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 일 시
- 2025년 6월 13일(금) 오전11시
-
- 장 소
- 아카데미아인(서울 동교동)
ⓒ춤웹진 |
〈운초 김은희 춤: 일무지관(一舞之貫)〉 공연 소개
2025. 6. 8. 저녁,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
〈응천교방굿거리춤〉, 출연 김은희 / 〈밀양검무〉, 출연 김연·김희원 / 〈박금슬류 살풀이춤〉, 출연 김은희 / 음악 〈일무지관〉, 연주 유인상 외 악사 / 〈이매방류 살풀이춤〉, 출연 김은희 / 애니메이션 〈운초 김은희의 춤길〉 / 〈김은희 즉흥무〉, 출연 김은희 / 〈이매방류 승무〉, 출연 김은희
채희완: 일주일 전쯤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운초 김은희 춤: 일무지관〉이라는 공연을 올리셨는데요. 그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선생님으로서는 그 제목이 얘기해 주듯이, 70평생 오로지 춤으로 생을 관통하고 계시는데요. 아마 춤이 곧 나의 삶. 나의 삶을 이룰 수 있게끔 한 것이 춤이고, 춤이 있었기에 나의 삶이 있었다고 얘기할 정도로, 초지일관 아주 질기고 질긴, 그리고 야무지고 단단한, 삶으로서의 춤을 영위해 오셨는데, 이번 공연에 그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자면 선생님의 삶의 내력, 역정과 거기에 담긴 의미를 춤으로 형상화시켜 놓으셨는데 그 춤 속에 담긴 선생님의 삶의 비밀스러운 면, 또는 선생님의 삶의 지향성, 가치를 육성으로 좀 알고 싶어서 이렇게 질문 드리게 되었습니다. 우선, 공연을 마치고 무대 인사를 드리고 난 이후의 그 정서 상태랄까, 보통 우리가 소감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그 느낌이나 기분, 마음의 떨림은 어떠하셨는지요?
자전(自傳) 같은 〈일무지관(一舞之貫)〉
김은희: 사실은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았어요. 4월부터 준비했거든요. 원래는 11월에 공연할 생각이었고, 내 춤은 가까이에서 봐야 되니까 꼭 남산국악당이어야 했어요. 그래서 서울문화재단에 지원신청서를 넣을 때도, 장소를 남산국악당 예정으로 썼어요. 원으로 돌면서 춤을 추는 무대가 우리나라에 드물기 때문에, 그래도 남산국악당이 돌출 무대라서 11월에 해야 되겠다 하고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까 남산국악당 기획공연을 제가 하게 됐어요. 이번에 서울문화재단에서 제가 3,400만 원을 받고 남산국악당에서 기획 공연까지 하게 돼서 투자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그 기획 공연이 성사된 이유는 또 제가 원래는 재작년 2월에 하기로 했었지만, 제가 위암 수술을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하지 못했는데 너무 아깝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얘기가 잘 돼서 기획공연까지 겸해 하려다 보니 하반기가 좋겠더라고요. 그런데 하반기에 엘리베이터 공사가 2~3개월 있어 하려면 11월에나 6월 8일이 가능하다는 거예요. 11월이나 6월 중에 택하라 해서, 6월을 택한 거죠. 한두 달 만에 준비하다 보니 충분히 준비를 못해서 그게 좀 아쉬웠어요. 무대를 끝내고 난 뒤에 사실은 관객들 호응도가 너무 좋아서 ‘잘했나 보다’ 싶지만 제가 부족한 거, 실수한 걸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그게 너무 아쉬워요(웃음). 평소에 안 하던 엉뚱한 짓도 좀 하고, 〈살풀이〉에서는 잠깐 딴생각을 했는지 순서도 좀 그냥 지나친 게 있고 〈승무〉는 순서를 지나치지 않았지만 제 기량을 다 발휘 못 한 그게 너무 아쉽습니다.
채: 춤으로 자서전을 썼다, 이렇게도 얘기할 수 있고 그림으로 치면 나의 삶의 자화상을 그렸다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것을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나의 삶은 무엇이고 어떠했는가를 줄여서 한번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김: 우리 제자들이 이런 말을 했어요. “김은희 선생님은 춤이다. 춤이 김은희 선생님을 살리고, 김은희 선생님이 춤을 살린다”고요. 이번 공연의 애니메이션이 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야기를 담아냈잖아요. 그 사이에 더 세세한 얘기는 지금 대화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채: 이 전체 주제는 그야말로 “춤, 곧 나, 곧 나의 삶”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미 공연의 제목에서도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만 나의 삶의 여러 국면들을 지금 여섯 작품으로 연작 시리즈, 옴니버스 스타일로 담아냈습니다. 우리 용어로는 연산구조식으로 각기 독자적이면서도 연결이 돼 있는 큰 맥을 이루는, 안 보이는 데서는 큰 하나의 흐름이 관통하고 있지만 그 각각은 산봉우리 하나하나씩마다 이름이 있듯이, 춤, 춤, 춤 이렇게 엮어졌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가지고 엮어낼 때 어떤 틀이나 구상이라는 게 있었습니까?
〈일무지관(一舞之貫)〉, 밀양 그리고 박금슬·이매방 선생
김: 사실은 춤을 진짜로 배우는 거는 박금슬 선생님부터 먼저 시작됐지만, 일단 제가 태어난 건 밀양이잖아요. 그래서 맨 처음에 밀양춤부터 췄어요. 우리 외삼촌(강석)이 밀양춤을 추겠다고 하셨다면서요? 저도 나중에 아는 얘기고, 나도 이제 밀양춤을 춰야 되겠다 싶었어요. 김동선선생님이 밀양춤에 대해 기록을 많이 해놓으셨는데, 제가 이걸 『밀양춤』이라는 책으로 엮어봤어요. 그 안에는 〈밀양검무〉 〈밀양백중놀이〉 〈휘쟁이춤〉 〈잔걸음춤〉 등등 여러 춤이 있어요. 제가 이 춤들을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처음 복원한 게 〈밀양검무〉죠. 이 책에는 제가 복원하기 전에 선생님이 소설처럼 쓰셔서 내용은 다릅니다. 저는 연구하면서 제대로 복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소설처럼 쓰셨는데 자필로 뭐라고 썼냐 하면, 김은희 복원이라고 적었어요. 제일 처음에 〈응천교방굿거리〉, 교방이라는 건 지금의 국립국악원처럼 예능을 지도하는 곳이죠. 교방이라면 기생집으로 착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예능을 지도하는 곳이었잖아요. 거기서 예술인이 나오고, 여자들이 예술인이 되니까 예술을 품은 기생이 관기가 됐었겠지만, 그 내용은 잘 몰라도 ‘응천교방’이란 밀양의 옛 지명입니다. 조선시대 때 밀양을 응천이라고 했는데, 옛날 기록에 보면 조선 후기의 문인이셨던 신국빈이 1724년~1750년에 〈응천교방죽지사〉라는 걸 했다는 기록이 있어요. 제가 6살 때 춤을 만나긴 했는데, 밀양에는 무용학원이라는 게 없잖아요. 제가 하도 춤을 추고 싶어 하니까, 우리 엄마가 옆에 있는 막걸리 같은 걸 장사하시는 기생 할머니한테 제가 자꾸 이상한 짓을 한다고 말했어요. 꼭 춤을 배우라고 저를 맡기기야 했겠어요? 그냥 엄마가 8남매를 키웠으니까, 저를 가끔 맡기셨나 봐요. 그러니까 제가 하도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까, 선생님이 춤을 가르치신 거예요. 그때 그 기억 중 내가 잊지 못하는 게, 지금은 스틱 가지고 장구도 못 치는 신무용화돼 있는데, 그 선생님은 딱 앉아서 장구를 치면서 가르친 거죠. 옛날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 희초(야유회의 방언)라는 게 있었어요. 야유회인데, 어머니들이 모여서 희초라는 걸 하는 거죠. 제가 아주 어릴 손잡고 따라갔죠. 희초를 가면 꼭 기생들이 따라왔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야유회를 할 때 흥을 돋우는 사회자들인 거죠. 그 기생들이 흥을 돋우는, 막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거죠. 그런데 제가 막 따라서 춤을 추니까, 그 할머니가 저한테 춤을 가르치신 거예요. 그때 가르친 용어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어요. 지금 춤을 가르치면 “오른손 들어라” “왼팔 들어라” “한 바퀴 돌아라”라고 하는데, 선생님은 “밀어야지”, “거기는 비비는 거야”라고 했어요. 기억나는 게 “밀어라, 당겨라”라고 하거나 “먹어라” 즉 멈추라는 이야기죠. 장단을 먹으라는 건지, 춤을 먹으라는 건지 모르니까 멈칫하죠. 그리고 “비벼라” “배겨라”와 같은 말이 기억에 남아요. 그래서 그 말들을 기억하면서 〈응천교방굿거리〉를 복원했어요. 제 춤이 그래요. 딱 먹고 기다리고 있고요. 그리고 손동작도 있었어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보니까 〈진주검무〉 〈통영검무〉 〈밀양검무〉에도 있어요. 그때는 몰라서 박수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면서 춤을 추고, 또 밀양에서 할아버지들이 〈밀양백중놀이〉 복원할 때 제가 옆에 있었거든요. 그때 그 춤사위들을 다 기억해요. 처음에는 〈응천교방굿거리〉, 응천이라는 지명이 있고, 밀양에 응천교방터가 있어요. 지도도 있어요. 그래서 시장님한테 교방을 복원해내라고 했더니, 의향은 있으신데 제가 국립국악원처럼 운영해야 하니까 운영할 자신이 없잖아요. 전 춤만 춰야지, 뭘 하라고 하면 못 하거든요. 그래서 응천교방터가 있는 건 확실한 거니까 〈응천교방굿거리〉와 〈밀양검무〉를 제일 먼저 복원했어요. 전 밀양사람이고, 밀양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니까 〈밀양검무〉는 87년에 자료를 받아서 88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해서 92년에 예총 30주년 기념 공연을 김자경 오페라단이 앞날 하고, 전 그 뒷날 김은희 무용단으로 그 기념 공연에 초청됐는데, 그때 응천이라는 말은 못 붙이고, 춤도 그때 좀 엉망이었죠. 지금은 많이 정리가 됐어요. 〈밀양검무〉와 〈교방굿거리춤〉을 밀양에서 처음 발표한 거예요.
