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칼럼
작법무를 재해석한 이애주의 1984년 ‘나눔굿’
김영희_전통춤이론가

전통춤들은 근대 이전 전통의 시대에 궁중과 민간을 아울러 각 절기나 인생의 주요 통과의례에서 추어졌다. 이 전통춤들을 포함한 전통공연예술들이 1960년대부터 꾸준히 발굴연구, 복원되면서 전통춤의 풍성한 자산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 주제의식이나 구조, 내용이나 형식 등은 21세기 현재 다양한 공연예술의 원천으로서 상상력을 끝없이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서 근래 몇 년간 불교의식무인 작법무(作法舞)가 여러 단체에 의해 원형대로 또는 다른 춤들과 결합하여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으니 반갑고 환영할 일이다. 사찰에서 행사나 재(齋)가 있으면 스님들이 바라춤, 착복춤(나비춤), 법고무 등을 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절 밖에서는 이 춤들을 감상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춤계에서 불교의식무를 일찍이 무대에 올린 공연이 있었으니, 1984년 4월 29, 30일에 국립극장 실험무대에서 벌린 ‘나눔굿’이다. 고 이애주(1947~2021)를 중심으로 창단한 ‘춤패 신’의 창립공연이었고, 이애주 선생은 1982년 가을부터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의 전임강사가 된 후 1984년에 ‘춤패 신’을 결성한 것이다. ‘춤패 신’이라는 단체 이름에 대해서 ‘신’은 ‘신난다’의 ‘신’이며, 민중이 발에 신는 ‘신’이며, 곧 신명(神明)이고 바로 생명(生命)의 우리말이라고 설명했다. 당시는 한국학에 대한 높은 관심과 전통에서 민중적 미의식에 대한 집중적인 발견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이를 학문화하고, 실천하는 활동이 확산되고 있을 즈음이었다. 민중문화운동의 전개가 대표적인데, 이애주 선생은 그러한 지성의 흐름 복판에 있었기에 전통공연예술의 내용과 형식을 통해 당대의 문제의식을 춤 작품으로 담아내고자 했던 것이다.



춤패 신 ‘나눔굿’ 포스터



‘나눔굿’이라는 공연 제목과 “굿판에 오셔서 밥과 떡과 술을 나누어 먹읍시다.”라는 작품 의도에서도 선연히 드러나듯이, 독재나 독식이 아닌 함께 나누자는 문제의식을 불교 의식인 식당작법(食堂作法)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즉 식당작법을 해석하여 재구성한 창작춤판으로서, 새 생명의 밥을 중생 자신들에게 공동체적으로 공양한다는 의도를 통해 식당작법의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이애주 선생은 스승이신 한영숙(1920~1989)의 ‘법열곡’(1971) 공연 이후 작법무를 지속적으로 학습했다고 한다. 신촌에 있는 봉원사에서 국가무형문화재 범패의 예능보유자이셨던 송암(1911~2000) 스님으로부터 작법무의 전 과정을 배우고, 이후에도 여러 범패 스님들과 불교 행사에서 지속적으로 교류하였다. 또 이 공연을 위해 출연자들에게 작법무를 학습하게 했다. 팜플렛에는 식당작법에 대해 7페이지에 걸쳐 그 과정을 설명했으며, ‘나눔굿’의 주제가인 〈나누어 먹세〉의 가사도 실려있다.



춤패 신 ‘나눔굿’ ⓒ이애주문화재단



‘나눔굿’의 무대는 원형무대로, 한 면에는 불상과 탱화, 공연 기와 단체 기를 배치하고, 관객은 3면에 둘러 앉았다. 작품의 골격은 식당작법의 주제의식을 의례 속에서 작법무들을 배치하고, 한편으로는 식(食) 즉 밥을 둘러싼 왜곡된 군상들을 마당극으로 풀어냈고, 구성은 ‘판열음’, ‘첫째 마당 작법(作法)’, ‘둘째 마당 아수라 밥판’, ‘셋째마당 밥그릇 살풀이’, ‘대중공양’으의 다섯 마당이다. 각 마당에 대한 설명은 지금 보아도 손색이 없고, 각 장면에 담긴 메타포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각 마당의 설명과 주요 장면은 다음과 같다.

