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Abroad
이탈리아 북부 고리치아와 슬로베니아 서쪽 노바고리차에서 벌어진 스프링포워드(Spring Forward) 페스티벌은 유럽의 무용 발굴 허브인 에어로웨이브스(Aerowaves)가 주최하는 행사다. 에어로웨이브스는 유럽의 신진 무용가들의 가장 유망한 신작을 발굴하여 34개국에서 모인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친 21개 작품을 올해 스프링포워드 페스티벌에 올렸다. 유럽연합의 크리에이티브 유럽 플랫폼의 지원으로 페스티벌에서 선정된 작품들은 매년 100회 이상의 국경간 공연을 펼치고 있다.
에어로웨이브스는 1996년 런던 더플레이스(The place) 극장의 극장장이었던 존 애시포드(John Ashford)가 유럽 무용 동료들로 구성된 소규모 그룹을 만들어 시작했다. 그는 유럽 전역의 젊은 무용단으로부터 받은 영상홍보 물을 정리하기 위해 유럽에서 활동하는 무용관련 동료들의 도움을 받았고, 곧 그 유럽의 동료들은 더 플레이스에서 공연된 작품을 그들의 나라에서 공연을 하게 되면서 에어로웨이브스의 전신이 되었다. 처음에는 약 100명의 신진 안무가들이 에어로웨이브스 작품 선정에 지원했고, 2024년에는 750명으로 늘었으며 에어로웨이브스가 후원하는 많은 안무가들이 세계적인 커리어를 쌓아왔다. 에어로웨이브스는 2011년 스프링포워드를 설립하며 명실공이 세계적인 무용 플랫폼으로 확장하여 과감한 행보를 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세계 주요 프로그래머들을 초대하여 유럽의 신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스프링포워드는 해마다 개최국이 바뀌는데, 작년엔 독일에서 열렸고 올해는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내년에는 포르투갈의 작은 도시 기미랑이스에서 열린다. 에어로웨이브스는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유럽 전역의 안무가, 댄스 프로그래머, 댄스 평론가, 댄스 관련자들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네트워크 관계자들은 매년 스프링포워드 페스티벌에서 모여 유럽무용의 미래와 평론 등에 대해 논의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올려진 신진 무용가들의 작품을 본다.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인 관계자들 243명에 의해 다양한 공연장에서 이 작품들은 공연된다.
극장 앞 모습 ⓒRuben Vuaran |
스프링포워드 개막 현장 ⓒStefano Scanferla |
올해 스프링포워드는 4월 23일부터 26일까지 열렸고 참여한 무용단은 유럽의 21개 단체와 사전 행사로 일본과 캐나다까지 총 23개 단체가 공연했다. 세계에서 모인 프로듀서나 극장 또는 페스티벌 관계자들은 243개 단체로 그 자체가 거대한 플랫폼이었다. 공연도 중요하지만 네트워크 때문에 모인 사람들도 많았다.
4월 23일 사전행사는 일본 안무가인 켄타 코지리(Kenta Kojiri)와 캐나다 퀘벡 출신의 엘리앤 로스(Elie-Anne Ross)의 이탈리아 무용수들을 대상으로 만든 작품들을 선보였다. 켄타 코지라는 요코하마 예술재단의 준 안무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이탈리아 현대무용의 개척자인 로베르토 카스텔로(Roberto Castello)가 이끄는 이탈리아의 젊은 무용가 과정인 페파(PEPA)의 무용수들에게 그의 작품인 〈아하이(AHAI), 상상의 풍경〉을 리메이크/각색하여 선보였다. 이 작품은 시간과 공간 사이의 울림과 신체표현을 통해 공존이라는 주제를 탐구하는 작품이었다.
Kenta Kojiri & Elie-Anne Ross 〈AHAI, Imaginary Landscapes〉 ⓒRuben Vuaran |
타츠키아마노(tatsukiamano)의 우주적인 음악에 무리지어 나와 흩어진 무용수들은 서로 간의 공기를 제어하듯 감각적으로 밀고 당기거나 유연하고 감성적인 팔 동작을 선보였다. 안무자가 추구하고자 하는 감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으나 젊은 무용수들이 그 감성을 드러내는 데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다양한 공간 연출이 있은 뒤, 중앙에 모인 무용수들은 서로 팔과 팔을 엮거나 쓰다듬으며 공존의 관계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 안무가의 내면적이고 감성적인 움직임에 대한 감각이 과연 이탈리아 무용수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이었으나 켄타가 추구하려는 공존의 의미는 조용한 가운데 시선으로 전달되었던 작품의 마무리에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감성이 뛰어나고 내면의 공감을 이끄는 안무가였다.
