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안녕하세요.
<춤웹진> 메뉴 ‘프롬 어브로드’에 제가 지속해서 기고할 계획을 밝히며 시작한 2025년 2월호 이후 1년 반이 지났습니다. 그간 매달 기고해와서 이번 달로 20번째를 맞는군요. 우리 춤계가 양질의 해외 현장 정보에 오랫동안 목말라 오던 터에, 2020년대 들어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라는 세계 최권위(最權威)·최신뢰(最信賴)의 종이-인터넷 신문에서 춤 관련 기사가 두드러지게 상시화(常時化)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프롬 어브로드’는 편의상 두 언론을 정하여 관련 기사들을 추출 정리해 독자들께 매달 정기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진행해왔습니다.
이 작업을 진행해오는 동안 글로벌 춤 유력 현장인 뉴욕과 런던을 중심으로 지금, 최신의 춤 소식과 흐름을 텍스트로 접하는 것은 저에게 큰 기쁨이자 때로는 무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두 언론사의 춤 기사들을 그대로 따라 옮기는 ‘프롬 어브로드’가 아니므로, 무엇보다 기사의 선별 및 내용 서술의 취사구성은 저에게 달린 일이었기에 그 무게와 함께 긴장의 끈 또한 따랐습니다. 그런 중 특히 무용인들이라면 더 요긴할 춤공연작들에 관한 상당수 리뷰를 저는 부득이 취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맥락에서 소개할 의의가 낮은 공연작도 더러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해외 현지에서는 관심작일지라도 공연작 리뷰에서 공연작의 실제 전개 양상에 관한 서술이 소략할 경우, 그 공연작을 접하지 않은 저로서는 해당 공연작에 관한 리뷰의 분석과 평가를 나름 수용 판단하는 데 상당한 난점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이런 판단은 응당 해당 공연작 자체의 가치와는 무관합니다.
두 언론사의 기사들은 그 범위에서 일단 부분적입니다. 이 같은 제약 아래서도 그 춤기사들을 글로벌 춤 흐름을 조망하는 매우 소중한 자료로 활용함으로써 ‘프롬 어브로드’는 해외 춤현장의 다양한 관측, 글로벌 차원 춤의 잠재력 재발견과 자극, 춤비평 담론의 다듬기, 한국 춤계의 위상 조명 등에 적잖이 일조하리라 믿습니다. 2025년 애당초 기고를 시작할 때 기대했던 ‘소중한 자료와 뉴스를 나누는 프롬 어브로드’가 지속해서 내실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차제에, 저에게 ‘프롬 어브로드’의 훌륭한 글감들을 제공해주신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의 지아 쿠얼러스, 브라이언 사이버트, 린지 윈십, 크리스 위건드 등 비평가분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 필자
미국
장소춤만의 그 내밀한 마음, 아시나요?
장소(특정)춤(site-specific dance, site dance)이 보편화된 것도 한 세대가 넘는다. 포스트모던댄스가 60년 전에 극장을 박차고 나간 이래 장소는 춤의 유력한 동반자로 재인식되고 장소에 반응하는 춤 방법론들이 개발되어왔다. 장소춤이 일상 공간에서 빈번한 이 시기에 장소춤의 내실을 다지는 것은 언제나처럼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여름 미국과 유럽에서 여러 장소춤 무용인을 취재한 긴 기사를 춤 기고가의 시각으로 보도하였다. 장소춤이 그것만의 장르를 일구려면 필요로 하는 점들을 현장 작업자들의 육성으로 정리한 기사이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8/24/arts/dance/parkour-stairs-movement-acrobatics.html
움직임 예술인 A는 야외 계단을 경사진 무대로 바꾸어, 자기 몸의 곡선을 이용해 가파른 경사를 부드럽게 만든다. 퍼포먼스 아티스트 B는 금속 난간을 잡고 우아하게 몸을 비틀며 계단을 내려간다. B는 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다른 인체 활동 분야로 눈을 돌렸다. 그녀는 특히 파쿠르에서 특별한 자유를 느꼈는데, 파쿠르는 도심의 장애물을 넘나드는 곡예 아닌가. 비상계단에 앉아 흙투성이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며 B는 파쿠르가 자신에게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발레는 나에게 ‘무용수로서의 시각’을 길러주었다. 이는 나 자신의 몸이 공간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예리한 인식을 의미한다. ‘파쿠르 시각’이 작동하면서부터, 일상의 공간들이 어떻게 나 자신의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지를 보기 시작했다. 예전에 발레 파트너와 교감했던 것처럼, 이제는 주변 환경과 일종의 주고받음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 춤 파트너가 나를 들어 올리고 받아줄 거라고 믿는 것처럼, 나는 그 장소를 믿는다.”
움직임 예술인 A는 “우리가 느끼는 건 ‘여기서 어떻게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가 아니라 ‘주변 환경이 우리에게 무엇을 만들어내는가?’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제안하려는 거지, 강요하지 않는다.” 스트릿댄스, 아크로바틱, 특히 파쿠르를 비롯한 다양한 움직임 기법에 능숙한 이 무용수들은 주변 환경과 무한한 상호작용을 만들어낼 수 있다. “저 철망 울타리를 공중제비로 뛰어넘는 것, 4층 높이의 비계가 창의적인 정글짐이 되는 것, 다재다능한 그들의 몸놀림 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해 보인다.” 무용인 C는 “도시를 거닐거나 온라인을 스크롤하다 보면 언제 어디서 춤을 불쑥 발견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 한다.
