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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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시
- 2025년 9월 17일(수) 오후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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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소
- 예술의전당 1층 리나스
세종문화회관의 프로그램 ‘싱크 넥스트 25’에 김성훈댄스프로젝트의 〈Pink_가장 부드럽고 잔혹한〉(The sweetest shade of violence, 이하 〈핑크〉)(8. 28-30. 세종 S시어터, 총 4회 공연)가 무대에 올랐다. 검은 바탕에 사진은 모두 붉은 톤으로 만든 포스터 사진도 눈길을 끌었지만, 관객으로서는 “트리거 워닝”이 상세하게 적힌 것에 눈이 갔다. 고통과 관련된 장면들이 있고 그것이 관객의 강한 정서적 반응과 과거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예매에 신중을 기해 달라는 것과 공연 도중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다는 안내 문구였다.
이런 경고가 붙은 공연은 우선 너무 오랜만인 거 같아 이런 공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잠시 주춤했다. 에이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로 결론을 내고 덤덤하게 극장을 찾았으나 어느 장면에서 나는 눈을 감았고, 비위가 상했으며, 내가 왜 남탕에 와 있지 하는 생각에 작품에 대한 집중을 놓쳤으며, 급기야 통제할 수 없는 단발적인 비명까지 지르고야 말았다.
김성훈은 작품을 시작한 이래 왕성한 다작으로 놀라움을 주는 40대 초반의 댄서이자 안무가이다. 어릴 때부터 연기자,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던 김성훈의 작품은 언젠가부터 눈길을 끌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사회적인 주제를 집요하게 쫓는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같은 학교에서 교육받은 동년배들과는 다른 차별성을 보일 때부터였던 거 같다. 표현의 강도도 좋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두 갈래 길에서 추상으로 얼버무리기를 택하기보다는 감정적 동력을 잃지 않고 결국엔 표현 해내는 힘이 사건과 감정의 관계를 놓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 현대무용계에서는 흔치 않은 진실을 찾는 능력이었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서 〈핑크〉는 고개를 좀 갸우뚱하게 했다. 게다가 경고 문구라니... 묻고 싶은 게 많은 인터뷰가 시작되었다.1)
김성훈 ⓒ이지현 |
이지현: 우선, 이 작품을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김성훈: 제가 이번에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아르토2)를 주제로요. 몇 년 동안 아르토 공부를 하면서 논문을 쓰고 있는데 작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작품 의뢰가 왔고 요즘 뭐 하세요 하면서 물으시길래 이런 논문을 쓰고 있다고 얘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르토와 관련 있는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논문을 쓸 때는 연락을 못 했는데, 박형섭 교수님이라고 30년 넘게 아르토를 연구한 전문가를 모셔서 첫날 공연 후 아르토 기법에 대해 1시간 정도 강의를 해주셨어요. 이 기법이 왜 필요하고, 현대예술에서 사람들이 왜 선호하는지, 호기심을 갖는지 등등요.
이지현: 관객과의 대화에 나오신 게 아니구요? 저는 몰랐네요…. (사실 나는 공연을 볼 때까지도, 그 후에도 이 작품이 아르토와 관련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대대적인 홍보 문구는 없었던 거 같다. 있었다 해도 요즘은 놓치기 일쑤다.)
김성훈: 네. 약간 갑자기 강의를 넣게 됐어요.
이지현: 그러면 아르토로 논문도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조금은 특이한 작품도 했는데 어떤가요?
김성훈: 확실히 더 힘들었던 거 같아요. 아는 게 많아서… 근데 논문은 썼지만 제 머리 속에서 완전히 정리가 된 게 아니다 보니까 무용수들한테도 잘 설명할 수 없었던 게 힘들었어요. 무용수들한테 미안한 부분이 많아요. 무용수들한테 하기 편안한 행위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폭력적인 행위를 자꾸 요구하게 되니까요. 무용수들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이지현: 그게 많이 미안했군요. 다른 연습과 달랐겠네요. 사실 제작과 관련된 내용은 기자회견 기사3)를 봤어요. 기자회견에 무용수들 힘들었다, 도전적인 일이었다는 얘기도 인용이 되었던데...
