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 춤의 생성미학을 찾아 나선 이들에게”
- 제32회 신인춤 제전에 부쳐
무엇이 춤추게 하는가. 살아있음입니다.
그 살아있음을 가능케 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춤은 일상의 동작이 율동으로 고양된 것이며,
결국 한 단계 높아진 삶의 형식입니다.
곧 춤은 삶의 근원자리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의 분출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춤의 생성론적 의미를 마주합니다.
“춤추지 않고서야 어찌 삶의 길을 알리요.”
이 물음은 우리를 다시 삶의 근원으로 돌려보냅니다.
춤은 살아 생동하는 것이기에
언제나 죽음과 억압에 맞서 왔습니다.
춤은 그 자체로 적극적이며, 쟁투적인 삶입니다.
억압 속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
몸이 멈출 때까지 삶을 흔들었던 그 ‘죽음의 춤’을 기억합니다.
춤출 수 없게 하는 죽임과 억압에 맞서는 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춤의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 젊고 푸른 춤꾼들 또한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우리춤의 생성미학을 찾아나선 것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칼춤처럼 몸을 세웁니다.
살(煞)을 끊어내고
삶을 가로막는 기운을 베어내며 자기 몸을 투쟁의 현장으로 삼습니다.
살풀이의 현장에서 솟아오르는 몸과 마음의 극점이 신명입니다.
역신을 물리치고 그조차 감복시킨 처용의 몸짓이야말로 신명의 베풂과 나눔입니다.
젊고 푸른 춤꾼
한마당은 바로 살풀이를 통한 신명의 현장입니다.
완성의 춤이 아니라 생성하는 춤,
스스로 길을 여는 몸들이 이곳에서 서로를 흔들어 깨웁니다.
죽임에 맞서고
살을 풀어내고 마침내 신명을 베풉니다.
- 2026년 봄날 부산에서 생명이 스스로를 일으키는 자리에서
1995년 어느 봄날 부산에서 올린 젊고 푸른 춤꾼한마당 〈신인춤제전〉이 올해로 32회 째를 맞았다. 나이 서른이 훌쩍 넘었으니 줏대가 서고 제 갈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나이다. 과연 그러한가.
나는 예술감독으로서 출연자 및 관계자들에게 위와 같은 격려사를 보냈다.
올해도 신인춤제전 출신의 언니들 작품 3편을 더하여 20편이 출품되었다.
제각기의 문제의식을 지니고, 겨울의 맵찬 추위를 겪어낸 봄나물처럼, 때로는 이파리도 나기 전 망울부터 터지는 봄꽃처럼 작품마다 싱긋한 봄맛을 감촉케 하였다.
어쩌면 ‘푸른 고뇌’의 봄 언덕을 어기차게 기어오른 끝에 산등성이에서 마주치는 빗물 젖은 봄바람인 듯하였다. 이들은 젊고 푸른 고뇌 맞이의 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밝고 즐거운 춤 대신 짙푸른 고뇌로 빠뜨렸는가?
그러하자, 신인춤 제전 초기에 총괄 기획을 맡았던 춤비평가 최찬영 선생이 또 하나의 격려사를 보내왔다. 여기에 본문 그대로를 싣는다.
젊고 푸른 춤꾼들에게
최찬열_춤비평가
올해도 어김없이 ‘젊고푸른춤꾼한마당’의 막은 올랐다. 해마다 무대는 열렸다가 닫히고, 춤꾼들은 다시 일상으로 흩어진다. 그런데도 춤판은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다음 해를 준비하고, 그렇게 새로운 몸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 반복이 쌓여 한 도시의 감각이 되고, 한 세대의 기억이 된다. 젊고푸른춤꾼한마당은 바로 그 누적의 자리이며, 무엇보다 “젊은 춤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를 묻고 응원해 온 절실한 마음의 현장이다. 올해 춤판을 함께 만드는 춤꾼들, 관객들, 스태프와 동료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실존하는 몸은 ‘지금-여기’에 거주하는 몸이다. 몸은 언제나 이미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정신은 종종 세계를 초월하지만, 몸은 자기가 속한 세계를 벗어난 채 존재할 수 없다. 곧 몸은 필연적으로 장소성을 품고 있으며, 몸짓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몸이 속한 ‘지금-여기’가 드러난다. 우리가 덧뵈기춤을 보며 어렵지 않게 지역의 정서를 읽어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춤은 한 몸이 살아온 로컬과 그 안에서 겪어 온 삶의 굴곡들, 노동과 일상, 말투와 기후, 습관과 공동체의 기억을 움직임으로 가시화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젊은 춤꾼의 몸은 여느 몸보다 예민하게 세상을 포착하고, 그것을 감각의 형태로 조직해 보이는 능력이 탁월하다.