“장소 반응형 무용가들은 ‘장소 반응형’이나 ‘무용가’ 같은 틀이나 범주에 갇히는 것을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인터뷰한 사람들 중 일부는 자신이 만드는 예술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확신하지 못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정의를 바꾸었다. 이러한 창작자들 중 상당수는 반유목 생활을 한다. ‘어디에 살고 계세요?’라는 질문에 그들이 대답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이와 유사하게, 그들은 중간 공간에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영상은 흔히 사람들이 머무르기보다는 지나다니도록 설계된 장소(횡단보도, 복도)를 배경으로 하거나, 특이한 방식으로 사용될 때에만 주목받는 일상적인 도시 경관의 일부(계단, 개찰구, 출입구)를 보여준다.”
유도와 축구를 공부하다가 스트릿댄스와 컨템퍼러리댄스를 접하게 된 C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자신의 작품에서 넘어지고 무너지는 모습을 자주 탐구한다. 그의 움직임 연구는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반복적으로 발을 헛딛거나, 부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과 같은 행위들이 포함된다. 그는 “추락하는 물체는 주변 환경에 속해 있고, 물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힘에 반응하는 것뿐”이라 말한다. “그 매끄러운 느낌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장소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은 일반적으로 엄청난 근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는 것은 인식에서 일종의 저항을 일으킬 수 있다. 일반적인 도시 거주자의 마음 속에는 계단이나 비계가 춤의 동반자가 될 수 없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B는 “대부분의 관객이 나의 안무 실험에 즐겁게 놀라워하지만, 일부는 놀라거나 분노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말한다. “제가 공원 피크닉 테이블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할 때였다. 세상에서 가장 공개적인 장소이면서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해롭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체육관에서 곡예를 하거나 스튜디오에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는 이유로 반발에 부닥치곤 한다.” A는 “현대 도시 경관이 우리의 상상력에 제약을 가한다”고 말한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진 도시 건축물은 적대적이고 권위적인 느낌을 주어, 사람들의 움직임을 좁은 범위(올라가고, 내려가는 것)로 제한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장소특정적춤에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이 분야 창작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공간을 활용하는 안무는 도시 규모의 거대한 시스템에 대한 저항과도 같다.” A는 “인간 활동을 용이하게 한다면서도 실제로는 인간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환경과 정치에 박아놓는다는 게 참 어이가 없다”고 말한다.
장소특정춤에 대해 좀 더 유쾌한 접근 방식을 취하는 무용수들조차 “대개는 창의적인 저항의 한 형태를 띤다.” 인터뷰를 한 예술인들은 “야외 공간을 사용하기 위한 허가나 공식적인 승인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신체적, 법적 위험 모두 그들의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여성인 B는 이 분야에 참여하는 여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한다. 이는 파쿠르를 비롯해 위험천만한 움직임을 강조하는 많은 형태의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파쿠르는 지나치게 남성적인 경향이 있다. 그리고 “게릴라 퍼포먼스 아트를 창작하는 데 따르는 위험 부담은 여성에게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 B는 “낯선 곳에서 여자 혼자 있는 건 확실히 불안하게 느껴질 수 있다. 정말 아찔한 상황들을 몇 번 겪었다”고 말했다.
줄리아드스쿨이 흔들은 큰 역사
미국에서 모던댄스를 클래식발레와 동등한 비중으로 통합하는 최초의 교과 커리큘럼을 갖춘 줄리아드스쿨의 무용원이 올해로 개원 75주년을 맞았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줄리아드 음악원은 1905년에 개원했고 1951년에 마사 힐이 무용원(혹은 무용부·Dance Division)의 초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마사 그레이엄, 도리스 험프리, 호세리몽, 안토니 튜더 등 당대의 쟁쟁한 거장들이 춤 교육을 맡았고, 그 얼마 후 60년대에 줄리아드는 포스트모던댄스의 주역들을 배출한 거점으로 발돋움한다. 피나 바우쉬도 여기서 1년 여 교환학생으로 유학하였다. 개원 75주년의 줄리아드 무용원을 뉴욕타임스가 긴 기사로 보도하였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8/10/arts/dance/juilliard-dance-division-archive-75th-anniversar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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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ha Hill ⓒOVID.tv |
줄리아드스쿨은 뉴욕 센트럴파크 옆 링컨센터에 있고, 여기에는 뉴욕시티발레단, 메트로폴리탄오페라단, 뉴욕필하모닉, 그 전용극장들이 있다. 뉴욕타임스가 이번 기사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그 무용원의 기록보관소이다. 줄리아드스쿨 링컨센터 본부 5층에 위치한 춤자료실은 학교 소장품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무용원 설립자인 마사 힐이 “기록 보관에 매우 열성적인 사람이었다”고 줄리아드 도서관 관장이 최근 방문에서 설명했다. “그녀는 종이 쪼가리 하나라도 모두 보관했다.” 이 기록보관소를 일별하면서 뉴욕타임스 기사는 몇 가지 주요 사항을 보도한다.
