사에 한정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춤의 역사가 백 년이 되었으니 풀어낼 소재가 무궁무진하다고 본다.
〈저고리에 토슈즈: 1980년대 대한민국무용제와 한국적 발레〉는 개인이 꾸린 소박한 전시고 담을 수 있는 내용도 한계가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단체와 기관이 전시 형식을 적극 활용해서 무대 위의 춤뿐 아니라 무대 아래의 춤도 풍성해지길 바란다.
이번 전시는 서울문화재단으로부터 소액의 지원금을 받았다. ‘저고리에 토슈즈’는 있는 자료들을 채집해 그대로 나열한 것이 아닌 기획자의 학술적인 연구가 밑바탕이 되어 새롭게 창작된, 학술적 전시를 넘어 창의적인 연출이 가미된 하나의 ‘창작물’이었다. 〈저고리에 토슈즈: 1980년대 대한민국무용제와 한국적 발레〉는 그 자체로 창작 작품의 제목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RE:SEARCH’ 란 제목이 붙은 공공 지원 사업의 목표 달성치를 훨씬 웃돌았다. 아울러 공연예술 아카이빙의 새로운 향방을 제시한 것과 함께 지독하게 획일화되어 있는 공공 예술지원의 향방이 어떻게 확장되고 변모되어야 하는지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장광열
1984년 이래 공연예술전문지 월간 〈객석〉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를 설립 〈Kore-A-Moves〉 〈서울 제주국제즉흥춤축제〉 〈한국을빛내는해외무용스타초청공연〉 등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정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평가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 위원, 호암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춤비평가, 한국춤정책연구소장으로 춤 현장과 소통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