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독일 탄츠플랫폼 참관기(2)
무용의 형식을 실험하는 독일 탄츠플랫폼
손인영_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이동할 수 없는 몸의 방랑

독일 드레스덴의 탄츠플랫폼 3월 12일 5시, 스코틀랜드 안무가 클레어 커닝햄(Claire Cunningham)은 목발을 신체의 일부처럼 확장해 사용하는 독창적 움직임으로,‘정상적인 몸’이라는 기준 자체에 질문을 던져온 작가다. 그의 작품 〈방랑자의 노래(Song of Wayfarer)〉는 구스타프 말러의 가곡 제목에서 차용한 것으로, 이동과 고독이라는 낭만적 주제를 물리적 신체 조건 속에서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목발과 함께 생성되는 리듬과 공간, 제한된 이동성은‘방랑’의 의미를 새롭게 드러내며, 자율성과 의존 사이에 놓인 존재의 상태를 섬세하게 비춘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숫자가 멀리서 들려온다. 등산복 차림의 클레어는 72걸음을 걸어와 관객과 마주하고, 말을 건네듯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함께 여행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는 객석 사이, 경사가 급한 의자 사이를 등산하듯 올라간다. 중간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 관객과 나누고, 다시 노래한다. 그 장면은 어딘가 중세 교회음악을 떠올리게 하는 정서를 품고 있다. 무대 상수에는 길게 내려온 흰 천이 바닥까지 이어져 있다. 무대로 돌아온 그녀는 그 천 위를 극도로 느린 속도로 걷는다. 이후 머리에 쓴 조명만이 어둠 속에서 흔들리며, 그녀는 객석 앞을 지나 사라졌다가 반대편에서 다시 나타난다. 때로는 소리만, 때로는 빛만이 존재한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울리는 목발 소리는 시간을 늘어뜨리고, 객석을 깊은 고독 속에 잠기게 한다.





행위와 노래는 이어진다. 바닥의 흰 천을 허리에 둘러 치마를 만들고, 목발로 천을 밀고 당기며 형상을 만든다. 천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움직임에 의해 생성되는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이후 그는 천을 정리하고 앉아 신발과 양말을 벗는다. 발을 마사지하는 장면에서 드러나는 비틀린 형태는, 말보다 먼저 감각을 건드린다. 다시 일어나 숫자를 세며 리드미컬하게 걷는다. 네 개의 지점—두 다리와 두 목발—이 만들어내는 보행은 점차 변주된다. 보폭, 기울기, 목발의 길이와 사용 방식이 끊임없이 바뀌며, 걷기는 하나의 탐색이 된다. 바닥에는 산의 능선을 연상시키는 영상이 흐르고, 이동은 더 이상 단순한 전진이 아니라 방향과 궤적의 문제로 확장된다.

무대 위에 올라온 그녀는 객석을 향해 앉아 숨을 고른다. 한참의 침묵 끝에, 걷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 고백은 설명이라기보다 방금까지의 시간을 다시 읽게 만드는 하나의 열쇠처럼 작동한다. 옷과 배낭, 목발로 만든 작은 천막 아래에서 잠을 자고, 단어들을 반복해 읊는다. 언어 역시 이동하듯 변형되고 축적된다. 이후 그녀는 바닥으로 내려와 노래하며 몸을 끌듯 이동한다. 이어 나무처럼 세워진 목발들 사이를 기어 다니며 잠금 장치를 푼다. 그 장면은 도구의 해체이자, 신체와 보조장치의 관계를 다시 쓰는 행위처럼 보인다. 목발 하나를 어깨에 걸고 펼쳐지는 움직임은, 일반적인 신체의 문법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목발 위에 꽃을 꽂고 물을 준다. 그것은 사용되던 도구가 하나의 풍경으로 전환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장애’를 설명하거나 극복의 서사를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이동한다는 것, 걷는다는 것, 그리고 존재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다시 정의하게 만든다. 목발과 함께 만들어지는 움직임은 결핍이 아니라 또 다른 방식의 확장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몸의 기준을 낯설게 마주하게 된다. 이 작업은 감동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어떤 몸을 ‘자연스럽다’고 말해왔는가, 그리고 그 기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그녀의 의지와 성장의 서사는 미감을 넘어서는 울림과 희열을 안겨주었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경계를 지우는 몸들, 거울 속의 공동체