20세기 전반기에 모던댄스는 발레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힐은 두 분야가 화해하고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때라고 확신했다. 이러한 통합 훈련이 완벽한 무용수를 육성하기 위한 힐 자신의 핵심 원칙이 되었다.” 그 목표는 스타일과 상관없이 움직임을 이해하고 어디서든 활동할 수 있는 무용수, 나아가 미래의 안무가와 연출가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힐은 그레이엄 무용단에 합류하기 전 발레와 모던댄스를 모두 공부했다. 1934년 그녀는 베닝턴무용학교 설립 실무 주역이었고, 이곳은 그레이엄, 도리스 험프리, 찰스 웨이드먼, 하냐 홈, 리몽 같은 모던댄스의 선구자들이 춤을 가르치고 작품을 창작했던 여름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학교는 현재 미국 모던댄스의 가장 중요한 인큐베이터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힐은 안나 소콜로우와 같은 모던댄스계의 주요 인물들을 줄리아드스쿨 교수진으로 초빙했으며, 안토니 튜더를 비롯한 발레계의 거장들과 함께 작업하도록 했다. 또한 재정난에 시달리는 춤예술인들에게 줄리아드는 창작 활동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고, 학생들에게는 해당 분야의 걸출한 인물들에게 배울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1960년대 중반에 뜻밖의 걸림돌이 나타난다. 1963년에 미국의 자동차 재벌 포드재단이 당시로선 엄청난 거액인 약 800만 달러(지금도 엄청난 시세 약 9천만 달러·1200여억원)를 미국 발레계에 기부하면서 그 중 약 60%를 조지 발란신의 뉴욕시티발레단과 부속학교(SAB·School of American ballet)에 배정되도록 조치하였다. 미국 발레계에 단비임에 틀림없은 이 쾌척 사업의 일환으로 줄리아드스쿨의 교장은 뉴욕시티발레단 부속학교가 링컨센터의 무용 교육을 맡도록 준비를 진행하였다. 줄리아드스쿨과 뉴욕시티발레단은 모두 대형 예술복합단지 링컨센터 구내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줄리아드스쿨이 링컨센터의 무용 교육을 맡을 계기가 포드재단의 발레계 기부였으니 만큼 그것이 예정대로 실행되면 춤 교육은 발레로 기울 것이 뻔하다는 우려를 샀다. 당시 학교 관계자들은 “정작 모던댄스라는 개념 자체가 하찮게 느껴졌고, 우리도 보잘것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고 기억한다. 그들은 학과를 살리기 위해 편지 캠페인을 주도했고, 이후 줄리아드스쿨 무용원을 살리기 위한 투쟁은 몇 해 이어졌다. 결국 무용원은 살아남았지만, 새 공간을 SAB와 공유해야 했다. 그래도 SAB는 줄리아드의 두 개 스튜디오에 비해 네 개의 스튜디오를 갖게 되었고, 줄리아드스쿨과 SAB는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3층을 함께 사용했다. 이런 불편한 공존은 1990년 줄리아드스쿨 바로 서쪽 같은 블록에 새 고층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 지속되었다.
줄리아드스쿨에서 학생들은 여전히 해부학, 무대 기술, 연기, 무용사, 음악 및 교양 과목을 수강한다. 대부분의 공연은 줄리아드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라이브 음악과 함께 진행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점은, 이 학교가 창작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2년간 컴퍼지션(춤구성) 수업을 필수로 수강하며, 이 수업에서 춤 작품을 구성하는 기초를 배운다. 3학년이 되면 무용수들은 줄리아드 작곡가와 짝을 이루어 작품을 만드는 수업에 지원할 수 있다. 이는 음악가와 무용수가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학교 창설자의 염원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 위의 춤? 서핑의 체험적 분석
피겨 스케이팅처럼 멋진 파도타기(surfing·서핑)를 춤 같다고 느낀 경우가 흔할 것이다. 서퍼의 리듬감이나 자세의 연속, 유연한 라인 전개 등에서 그런 연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한국에서 서퍼 인구가 120만명을 돌파했다고 하는데, 짐작보다 많다. 그 서퍼들 가운데 정작 자신의 움직임을 춤으로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서핑은 2020 도쿄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고,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남태평양 타히티(프랑스공화국의 자치령)에서 진행되었다. 올림픽에서는 서핑의 속도, 파워, 흐름이 채점의 일부 요소를 이룬다. 서핑과 춤의 유사성을 마음 먹고 소개하는 글을 접한 적이 있는가. 최근 뉴욕타임스의 춤비평가가 관련 현장 인터뷰를 기고하였다. 그 유사성을 생각하는 사람, 특히 올림픽 종목 참가를 준비하는 관계자들에게 참고가 될 기사이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8/19/arts/dance/caitlin-simmers-surf-dance.html
기사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2024년 18살 나이에 세계 최연소 여자 서핑 챔피언이 되었다. 28년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참가한다. 이 선수는 가족과 함께 서핑을 즐기며 물에서 자랐고 어린 시절에는 힙합 수업을 들었다. 보드에 상체를 엎드려 파도를 타는 부기 보딩은 자기 최애 놀이였다. 2023년, 그녀는 파도가 아주 위험하기로 악명 높은 하와이의 반자이 파이프라인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했다. “덧없고, 본능적이며, 대담한 서핑은 예술이 될 수 있고, 움직임은 마법으로 승화된다. 이 서퍼는 여기서 더 나아가 자신의 개인적 리듬을 바다의 리듬에 맞춘다. 조지 발란신 발레에서 음악을 눈으로 볼 수 있듯이, 이 선수는 자신의 유려하고 날카로운 움직임을 통해 파도가 각기 다른 음색과 소리를 지녔음을 보여준다.”