〈응천교방굿거리〉 ⓒ김은희 |
〈밀양검무〉 ⓒ김은희 |
김: 그다음에 박금슬 선생님을 처음 만났어요. 박금슬 선생님 기본이 있지만, 〈살풀이춤〉은 기본을 다 배우고 난 뒤에. 기본을 할 때는 선생님이 막 용어를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이 〈살풀이춤〉은 처음에는 이번에 박금슬 선생님 MR을 가지고 하려고 그랬어요. 선생님이 “다음은 살풀이 시작”이라고 말하면서 작품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는 박금슬 선생님 MR로 하겠다고 적었어요. 그런데 막상 리허설을 해보니까 MR을 해서는 안 되겠는 거예요. 다른 거는 다 라이브로 했잖아요. 제가 다 계획해놓고 너무 정신이 없어서 라이브로 음악을 하기 전에, 박금슬 선생님 목소리로 “다음은 살풀이 시작”이 나왔어야 했는데 그 녹음을 놓쳤어요. 이런 아쉬운 점들 때문에 한 번 더 공연해야 되겠다 싶어요. 박금슬 선생님은 중학교 때 만난 선생님이고, 제가 솔로로 무대에 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옛날에 선생님 돌아가시고, 84~86년 추모 공연할 때 군무로 하긴 했어요. 이 춤은 전통무용이 아니라 근대무용이에요. 박금슬 선생님은 이시이바쿠에게 가서 배웠죠. 옛날 무용가 중에서 가장 많이 배운 분이 박금슬 선생님이라고 보죠. 일본 청수전문대학인가를 나오셨으니까요. 거기서 이시이바쿠에게서 배운 거죠. 현대무용을 했지만, 현대무용을 하려면 발레를 안 할 수 없거든요. 발레가 기본이니까. 저도 한국무용을 가르치면서도 현대무용, 발레를 반드시 엮어야 된다고 말해요. 발레에서 기둥을 딱 세우고, 현대무용에서 자유를 느꼈으면, 한국무용에서는 절대 춤은 배꼽 위로 올라오면 안 되고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박금슬 선생님 춤은 근대춤이다 보니까, 이걸 비녀를 꽂고 살풀이를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의상을 신무용처럼 입고, 비녀를 꽂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비녀를 빼고 간단한 머리를 하고 근대춤이라는 걸 보여줬죠. 그러니까 두 〈살풀이〉가 한꺼번에 붙어 있잖아요. 음악도 비슷할 거고요. 그래서 음악도 조금은 다르게 해달라고 했어요. 원래 박금슬 선생님 〈살풀이〉 MR로 돼 있는 거는 춤하고 딱 맞아떨어지거든요. 그래서 제가 고집을 부렸어요. 그런데 하루 전날 그 생각을 바꾼 거죠. 박금슬 선생님의 〈살풀이춤〉을 먼저 추고, 그 다음에 이매방 선생님의 〈살풀이춤〉을 추게 된 거죠. 그러니까 나의 춤 역사를 그대로 엮은 거죠. 태어난 것부터 근대춤으로 박금슬 선생님 〈살풀이춤〉을 추고 나서, 이매방 선생님의 〈살풀이춤〉을 춘 거죠. 이매방 선생님의 춤을 어떻게 춰야 할까 고민했는데, 선생님한테 이수 받았을 때 입은 옷을 입자고 생각했어요. 둘 다 똑같이 흰색을 입는 것도 조금 그렇고, 그게 훨씬 더 의미 있더라고요. 이수할 때 선생님이 아얌을 해주셨는데, 내 아얌은 디자인이 참 보기 싫거든요. 그래서 새로 맞추려고 하다가, 그래도 선생님께서 직접 해주신 옷을 입고자 했어요. 그 안에 치마저고리도 직접 해주신, 옛날 거죠. 너무 낡았지만 의미가 있죠. 하루 전에 리허설을 하는데, 시간을 90분으로 잡았는데 100분 이상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연출 선생님과 무대감독과 상의하면서 좀 줄이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근데 잘라봐야 5분이어서, 이거를 원형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서 자르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처음부터 끝까지 하는데, 중간에 조금 실수를 해서 순서를 약간 잘라 먹은 게 있어서, 그게 엄청 아쉬워서 다시 무대를 더 열 궁리를 하고 있어요.
〈박금슬류 살풀이춤〉, 〈이매방류 살풀이춤〉 ⓒ김은희 |
채: 악사분들하고 마루를 맞춘 건가요?
김: 아니요. 〈살풀이〉는 즉흥이니까 미리 얘기한 건 아니고, 제가 춤추는 대로 맞춰지는 거죠. 춤을 추다 보니까 왼손에 있어야 될 게 오른손에 가 있고, 나중에 비디오를 보니까 순서를 잠깐 건너뛰었더라고요. 근데 관객들은 잘 모를 거예요. 그렇지만 순서를 아는 사람은 알 수 있겠죠. 그리고 이매방 선생님 〈살풀이〉를 추고 나서, 마지막 선생님이 이매방 선생님이시니까. 애니메이션에서 선생님 돌아가실 때 손잡고 있어요. 실제로 선생님 돌아가실 때 옆에 있었으니까요. 선생님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소문을 듣고, 선생님이 계시는 양재동 병원으로 제가 제일 먼저 갔어요. 다른 사람들이 막 올 때, 미리 선생님한테 가서 애니메이션에 있던 그 느낌으로 있었죠. 안에 들어가서 선생님 손을 잡지는 못했지만요. 선생님이 이제 완전히 통 안에 계셨으니까. 그때의 모습과 마음을 담았죠. 〈살풀이춤〉을 추고 난 뒤에 바로 〈승무〉를 출 수 없으니까, 애니메이션 다음에 ‘내 춤을 추겠다’는 의미로 〈즉흥무〉를 춘 거죠. 나열상으로는 〈승무〉 다음에 〈즉흥무〉를 춰야 하는데, 의상도 갈아입어야 하고, 여러 사정상 〈승무〉를 마지막에 췄어요. 그래도 〈즉흥무〉는 이번에 인기가 있었더라고요. 그 춤에는 김은희가 있고, 박금슬도 있고, 이매방도 있고, 밀양도 있어요. 그래서 〈밀양백중놀이〉에, 악사 앞에서 하는 범부춤을 넣었잖아요. 그게 범부춤 동작 그대로예요. 그러니까 나름대로 제 인생을 다 넣은 거죠. 거기다가 예쁜 짓만 하는 게 아니고,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했잖아요. 그래서 〈즉흥무〉를 하고, 이매방 선생님의 〈승무〉로 마무리했죠.