김성훈: 기자회견에도 예상 외로 관심을 많이 보여주시고 많이 와주셔서 놀랐어요. 전 그것도 무용수들한테 미안하더라구요, 무용수들 그 시간도 힘들었을 거예요. 가서 쉬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구요. 다른 작업은 어떤 서사가 잡히면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지, 어떻게 연기하지 그랬는데 이 작품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로 생생하게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과정도 많이 달랐어요.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도 무용수들이 몸이 많이 힘든 작업이었어요.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폭력적인 감정 상태에서 하다보면 당연히 몸을 격하게 쓰게 되고, 하고 나면 아플 수밖에 없고 그러면 몸과 마음이 다 지치고 그 다음에 무용수들과 얘기하려면 의사소통하는 게 쉽지 않더라구요. 저는 여태까지 작품을 하면서 무용수들과 얘기 나누고 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고 그랬는데 그런 게 불편했던 게 처음이라 저도 힘들더라구요. 저 때문에 힘들어하는 게 힘들었어요.
이지현: 연습실에서는 옷을 입고 했을 거 아니예요.
김성훈: 나체 장면이 있다는 건 이미 시작 때부터 동의가 된 것이라, 그리고 폭력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에 비하면 옷을 벗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았습니다. 연습실에서도 공연과 같이 맨몸으로 해야 하는 부분은 벗고 했구요.
8명의 출연자(고동훈, 배현우, 송승욱, 양승관, 이창민, 정재우, 정종웅, 홍성현)들에 대한 미안함은 그 후로도 여러번 나왔다. 마치 얘기가 흘러가다가 자꾸 그 미안함이라는 소용돌이로 빠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극장과 함께 한 극장의 제한 넘어서기
이지현: 많은 프로젝트를 해봤겠지만, 이번 싱크 넥스트가 가진 차별성이 있을까요?
김성훈: 제가 서울시무용단과 〈일무〉 작업을 해봤는데 무용단 작업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피디가 중심이 되어 진행이 되었고 제작 환경을 가능한 저에게 맞춰주시려고 했구요, 그리고 작품의 표현 방식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싱크 넥스트’의 특성상 과감하고 실험적이고 다른 극장에서는 하기 어려운 것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극장에서 할 수 없었던 제한들을 다 허물 순 없었지만 도전 해보자, 실험 해보자라고 하셨기 때문에 용기를 내서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지현: 극장의 그런 적극적인 입장도 흔한 일은 아닌데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김성훈 안무가는 어떤 걸 해보고 싶었나요?
김성훈: 일단은 잔혹극이라는 키워드가 있었기 때문에 해외의 많은 아티스트들 특히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잔혹극 계열의 작품을 하는 홀징거, 그녀의 작품은 보다가 18명이나 실려 나갔다는… 또 카스텔루치나 드미트리스의 작품을 많이 봤고, 미술, 영화, 문학에서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 고도를 기다리며, 그리고 영화 기생충, 미드 소마나 유전까지 찾아 봤던 거 같아요.
이지현: 진짜 연구를 해가는 방식처럼 접근을 했군요.
김성훈: 근데 제가 그런 작품들을 참조를 했다면 오히려 쉬웠을 텐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작품들은 특별한 연출이 필요하더라구요. 괴기스런 분장이라든지 조명 등… 근데 그런 식으로 가면 그런 작품들과 너무 비슷해질 거 같아서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냥 저답게, 무용공연으로, 평상시에 제가 잘 활용하는 의상을 입었고, 무용수들도 내추럴한 상태로, 그러면서 거기에 폭력이라는 행위를 가미했던 거 같아요.
이지현: 그럼 공연된 작품의 시놉시스 이런 것도 본인이 짰나요?
김성훈: 잔혹극 기법이라는 것이 서사가 중요하거나 메시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감정이 중요하고 관객에게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다른 세계관이 중요해서 이런 것들에 중점을 뒀어요. 근데 너무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어떤 이야기가 필요했는데 ‘파리대왕’이라는 작품의 스토리를 무용수들과 공유했어요. 무인도에 고립된 청년들이 서로를 죽이고, 서열 싸움을 하는 내용이 저희 무용수 8명이 어차피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에 있는 것과 비슷했고 거기서 점점 폭력적이 되어 가는 과정과 한 명씩 희생시키고 없애려고 하는 인간의 본능 같은 게 드러나는 걸 생각했던 거 같아요. 저 역시 한국 사회의 과도한 경쟁 속에서 살고 있고 거기서 경험한 것들이 있어서 그 설정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이지현: 근데 8명의 무용수가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무용수들이라 주목을 끈 것도 있는데…
김성훈: 맞아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무용수들이죠. 자신들은 잘 못 느끼는 것 같지만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긴장, 경쟁도 있을 수 있고, 밖에서 보시는 분들도 그들이 어떻게 합을 이루고 이 작품을 해나갈까를 궁금해 하기도 해서 그런 것들도 고려해서 작품을 한 거 같아요.