당일 저녁 8시, 독일의 다큐멘터리 연극 집단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핵심 멤버 슈테판 케기(Stefan Kaegi)와 현대무용 안무가 샤샤 발츠(Sasha Waltz)가 협업한 〈거울 뉴런(Spiegelneuronen)〉을 보았다. 이 작품은 타인의 움직임을 보고 모방하고 공감하는 인간의 신체 반응을, 관객 참여를 통해 실시간으로 드러내는 퍼포먼스다. 무대는 더 이상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집단적 반응이 생성되는 하나의 실험장이 된다.

공연장 전면에는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고, 무용수들은 관객 사이에 섞여 앉아 있었다. 누가 관객이고 누가 무용수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다. 음악이 시작되자 누군가가 움직임을 시도하고, 몇몇이 이를 따라 한다. 그 흐름은 빠르게 번져, 어느 순간 거의 모든 관객이 같은 움직임을 공유하게 된다. 서로 다른 옷과 몸을 지닌 사람들이 하나의 패턴으로 수렴하는 장면이 거울 속에 펼쳐진다. 모방은 점차 변주된다. 무용수들이 새로운 움직임을 시작하면, 그 주변부터 서서히 다른 리듬이 생겨난다. 동시에 곳곳에서는 각기 다른 움직임이 발생하며 집단은 균질한 상태에서 다시 분화된다. 거울은 물결처럼 일그러지며 공간의 경계를 흐리고, 장면은 갑작스럽게 나이트클럽 같은 분위기로 전환된다. 조명과 음악이 과열되면서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유롭게 춤을 춘다.

다시 장면은 전환된다. 눈이 내리듯 차분해진 공간 속에서 움직임은 극도로 느려지고, 몽롱한 상태로 가라앉는다. 특정 관객을 비추는 조명은 예상치 못한 노출을 만들어내고, 그 어색함은 곧 웃음으로 번진다. 이어 초록색 풍선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띄우고 밀며 서로 주고받는다. 형광빛 속에서 움직이는 풍선들은 집단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또 다른 몸처럼 보인다.





거울 위로 흰 액체가 흐르며 이미지가 흐려지고, 그 사이에서 무용수들이 일어나 움직인다. 관객과 수행자의 경계는 다시 한번 교란된다. 휴대전화의 불빛이 켜지고, 관객 모두가 이를 따라 하며 공간은 또 다른 집단적 장면으로 전환된다. 이어 등장하는 뇌 영상과 설명은, 지금까지의 경험이 모방이라는 신경학적 메커니즘과 연결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통해 재현이 아닌 발생하는 사건으로서의 공연을 제안한다. 무언가를 보여주는 대신, 관객의 반응 자체를 공연의 재료로 삼는다. 보는 행위는 곧 참여가 되고, 무대는 관객의 몸을 통해 구성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이 언제나 유효한가에 대한 질문은 남는다. 아이디어가 형식을 앞서갈 때, 움직임 자체의 밀도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위험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이 작업은 공연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하나의 유효한 사례로 남는다.

이 작품은 관객의 참여를 전제로 타인의 움직임을 보고 모방하고 공감하는 인간의 신체적 반응을 무대 위에서 직접 체험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적 퍼포먼스이자 집단적 움직임의 실험이었다.


참여의 열기와 안무의 거리

3월 13일 오전 피칭이 끝난 뒤, 11시에 선보인 레지나 로시(Regina Rossi)의 안무작 〈이제 내 차례야!(Du Bist Dran!)〉은 관객을 수동적인 감상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로 끌어들이며,‘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관계 맺음을 신체 언어로 탐구하는 작품이었다. 로시는 일상적인 몸짓과 직관적인 움직임을 바탕으로 관객과 무용수 사이의 경계를 유연하게 허물고, 각자의 반응과 개입이 곧 장면을 구성하는 참여형 구조를 만들어낸다.