굿거리춤
채: 지금 말씀 중에 제가 참으로 솔깃해 하고 또 궁금한 점이 한 세 가지쯤 있습니다. 우선 〈응천교방굿거리춤〉이지요. 제목을 아예 교방굿거리춤으로 하셨는데, 밀양 또는 영남 지역의 굿거리춤이죠. 다른 지역의 굿거리춤도 있을 거 아닙니까? 또 특히 그다음에 하셨던 〈살풀이춤〉은 살풀이장단이 중심이니까, 살풀이장단과 굿거리장단의 차이가 춤으로도 분명하게 구획되고 있는 건가요? 경상도 굿거리 중에는 토속적인 용어로 ‘덧배기 가락’이라 이야기하잖아요. 덧배기 가락으로서의 굿거리춤·장단, 그리고 〈살풀이춤〉에서의 살풀이장단 사이에는 어떤 구획점이 있을까요? 정서적인 차이인가요? 아니면 장단은 똑같이 4박자인데 무엇이 다른 걸까요?
김: 장단은 같아도 〈굿거리춤〉은 굿거리장단으로, 〈살풀이춤〉은 뒤에 궁편으로 끝을 내잖아요. 춤 느낌도 조금 다르죠. 굿거리춤은 이렇게 딱딱 끊어 절도 있게 춤을 춘다면, 〈살풀이춤〉은 여운이 있게끔 감기는 듯하죠. 제 나름대로도 〈굿거리춤〉은 ‘턱턱’ 추는 거고, 〈살풀이춤〉은 음과 양의 연결이 계속 이어지는 쪽으로 춥니다.
채: 어떤 분은 〈경상도 굿거리춤〉은 덧배기 가락처럼 툭툭 끊어지며 굵은 매듭을 중간중간 치는데, 〈살풀이춤〉은 무릎 밑에서부터 위로 감아올리는 흐름을 탄다고 하더군요. 선생님께서는 장단에 따른 춤의 차이가 정서적인 반응인지, 아니면 장단 흐름에 대한 움직임 차이인지 궁금합니다.
김: 저는 호흡의 차이라고 봅니다. 제자들에게 춤을 가르칠 때, 절대 춤이 배꼽 위로 올라오지 말라고 해요. 나무가 자라려면 뿌리를 먼저 내려야 하듯, ‘갈고리’를 지구 반대편에 걸어 놓고 내 몸에 달아 호흡을 밑에서 끌어올리라고 말합니다. 〈굿거리춤〉은 그 호흡을 탁탁 맺는 식입니다. 이번에 무보를 쓰면서 ‘들숨·날숨·멈춤·호흡’이 많이 나오는데, 저는 단전에서 한 바퀴 회전시켜 위로 뿜어내거나 하늘에서 끌어온 기운을 단전에서 돌려 밑으로 뽑아냅니다. 이것들이 단전에서 만나 굴러가죠. 그래서 ‘맺어굴림호흡’ ‘풀어굴림호흡’ 같은 용어를 제 무보에 적어 두었어요. 〈응천교방굿거리춤〉은 ‘탁’ 맺는 데 집중하고,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맺었다가 푸는’ 데 조금 더 신경을 씁니다.
채: 지금 설명으로도 덧배기 가락풍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아까 선생님 〈즉흥무〉에서 밀양춤가락, 북 앞에서 범부춤이라고 알려진 부분이 전형적으로 보였는데, 〈응천교방굿거리춤〉에도 그 흐름이 깔리는 건가요?
김: 조금 그렇죠. 〈응천교방굿거리춤〉은 경상도 춤이고, 제 〈즉흥무〉에도 그런 요소가 많습니다.
채: 얼핏 느끼기에 〈응천교방굿거리춤〉과 〈즉흥무〉 후반부 밀양춤가락을 보고, 선생님 춤은 살풀이도 살풀이지만 배김새 가락이 더 밀양스럽고 선생님스럽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 〈즉흥무〉는 제 모든 것을 망라한 춤이니까요.
채: 〈즉흥무〉 가락이 엇모리와 자진모리 사이에 배김새 가락을 적절하게 넣어 흐름 속에서 맥을 ‘탁’ 찍어 주더군요. 선생님 춤은 넓게는 경상도 가락, 더 좁히면 선생님만의 밀양춤다운 멋과 맛이 느껴졌습니다. 〈살풀이춤〉은 이매방·박금슬 두 선생님 류풍을 선생님이 재해석하신 터라, 〈응천교방굿거리춤〉이나 〈즉흥무〉의 굿거리·엇모리·배김새 가락에서 더욱 선생님다움이 드러난 듯했습니다. 저로서는 익숙한 가락이라 더 편안하고 깊게 다가왔어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박금슬 선생님의 〈살풀이춤〉을 전통춤이 아니라 근대춤이라고 보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전통춤과는 다른, 오늘날의 춤이라는 뜻이겠죠?
김: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전통으로 내려온 것을 받들어 추는 거고, 박금슬 선생님은 기본동작을 직접 정리해 새롭게 만드셨잖아요.
채: 그러니까 우리춤기본을 토대로 새롭게 창작한 춤이라는 거군요?
김: 맞아요. 〈살풀이춤〉 기본동작이 100% 들어가 있지만, 박금슬 선생님의 기본을 좋게 보는 이유는 하체 동작이 자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춤출 때 몸을 세우려면 제일 먼저 작대기부터 배워야 해요. 한글도 작대기부터 배우듯이요. 요즘 아이들은 “아야어오요” 같은 모음부터 배운다고 하지만, 저는 먼저 세로 작대기를 긋는 법부터 익혀야 한다고 말해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긋더라도 에너지를 딱 잡아야 하죠. 박금슬 선생님 춤은 ‘각’이에요. 열십자(十)와 같은 각이죠. 동작을 손으로만 하면 안 되고, 몸을 하체를 열었다가 닫으면 각이 나옵니다. 하체를 닫아야 등에서 각이 나오는데, 사람들은 손으로만 하려 하거든요. 박금슬 선생님이 각을 ‘열십자’로 만들었다면, 그 각을 연결해 주는 것이 이매방 선생님 춤입니다. 점, 선, 원, 제가 말하는 ‘점·선·원’ 개념이죠. 춤을 추려면 먼저 내 몸, 그 다음 상대, 그리고 공간을 알아야 해요. 공간의 에너지를 운용·점령할 수 있어야 진정한 기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박금슬 선생님 춤은 과학, 이매방 선생님 춤은 자연”이라고 말해요. 과학은 자연에서, 자연은 과학에서 재료를 얻는 셈이죠.
채: 훨씬 더 일목요연해졌는데요. 박금슬 선생의 〈살풀이춤〉과 이매방 선생의 〈살풀이춤〉은 각각의 특징이 있으면서도, 움직임의 원리에서 상호보완적이죠. 살과 뼈의 관계처럼요. 그리고 과학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이 묘하게 어우러져 나온 춤을 ‘김은희 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김은희의 〈살풀이춤〉이 있다면, 박금슬 선생의 뼈, 각, 몸/움직임의 구조, 그리고 그것을 흐르게 하고 돌게 하는 사유와 이매방 선생님에 의해 온 핏줄, 혈맥, 정서로 정리된다고 볼 수 있겠네요.
대가의 차이나는 춤 특성
김: 이걸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하자면, 박금슬 선생님은 ‘축’이에요. 축이 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이 축을 바로 세워서 춤을 추는 게 박금슬 선생님의 춤이죠. 그래서 춤이 반듯하고 깨끗한 겁니다. 그런데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흔히 ‘막 꼬는 춤’이라고들 하는데, 그 춤도 결국 축이 딱 바로 서 있어야 가능한 거예요. 하체가 밀리면 상체도 그에 따라 저렇게 밀릴 것이고, 하체가 회전하면 상체도 따라 움직이겠죠. 그러니까 그것 역시 축이 서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지요. 많은 사람들이 축 없이 무조건 휘는 줄로만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제가 박금슬 선생님의 춤을 '뼈'라고 말한 건, 그 춤에는 분명하고 확실한 축이 있고, 그 축이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이매방 선생님도 탱고 같은 걸 아주 잘 추셨거든요. 그런데 춤에서 하체의 방향이 상체를 결정하잖아요. 하체와 상체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거기에서 음양이 나오고, 태극이 되고, 선이 만들어지는 거죠.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모든 것이 축이 없으면 절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축이 없어도 춤이 되는 줄로 아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탈춤을 춘다고 해도, 땅을 미는 힘, 그 축이 없으면 안 되는 거죠. 땅을 미는 힘이 축을 만들고, 그 힘으로 춤이 움직여지는 거지요. 정리하자면, 박금슬 선생님의 춤은 '축'이고 '각'입니다. 그 축을 상하로 분리해 하체와 상체를 구분하고, 그 사이에서 회전이 일어나는 거죠. 반면에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축과 회전, 두 가지가 다 필요한 춤입니다.