이중성 기법으로 고정된 이미지에 도전했다
이지현: 공연장에 들어가면 우선 흰 벽에 피가 뿌려져 있죠. 그리고 무용수들이 등장해서 그것을 걸레로 닦는 모습으로 시작되는데요.
김성훈: 그게 작품의 중요한 콘셉트인데 누군가의 희생을 지우려는, 자신의 잘잘못을 지우려고하는 모습인데요. 살면서 죄를 안짓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것을 감추고 지우려고 해도 지우면 지울수록 더 생각나는 그런 상황을 보이고 싶었어요. 그리고 공연이 점점 한 명씩 희생되어 사라지기 때문에 그것이 계속 순환된다는 의미로 작품의 시작과 끝에 계속 피를 닦는 장면을 넣었어요.
이지현: 저는 그걸 속죄, 반성의 의미로도 봤는데요.
김성훈: 자기의 죄를 지우려는 속죄와 감추려는 것이 모두 담겨 있어요. 그 피가 닦여지면서 핑크색으로 변하거든요. 그때 핑크는 피멍의 색도 되고, 부끄러우면 얼굴이 달아오를 때도 색도 돼서 그런 것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거죠.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암시하는 것도 되구요.
김성훈 〈핑크〉 ⓒ스튜디오오프비트/세종문화회관 |
이지현: 여기서 작품 제목이 왜 ‘핑크’인지 묻게 되네요.
김성훈: 아르또 기법 중에 이중성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때 이중성은 역설적인 두 가지 의미를 담는 건데, 핑크라면 흔히 소녀답고, 순수하고, 예쁘고 이런 걸 연상하잖아요. 근데 그 색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그것이 같은 핑크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중성 기법을 통해 핑크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바꾸고 싶은 의도도 있었던 거 같아요. 핑크가 피멍의 색도 될 수 있는 그런 이중성, 아름다우면서도 잔혹한… 그런 느낌을 이중적으로 주고 싶어서 핑크를 제목으로 썼어요. 그리고 심리학에서도 핑크가 좋은 의미만이 아니라는 얘기도 들었구요.
이지현: 핑크의 속살을 보이고 싶었던 거군요.
김성훈: 아름답고 예쁜 색일 수 있지만 누가 보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작품의 내용도 어떤 사람에게는 폭력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감응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이 작품은 그런 것들을 일단 다 담고 시작했어요.
가능한 한 진짜로 무대를 채우기 : 피, 칼, 구토…
이지현: 공연장에 들어가면 피도 피려니와 다른 많은 잔혹함을 연상시키는 사물들이 많이 나오고 그것들이 리얼해야 하니까 신경을 많이 썼을 거 같아요.
김성훈: 우선 바닥은 댄스플로어가 아니고 타일이었어요. 댄스플로어는 색을 먹어서 쓸수 없고, 고무로 된 타일을 쓴 건데 잘 닦이고 지워져야 하기 때문에 그랬어요. 흰 벽도 마찬가지구요. 처음부터 묻은 피를 닦는 게 콘셉트였기 때문에 그에 맞게 재질을 찾았어요.
김성훈 〈핑크〉 ⓒ스튜디오오프비트/세종문화회관 |
이지현: 그럼 피는 어떻게 만들었나요?
김성훈: 그게 페이크가 반이고 진짜 피가 반이었어요. 전반부에 쓴 건 페이크 피고, 후반부에 쓴 건 소피였어요. 시간이 지나면 잘 상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신선한 피로 바꿔서 사용했어요. 피와 내장 부속물을 실제로 써야 혐오감이나 잔혹함을 느낄 수 있으니까… 재밌는 건 페이크 피보다 진짜 피가 더 싸서 부담은 적었어요.
이지현: 경고문의 의미가 이해가 되네요.
김성훈: 진짜라고 생각하고 해보자 이런 건 많이 해봐서, 이번엔 뭐라고 할까… 실제를 써야 한다는 것에 고집을 좀 부렸어요. 실제를 쓸 수 있는 건 다 실제를 쓰자 했어요. 워낙 극장에 들어가면 제약이 많으니까요.
이지현: 그럼 닦을 때는 물을 쓴 건가요? 아니면? 잘 안 지워져서 애를 쓰는 거 같던데.