춤에서 물의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만든 대표적인 예로 프레데릭 애쉬턴의 발레 〈옹딘〉(물의 요정, 1958년작)이 들어진다. 이 작품을 위해 애쉬턴은 파도의 출렁임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애쉬턴은 “발레 스텝보다는 바다의 리듬처럼 유동적인 움직임을 원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옹딘 역은 그 유명한 마고트 폰테인이 맡았는데, “힘들이지 않고 추는 듯한 춤과 바닥을 스치듯 흐르는 프웽트 동작으로 마치 물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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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 라이딩 ⓒTickettoRide |
“이 서퍼는 실제로 파도 위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그녀의 작고 날렵한 몸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마치 무대 위를 빠르게 가로지르는 변덕스러운 발레리나처럼 물살을 가르며 날렵하고 빠른 회전을 선보인다. 그녀의 가벼운 발걸음, 유려한 몸짓, 불안정한 수면 변화에 대한 예민한 감각, 그리고 빠른 속도는 모두 그녀의 섬세하면서도 강력한 힘의 원천이다. 그녀는 두려움도 없다. 그녀의 명석함은 깊은 무게중심에서 비롯되며, 이를 통해 마치 비단 리본처럼 파도를 가르며 오르내리거나 거친 물살을 재빠르게 피해 서핑의 절정인 배럴 라이딩을 경험할 수 있다.” 배럴 라이딩은 말하자면 파도 터널 속 질주이고, 그것은 서핑의 꽃으로 회자된다. 2028 올림픽에서 춤이 배럴 라이딩으로 만개할 그 순간들이 무용인들을 기다리는 것 같다.
베니스
정치적 풍랑, 씁쓸한 결말의 얼룩, 베니스춤비엔날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것과 함께 러시아 예술인들의 처신도 문제시되어왔다. 올해 7월 베니스춤비엔날레에 대해 유럽연합은 러시아가 이번 행사에 참여한 것은 유럽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행사에 대한 다년간의 지원을 취소하였다. 다년간 지원되는 이 보조금은 200만 유로 규모로 베니스춤비엔날레 예산의 일부에 그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번 결정을 발표한 성명에서 "유럽 납세자의 돈으로 지원되는 문화 행사는 민주적 가치를 수호하고, 열린 대화, 다양성, 표현의 자유를 증진해야 한다"면서 이러한 가치들이 "오늘날의 러시아에서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뉴욕타임스는 이 소식을 춤리뷰 시각에서 상세히 보도하였다.
기사 링크
https://www.nytimes.com/2026/08/04/arts/dance/venice-dance-biennale-diana-vishnev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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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베니스춤비엔날레 포스터 |
2026 베니스 댄스 비엔날레는 전세계의 20여 무용단이 수십 편의 공연작을 올리는 대규모 컨템퍼러리댄스 페스티벌로 7월에 열렸다. 여기서 논란의 초점이 된 인물은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디아나 비쉬네바(1976~ )였다. 그녀는 테크닉이 완벽하고 예술성이 출중해서 세계적 프리마 발레리나로 평가된다. 바가노바발레아카데미 졸업 후,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하고 2005년부터는 10년 넘게 마린스키와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 무려 두 곳에서 프린시펄을 겸하여 뭇시선을 사로잡았었다. 러-우 전쟁 발발 직후 비쉬네바는 SNS 등을 통해 전쟁에 대한 반대 의사와 평화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올린 주요 러시아 예술가 중 한 사람이었다. 이후 러시아 정부가 전쟁에 반대하는 예체능계 인사에 대한 압박과 검열을 강화하면서 비쉬네바가 러시아의 선전성 관제 행사에 참여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소식도 드물지 않았다. 그녀는 서방 세계에서 몇 해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이번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올해만 해도 볼쇼이발레단의 스타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피렌체, 로마 공연이 취소될 만큼 유럽연합 기류는 러-우 전쟁에 대해 완강한 편이다. 이런 터에 비쉬네바가 등장했으니 논란이 일 것은 당연했다.
비쉬네바는 이번에 윈댄스의 출연자로 모습을 나타냈다. 윈댄스는 러시아 출신 무용가들이 사업 감각을 발휘해서 만든 무용단으로 발레 무용수들이 대개 은퇴하는 40대 이후에도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무용수들을 모아 만든 단체다. 이번에 윈댄스가 올린 공연작은 〈시로코〉와 〈탄식의 다리〉, 2편이다. 〈시로코〉는 전반부에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제목으로 해서 베니스의 십대 소년에게 집착하게 된 중년 작가의 이야기를 명시적으로 차용했다. 그러나 “4명의 안무가가 선보인 춤은 무용수들의 성숙도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비쉬네바는 질 로만이 연기한 자기중심적인 남자, 그의 정부로 추정되는 여인과 함께 삼각관계를 묘사하는 장면을 연기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작가의 죽음이 언급되었는데, 그는 흰옷을 입은 조문객들에게 둘러싸인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윈댄스 무용단은 20세기 신고전주의 무용의 거장인 존 노이마이어 의 신작 〈탄식의 다리〉를 선보였다. “작품의 분위기는 향수 어린 듯했고, 소년 같은 캐릭터는 느리고 신중한 동작들을 통해 과거의 연애를 회상하는 듯했다. 〈탄식의 다리〉는 좀 더 짜임새 있는 극적 구성을 보여주었지만, 윈댄스의 여성 무용수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했다. 개성 넘치는 발레 스타들은 대부분 배경에 묻혀버렸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비쉬네바조차 애처로운 어머니 역할에 머물러야 했다. 현재로서는 윈댄스가 예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불투명하다.”