채: 이걸 다른 식으로 얘기하면, 축이라는 상하를 먼저 세워놓고 위아래를 통하게 한 다음, 등을 중심으로 해서 에너지의 흐름이 가도록 만든다는 구조죠. 동작의 모양으로 보면 약간 대칭적인 구조를 강하게 보인다면,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대칭 구조보다는 태극 라인처럼 엇대칭, 어떤 흐름이나 유동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김은희 ⓒ춤웹진 |
김: 그것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딱 맞아요. 박금슬 선생님의 춤이 직선이라면,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사선, 또는 곡선이죠. 우리가 춤을 출 때 올리는 동작을 한다고 해도, 잘 내려줘야 올라가요. 예를 들어 시소나 널뛰기를 해도, 누군가가 내려줘야 올라갈 수 있잖아요. 그게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차이예요. 김연아는 엣지를 아래에서 잘 처리하니까 위에 선이 만들어지는 거고, 아사다 마오는 그냥 뜨려고만 해서 위로 막 달려 올라가죠. 그러니까 시간이 짧고 힘이 빠지는 거예요. 춤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이매방 선생님의 춤은, 박금슬 선생님 춤이 직선이라면 곡선이고, 이매방 선생님은 양우선이라고 예를 들어 볼 수 있어요. 오른손이 뒤로 내려가려면 왼쪽 다리가 단단히 받쳐줘야 하거든요. 같이 일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항상 ‘저울’ 이야기를 해요. 저울이 균형이 안 맞으면 올라가 있는 쪽에 무게를 얹어야 내려가고, 그럼 반대쪽이 올라가잖아요. 그리고 누가 이번에 저한테 “너무 제자리에서만 뱅뱅 돈다”는 말을 했어요. 아, 정말 모르고 하는 말이구나 싶었어요. 이매방 선생님이 접시 위에서 춤추면 돌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걸 이번에 재현해본 거예요. 선생님이 상 위, 배 위에서 춤을 추셨던 걸 실제로 따라 해 본 거죠. 조금 아쉬웠던 건, 조명이 그걸 잘 압축해서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이에요. 제가 조명팀에 얘기했거든요. 조명기에 쓰는 고보 말이지요. 제가 춤출 때는 태극 문양이 들어간 고보와 원자 모형도가 들어간 고보, 이렇게 두 개를 준비했어요. 그 고보 안에서 저는 〈승무〉도 췄고, 〈살풀이춤〉도 췄어요. 예를 들어 〈승무〉를 출 때는 원자 구조의 고보를 머릿속에 두고, 그 라인 안에서 자리를 옮겨 다녔고, 〈살풀이춤〉은 태극 고보를 응용하면서 움직였어요. 그런데 조명을 입혔더니 옷에 비치고 해서 잘 안 되었죠. 예전에 ‘두리춤터’나 ‘M극장’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공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조금 더 잘 보였어요.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은 “그건 그냥 김은희 선생님 스타일이지, 제자리에서만 계속 돌아.”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이매방 선생님 이수자까지도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간단히 얘기했어요. “차렷 자세에서 우향우 한번 해봐요.” 우향우 하려면 오른발이 축이 되어야 하잖아요. 오른발이 축이 되면, 반드시 뒤에 있는 손이 먼저 붙어요. 그게 밀어내는 동작이고, 동시에 반대편은 당겨지게 되죠. 그럼 이걸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몸통이 반대로 돌아야 이 감긴 것이 풀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자리에서 회전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걸 하나도 안 하고, 그냥 겉모양만 따라 하니까 그게 안 되는 거죠.
일단 지금 차렷 딱 하고, 우리가 우향우 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 손도 꼼짝도 하지 말고, 이 오른발을 기둥으로 삼으면 손이 자동으로 움직이게 되잖아요. 그럼 이게 뭐예요? 밀었어요. 그다음엔 뭘 해야 돼요? 서야 돼요. 그럼 당겨야 하죠. 그런데 보통은 그냥 딱 이렇게 해놓고, 겉모양만 하잖아요. 분명히 뒤가 먼저 감겨야 해요. 뒤가 먼저 감기고, 그게 이 손으로 전달이 되어야 내가 감기는 거예요. 그럼 이걸 풀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내가 좌향좌를 하는 수밖에 없잖아요. 몸통만 움직이면 되는 건데, 우리는 그걸 안 하죠.
박진영이가 그랬잖아요. "뒷다리는 밀고, 앞다리는 당겨라"라고요. 뒷다리를 밀면 앞다리는 딱 놓으면서 당기게 되는데, 그 순간에 얘가 뒤집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아예 이러고 춤추죠. 이런 것들 때문에 제가 이 무보를 시작한 거예요. 이건 너무나 자연하고는 다른 짓을 하고 있는 거죠. 왜 춤을 ‘만들려고’ 하느냐, 춤은 절대 ‘추는 것’이 아니고 ‘추어지는 것’인데. 제가 인사말에도 그런 말을 썼죠. "춤은 가르칠 수도, 배울 수도 없다." 선생님이 가르친다는 건, 순서랑 동작 만들어갖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거고, 배우는 건 그냥 그걸 흉내 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그냥 자연의 이치예요. 마라톤 선수가 처음에는 잘 걷지도 못하다가 나중에 잘 달릴 수 있는 것도 많은 연습에 의해서 몸이 자연스럽게 가야지, 몸이 이상하게 가면 못 가잖아요.
채: 그 움직임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호흡과 함께하는 몸의 방향 설정이겠죠. 그러니까, 아까 말씀하신 우향우, 좌향좌처럼 팔보다 몸통이 먼저 움직이고, 그 몸통이 팔의 동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지, 팔이 먼저 움직이고 몸이 따라가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죠?
김: 네, 반드시 하체만이 주도하고, 상체는 그걸 따라가는 거죠.
채: 일부러 비교하게 되는데요. 박금슬 선생의 〈살풀이춤〉에서 디딤새, 디딤법, 보법, 걸음새와 이매방 선생님의 디딤새, 보법 등은 공통점이 더 많을 것 같지만, 구분되는 점도 있을까요?
김: 저는 그걸 전혀 구분하지 않아요. 우리가 부산 갈 때는 이렇게 걷고, 대구 갈 때는 다르게 걷는 게 아니잖아요. 걷는 원리는 똑같잖아요.
채: 그러니까, 디딤 자세나 걸음새 같은 건 두 분 다 공통된 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김: 그렇죠. 그건 우리가 ‘춤’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상생활에서 인간이 하는 행동 그대로 하면 돼요.
비정비팔(非丁非八)의 디딤
채: 근데 저도 이매방 선생님께 들은 말인데, “비정비팔(非丁非八)”로 디딤을 건 것이다”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매방 선생님이 말씀하신 ‘비정비팔’이라고 하는 기본 자세는 어떤 동작일까요? 서 있을 때와 걸을 때, 그 자세의 차이가 있다면 어떤 건지도 궁금합니다.