화려한 스포츠웨어를 입은 네 명의 무용수는 등장과 동시에 말과 춤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공연의 분위기를 열었다. 이후 객석에서 여덟 명의 관객을 무대로 초대해 다양한 게임에 참여시키는데, 스포츠와 신체 움직임을 변형한 형식들이 이어진다. 무용수와 관객이 사선으로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 기계에서 튀어나오는 탁구공을 피하거나 맞으며 점수를 겨루는 장면, 객석과 무대 사이에 설치된 테니스 코트에서 거대한 공을 주고받는 장면 등은 놀이와 경쟁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게임 사이사이 무용수들은 춤을 추거나 서로 간의 게임을 이어가며 흐름을 유지하고, 마지막에는 관객이 직접 점수를 매겨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그에 따른 춤이 펼쳐진다.





참여형 공연으로서 설명과 진행은 비교적 매끄럽고 관객에게 큰 불편함 없이 이루어졌으나, 게임과 춤의 결합이 충분히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게임의 아이디어가 중심이 될 경우, 춤은 그에 부수적으로 덧붙여지며 단편적으로 기능할 위험이 있다. 만약 게임은 게임으로, 춤은 춤으로 분리되어 존재한다면, 관객에게 일시적인 즐거움은 줄 수 있을지언정 예술적 깊이와 감동을 확장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안무는 보다 치밀하고 정교하게 구성될 때, 참여를 넘어서는 감각적·정서적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재현된 원시성과 도달하지 못한 의미

당일 저녁 8시 공연된 제시카 누펜(Jessica Nupen)의 작품 〈배상국가(Reparation Nation)〉는 식민주의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반환(reparation)’과‘소유’의 문제를 다룬다. 공연예술이 역사적 부채와 기억을 어떻게 감각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이 작업은, 춤·사물·이미지·사운드를 병치하는 다층적 구조를 통해 약탈된 문화유산과 그 공백,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정치적·정서적 긴장을 드러낸다.





Jessica Nupen 〈Reparation Nation〉 ⓒtanzplattform2026.de



무대는 한 여성이 원형으로 쌓인, 벼인지 모래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물질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시작된다. 이어 아리아를 부르며 보석함을 든 흑인 여성, 곡식 더미 속에 잠긴 남성, 검은 망토를 두른 여성이 막대를 흔들며 그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곡식이 흩어지는 순간, 다양한 색의 망토와 뿔 달린 모자를 쓴 무용수들이 등장해 의례적인 움직임을 수행하고, 탈과 토구 이미지의 영상이 더해지며 무대는 집단적이고 주술적인 분위기로 확장된다.

이후 원시적인 발화와 몸짓, 소리를 매개로 한 장면들이 이어진다. 긴 관을 통해 소리를 주고받는 행위, 북과 트럼펫의 등장, 단순한 동작을 반복하는 군무는 일정한 리듬을 형성하지만, 개별 장면들은 하나의 서사로 응집되기보다 병렬적으로 나열된다. 15~16세기 벽화 이미지와 함께 바가지와 주전자를 머리에 얹은 무용수들이 아프리카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아프리카적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다. 곡식을 밀어내는 행위와 함께 수탈의 역사가 언급되고, 칼을 든 남성이 오브제들을 그물에 담아 퇴장하는 장면은 약탈의 은유로 읽힌다. 이후 무용수들 간의 호흡과 음식의 나눔, 관객을 무대로 초대하는 설치 체험으로 이어지며 공연은 관람에서 참여로 전환되고, 하나의 공동체적 경험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이 작품은 완성도 측면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반환’과 ‘소유’라는 핵심 문제의식은 주로 언어와 텍스트를 통해 제시될 뿐, 춤의 구성 안에서 유기적으로 조직되지 않는다. 그 결과 관객은 신체적 경험을 통해 의미에 도달하기보다 프로그램 노트에 의존해 작품을 해석하게 된다. 이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재현된 원시성’에 관한 것이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 출신 안무가들의 작업과, 유럽 안무가들이 아프리카를 소재로 삼는 작업 사이에는 분명한 감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 작품은 전자의 지점에 가까우며,‘아프리카적 이미지’를 재현하는 수준에 머문다. 무용이 이미지와 신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사유를 전달하는 예술임을 고려할 때, 여기서 그러한 감각적 설득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의미는 무대 위에서 생성되기보다 외부의 설명에 의해 보완되는 데 그친다.