올해 비엔날레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다소 씁쓸한 결말을 가져왔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비단 비쉬네바의 건이 아니라도 “전쟁에 대해 물음을 던진 어느 작품은 새로운 전쟁들이 빈발하는 오늘, 예술이 어떻게 이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 베니스춤비엔날레는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결말지었다. 이 기사가 전하는 비엔날레의 어정쩡한 진행은, 그 실상을 소상히 물어봐야 하겠으나, 비엔날레에 대한 시각, 더 나아가서는 전쟁에 대한 무용인의 입장을 되묻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베니스춤비엔날레는 무용인들에게 춤을 둘러싼 정치윤리적 시각이 첨예하게 도마에 오른 행사로서 또 다른 성찰을 부르고 있다.
영국
에너지 충만 체험의 고수준 발레
그리스 신화에서 판도라는 인류 최초의 여성으로 등장한다. 프로메테우스가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자 제우스는 판도라를 만들어 지상에 보냈다. 그러나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항아리를 주면서 열어보면 안 된다고 했으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판도라는 그것을 열었고, 상자에서는 질병, 전쟁, 가난, 증오 등 온갖 재앙과 악이 퍼져나가게 된다.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은 2024년 공연작 〈Mere Mortals〉(미미한 존재)에서 판도라를 재앙을 몰고온 인물을 넘어 미지의 기술에 접근해서 새 가능성을 여는 존재로 역전시켰다. 자료에 따르면, 여기서 미지의 기술은 인공지능이며, 공연은 고도화된 AI 시스템과 혼돈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 고유의 감정, 연대, 희망에 거는 기대를 그렸다. 〈미미한 존재〉가 초연 당시 호평을 받았고 올해 에든버러축제와 런던에서 재공연되는 소식을 가디언은 기사로 다루었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aug/24/ballet-pandoras-box-ai-aszure-barton-mere-mort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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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e Mortals ⓒ샌프란시스코발레단 |
공연은 “판도라의 상자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인류의 악과 슬픔을 불러일으키는 상자 대신 인공지능에 대한 경고를 담은 이야기로 재해석되었다.” 이 공연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샌프란시스코발레단의 예술감독 타마라 로호였다. 로호는 스페인 태생으로 영국의 로열발레단과 잉글리시내셔널발레단에서 프린시펄로 장기간 활약했다. 당시 고전부터 현대까지 완벽하게 소화해낸 기량을 뽐내었고, 잉글리시내셔널발레단 예술감독으로서는 고전뿐 아니라 컨템퍼러리 협업 작업까지 주도하여 단체를 국제적 반열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다. 그런 로호가 2022년 샌프란시스코발레단 최초의 여성 예술감독으로서 부임해 혁신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이다. 말하자면 로호는 지성과 역량을 바탕으로 새 시대의 발레를 여는 인물로 주시받아 왔는데, 〈미미한 존재〉가 화제를 재촉할 것은 물론이다. 로호는 이 공연을 위해 최고의 팀을 구성했고 “작품은 규모, 음악, 시각적 효과 면에서 극찬을 받았다.”
로호는 〈미미한 존재〉의 안무를 어슈어 바튼에게 맡겼다. 바튼은 미국에서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에게 지도받은 후 세계 정상급 단체들에서 객원 안무를 맡은 바 있다. 가디언 이외의 자료에 따르면, 〈미미한 존재〉는 혁신적인 전자음악 사운드트랙, 몰입형 AI 생성 영상 프로젝트와 대형 스크린 그리고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압도적인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튼은 가디언에 “관객들이 에너지로 충만하기를 바란다. 마치 레이브 파티에 온 것처럼 펄쩍펄쩍 뛰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자신을 드러내고, 날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나누는 모습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라”고 밝혔다.