김: 저희가 항상 춤을 출 때 그렇게 가르쳐요. 발을 이렇게 놓고 서 봐라. 그러면 그 가운데가 바로 비정비팔이잖아요. 그런데 이제, 일단 괄약근하고 단전을 잡으면 그 자세가 되어야 해요. 그 자세에서는 엉덩이가 열리죠. 우리가 차렷 자세를 딱 하면, 이게 딱 열려요. 근데 지금 그 중간에 딱 잡히는 그 자세, 그게 바로 비정비팔의 자세예요. 이게 이렇게 오면 이제 고무래 정(丁)이 되잖아요. 차렷을 그대로 하면, 억지로 붙이면 붙일 수도 있겠지만 무릎도 열려요. 근데 자연스럽게 이렇게 하면 딱 붙어요. 발레에서는 턴아웃이 되잖아요. 완전히 외회전이 되는 거죠. 우리가 말하는 1번 발, 2번 발, 3번 발, 4번 발, 5번 발, 모두 비정비팔의 응용이에요. 결국 가장 안전한 자세는 이거예요. 그러니까 저는 ‘이 춤과 저 춤이 뭐가 다르냐’ 하는 말 자체가 잘 이해되지 않아요. 그냥 걷는 원리는 같고, 다만 조금 빨리 걸을 것이냐, 느리게 걸을 것이냐, 높은 데로 갈 것이냐, 낮은 데로 갈 것이냐, 뭐 그런 정도의 차이이지, 춤은 만들어서 쓰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채: 결국, 춤이 ‘추어지게’ 만드는 건 디딤의 모양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제가 책에서 궁술 관련 내용을 보다 보니, 국궁(國弓), 그러니까 활쏘기 자세에서 하체를 비정비팔로 갖추어 놓는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김: 그러니까 궁도에서 말하는 비정비팔은, ‘정자도 아닌 것이, 팔자도 아닌 것’, ‘아닐 비(非)’ 자를 쓰잖아요. 그런데 박금슬 선생님은 그걸 ‘비스듬하게’라고 표현하세요. ‘똑바로가 아닌, 비스듬한’ 자세죠. 이매방 선생님도 ‘비정비팔’을 자주 말씀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설명은 안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무용에서 ‘궁’ 하면 발이 이렇게 가고, 비정비팔은 ‘정자도, 팔자도 아닌 어떤 중간’으로 가겠죠. 박금슬 선생님은 ‘비스듬하게’로, 이매방 선생님은 ‘비정비팔’로 말씀하시고요. 그런데 저는 춤은 움직이는 거니까 발 모양이 정해진 자세가 아니라, 내 다리 사이로 에너지가 지나다니는 그 상태, 그 흐름 자체를 비정비팔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해요. 그래서 〈살풀이춤〉 같은 걸 가르칠 때 보면, 아이들이 발을 너무 가볍게 써요. 그래서 저는 수건을 발목에 묶으라고 해요. “고리를 만들어서 뒤로 두 개 빼고, 거기 쇠사슬 하나를 달아라”고 말해요. “지금부터 영화 〈벤허〉 찍는다” 이런 식으로요. 살풀이 수건을 발에 묶고, 발목 두 개가 연결되었다고 상상해보라고 해요. 그러면 반드시 축이 서야 걸을 수 있어요. 그런 식으로 춤을 춰야 해요. 땅을 의식해야 하고, 축을 세워야 해요. 이 수건 뒤에 쇠사슬을 달았다고 생각하면서, 마치 죄인이 끌려다니듯이, 땅을 밀고 당기며 움직여야 하죠. 이매방 선생님은 발바닥이 항상 땅에 붙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애들은 막 뛰어다녀요. 꽃신 신고, 한복 아래로 발을 들고 사뿐사뿐 걷는 척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귀신이 걷는 것 같아요.(웃음) 그러니까, 발이 아니라 땅을 밀고 끌며 가야 돼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해요. 춤이란 건 지금 내가 가진 무게를 다루는 거예요. 에너지는 항상 뒤에 서야 해요. 나는 학생들에게 눈으로 관객을 바로 보지 말라고 해요. ‘조리개를 풀어라.’ 앞은 그냥 풀어두고, 에너지를 뒤에서 뻗어라. 눈이 앞에 있는 게 아니라, 뒤에 달렸다고 상상하라는 거죠. 예전에 제자가 스위스 선생님께 조소 수업을 들었는데, 그 선생님도 ‘뒷공간’을 의식하라고 했어요. 우리가 무슨 동작을 하든, 모든 건 뒷공간에서부터 나온다는 말이죠. 그래서 애니메이션 작업할 때도 그랬어요. 작가가 제 말을 그대로 인용해서 “손을 풀어서”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썼더라고요. 그건 제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자막도 수정했어요. “단전을 잡아서 축을 세우고, 손을 풀어라.” 그 장면만 글씨가 진하게 나와요. 나중에 수정해서 그렇죠. 그리고 그 뒤에 문장을 “뒷공간의 에너지를 느끼며 움직인다” 로 바꿨어요. 지금 말한 것처럼, 〈벤허〉에서 쇠사슬을 끌 듯이, 그 에너지가 뒷공간에서 끌어당기는 느낌이 들어야 하거든요. 그게 곧 알렉산더 테크닉이죠. 앞으로 걸어갈 때, 뒤에서 누가 끌어당기는 느낌, 또는 뒤로 움직일 때, 앞에서 누가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 이게 바로 에너지예요. 이 버티는 에너지. 근데 우리 춤 안에서는 이런 게 너무 약해요. 그래서 제가 자꾸 무보를 만들고, 이런 개념들을 남기려고 하는 겁니다. 아직 미완성입니다. 마음에 하나도 안 들지만, 「춤길, 몸길」이라는 걸 만들었어요. 이번에는 사실 이걸 완성해서 서울문화재단에서도, 남산국악당에서도 도와줬으니까 책으로 만들어서 관객들한테 선물할 생각이 있었어요. 앞표지 디자인은 국립무형유산원에서 해준 거예요. 제가 한 건 아니고요. 책을 만들어서 나눠주려고 했는데, 너무 급하게 하다 보니까 도저히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뒤쪽 팸플릿에 앞에 글과 함께 4장 정도만 넣었어요. 그래도 이걸 읽어보면 “아, 이게 호흡하는 법, 회전하는 법이구나”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런데 이런 걸 고민하면서 춤추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죠. 그래서 제가 이렇게라도 만들어 본 거예요.
춤길과 몸길
채: 선생님 말씀 중에 방금도 ‘춤길’ ‘몸길’, 길이라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또 어떤 경우에는, 예를 들어 한성준, 한영숙 선생님 쪽에서는 정면을 바라보는 동작 중심의 춤길을 보여주셨고.
김: 그 바람에 우리 동작이 다 엉망이 됐잖아요.
채희완 ⓒ춤웹진 |
채: 반면, 이매방 선생님은 회전, 태극 라인, 원무 같은 회전 동선의 흐름을 많이 쓰셨죠. 또 돌아가신 정병호 선생님은 그런 동작 흐름을 '무적', 즉 춤의 흔적, 춤의 족적이라 표현하셨어요. 지금 선생님이 말씀하신 그 ‘춤길’도 그런 의미와 맞닿아 있는 것 같은데요. 이번 공연에서도 이매방 선생님의 수많은 회전 동작들이 여기저기 퍼져 있고, 그것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비교하려는 건 아니지만, 박금슬 선생님의 〈살풀이춤〉 안에서의 춤길과 맞춰서 본다면, 그 춤길만의 특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김: 이 주제, 이미 제가 다 적어뒀잖아요. 이매방 선생님 춤을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추면 어차피 회전이 중심이에요. 그런데 원형 무대에서 추면, 원자핵이 도는 것처럼 원을 그리며 나오거든요. 이걸 억지로 정면에 풀어놓았으니, 동작이 불편한 부분이 많아요. 정면을 보고 회전하려고 하니까 그렇죠. ‘춤길’ ‘몸길’이란 결국 원을 도는 길이에요. 우리가 한 바퀴 돌면서 손이 한 번씩 감기니까 그게 내 몸길이죠. 그걸 자전으로 느끼면, 바깥의 움직임은 곧 공전이 되잖아요. 그래서 공간을 돌아도, 동작 하나만 해도, 시작한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야 마무리가 돼요. 그게 바로 춤길입니다. 이건 류파가 달라서가 아니에요. 우리 삶 자체가 순환이잖아요. 씨앗이 열매가 되고 다시 씨앗이 되고, 사람도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고, 밤과 낮이 돌고요. 점·선·원, 순환, 이건 우주의 이치예요. 우리는 그걸 춤으로 표현할 뿐이고,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돼요. 모든 춤도 보면 “춤출 거야!”하고 시작, 연결, 절정, 그리고 풀려서 원상태로 돌아가죠. 결국은 순환이에요. 그래서 제 박사논문 주제도 ‘순환’입니다. 정면 무대에서도, 결국은 회전을 억지로 평면화한 거예요. 발레 같은 직선 춤은 정면에서 이렇게 움직여도 되지만, 우리는 회전을 해야 멋이 나오는데 그걸 프로시니엄에 맞추려다 보니 어색해진 거죠. 정면 중심의 춤이 언제 생겼냐면, 한성준 선생님 때 무대가 생기고 관객을 정면으로 보게 되면서부터예요. 1930~40년대쯤이겠죠. 50년대 들어 국립극장이 생기고, 송범 선생님이 국립무용단 단장이 되셨는데 그분이 발레를 하신 분이잖아요. 그러니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대형 액자 무대에서 관객에게 보여주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 우리 춤이 그 형식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좀 혼돈의 시대예요. 사실은 그렇게만 해서는 안 되잖아요.