그러나 ‘지금-여기’를 떠난 몸은 없지만, 포획된 몸은 있다. 아니, 우리 대부분의 몸은 이미 포획되어 있다. 일상을 편리하고 유용하게 살도록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기존의 가치와 규범이 몸에 새겨지고, 이데올로기와 담론, 자본과 권력은 그 새김을 강화하고 재생산한다. 그 결과 몸은 일정한 코드로 정렬되고, 경험의 질은 얕아지고 폭은 줄어든다. 익숙한 자극만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이는 축소된 감각의 몸, 그것이 바로 포획된 몸이다.
그러므로 오늘 젊은 춤꾼에게 요긴한 것은, 몸의 차원에서 작동하는 감성의 분할에 저항하고, 이질적인 몸짓-감각을 만들어 내는 춤 실천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청년 춤’은 단지 나이의 범주가 아니라, 춤과 몸이 자기 자신을 갱신하는 방식이 된다. 청년 춤이란 기존의 제도와 관습, 담론과 메소드, 그리고 굳어진 춤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며 차이를 생산하는 춤이다. 기존 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결핍과 맹점을 정확히 짚고 진단하여, 다른 춤적 주체화의 유형을 제시하고 입증하는 춤이다.
다만, 이러한 역할과 책임이 막중함에도 부산의 청년 춤이 처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열약하다. 부산 춤의 위기가 거론되는 까닭은 결국 ‘생산의 토대’가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 대학교에서 무용 전공 학과가 사라지며, 청년 춤꾼을 배출해 온 시스템이 크게 흔들렸다. 청년 춤을 다시 살려 내지 못한다면 부산 춤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부산이 춤을 생산하기보다 소비만 하는 도시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년 춤을 지지하고 양성하는 구체적 대책과 지속 가능한 생태계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그러하기에 올해의 춤판은, 단지 한 해의 행사가 아니라 부산 춤의 내일을 다시 묻는, 질문의 장이기도 하다. 이 무대에서 우리는 “지금-여기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당부를 서로에게 건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로컬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다시 로컬로” 감각의 순환을 열어젖히라는 제안을, 각자의 몸으로 시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춤판이 관객에게는 오늘의 춤을 읽는 단서가 되고, 춤꾼들에게는 다음을 준비하는 작은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젊고푸른춤꾼한마당을 꾸준히 세워 온 채희완 선생의 오랜 수고와 헌신에 깊이 경의를 표한다. 그 누적의 힘 위에서, 올해 이 자리에서의 만남이 부산 춤 생태계의 내일을 다시 세우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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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 〈내가 바라는 것은,〉, 박소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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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영 〈마주할 용기〉, 정수림 〈PLAY 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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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창대 젖은 비탈길 위에서〉, 박지원 〈삶, 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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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달리 〈호문클루스〉, 박광호 〈Melting Bod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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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빈 〈Connecting〉, 박지현 〈빈 ‘호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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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완벽히 충분한〉, 신동은 〈Fra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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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연 〈재구성된 궤적〉, 배은채 〈비 온다. 창문 닫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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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진·안소영 〈레밍〉, 최진수 〈소각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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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울 〈21g〉, 허경미 〈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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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리 〈물렁할지라도(桃)〉, 이하영 〈0218〉 |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 〈(사)민족미학연구소〉 소장, 〈부마항쟁기념사업회〉 이사, 〈창작탈춤패 지기금지〉 대표를 맡고 있다. 저서로 『공동체의 춤 신명의 춤』, 『한국의 민중극』(엮음), 『탈춤』, 『한국춤의 정신은 무엇인가』(엮음), 『춤 탈 마당 몸 미학 공부집』(엮음), 『지극한 기운이 이곳에 이르렀으니』 등을 펴냈고, 그밖에 춤, 탈춤, 마당극, 민족미학에 관련된 논문과 춤 비평문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