셰르카위의 춤, 사회적 치유력 엄청
2012년 벨기에에서 모로코계 이민자가 4명의 남성에게 성소수자 증오 범죄로 인해 무참히 살해당하여 그 사회에 경각심을 촉구한 바 있다. 벨기에의 안무자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도 모로코계로서 그 사건에 엄청 충격을 받았다 한다. 그는 벨기에인 어머니와 모로코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동성애자 안무가이다. 셰르카위는 그 사건을 모티프로 하여 이번에 〈Ihsane〉(이흐산)을 대작 공연물로 만들어 에든버러축제에서 올렸다. 가디언은 이 공연에 대해 별점 4개(5개 만점)를 표하여 만족을 표하였다.(누차 밝힌 대로 가디언에서 별점 4개는 적지 않다.) 가디언의 소개에 따르면 〈이흐산〉은 “30년 전 세상을 떠난 안무가의 아버지, 그리고 안무가의 과거가 자르피의 죽음과 얽혀 있는 인물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aug/19/ihsane-review-sidi-larbi-cherkaoui-leads-us-from-brutal-tragedy-to-euphoric-har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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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sane ⓒCherkaoui |
희생자의 이름에서 따온 공연 제목은 ‘자비, 선의’를 뜻하며, 안무자는 “브레이크댄스든 전통 무용이든 간에 작품 속 폭력적인 장면들에 대해 가볍고 유려한 분위기를 불어넣고, 조화로운 기쁨과 친절이라는 이상을 제시하였다.” 가디언은 공연 전개를 이렇게 소개한다. “공연은 아랍어 수업 장면으로 시작한다. 칠판에 붓으로 쓰인 대본은 두 해설자의 우아한 팔동작과 어우러지며 공연 전반의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어낸다. 강사는 관객들에게 발음을 따라 하도록 권하고, 객석은 화려한 옷을 입은 학생들과 함께 지식을 나누며 친밀감을 형성한다. 학생들은 네 줄로 나란히 서서 움직이고, 그들의 몸짓은 무대 디자인과 음악에 녹아든 비올라 다모레, 피아노, 우드, 타악기의 복잡한 조화와 합해진다. 모두가 함께하는 아름다운 장면은 거대한 황금빛 문이 닫히면서 막을 내린다.” 곧 이어 “무대가 켜지면서 이흐산의 죽음이 드러난다. 그는 게이 바를 나온 후 만난 일단의 남자들에게 고문을 당하고 살해당한다. 한 남자가 홀로 그를 고문하는데, 주먹질은 제대로 맞지 않지만 매번 가해지는 잔혹한 공격은 마치 염력에 의해 휘둘러지는 듯 이흐산을 극심한 고통으로 몸부림치게 한다. 한참 후, 장면은 반전되어 이흐산의 시신이 한 여인의 손에 맡겨진다.”
공연에서 안무자 셰르카위는 “끔찍한 부상을 드러내고 의례에도 관심을 기울이며, 그의 초점은 그 후유증, 심지어 사후 세계,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치유되는지에 더 맞춰졌다. 이흐산의 시신은 황금빛 조명 아래, 문 안쪽에 자리 잡은 채 흔들리는 군중에 의해 되찾아진다. 바깥쪽을 향해 원을 그리며 모인 실크 소재의 의상들도 비슷한 빛을 발한다. 이어지는 음성 텍스트는 다양한 유형의 슬픔을 분석하되 끝마침이라는 생각을 뿌리친다. 시간과 움직임은 끊임없이 각 개인 생명의 잠재력을 강조한다. 펄럭이는 흰색 천막으로 연출된 어느 장면에서 살구색 의상의 무용수들은 행복에 겨운 하나로 모인다.” 말하자면 세르카위는 비극적 사건이나 고통, 세대 간의 갈등이 남긴 앙금을 털어내고 용서와 선의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여정을 강조하였다. 가디언을 따르자면, 반목과 상처를 넘어 개인과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 있어 타인을 이해하고 보듬는 선의가 매우 설득력을 가진 공연으로 이해된다.
에든버러프린지의 다양한 춤들
- 마크 브루가 찾아준 춤의 기쁨
2026 에든버러축제 춤 공연작들을 가디언은 예년에 비해 집중적으로 소개하였다. 다소 이례적으로 보이는 이런 조짐이 어떤 연유에서 비롯됐는지 추정해 보자면, 춤 공연작들의 수준이 높아진 점, 춤이 여러 장르와 결합하는 구성 방식이 진화한다는 점, 에든버러축제에서 춤이 강화된 점이 들어질 법하다. 이 가운데 가디언에서 별점 5개 만점을 받은 것은 마크 브루의 〈Boys Don’t Dance〉였다. 별점에서 만점을 받는 공연이 가디언에서는 아주 드물다. 마크 브루는 호주 출신 발레 무용수로 남아공에서 활동하던 중 교통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되었고, 재활 치료 후 휠체어 무용가로 활동하면서 근 30년 만에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와 협업하여 자신의 교통사고를 담은 프로젝트 〈An Accident / A Life〉(어느 사고/어느 인생, 2025)를 자신의 독무로 공연한 바 있다(〈춤웹진〉, 2025년 10월 호 보도).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aug/14/boys-dont-dance-review-assembly-dance-base-edinburgh
춤웹진 기사 바로가기
http://www.koreadance.kr/board/board_view.php?view_id=213&board_name=from_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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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s Don’t Dance ⓒMatoEvent |
〈Boys Don’t Dance〉는 브루가 어린 시절 내내 들었던 편견을 나타낸다. 이 공연에 대해 가디언은 8~13세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 따뜻하고 기분 좋은 분위기, 그리고 훌륭한 사운드트랙이 어우러진 작품, 정말 사랑스럽고 재미있는 쇼”라 평하였다. “이 쇼의 가장 큰 장점은 주역 브루가 춤에 대해 느끼는 절대적인 기쁨, 즉 그의 타고난 본능과 리듬감에 완전히 몰입하는 모습, 컬처 클럽 그리고 만화 팝스타 젬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와 뮤직비디오, 원더우먼 주제곡, 질레트 면도기 광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모습까지 춤으로 생생하게 담아낸다는 점이다. 디스코, 재즈, 아크로바틱 동작, 활기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자전거 익스트림 묘기까지 어우러진 밝고 경쾌한 무대. 팝 음악의 힘과 어느 80년대 어린 시절의 지겨움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엄마가 외출하고 나면 주역은 엄마 옷을 입고 춤을 추어도, 스스로 갈망하는 이 행위가 자기를 괴롭히기도 하고, 진정한 자신을 숨겨야 하는 현실 또한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공연에서 “휠체어 라틴 댄스 챔피언은 어른이 된 브루 역을 맡아 과거를 회상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연기하며, 그와 브루는 함께 멋지게 호흡하며 독창적인 안무를 선보였다. 무대 연출은 단순하지만 훌륭하며, 비디오 디자이너의 애니메이션 선화 배경은 동네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흑백 화면은 브루가 대도시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는 순간 네온사인으로 가득 채워졌다.