채: 그래서 맨 처음에 얘기하신 것이, 남산국악당을 일부러 찾은 이유는 그 원형 공간, 원형 시선을 가능케 해주는 무대이기 때문이었잖아요? 그런데 여러 사정들이 이렇게 얽히면서 그런 방향이 어려워졌다고 하셨고요. 우리 춤, 그야말로 ‘춤길’에 가장 적합한 건 원형 무대인데, 정작 그런 무대가 별로 없잖아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원형 공간의 특질을 살리기 위해선 또 다른 비상한 방법을 강구해야 할 수밖에 없고요. 아까 그림에서 말씀하신 대로, 원형 무대에서는 원자핵처럼 돌 수 있지만, 사각형 액자 무대에선 원을 흩뿌리듯이 사방에 골고루 뿌려줘야 하는 상황이 생겨버렸잖아요. 같은 동작을 동·서·남·북 모두에게 회전하며 뿌려야 하는 식으로요.
김: 그렇죠. 회전을 하더라도 프로시니엄 무대에서는 뒷공간까지 의식하며 회전을 해야 돼요. 그런데 요즘엔 그냥 앞쪽 관객만 바라보며 춤을 추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춤이 없어졌어요, 솔직히 말하면. 요즘엔 한국무용, 특히 전통춤이 사라졌어요. 이걸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안 돼요. 이번에 제가 어떤 무대를 하나 봤는데, 그 식으로 춘다면 이건 그냥 춤의 특징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이치 자체를 거스르는 거죠. 우리가 추는 〈승무〉나 〈살풀이춤〉 같은 춤은 ‘순환’이잖아요. 인간의, 자연의 이치고, 세상의 이치죠. 그래서 이번 제 공연을 보고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선생님은 무대에서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냥 회전으로 추었다”라고요. 제 나름 회전으로 〈승무〉도, 〈살풀이춤〉도 췄어요. 그 분이 “〈승무〉 〈살풀이춤〉만 오리지널로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대학로에 그런 무대가 생겼대요. 제자가 사진을 보여줬는데, 무대가 있고 의자를 네 방향으로 옮길 수 있는 구조래요. 그러니까 사방 어디든 관객을 둘 수 있는 무대죠. 신청해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며칠 전에 봤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그 무대에서 내가 공연을 해봐야겠다”라고요. 하늘극장 같은 회전무대도 있지만, 제가 말하는 건 완전히 사방이 뚫려 있는 무대예요. 이매방 선생님 말씀에도 나오잖아요. “사방에 손님이 있으니까 사방을 봐라.” 그리고 저는 회전할 때도 앞을 보고 돌지 않아요. 항상 등으로 원을 돌아야 한다고 하거든요. 등으로 원을 돌면 사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잖아요. 그래서 지금, 그런 무대에서 공연을 한 번 추진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반드시 그런 무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채: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드라마센터가 있었잖아요? 남산국악당과도 약간 유사한 감각이 있었고, 입체적인 구조였죠. 좌석들이 계단식으로 배치돼 있어서 위에서도 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어요. 지금처럼 평면적 시선만이 아니라, 2층, 3층에서도 볼 수 있고, 시선이 위·아래, 좌·우로 오가며 입체 공간이 열리는 무대였죠. 요즘은 거기가 극장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런 무대에서 선생님이 춤을 추시면 좋을 것 같아요.
김: 그래서 제가 진짜 원하는 건요, 앵두처럼 완전히 동그란 무대예요. 가운데 제가 춤추는 공간이 있고, 그걸 사방에서 관객들이 둘러앉아 보는 구조죠. 그렇게만 되면 진짜 제대로 잘 출 자신 있어요. 제가 그 구조를 계속 연구해왔기 때문이지요. 이번에도 그렇게 췄어요. 그런데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죠. 그러니까 자꾸 “왜 같은 동작을 반복하지?”라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채: 궁중춤 같은 경우도 그렇잖아요. 임금 자리를 북향으로 배치하고 보는 시각은 ‘남면’이라고 하죠. 그에 따라 사각 무대에 맞는 춤길과 동작점이 설정돼 있어요. 그 자리 배치와 흐름, 그걸 잘 응용해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탈춤의 경우에도 원형 무대가 없다 보니 차라리 농악처럼 넓은 운동장, 농구장 같은 곳에서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지금은 사각 무대가 되다 보니, 사선 활용도 어렵고, 원형 회전의 맛, 그게 바로 춤의 천연성(天然性?) 같은 의미인데 그게 살지 않아요.
김: 맞아요. 몸도 억지로 써야 해요. 제가 실제로 춤을 추다 보면, 이 액자 무대 때문에 몸을 자연스럽게가 아니라, 억지로 써야 하게 돼요.
채: 원형 무대에선 관객의 시선도 다르잖아요. 이쪽에서 보는 사람은 이쪽만 보는 게 아니라, 반대편 관객을 보면서도 무대를 보는 시선이 생겨요. 그게 이중적 시각이죠. 저는 그걸 생성적 시각이라고도 보고, 동시에 현대적인 열린 시각이라고 생각해요. 한 방향만 집중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 무대요. 이건 옛 전통을 재현하는 걸 넘어서서, 우리 춤의 진정성뿐만 아니라, 다른 공연 장르에도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동시에 무대도 보고, 무대를 보는 다른 관중도 함께 보는 전지적 시각의 체험, 그게 바로 공동 시각이고, 그런 공간 구성은 진짜 이상적이지요. 문제는 그런 무대 설비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죠.
김: 축구장 같은 데도 보면 사방이 열려 있잖아요. 실내체육관도 둥글게 설계된 경우가 많고요. 그렇게 보면, 축구장에서는 농악, 조금 축소해서는 탈춤, 더 줄이면 무(巫)춤, 이렇게 연결돼야 하는 거거든요.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춤을 그렇게 춰야 한다"는 걸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죠.
채: 맞아요. 우리 춤의 특징 중 하나는, 혼자 보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함께 보고 있다는 감각, 그런 공동체 감각이 애초부터 자리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 공간 구성이 그런 감각을 자연스럽게 일으켜주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 있는 무대 구조라고 생각해요.
김: 맞아요. 추임새도 마찬가지예요. 서로 마주 보는 구조 속에서 내가 “어이” 하면, 맞은편에서 “좋다”라고 받아줘야 하거든요. 그게 상호적 감각이죠.
채: 그렇죠. 무대를 바라보는 관객을, 또 다른 관객의 시선을 통해 보게 되는 구조니까요. 이건 단순히 내 시선만이 아니라, 공감각적이고 공동체적인 시선이 함께 존재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런 구조야말로 가장 현대적인 관람 방식이라고 봐요.
김: 그렇게 되면, 관객과 춤추는 사람이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거예요. 근데 지금 프로시니엄 무대에서는 “너는 무대에서 쇼해라, 나는 멀찍이 떨어져 감상하겠다” 이런 투죠. 그래서 제가 항상 가르칠 때도 이걸 강조합니다.
채: 맞아요. 이게 단지 전통적이어서 복원하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시선의 흐름, 그게 오늘날에도 필요한 개념이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런 공간 감각이 전통 춤뿐만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만들어질 춤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 마지막 〈승무〉 장면에서 북을 악사석 가까이에 배치한 이유가 있었던 건가요?
김: 원래 항상 북은 ‘상수’ 자리에 둬요. 그게 기본이에요. 아니면 뒤쪽 정면에 딱 맞춰서 놓는 경우도 있는데, 뒤에 놓으면 북 치는 손이 잘 안 보이게 되죠. 그러다 보니 악사석 위치가 여기 있을 수도 있고, 저기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악사석 가까이 두면 호흡 맞추기가 훨씬 더 좋습니다.