Elie-Anne Ross 〈FLUX〉 ⓒStefano Scanferla |
캐나다의 엘리앤 로스는 스트릿 댄스로 세계적 명성을 가졌으며 팝핀 댄스를 전문으로 하는 무용가이다. 그녀의 작품 〈플럭스〉(FLUX)는 이탈리아 댄스교육의 혁신을 이끄는 ‘아고라 코칭 프로젝트’의 젊은 무용수들에 의해 펼쳐졌다. 플럭스에서 엘리앤은 의식의 흐름 속으로의 몰입을 통해 그것이 신체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무용수들의 순수한 몸 언어로 표현했다.
시작은 팝핀 댄스로 공간에 흩어져 활기차게 자유로운 움직임으로 시작했다. 이어 원을 만들어 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마치 무용수들의 신체 속으로 무언가 들어가서 그것이 다시 표현으로 나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완전히 자아 속을 여행하는 몸짓이었다. 젊은 무용수들은 안무자가 원하는 것을 끌어 내려고 자신들의 신체 속으로 함몰된 느낌이었다. 특히, 한 남성 무용수는 의식의 흐름이 얼굴 표정에서부터 온몸으로 전달되듯 무아일체가 되어 표현했다.
이탈리아 무용수들은 안무가가 요구하는 의미를 잘 드러내어 춤적으로 완성도를 보였으나 안무가 두드러진다고 느끼기는 어려웠다. 반면, 일본 안무가의 경우 비록 무용수들이 작품이 요구하는 춤적인 부분을 다소 미흡하게 표현했지만, 작품의 의미나 내용은 명확했다.
Joanna Holewa Chrona & Yared Tilahun Cederlund 〈waterkind〉 ⓒ마가리타 마티즈 베르그펠트 |
Joanna Holewa Chrona & Yared Tilahun Cederlund 〈waterkind〉 ⓒRuben Vuaran |
다음날, 24일부터 본격적으로 에어로웨이브스의 34개국에 의해 선별된 젊은 안무가들의 작품들이 올려졌다. 스웨덴 안무가인 조안나 홀레와 크로나(Joanna Holewa Chrona)와 야레드 틸라훈 세더룬드(Yared Tilahun Cederlund)의 〈물처럼〉(waterkind)이 첫 작품으로 선보였다. 이 작품의 움직임은 신체적 접속 없이 진동이나 반응이란 상호작용을 통해 팝핀 스타일의 변형처럼 보였다. 바위에 부딪혀 튀는 물의 움직임은 팝핀으로 표현했고, 유유히 흐르는 물은 느린 몸짓으로 보여줬다.
첫 장면은 클럽의 쿵쿵거리는 리듬이 멀리서 들리는 듯했고 두 남녀는 하수에서 상수로 천천히 걸어갔다. 걸음을 걷다 남자는 아래로 가라앉아 상수에 가서 앉고 여자의 솔로가 펼쳐졌다. 부드러운 몸짓이지만, 움직임의 정밀도로 봐서는 차가운 물의 느낌을 기계 같은 인간이 표현한 듯했다. 깊은 동굴 속에서 울려 퍼지는 신디사이저의 음향은 느린 몸짓에 공명을 불러 일으켰다.
이어 두 댄서의 듀엣이 벌어졌는데, 서로 접촉하지 않으면서도 부딪힘과 흐름이 시간의 차이를 거쳐 표현의 다름으로 드러났다. 의상과 음악, 그리고 몸짓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느리게 다가왔고, 곡선이면서도 차갑고 부드러웠다. 흔히 무용가들이 표현할 법한 일반적인 부드러운 느림이 아니다. 두 무용수의 배경이 스트리트 댄스, 팝핀, 쿠바의 이시판술라 그리고 프리 스타일에서 나온 움직임이라 아주 독특한 몸 언어로 물을 표현했다.