- 한국-스코틀랜드의 애절한 인연
에든버러축제 공연 가운데 별점 4개를 받은 것은 앞서 소개된 〈이흐산〉 외에 〈Tether(끈) 인연〉도 있다. 한국 연출가 윤정환(극단 산)이 남현우와 로비 고든의 공동 안무로 올린 작품(에든버러 서머홀)이다. 가디언은 이 공연의 연극평론가의 기명 리뷰를 춤과 연극 두 섹션에 동시에 게재하였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aug/17/tether-review-summerhall-edinburgh-fest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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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ther 인연 ⓒKaugainJang |
〈Tether 인연〉은 제1차 - 제2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에 글래스고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한국 남성이 여관 주인의 딸과 사랑에 빠지나,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던 사연을 담았다. 한 세대 후, 스코틀랜드 출신 간호사는 한국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며,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의 편지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1970년대에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한국 유학생은 그 여관 주인의 딸이 아리랑의 모든 가사를 외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이 공연의 매력은 가볍게 그려진 스토리보다는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와 활기 넘치는 무대 연출에 있다. 배우들은 모국어로 대사를 하고, 대사마다 언어가 바뀌면서 연극적 효과를 고조시킨다. 게다가 공연은 관객이 무대 위 스코틀랜드 전통춤인 케일리의 파트너 댄스들에 참여하도록 하면서 케일리와 한국의 원형 춤인 강강술래가 충돌하는 광경을 연출한다. 두 문화를 연결하는 것은 움직임과 신체적 자유에 대한 공통된 사랑이며, 4인조 라이브 밴드는 두 문화의 민속 악기를 연주하며 더욱 풍성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5음계를 통해 스코틀랜드와 한국은 연결될 수 있는데, 한국 민요 아리랑과 켈트족 노래 올드 랭 사인에는 5음계 구조가 깔려 있다.”
- 서커스·폴댄스·마임과 접속한 춤 경향들
올해 에든버러축제의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가디언은 서커스와 폴댄스를 응용한 공연작을 다수 소개하였다. 가디언은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는 서커스 공연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다. 지금 이 도시에는 줄타기, 거꾸로 매달리기, 공중그네 타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전한다. 그 가운데 먼저 놀라운 기술력의 대표작으로 뉴욕 출신 폴댄서 도나 카노우와 지나 알름의 〈황혼/밤/새벽〉을 추천하였다. “두 폴댄서는 무대 위에 매달린 봉 하나만을 이용해 공중에서 오르내리고, 회전하고, 균형을 잡으며, 팔다리를 종이접기처럼 구부려 불가능해 보이는 동작을 선보인다. 그림자 속을 헤엄치고 소용돌이치며 관객을 매료시키는 환상적 퍼포먼스. 그들이 보여주는 것은 예술에 대한 절대적인 숙련도이다. 엄청난 힘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은 더할 나위 없이 유려하며, 그 물리적 원리는 매우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지만 관객은 흐름에 완전히 몰입되어 그 정교함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이다. 훌륭한 출연자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며, 〈황혼/밤/새벽〉은 부분적으로는 공연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순간 두 사람은 번쩍이는 붉은 조명 아래 검은 페인트를 뒤집어쓴 채 몸을 비틀다 갑자기 조명이 켜지고 마치 잠에서 깨어난 듯 몸을 닦으며 공연을 끝낸다. 인간과 연기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환상의 본질, 자기 신체의 힘을 발견하는 즐거움 등 여러 가지 미묘한 질문들이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놀라운 재능이 느껴진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aug/19/edinburgh-fringe-dance-shows-circus
멜버른의 원펠스웁 서커스단은 10년 전에 초연된 〈By a Thread〉(실 한 가닥)로 작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올해 다시 돌아왔다. 가디언은 이 공연에 별점 4개를 부여했다. “최고의 쇼들이 그러하듯, 이 공연 역시 하나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한 시간 동안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거대한 줄 하나, 도르래 두 개, 일곱 명의 단원들이 함께 만들어낸 건 그 아이디어였다. 천장에서 내려온 로프는 슬랙라인이 되어 그 위를 걷게 하고, 공중그네를 타게 하며, 수직으로 오르게 하고, 대각선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몽환적 분위기 속에서 잔잔하게 진행되는 이 공연은 서서히 관객을 몰입시키며, 감미로운 배경 음악은 마치 마법을 거는 듯하다. 출연자들의 기량은 기본이지만, 로프의 역학과 출연진 간의 역동성이 어우러져 더욱 흥미진진한 공연으로 거듭났다. 게다가 놀라운 물구나무서기처럼 개개인의 기량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두 발로 서 있는 것보다 이 여성 출연자는 두 손바닥으로 더 안정적으로 서 있었다. 이는 그녀가 간단한 묘기를 리듬, 타이밍, 그리고 재치를 더한 안무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수 미터 상공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듀엣은 곡예라기보다는 인간적인 교감, 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따뜻함과 우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감정은 진실되게 느껴지고, 분위기는 완벽하게 조절되어 있다. 줄타기라는 기술이 아니더라도, 바로 이런 점들이 이 곡예사들을 진정으로 돋보이게 하는 요소였다.”