채: 제가 보기에는, 중앙에 북을 놓고 그 앞에서 엎드리는 식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건 북 배치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악사석이 무대에 드러나 있었고, 그 가까운 곳에 북을 배치한 이유가 아마도 무대 위의 법고와 악사석의 음악을 더 밀접하게 연결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그렇게 구성하신 게 아닐까 싶었어요. 근데 무대 구성을 봤을 때 전체적으로 상수 쪽에 무대가 약간 치우친 듯한 인상도 있었거든요.
김: 맞아요. 다른 사람들 공연을 봐도 북은 거의 항상 상수에 둬요.
채: 그럴 때는 악사가 이쪽, 반대쪽에 배치되어 있죠?
김: 네. 송화영 선생님 같은 분은 왼손잡이라서 왼쪽에 북을 놓기도 해요. 그런데 북을 상수에 두고, 무용수가 정면을 등지고 뒤를 딱 보고 춤추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잘못된 방식이에요. 그럴 땐 북이 뒤에 있어야 하거든요. 저나 이매방 선생님 경우에도 북이 있으면 북을 보고 사선으로 춤을 춰요. 그렇다고 그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채: 일부러 그렇게 북 배치를 하신 건가 싶어서 좀 궁금했어요.
김: 요즘은 유튜브나 영상들 보면 거의 다 그렇게 해요.
채: 말씀처럼, 상수 쪽에 뭔가 힘이 너무 몰린 듯한 인상이 있었어요.
김: 악사가 하수 쪽에 있어도 북은 상수 쪽에 놓는 경우가 많아요.
채: 그렇게 해야 무대의 굴곡감이나 균형감이 생기지 않나 싶었고요. 지금 아까 박금슬 선생님 춤 얘기하신 것처럼, 전통춤이 아니라 근대춤이다라고 보시는 확신이 있으신 건가요?
김: 네. 선생님은 걸음걸이나 발 드는 법, 몸통을 열었다가 닫는 방식, 다리 꺾는 방법 등 모두 과학적으로 정리하셨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손만 꺾는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는 몸을 열었다가 닫는, 다리와 몸통의 조화로 꺾는 거거든요. 선생님은 전통춤을 계승했다기보다, 이시이바쿠에게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창작 기반을 다지신 분이에요. 하지만 돌아오신 후에는 불교무용도 성립하셨고요. 〈바라춤〉도 익히셨고, 〈경기 승무〉로도 유명하시고요. 선생님의 스승은 대부분 스님이셨고, 불교 계열 춤을 많이 추셨어요. 그 이후에 박금슬 선생님은 창작 중심의 춤을 추셨죠.
근대춤의 기운
채: 그러니까, 창작춤에 가까운 방식이라서 전통춤이라기보다는 ‘근대춤’으로 보는 게 더 맞는 거네요?
김: 그렇죠. 그 시대에 만들어진 춤이니까 '근대춤‘이라고 부르는 거지요.
채: 시기적으로도 그렇지만, 보통 근대춤이라고 하면 발레처럼 규격화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움직임과 자연스러운 운동성을 지향하는 흐름에서 출발했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박금슬 선생님의 춤도 근대춤이라고 보는 게 옳다는 말씀이시죠.
김: 네. 발레나 현대무용에서 기초를 정리해서 한국무용이라는 재료를 바탕으로 체계를 세우신 분이에요.
채: 결국은 자율적 움직임, 자연성, 개인 창작 의욕이 담긴 춤, 그래서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춤이 되는 거고, 전통춤은 그런 예술작품 범주와는 조금 다른 의미니까요. 근대춤은 자아의식, 표현의지, “내 세계를 춤에 담겠다”는 의도가 들어간 경우가 많잖아요. 그게 강렬하게 담긴 춤이 근대춤이고요.
김: 맞아요. 박금슬 선생님이 남기신 작품들은 거의 다 창작춤이에요. 〈시묘〉처럼 묘 옆에서 하는 춤, 부모가 아파서 잉어를 잡는 내용을 담은 〈지어〉라는 작품도 있고, 그리고 〈태초〉라는 작품도 있는데, 하늘, 땅, 인간, 옛날에 곰이 사람이 되는 설화 같은 걸 창작적으로 표현하신 거죠. 그래서 당연히 ‘근대춤’이라고 보는 거예요.
채: 그렇다면 보통 우리 춤의 역사에서 근대 시기로 구분하는 경우, 그 시작을 신무용, 특히 최승희, 조택원 선생의 활동에서 찾고, 그걸 근대춤의 출발점으로 삼잖아요? 그래서 이를 ‘신무용류’로 분류하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박금슬 선생님의 〈살풀이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걸 ‘신무용류’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요?
김: 박금슬 선생님의 〈살풀이춤〉은 그분이 만드신 기본 동작, 즉 하체 동작, 상체 동작, 그리고 굿거리장단까지만 익히면 어떤 춤이든 출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어요. 젓가락도 바르게 잡아야 무언가를 집을 수 있듯, 기본이 비뚤어지면 아무것도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은 ‘축’을 바로 세우는 데 초점을 맞추신 거고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은 본인만의 상상력을 발휘해서 예전에는 〈구름〉 같은 창작 작품도 만드셨어요. 흰 천으로 구름 모양을 연출한다든지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니까 박금슬 선생님의 〈살풀이춤〉은 살풀이 그 자체라기보다 박금슬 선생님의 기본 동작들이 모여 즉흥적으로 표현되는 춤이라고 봐야 합니다. 왜냐면, 살풀이는 본래 춤이 아니라 소리 이름이잖아요. 그 음악 소리에 맞춰 자신의 내면을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춤이기 때문에 단순히 정형화된 살풀이라기보다는 그 기반 위에서 나오는 창작적 표현이죠.
채: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조택원, 최승희 선생님의 신무용류와는 구분해서 보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 같네요.
김: 맞아요. 박금슬 선생님의 근대춤은 그 재료가 전통적인 거예요. 예를 들면, 최승희 선생의 춤은 발레 동작도 많이 섞여 있고, 한국적인 의상과 한국 음악을 바탕으로 서양식 움직임을 접목해서 창작하셨고요. 또 조택원 선생님은 외국 음악을 사용하시면서 그 위에 창작을 얹는 방식이었죠. 반면 박금슬 선생님은 한국에 오셔서 불교무용, 고성오광대,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문둥춤, 도리개 연풍, 법사 연풍 같은 토속적인 민속 재료를 직접 배우고 연구하셨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춤 용어도 다 우리말이에요. 그분의 근대춤은 형식은 현대적이지만 내용은 전부 우리 토속 민속에서 가져온 것이죠. 그래서 그렇다고 해서 '전통춤'이라 하기도 어렵고, '신무용류'라고 보기도 애매하고, 조금 독자적인 특색 있는 길을 가셨다고 봐야겠죠.
채: 그러니까 이번에 주신 박금슬 선생님의 〈살풀이춤〉도 그렇고, 다른 박금슬 선생의 창작춤도 신무용류라고 보기보다는 그냥 ‘근대춤’이네요. 신무용류와는 구분되네요.
김: 네, 구분되죠. 박금슬 선생님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신체, 토속적인 재료들을 가지고 근대적인 형식을 완성하셨어요. 예를 들어 산조도 보통은 진양부터 쭉 나가잖아요. 근데 박금슬 선생님은 어떻게 하셨냐면, 산조를 거꾸로 하셨어요. 휘모리부터 시작해서 뒤집어서 하셨죠. 그러니까 선생님만의 세계를 만드신 거예요. 그게 참 대단하신 거죠. 그래서 저는 그걸 ‘근대춤’이라고 부릅니다.
채: 자기의 예술 세계를 담고자 하는 의미에서의 근대춤이네요.
김: 네, 재료는 전부 토속적인 데서 갖고 오셨어요. 그래서 신무용이라고도 말할 수 없고, 전통춤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래서 ‘근대춤’이라고 말하는 거죠.
채: 그런 의미에서 정확하게 ‘우리 근대춤’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굉장히 든든합니다. 제가 처음 그 얘기를 꺼낼 때부터 “신무용 시대를 끝내자”는 게 첫 번째 말이었거든요.
김: 신무용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해요.
채: 그런데 제가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때는 거의 모든 춤이 이른바 ‘전통춤’ 아니면 ‘신무용류’였거든요. 그런데 이미 우리 문학에서는 신소설, 신체시에서 근대시, 근대소설로 넘어갔는데, 왜 춤만 여전히 신소설, 신체시 같은 ‘신무용’에 머무르고 있는가? 그 영향력이 한국 춤뿐 아니라, 발레나 모던댄스를 하는 사람들한테까지도 신무용풍의 작품이 아주 뿌리 깊게 퍼져 있어서, 어서 빨리 신무용 시대가 종말을 고했으면 생각했었죠.