특히 세더룬드는 발바닥을 바닥에서 미끄러지듯 움직이면서 물의 소용돌이를 표현했는데, 느린 팝핀처럼 보였다. 그는 몸의 관성을 의도적으로 저지하려는 듯, 생선이 비늘을 털 듯 움직였다. 음악적으로도 생소함이 드러났는데, 아라비아풍의 여성이 부르는 아리아가 차가운 물의 감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 작품은 개인적으로 깊은 감동을 받았다. 여자 무용수의 차가운 섬세함은 근육이 극도로 긴장한 상태이면서도 부드러워 보이게 해서 아주 독특한 느낌이 들게 했다. 남다른 신체훈련으로부터 나온, 모방이 불가능한 몸짓이었다. 뭔가 다르게 창작한다는 것은 신체언어에서부터 차이가 나야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Dominik Więcek 〈Glory Game〉 ⓒPat Mic |
폴란드 안무가인 도미니크 비에체크(Dominik Więcek)의 작품 〈글로리 게임〉(Glory Game)은 고대 그리스의 육상경기 전통에 대한 오마주이다. 첫 장면은 6명의 나체 무용수들이 육상 경기를 슬로우 모션으로 한다. 좌우로 모래 위에서 달리는 영상은 강렬했다. 우윳빛으로 빛나는 근육질 남녀의 나체와 느린 몸짓으로 전력 질주하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신비로웠다.
작품 앞부분은 여러 번 반복하며 좌우로 느리게 뛰는 것을 오래했다. 꼭짓점을 돌 때, 앞뒤가 바뀌며 경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뛰다가 갑자기 모래 속에 숨겨진 스포츠 의상을 뒤져서 찾아 입기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사용될 만한 모든 소품들인 튜브, 공, 모자, 삽, 서핑보드 등이 차례로 등장했다. 모두 슬로우 모션이었다.
무용수들은 키스를 하거나 물건을 가지고 다투거나하는 다양한 움직임들이 펼쳐졌는데, 안무가는 아마도 운동경기의 사투와 인간사의 사투를 대비시킨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처음의 강렬함은 이후 모래 위에서의 이상한 이야기로 전락하면서 신비로움이 사라져버리고 알 수 없는 이야기 전개에 어리둥절했다.
절반의 성공으로 끝난 공연이었으나 느림이 주는 미적 감성을 원시성이 극대화된 근육질의 나체로 표현한 점은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야기 전개의 부재가 강렬함을 오리무중으로 희석해버려 아쉬웠다. 유럽은 크리스토스 파파도풀로스(Christos Papadopoulos)의 작품 〈멜로잉〉처럼 느리면서도 강렬한 작품들이 성공하고 있다. 연극적인 작품을 서서히 탈피하고 몸 움직임에 집중하려는 방향전환을 모색하는 듯하다.
David Zagari 〈Le Piquet〉 ⓒAnouk Maupu |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안무가인 데이비드 자가리(David Zagari)의 작품 〈말뚝 또는 봉〉(Le Piquet)이 이어 공연되었다. 헬멧을 쓴 우주복 차림의 자가리는 작은 사각 공간 중간에 세워진 봉을 잡고 서커스를 하듯 아래위로 움직였다. 행성 표면에 고립된 우주 비행사나 사막에서 추락 사고로 길을 잃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방향감각을 상실한 상황과 중력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라고 프로그램에 적혀 있었다.
붉은 조명 속에서 자가리가 엎드려 있었다. 음악이 일정하게 빕 소리를 내자 그는 봉 주위를 서성거리거나 마치 길을 잃은 듯 정처 없는 느낌으로 이러저리 움직였다. 겨우 봉을 잡은 그는 수없이 올라가려다 내려앉았다. 헬멧을 쓰고 있어 감정과는 동떨어져 있었고, 붉고 어두운 조명은 의식의 불분명함을 드러내듯 했다.