기사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aug/18/by-a-thread-review-one-fell-swoop-edinburgh-assembly-rooms
스웨덴 곡예단 빌로우 제로의 쇼 〈Pace〉는 부부의 잔잔하며 사랑스러운 순간들로 그득했다. 쇼는 손을 맞잡고 하는 곡예로, 아주 단순한 연결에 기반을 두었고, 사소한 짜증과 소통의 단절로 인해 두 사람의 연결이 끊어지는 장면도 있다. 어느 순간 그녀가 그에게 몸을 던지지만 그는 그녀를 받아내지 못한다. 결국 두 사람은 문제를 해결해낸다. 시카고 서커스단 얼로프트는 쇼 〈The Pieces〉에서 “정말 훌륭한 콘셉트와 멋진 소품들을 선보였다.” 여섯 명의 출연자는 공중에 각각 금속 사다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이 사다리들은 혼자서는 제대로 서 있지 못하지만 두 개를 연결하면 훨씬 안정적이다. 여러 개의 사다리를 연결하면 마치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듯한 형상을 만들 수 있다. 협력과 공동체에 대한 은유는 다소 노골적이지만, 효과적으로 전달되며, 모든 사다리가 거대한 파도 모양을 만들고 곡예사가 그 꼭대기를 타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웠고, 전자음악도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감탄을 자아낼 만한 요소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프랑스 무용가 소피안 샬랄의 〈Bigger〉는, 자료에 따르면, 자기 체형에 관한 타인의 편견을 다룬 독백 춤-마임극으로 진행되었고 육중한 체구와 대비되는 매우 빠르고 정교하며 유연한 신체 제어를 선보여 관객들의 통념을 뒤흔들었다 한다. 가디언의 소개에서 샬랄은 쇼에서 "사람들은 '어! 뚱뚱하잖아! 춤도 못 춰!'라고 말하죠"라 말한다. 스스로 자신이 덩치가 크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항상 그래왔어도 항상 춤을 춰왔다. “왜냐하면 나는 추진력과 정확성을 갖고, 팔을 빠르게 휘두르며 멈췄다 시작하는 자세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연에서 “그는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관객을 즐겁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춤춘다. 힙합 외에도 찰리 채플린과 로렐과 하디를 자신이 받은 영향으로 꼽는다. 35분짜리 이 작품은 현재로선 진행 중인 작업으로서, 일련의 부분작들 같은 느낌이지만, 더 큰 가능성을 암시하는 사려 깊은 독백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예컨대, 자신이 옷에 음식을 흘리지 않으려고 연연하는 부분은, 날씬한 사람이라면 결코 응하지 않을 방식으로 평가받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내용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브라질의 TF 시아 데 단사가 선보인 〈Border Bodies〉는 “당신이 몰입했다가 집중력을 잃을 수 있는, 즉 분위기, 에너지, 박자, 흐름, 그리고 점차 변화하는 타악기 중심의 사운드트랙이 어우러진 컨템퍼러리댄스이다.” 가디언의 묘사를 따르자면, 여덟 무용수가 출연하는 이 작품은 “긴장되고 정적인 자세와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시작하여, 마치 윤활유를 바르듯 천천히 움직이는 동작들을 거쳐 유기적인 물결처럼 펼쳐지는 느린 전개로 진행된다. 무용수들의 동작은 일사불란하지만, 같은 리듬과 무게 중심에 따라 하나로 연결된다. 작품의 주제는 다양성 너머의 연결이고, 공연은 이를 확실히 보여준다. 동작 자체는 한동안 흥미를 잃기도 하지만, 점차 고조되어 마침내 무언가를 이루어가고, 땀에 절어 지친 마지막 장면에서는 해방감과 함께 관객에게도 전해지는 일체감이 느껴진다. ‘누구나 폭탄을 가졌다'는 점에서 평화로운 유토피아보다는 억제되지 않은 분노가 더 강렬하며, 중간쯤부터 폭력적인 장면으로 폭발한다. 목이 베이는 장면, 원초적인 비명이 터져 나오고, 몸싸움과 밀치기, 세상에 대한 분노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는 춤 자체가 다소 점잖은 편이라 보다 거칠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필요해 보인다.”
기사 링크
https://www.theguardian.com/stage/2026/aug/19/edinburgh-fringe-dance-shows-circus
김채현
춤인문학습원장.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 <춤웹진> 전 편집장. 철학과 미학을 전공했고 춤·예술 분야 비평 수백 편과 저서 『춤과 삶의 문화』 『춤, 새로 말한다 새로 만든다』 『뿌리깊은 나무 샘이깊은 물』(1)을 비롯 다수의 논문, 공저, 『춤』 등의 역서 20여권을 발간했다. <국립무용단 60년사>(2022년 간행, 국립무용단)의 편집장으로서 편집을 총괄 진행하고 필진으로 참여하였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예술춤과 국내외 축제 현장을 작가주의 시각으로 직접 촬영한 비디오 기록물 수천 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한국저작권위원회, 국립극장 자료관, 국립도서관 등에 영상 복제본, 팸플릿 등 일부 자료를 기증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