김성훈: 물은 쓰지 않았어요. 물이 들어가는 순간 그 바닥 재질이 바로 미끄러져요. 굉장히 위험해지죠. 가능한 물을 안 썼고, 잘 안 지워지는 느낌도 닦는 행위를 하나의 퍼포먼스로 반복적으로 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자기는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이지현: 수건은 몇 개 정도 썼을까요?
김성훈: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백 장은 넘었을걸요. 세탁해서 쓰고 또 세탁하고 했습니다.
이지현: 칼을 든 남자가 나오는 장면도 있잖아요?
김성훈: 그건 ‘아메리칸 사이코’라는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주인공이 크리스찬 베일인데 제가 좋아하는 배우거든요. 그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의 심리를 알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 하는 독백과 갈등, 이런 부분을 우리 작품으로 가져와서 갇힌 섬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었을 때 내가 나를 죽여야 하나. 남을 죽여야 하나 그런 심리적인 것들을 몸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지현: 그 칼은 진짜인가요? 상당히 길던데.
김성훈: 진짜 칼이었어요. 칼을 쥐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칼날 부분을 좀 갈았고 칼끝은 바닥에 수직으로 떨어뜨렸을 때 꽂혀야 하니까 그냥 썼죠. 칼을 입에 넣는 장면도 있어서 입안에 상처가 날 수 밖에 없었죠. 그래서 제가 무용수들한테 할말이…
예술 자체가 잔혹한 것은 아닐까.. 그 벽도 우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김성훈: 예술이 너무 잔혹해요. 이렇게 힘들어야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걸까.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어른들께 의논하니 다들 그렇기는 해하면서 동의하시더라구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위로도 해 주시고…
이지현: 안무자는 작품을 고민하는 것도 힘든데 이런 작품의 경우는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힘듦이 굉장히 큰 거 같네요. 그것을 무용수들을 통해서 해야 하니 관계에서 어려움도 많았다는 건데…
김성훈: 최근에 무용계에서 극장에서 사고가 좀 있었잖아요. 위험한 상황이 많은 작업이니 불안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조심해도 순간 발생하는 게 사곤데 우리는 너무나 많은 위험 요소들이 있어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죠. 순간 베일 수도 있고, 위에서 뭐도 떨어지고, 오일까지 뿌리니 설 수도 없을 정도로 미끄러운데… 근데 8명의 무용수들을 너무 믿고 간 거 같아요 그 친구들이 워낙 경험이 많고 잘하는 친구들이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지현: 얼음씬도 상당 했잖아요? 전 사실 느낌으로는 얼음이 유리 같아서 눈을 종종 감았던 거 같은데요.
김성훈: 그 장면도 그랬죠. 깨트리기도 해야 하고 토도 실제로 해야 했고.. 얼음은 물이 그런 것처럼 정화의 의미로 썼어요. 분노를 삭히는 의미도 되구요. 근데 모든 게 그렇듯이 과하면 부작용이 생기잖아요. 과도하게 자신의 분노를 삭이려 하고 조절하려 하는데 그게 컨트롤이 안 되서 스스로 토하게 되는… 어쩔 수 없이 과도하게 조절하려고 했을 때 반응으로 나타나는 구토를 표현하려니 무대에서 직접 할 수밖에 없었죠. 그 친구(배현우)는 식도가 다 헐었죠. 첫 씬 끝나고 오트밀을 먹기 시작해야 그 장면에서 토할 수 있으니까요.
이지현: 주사기 장면도 있었죠.
김성훈: 그 장면은 주사기로 피를 빼서 자기의 존재 가치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장면인데 내면의 진실이랄까. 관객 너희들도 우리의 폭력을 보고 있지만 너희들도 우리와 같은 죄인이고 공범이다. 이런 걸 객석에 던지는 도전적인 장면인데요. 그걸 또 한 친구(정재우)가 나타나 막는 장면이죠. 말리면서 몸싸움을 해야 하니 또 많이 다쳤죠. 주사기는 감염의 위험 때문에 예민한 도구라 실제로 할 수는 없었구요.
이지현: 연습실에 파스 냄새가 진동을 했겠는데요.
김성훈: 파스 정도가 아니죠. 병원 가야 했어요. 특히 오일 장면에선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니까 근육과 관절이 꼬이고 몸이 몇 배로 힘들었죠. 결국엔 어딘가에서 이미 폭력을 당한 피범벅이 된 한 친구(홍성연)가 나오고 그 다음에 오일이 벽에서 흘러내리며 오일씬이 계속되다가 마지막에 도저히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기름 범벅이 된 한 인간(정재우)으로 집중되죠. 사실 그 장면을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그러기로 하고 한 게 아니라 리얼하게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어요. 무용수에게 미안하죠.