안무자가 표현하려는 상실의 상황은 봉을 잡지 않은 상태에서는 느낄 수 있었으나 봉을 잡으면서 자가리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와 팔로 제어를 하고 있어 통제력이 강했다. 갑자기 위에 있는 자가리의 머리가 바닥으로 추락하듯 떨어졌다. 관객들은 모두 간담이 서늘해 질 정도로 놀랐다. 헬멧을 쓴 머리는 극적으로 바닥에서 10센티미터 정도에서 멈추었고, 줄에 걸린 발에 의지해서 봉 주위를 돌자 머리가 봉 주위를 빙빙 돌았다. 멍한 느낌의 고요함이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안무가의 의도와 실험정신은 높이 살만했다. 중력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려는 자가리의 수없는 오름과 떨어짐은 그 자체로서 경이로움을 선사했다. 그러나 의미를 헤아리기보다 봉을 활용한 기술적 묘기가 더 강하게 각인되어 의미가 오히려 희석되었다. 테크닉과 의미를 연결하는 것은 늘 경계가 불분명하다. 의미에 집중하면 춤이 보이지 않고 춤에 집중하면 의미가 상실되니 그 경계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Ermira Goro 〈Sirens〉 ⓒArchlabyrinth |
Ermira Goro 〈Sirens〉 ⓒRuben Vuaran |
이어 그리스 국립무용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활동하는 안무가 에르미라 고로(Ermira Goro)의 〈사이렌〉(Sirens)이 공연되었다. 인간욕망과 사회적 규범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려는 이 작품은 감각적이고 신비롭게 표현되어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남녀 무용수들의 역할이 중요했다.
붉은 의상을 입은 차라 코찰리(Chara Kotsali)와 아도니스 바이스(Adonis Vais)의 듀엣은 마치 새끼줄을 꼰 듯이 깊게 상대편의 몸속으로 들어가거나 나왔는데 처음에는 접촉하지 않고 움직였다. 욕망의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코찰리의 에로틱한 몸짓은 허리의 웨이브에서 두드러졌고, 키가 큰 바이스의 부드러운 움직임은 아름다움을 자아냈다. 코찰리의 추파와 성적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감각적이고 과감한 두 무용수의 매력적인 몸짓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제프 방거의 음악은 강렬했다. 마지막에 코찰리가 그리스어 인듯한 발라드 노래를 부르며 장면 전환이 이루어졌는데, 전체적인 컨셉트는 잘 드러나지 않았으나 무용수들의 매력적인 몸짓은 대중성을 담보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프로듀스들이 관객이었던 플랫폼 형식의 공연으로는 높은 가치를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본 작품이다.
Alen Nsambu 〈Neon Beige〉 ⓒRuben Vuaran |
Alen Nsambu 〈Neon Beige〉 ⓒAino kontinen |
핀란드의 헬싱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앙골라 출신의 안무가 알렌 은삼부(Alen Nsambu)의 〈 네온 베이지〉(Neon Beige)는 안무가의 기억, 꿈, 욕망을 퍼포먼스식의 솔로 작품으로 엮었다. 내면의 것을 해체하여 무한한 생성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이 작품은 인종차별에 대한 침묵의 분노를 스스로 파괴하고 재구성하여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했다.
머리에 쓴 노란색 긴 가발, 10센티 높이의 붉은 하이힐, 활기찬 클럽 음악소리, 병과 신발을 이용한 즉흥 인형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안무자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했다. 흑인이며 성소수자인 퀴어인으로서의 자신을 해체하고 자신의 자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키가 크고 건강한 남성이 쿵쿵거리는 음악에 걷거나 손가락을 흔들며 어쩌다 휙 돌아앉는 등 강한 움직임을 했다.
무대 바닥을 기거나 앉아서 병과 신발을 활용하여 아이들의 2인 인형극을 보여주기도 했다. 금발의 긴 가발을 쓴 은삼부는 무당처럼 무대를 가로지르고, 연신 독백을 하면서 보이지 않는 경계에서 벗어나려 했다. 현실과 상상의 콜라주처럼 느닷없이 장면이 전환되거나, 포인트를 주지 않은 조명의 스산한 분위기나, 연극에 가깝거나 특별하지 않은 춤은 변두리에서 서성이는 한 외로운 인간의 모습을 날것으로 표현했다.
실험성이 강조되는 표현의 자유로움은 유럽에서 춤을 사라지게 했고, 연극적인 내러티브를 생성하여 춤과 연극의 경계를 허물었다. 장르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날것의 자기 감정에 집중하던 춤 환경에서 요즘 조금씩 춤에 집중하려는 분위기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스프링포워드의 작품들도 춤에 집중하는 작품들이 제법 많았으나 은삼부의 이번 작품은 연극에 가까운 자기 독백의 형식을 띤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였다.
─ 다음 호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