놀이의 규칙, 관계의 움직임

3월 14일 오전 세션에 이어 국제 프로듀서들과 만남이 있었고, 오후 3시에는 체렌 오란(Ceren Oran)의 작품 〈놀이 속 놀이(Spiel im Spiel)〉가 공연되었다. 이 작품은 하나의 규칙 안에 또 다른 규칙이 중첩되는 구조를 무대 위에 펼쳐 보이며, 명확한 서사나 인물 설정 대신 규칙과 상황이 생성하는 관계와 흐름에 주목한다. 무용수들은 특정한 동작 어휘를 반복하고 변형하며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오가며 장면을 구성한다. 이러한 흐름은 이야기로 수렴되기보다 하나의‘놀이 상태’로 확장·축적되며, 움직임 또한 복잡한 기교보다 단순한 규칙 안에서 작동하면서 반복과 변형 속에 고유한 긴장과 리듬을 형성한다.

객석에는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 관객이 많았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좌우에 통과 가능한 흰 스크린이 설치되고, 그 틈 사이로 손, 발, 팔, 얼굴, 인형 등이 번갈아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이때마다 아이들의 웃음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온다. 작품은 한국인 남녀 무용수 두 명과 남성 무용수 한 명이 함께하는 3인무로, 세 퍼포머는 끊임없이 관계를 변주하며 장면을 만들어간다. 공연 중반, 짐승의 울음소리와 함께 세 개의 작은 사각 의자가 등장한다. 한 무용수가 이를 포개어 옮기며 건너가는 사이, 다른 무용수는 물건이 담긴 플라스틱 박스를 가져와 소품을 활용한 움직임을 이어간다. 이어 한 무용수가 중앙에서 손가락으로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듯 두 남성을 움직이게 하거나, 손가락에 인형을 끼운 채 소리를 내며 놀이를 확장한다. 이 장면에서 아이들의 반응은 특히 뜨겁다.





플라스틱 박스에서 꺼낸 옷과 양말을 뒤로 던지면, 다른 무용수들이 틀 뒤에서 이를 받아내며 다시 장면으로 연결한다. 옷을 입고 걸치는 행위는 캐릭터의 변형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에 한 무용수가 패치 코트를 걸치고 모자를 쓴 채 난쟁이처럼 걷는 장면은 유머와 상상력을 동시에 자극한다. 인형 가면을 쓴 여성 무용수는 바닥에 놓인 옷 위를 밟고 지나가거나, 흰 신발을 다양한 방향으로 배치하며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 양손과 양발에 신발을 끼운 채 이루어지는 기이한 신체의 춤은 시각적 전환의 리듬을 강화한다.

두 개의 틀을 활용한 장면에서는 아래로는 발만, 위로는 얼굴만 드러나는 등 신체를 분절해 보여주는 이미지가 이어지며 시각적 장치는 끊임없이 변주된다. 이러한 기발한 전환 속에서 아이들은 웃고,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며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세 무용수가 객석과 함께 간단한 움직임 놀이를 이어가고, 관객들은 이를 따라 하며 참여 자체에서 오는 즐거움을 경험한다.

무대 위의 행위는 지속적으로 관객을 향해 열려 있으며, 특정 순간에는 직접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관객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놀이의 규칙을 함께 인지하고 수행하는 존재로 자리한다. 이러한 구성은 공연을 하나의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관계의 장으로 경험하게 만든다. 수많은 아이디어가 병렬적으로 이어지는 듯 보이지만 전환은 자연스럽고 흐름은 끊기지 않는다. 무용수들의 재치 있는 수행과 관객의 에너지가 맞물리며 무대와 객석은 하나의 장으로 확장된다. 아이들은 변화하는 틀과 소품을 따라가며 신체를 통해 창의적 감각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된다.

2026. 5.
사진제공_tanzplattform2026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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