제 기준으로 최고의 댄서들을 섭외했고, 이 작품과 맞는 친구들을 찾았기 때문에 저는 사실 어떤 행위를 해도 괜찮을 거란 믿음이 있었어요.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뭔가 표현이 될 거라고 믿고 있었어요. 근데 이 친구들이 이 힘든 장면들을 묵묵히 잘해주어서 더 바랄게 없죠.
이지현: 나체씬은 별 무리는 없었나요?
김성훈: 그 친구들이니까 가능했던 거 같아요. 경험이 많으니까 그냥 벗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원하는 의미를 해낼 수 있었다고 봐요. 저는 옷을 벗는 것을 들뢰즈의 ‘기관없는 신체’를 생각한 건데, 몸에 대한 사회적인 규정들을 벗어나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했거든요. 사회의 규정은 무대 위의 흰 벽으로도 표현을 했는데 그야말로 우리 앞에 가로막힌 벽이죠. 그리고 오일은 그 벽을 타고 흐르는 눈물로 생각했어요. 아르토 역시 같은 고민을 했는데 사회의 질서, 법, 규제 이런 것들이 벽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부셔야 인간은 자유로워지는데 벽을 또 나타나고… 그게 슬프더라구요. 그래서 그 벽도 우리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 주문을 할 때 눈물처럼 흐르게 해주세요 했어요
이지현: 그 오일이 벽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했을 때 상당 시간 동안은 흰 벽에 투사된 영상이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깔끔한 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 무용수들 몸이 번들거리기 시작하더라구요.
김성훈: 그 오일이 흐를 때 기포가 생겨서 가장자리 면이 뽀쪽뽀쪽하게 보이기도 해요. 그리고 나중엔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색으로 변해 무용수들의 몸을 적시죠. 사실 오일 때문에 스탭들 앞에서도 고개를 못 들고 다녔어요. 연습실에서부터 그걸 연습해 봤었거든요. 한번 연습하면 닦는 일이 너무 큰 일이니까… 극장에선 말할 것도 없구요.
이 현실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지현: 공연장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조명기도 떨어지잖아요. 사실 나는 처음 떨어졌을 때 그것이 사고인줄 알았어요. 그러니 공연장 사고인줄 알았구요.
김성훈: 첫 번째 조명기는 작품에 집중된 흐름을 현실로 돌리고 싶었어요. 무용수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조명이 화이트에서 핑크를 지나 레드로 바뀌는데, 그 때쯤 작품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실수처럼 그 흐름을 깬 거죠. 관객이 자기 판타지에 빠지는 것을 붕괴하려는 의도였고 마지막에 조명기 3개를 떨어뜨리는 거는 그 현실감을 더 줘서 이게 현실의 마무리로 종지부를 찍고 싶어서 연출적으로 그렇게 한 거죠.
이지현: 제 기억에 의하면 극장에서 공연 중에 조명기가 떨어진 거는 처음 보는 거 같은데요. 조명기가 떨어진 다는 건 정말 극장이 스스로를 부정하는 그런 느낌이잖아요.
김성훈: 사실 저는 조명기를 한 30개 정도 떨어지면 좋겠다고 했었어요. 제작비도 그렇고… 저를 유심히 째려보시는 거 같았어요. 원래는 진짜 조명기로 사람을 치는 장면을 하려고 했는데 진짜로 하자니 너무 위험하고, 페이크로 하자니 가짜 같고… 그리고 해보니까 그럼도 별론 거예요. 그래서 떨어뜨리는 걸로 갔죠.
이지현: 그런 식의 조율이 없을 순 없겠죠?
김성훈: 머리 묶는 장면도 사실은 묶은 머리를 자살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서 바텐에 묶으려고 했어요. 근데 S씨어터 조건이 그게 안 된데요. 그래서 다른 친구가 가해를 해서 조정 당하는 것으로 바꿨죠.
이지현: 얘기를 들으니 잔혹할 수밖에 없는 장면의 이유가 너무 분명하게 있네요. 감각적으로 호소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것을 보여주려는 작품. 사회가 규정하고 부여한 관념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관객에게 감각적으로 충격을 주는 ‘잔혹극’의 원래 의미에 충실한 거 같습니다.
