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검을 휘두르면 사방에 칼날의 빛만 가득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 평안도 무산 출신의 여검객 설죽(雪竹)에 대한 표현이다. 하지만 신미경의 검무 속에는 칼날의 빛만 아니라 춤도 보이고 춤꾼도 보이고 가인(佳人)도 보인다. 신비스럽고 멋스럽다. 그러면서 그녀의 장검, 쌍검무는 추상같고 호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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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 〈검무랑〉, 국립정동극장 제공 ⓒ옥상훈 |
필자 같은 검도 무예인이 일반 검무들을 보면 그저 춤과 유희로 보인다. 하지만 신미경의 〈검무랑(劍舞郞〉은 춤이되 무예가 느껴진다. 중국 경극에 나오는 검무와는 달리 한국 전통춤 특유의 힘찬 ‘답지저앙(踏地低昂)’과 활기찬 ‘연풍대(燕風臺, 鳶,蓮,擡 등이 혼용되어 쓰임)’가 들어 있다. 큰 동작선과 칼사위에 거침이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정연(井然)하고 정연(精姸)하다. 각고의 천착과 수련을 짐작케 한다.
한국 전통춤에서 검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라의 소년 ‘황창’이 백제 왕을 시해하기 위해 추었다는 가면검무인 황창랑무(黃昌郞舞)이다. 상대국의 왕을 죽일 정도였다면 황창랑무는 완전한 무예였을 것이다. 그 무예였던 검무가 궁중의 춤이 되어 검기무(劍器舞)가 되었고 다시 검기무가 교방과 권번에 전수되어, 진주검무, 밀양검무, 통영검무, 호남검무 등의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검무가 되었다. 한편 고대 제천의식이나 굿판에서 칼은 악귀와 재액을 베어내는 영적인 무기였다. 제사장이나 무당이 칼을 들고 춤을 추며 벽사진경(辟邪進慶), 액운을 쫓고 복을 부르던 주술적 의식이 굿청의 예술로 발전한 것이 무당 칼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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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 〈검무랑〉, 국립정동극장 제공 ⓒ옥상훈 |
신미경이 검무를 추게 된 것은 스승인 ‘이매방(1927~2015)’의 ‘장검무(長劍舞)’를 접한 것이 계기였다. 이매방은 1940년대 누나가 체류하던 북경을 방문했다. 그때 십대 초중반의 청소년이었던 그는 그곳에서 전설적인 경극(京劇) 배우이자 무용가인 ‘매란방((梅蘭芳, 메이란팡, 1894~1961)’의 춤을 보고 매료되었다. 이매방은 본명이 이규태였건만 매란방(梅蘭芳)의 ‘매’ 자와 ‘방’ 자를 따서 이매방(李梅芳)이라고 이름 짓고 한평생 사용했다. 그가 당시 매란방으로부터 얼마나 크게 예술적 감흥을 받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매란방은 경극에서 남성으로 여성 배역을 맡는 ‘단(旦)’ 역할의 일인자였다. 아마도 이매방은 경극 ‘패왕별희’에서 매란방이 초패왕 항우 앞에서 연인인 ‘우희’로 분장하고 추는 장검, 쌍검무를 보았으리라. 그 후, 귀국한 이매방은 1950년대 ‘장검무’를 창작, 안무하여 발표했다.
신미경은 1994년 이매방 문하로 들어가, 1999년 살풀이 등을 배우던 중 ‘장검무’를 접한다. 하지만 그 후 시간이 지나며 그녀는 스승과는 전혀 다른 검무의 세계를 펼친다. 신미경의 검무는 중극 경극적인 요소나 일본 검도의 느낌 없이 철저히 한국적이다. 스승의 검무가 무예보다 춤에 가까웠다면 신미경의 검무는 춤이면서 무예적 본성에 가까운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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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 〈검무랑〉, 신미경 제공 |
검무는 무예인 검술에서 비롯되었다. 일본 검술은 칼자루를 두 손으로 잡는 쌍수검(雙手劒)이다. 전후로 전진, 후퇴를 하며 일격에 내려치는 격법(擊法)이다. 중국은 한 팔을 사용하는 편수검(片手劒)이 주류이며 자법(刺法) 위주라고 한다. 허나, 여러 이민족과 접촉이 이루어져 검술이 다양하고 아크로바틱한 면도 있다. 조선의 검술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두 손으로 칼자루를 맞잡는 쌍수검이다. 명나라 말기, 조선의 무기 체계를 조사하던 병법학자 모원의는 당시 “중국에서는 맥이 끊겼던 장검을 두 손으로 맞잡는 고대 양손 검법의 원형이 조선에 고스란히 남아 있음”을 그의 저서 〈무비지(武備志)〉에 기록하고 있다. 더하여 한국은 전후좌우로 변화 있는 동작과 회전을 한다.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에 물에 씻어내는 듯 훑어 베는 칼사위의 검술이다. 그러하기에 세법(洗法)이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각각 자기 신체와 자국 실정에 맞게 검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한국인의 DNA를 갖고 있는 신미경의 검무는 조선 세법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 그녀는 〈검무랑〉의 처음을 ‘국자랑기천’의 연결 권법 품새로 시작한다. 이어 칼자루를 두 손으로 잡는 한국적인 쌍수검 기본의 칼사위인 국자랑기천의 초발검식을 따른 후, 창작 동작으로 연결한다. 후반으로 가면서 두 자루의 칼을 각각 한 손에 잡는 쌍검무(雙劍舞)가 된다.