김: 그래서 제가 고향 춤도 추고, 또 제 춤도 추고, 이렇게 자료도 남기고 있는 거예요.
채: 그래서 또 다른 한국 근대춤의 한 흐름이 박금슬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물론 최승희나 조택원 선생님의 제자분들 중에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지향해서 근대춤에 가까운 작업을 한 분들도 있긴 하지만, 저는 그 밑바탕에 깔린 내용이나 표현 방식이 결국 신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런데 오늘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의 ‘한국 근대춤’의 본보기를 찾게 돼서, 저로서는 같은 의견을 지향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흐뭇하고 든든해졌습니다.
김: 저도 선생님 글을 가끔 보거든요. 그런데 선생님이 너무나 정확하게 춤추는 방법을 써놓으신 걸 보면, 정말 놀라울 때가 많아요. 춤을 전문으로 추는 사람들보다도 더 정확하게요. 하체의 움직임이라든지, 그런 걸 보면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원래 춤을 추시긴 하셨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론적으로 설명하실 수 있는 분은 한국무용 하는 사람들 중에도 거의 없어요. 다들 흉내 내기에 그치거든요. 그래서 선생님하고 저는 대화가 참 잘 맞는 것 같아요.
채: 김은희 선생을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정말 더 신나고 좋은 얘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을 텐데요.
김: 더 일찍 만났다면, 오히려 제가 너무 부족했을 거예요. 요즘 들어서야 제가 제자들한테 그런 얘기를 해요. “내가 무용계를 빼꼼히 내다본 게 60부터다. 이제 70이 되니까 사람 사는 걸 조금 알겠더라”라고요. 정말 그래요. 한 해 한 해가 다르거든요. 좀 더 일찍 만났다면, 제가 오히려 교만한 기운도 있었을 테고, 모르는 게 많았을 거예요. 차라리 지금 만난 게 훨씬 나아요.
강석·박금슬 선생과 밀양춤
채: 전에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었는데, 저희 누나의 시동생되는 분이 강석씨지요. 그러니까 누나의 남편 되는 분이 강석씨의 큰형님인 강한석 씨에요.
김: 네. 그리고 그 동생이 강기석, 강광석인데, 그 막내 강광석이 나중 강석으로 예명을 썼지요.
채: 네. 자형의 동생 강기석씨가 태권도 유단자이시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선생님께서 강석 선생님에 대한 회고담을 어디 글에서 쓰신 걸 읽고, 그 춤을 직접 보지 못한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그 글을 통해서 느꼈던 건, 정말 예술혼이랄까, 뜨거운 열정이 그분의 말과 행동 속에 깊이 배어 있다는 거였어요. 저는 그걸 선생님께서도 많이 공유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아요.
김: 사람들이 얼굴도 닮았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사실 저는 어릴 때 강석 아재를 별로 뵌 적이 없어요. 아, 경상도에서는 (외)삼촌을 ‘아재, 아재’라고 불렀거든요. 제가 경북예고에 들어갈 때쯤엔 미국에 계셔서 안 계셨고, 그전엔 서울에 계셨으니까 뵐 일이 없었죠. 대신 매형은 우리 집에 자주 오셨어요. 그리고 위로 올라가면 교장 선생님 하셨던 교장 할아버지 집이 있었고요. 강석 아재는 미국 가셨고, 기석 아재도 계셨고요. 아무튼 강석 외삼촌은 거의 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 귀국하신 뒤에 직접 뵙게 됐고, 그때 제가 경희대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입시는 끝났으니까 내년에 와라’고 하셨어요. 그 사이엔 밀양에 있으라고 하셨고요. 그때는 무용학원을 차리려면 추천서가 있어야 했는데, 김백봉 선생님 댁에 기거하면서 추천서를 받아서 밀양교육청에 제출하고 무용학원을 열었어요. 실력이 부족하니까, 밀양백중놀이 하시는 어르신들, 민속보존협회 소속 분들 밑에서 춤 선생으로 있으면서 병신춤, 범부춤 같은 걸 복원하는 과정을 봤어요. 그런데 당시엔 제가 어려서 그걸 ‘촌스럽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혼자 무용학원을 하다가, 박금슬 선생님께서 귀국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거죠.
채: 궁금했던 게, 밀양백중놀이 복원하고, 그전에 김타업 선생을 통해서 밀양 병신굿을 지정하는 게 마땅하다고 제가 주장했었잖아요? 그런데 나중에 밀양백중놀이로 확대되면서 오히려 병신굿은 약화돼버렸죠. 대신 하보경 선생이 발굴된 셈인데, 그건 참 좋은 일이지만, 저는 우리 병신굿이 특히 무용가들한테 인정 못 받고 외면당한 게 너무나 안타깝고 한스러웠어요.
김: 제가 그때 민속보존협회에서 활동할 때도 할아버지들하고 병신굿만 연습하셨어요. 그때가 1972년, 73년쯤이었어요.
채: 네, 저도 그 시절에 본 적이 있거든요. 많이 보진 못했지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저렇게 몸짓을 통해 표현되는 게 과연 예술적인 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조차 들지 않았겠어요?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춤의 궁극적인 형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춤을 못 출 몸으로 춤을 추는 거잖아요. 춤추기엔 지장이 많은 그런 몸뚱아리로 춤을 추는 것, 그야말로 춤의 본질에 가까운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전에 말씀하시길, 이매방 선생님의 춤을 두고 ‘오장육부의 춤’이라고 하셨잖아요?
김: 그건 박금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채: 아, 그렇죠. 보이지 않는 오장육부가 몸 전체를 관장하듯, 춤 역시 내면의 움직임, 즉 ‘오장육부의 춤이다’는 말씀이셨죠. 그런데 예전에 1970년대 말이나 80년대쯤, 기독교 신학자가 공옥진 선생의 춤을 보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거기서 그분은 공옥진 선생의 춤을 ‘영혼의 춤’이라기보다도 더 깊고 핍진한, 오장육부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듯한 춤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몸서리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고 했어요.
김: 저도 제자들한테 가르칠 때 ‘오장육부춤’이라는 표현을 써요. 오장육부는 밖에서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팔다리는 하나씩 잘려도 사람은 살지만, 장기는 다르잖아요. 그 장기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생명이 위협받을 정도로 중요한데, 그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요.
채: 맞아요. 그게 마치 시김새랄까, 삭고 삭아서 겹겹이 어둠 속에 쌓인 그것이 간신히 몸짓으로 표현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움직임이 바로 춤의 가장 내밀한 곳,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저한테는 그 병신굿의 춤이 그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지금도 몸서리쳐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의 춤은 아직 그런 식으로는 저한테 오진 않았어요. 대신 다른 느낌이 있어요. 춤새가 반겨주는, 일종의 도도함. 약간 쩔어 있는 듯한 기품이랄까요. 그래서 이건 ‘경상도 춤’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죠.
김: 춤은 도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에너지가 느껴지는 춤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채: 그래서 저는 이매방 선생님의 춤에서 느껴지는 것과 박금슬 선생님의 춤에서 오는 느낌, 그리고 또 다르게 김은희 선생님의 춤에서 느껴지는 독특함, 이런 것들을 좀 더 명쾌하게 표현해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김은희 선생님하고 더 착 달라붙어서, 우리춤의 본질에 대한 좋은 표현, 좀더 적확한 언어구사력을 얻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런 표현을 꼭 얻고 싶거든요. 훨씬 더 명확하고 적절한 언어를 찾기 위해서 선생님하고 같이 더좀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좀 더 세세하게 알고 싶은 건 아까 말씀하신 즉흥 춤에서 장단을 어떻게 구성하시는지, 또 ‘마루’에 관한 얘기도 하셨잖아요? 그런 생동감 있는 말씀을 더 듣고 싶은데, 오늘은 시간이 너무 좀 부족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선생님이 쓰신 팸플릿이나 공연을 통해 제가 느낀 부분들 중에서, 몇 가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짚고 싶은 부분만 간략하게 질문 드렸습니다. 여기에 대해 더 깊은 생각이나 정취는 오늘 다 말씀드릴 시간이 없었어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그간 굳건하게 지켜 오시고 또 꾸준히 개발해나가고자 하시는 그 방향성을 오늘 이 대화를 통해서라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저는 이 대담 시간이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