김성훈: 8명의 캐릭터들이 섬에 갇혔을 때 어떤 해프닝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했어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도 생각을 했구요. 누군가는 싸워서 이겨서 쟁취를 하는 사람이 있고, 혼자 고민 속에 이 사람을 죽일까 말까를 칼로 보여주는 사람이 있고, 얼음으로 정화하려는 사람도 있고 그러다 토하고, 싸우지 않고 스스로 결단을 내리려는 사람이 있고, 자기의 존재 가치를 사람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도움을 받으려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캐릭터들을 풀어서 보여주는 거죠. 거기에 극장이라는 공간과 작품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충격 요법을 조명기를 떨어드리는 것으로 한 거죠.
이지현: 실제로 잔혹의 수위와 내용을 결정하면서 많은 걸 느꼈을 거 같은데요.
김성훈: 처음에는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고 얘기가 오갔죠. 그 다음엔 동물법에 걸린다, 감염이 위험하다, 극장에서는 그게 안 된다 등등 고려해야 할 법 얘기가 나왔구요. 고려해야할 게 많더라구요. 작품도 폭력으로 한정 짓고 심플하게 가려고 했는데 왜냐면 더 깊이 들어가면 실제적으로 할 때 더 위험해지니까요. 저도 이런 식의 작업을 처음 해봐서 단순하게 폭력만 다루자고 제한을 뒀죠. 아르토를 생각해 보면 그가 실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그에 대한 금지가 많았다고 해요. 그의 진심보다는 그에 대한 위험성을 느낀 쪽이 있었던 거죠. 저도 무용수들이 온통 흰색인 정신병원 같은 무대에 와서 아침부터 하는 일이 피를 닦는 일이니 이 친구들이 괜찮을까하는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극장에 얘기해서 무용수들 공연 후에 심리 케어를 부탁했어요.
이지현: 그건 이번 공연에선 필요할 거 같네요. 잘 판단했네요. 그런데 안무가도 케어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김성훈: 제가 댄서 출신이고 춤추는 걸 좋아하다 보니 저는 댄서들을 젤 먼저 챙기는데 그게 잘 안된 것 같아 속상하구요. 누구보다 그들을 이해하니까 더 힘드네요. 저도 이번에 힘들었지만 다 저를 보고 같이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사실 제가 힘들어 할 순 없었고 그러니 저도 좀 도움도 받고 정리가 필요한 거 같아요.
이지현: 이제 애기를 마무리 해볼까요. 앞으로 계획은 어때요?
김성훈: 유럽에서 댄서 생활했을 때가 젤 편했던 거 같아요. 춤추러 가고 싶어요, 근데 이제 나이가 있어서 받아 줄지 모르겠지만…
김성훈 ⓒ이지현 |
〈핑크〉를 볼 때부터 김성훈이라는 안무가에게 이 작품은 무슨 의미일까가 생각되었다. 그리고 홍보물만 보고는 처음엔 너무 감각적이고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건 아닌가 하고 오해도 했었다.
그런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는 이 안무가는 정공법으로 주제에 도전했고, 자기의 한계를 넘는 듯 넘지 않는 듯 중심을 잘 잡는 모습이 돋보여 안무가를 다시 볼 수 기회에 기뻤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마음에 남았던 건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채 아직도 작품 속에서 막막하게 멈춰 서 있는 ‘진지했던’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그는 시간을 갖고, 쉬고, 춤을 추면서 곧 통로를 찾겠지만 그의 정공법과 고민 속에서 드디어 그가 한 사람의 예술가가 되어가고 있구나를 느꼈다.
그래 맞아 공연이 끝난 후에야 드러나는 진실이 있지, 주제, 형식, 관계 이런 건 모두 곧 증발할 테지만 예술가가 가슴에 품어야 할 어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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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인터뷰는 과정에서 사담으로 흐른 부분이 있어 실제 대화의 순서와 내용을 가독성과 글의 정리를 위해 편집해서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2) Antonin Artaud(1896-1948) : 프랑스의 시인, 극작가, 연출가, 연극이론가. 잔혹극의 창시자.
3) 뉴시스 기사 참조 https://www.newsis.com/view/NISX20250828_0003307481
이지현
1999년 춤전문지의 공모를 통해 등단했다. 2011년 춤비평가협회 회원이 되었으며, 비평집 『춤에 대하여 Ⅰ, Ⅱ』를 출간했다. 현장 춤비평가로서 왕성한 비평작업과 함께 한예종 무용원 강사를 역임하고, 현재 아르코극장 운영위원과 국립현대무용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