궁중 검기무를 비롯하여 교방 검무들은 양손에 각각 단검 한 자루씩 쌍검을 잡는다. 칼자루와 칼날 사이에 고리가 연결되어 있어, 손목을 돌릴 때마다 딸각딸각 소리를 내며 칼이 꺾이는 안전한 절검(折劍)을 사용한다. 왕이나 참석한 사람들에게 대한 위해를 예방하기 위함에서 연유했으리라. 하지만 신미경은 긴 칼인 장검을 사용한다. 그래서 장쾌한 느낌이 든다. 장검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규모 있는 칼사위와 동작을 구사하는 것은 단검 사용에 비해 훨씬 어렵다.
신미경은 2002년부터 전통산중무예를 수련했다. 2007년 이래, 김은희(밀양검무보존회 회장)의 권유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의 제2권 ‘쌍검 편’에 실린 ‘쌍검총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검을 쥐고 적을 경계하는 시작 준비 자세인 지검대적세(持劍對賊勢), 각각 오른쪽, 왼쪽을 향해 적의 공격을 막는 자세인 향우방적세(向右防賊勢)와 향좌방적세(向左防賊勢), 몸 둘레로 칼날을 꽃잎처럼 다섯 번 흩날리며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수행하는 오화전신세(五花纏身勢), 맹금이 날개를 접듯이 칼을 품에 거두는 지조염익세(摯鳥斂翼勢) 등이 그녀 나름의 전통창작검무를 구상하는데 응용되었다. 2010년대 초부터는 무예의 근본과 원리를 추구하는 바른몸짓수련원에서 수련했다.
드디어 2012년, 전통창작검무의 대표 작품인 〈검무랑〉이 완성되어 그해 4월 12일 ‘김영희춤연구소’ 주최로 ‘한국문화의집’(KOUS, 서울 대치동)에서 열린 ‘검무전 1’에서 초연되었다. 그 외에도 〈계월향〉, 〈하독검수천무〉, 〈무예춤〉, 〈개벽의 들녘〉 등의 창작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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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 〈검무랑〉, 신미경 제공 |
신미경의 검무에는 몸을 굽히고 펴는 굴신(屈伸) 동작, 한국 전통춤 특유의 답지저앙이 들어있다. 또한 전통춤, 역동적 회전 미학의 정수인 연풍대를 춘다. 무예도보통지에는 번신(翻身, 飜身)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번신은 한자 뜻 그대로, 날렵하게 몸 전체를 180도에서 360도 돌면서 자세를 전환하는 무예 동작이다. 상대의 측면을 공격하거나 사방 특히 등 뒤의 적을 회전하여 칼을 내려침으로써 제압하는 동작이다. 그 번식의 회전이 전통춤에서는 연풍대에 해당한다. 검술의 번신이 치명적인 실전 기술이라면 검무의 연풍대는 아름다운 시각적 궤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칼이란 차갑고 서슬 퍼런 무기이다. 검무에는 무예의 엄숙함과 전장의 비장함이 있기 마련이다. 신미경의 검무에선 옛 화랑의 기상 같은 것이 느껴진다. 한편 그녀의 검무에는 유려미와 교태미가 어려 있다. 여성 특유의 친근함과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반전(反轉)의 미학이다. 〈검무랑〉에선 여성 검객과 여성 춤꾼의 이미지가 오버랩된다.
신미경은, 춤과 무예는 끝없는 수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있어 춤의 몸짓, 무예의 몸짓은 역설적으로 몸을 비워내고 몸을 가장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사용하는 행위이다. 그 원리를 탐구하는 과정과 수련을 거쳐 몸과 검을 빌어 춤으로 구현된 결과물이 검무다.
한국은 자연환경과 더불어 건축뿐 아니라 춤도 선(線)의 미학, 자연스런 곡선의 미학이다. 한국 춤의 특징은 ‘선묘’라고도 할 수 있다. 〈검무랑〉에선 춤과 검선(劍線)이 자연스레 곡선을 이루곤 한다. 검무랑은 장검을 사용하는 쌍검무로서 신미경이 창작한 전통검무가 되었다. 그녀의 작(作)이랄까, 제(制)가 된 것이다. 시쳇말로 그녀 고유의 브랜드인 것이다.
음악은 태평소와 오채질굿의 타악 위주로 유인상이 만들었다. 의상은 옛 군복의 철릭을 토대로 재창작했다.
수운 최제우가 추었다는 검결(劍訣) 칼춤. 실체는 사라지고 노래 가사만이 남았다. “5만 년 만에 때가 이르러, 용천검 날랜 칼로 나섰으니 칼 노래, 칼춤으로 해와 달을 희롱하고 우주 만물을 뒤덮을 새, 어느 누군들 당할 자가 있겠는가?”
동학농민전쟁 때, 비록 일본군과의 압도적인 화력 차이로 동학군이 참패하기는 했지만 1894년 12월 장흥 석대들과 옥산 전투는 남도 최대의 최후 항전이었다. 이때 말을 달리며 선두에서 농민군을 지휘했다던 여장군 이소사. 〈검무랑〉을 보며 그 옛날 ‘이소사’가 연상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
* 2026년 4월 29일~5월 15일 매주 수, 금, 요일에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전통춤 37편이 무대에 오른 〈득무의 순간, 세실풍류〉가 열렸다. 필자는 5월 15일(금) 신미경의 〈검무랑〉을 관람했다.
이만주
춤비평가. 시인. 사진작가. 무역업, 건설업 등 여러 직업에 종사했고 ‘터키국영항공 한국 CEO’를 지냈다. 여행작가로 많은 나라를 여행하며 글을 썼고, 사진을 찍었다. 사회성 짙고 문명비평적인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과 「삼겹살 애가」, 「괴물의 초상」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