‘판열음’
  솥뚜껑, 밥뚜껑, 주걱, 국자 냄비, 깡통 등 온갖 식기를 두드려 풍물을 잡은 가운데 거대한 밥그릇이 모셔지고 한바탕 터벌림을 한다. 난장 튼 속에 벌어진 연꽃 위 부처 현신하듯 그릇 속에서 밥이 나와 밥춤을 추고.


꽹가리 치배가 앞장서고, 냄비와 뚜껑, 주걱 등 식기들을 두드리며 등장한 출연진들이 판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둘러앉는다. 커다란 밥그릇이 가마에 올려져 함께 등장했는데, 무대 중앙에 커다란 밥그릇이 놓이면, 그 속에 있던 이애주 선생이 나비춤 의상을 갖추고 고깔 대신 작은 밥그릇을 머리에 이고 밥춤을 춘다. 식당작법 뿐만이 아니라 이 작품의 주요 소재이자 테마인 ‘밥’을 대중 앞에 화두로 꺼낸 것이다. 이어서 각설이 3인이 밥 타령을 하였다.

‘첫째마당 작법(作法)’
  가운데 괘불을 모시고 연등과 초, 향을 올려 그윽한 속에 짓소리, 홋소리, 범패에 맞추어 바라춤, 나비춤, 타주 등 전통불교의례가 펼쳐진다. 8각의 기둥 위에 밥그릇이 놓여지자 정견(正見),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 등 팔정도(八正道)가 아뢰어지고 이에 빗기어 세속 8정도가 엇물린다.


불상이 놓인 불전(佛殿)에서 여성 춤꾼 4인이 회색 장삼에 고깔을 쓰고 바라춤을 추고, 남성 춤꾼 6인이 나비춤을 춘다. 팔정도가 놓여진 후에는 징 소리와 법고 소리가 울리는 중에 팔정도 과정이 진행된다. 작법무를 모두 마친 후에는 각설이들이 바가지를 업어놓고 팔정도를 흉내내며 세태를 풍자하고 조롱한다.

‘둘째마당 아수라 밥판’
  거대한 밥그릇이 연등처럼 허공에 걸리면 세속 8정도의 이모저모가 풍경처럼 바람처럼 스쳐간다. 밥그릇을 향한 아귀다툼이 아수라밥판으로 치닫고는 마지막 먹이의 사슬이 피라밋 형상을 이루었다가 이윽고 허물어진다.


댄서 3인의 유흥춤이 추어지고 한편에서는 노동자 농민의 고된 춤이 추어진다. 캬바레의 사교춤이 이어지고, 스포츠 중계와 사이비 종교에 함몰된 대중들의 모습, 스트립댄스와 기동타격대의 장면들로 아수라장이 벌어지고. 그리고 다시 각설이들이 등장하여 사설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쭈구려 앉아 똥싸기를 한다.

‘셋째마당 밥그릇 살풀이’
   찌들고 눌린 몸이 던져져 한 묶음 회오리되자 번개 속 불꽃인 듯 진흙창 속 연꽃인 듯 문득 밥그릇이 강림한다. 고해 속 깨달음이 밥그릇 나눔으로 드러나고, 생명의 단초이자 만유인 밥, 이 밥에 얽혀 설킨 살이 밥그릇춤, 밥주걱춤, 밥뚜껑바라춤으로 풀려난다. 갖은 밥그릇 풍물 속에 밥그릇 살풀이가 밥그릇 신명춤으로 출렁이고.


둘째 마당에서 각종 군상의 아수라 판을 보여준 후 이애주 선생이 치마저고리에 누더기 장삼을 입고 등장하여 춤추었다. 누더기 장삼을 벗어놓은 후에는 판을 일으키는 춤을 춘다. 남녀 춤꾼들이 군무로 합세하고, 그 사이에 큰 밥그릇이 등장했다. 그 속에서 밥그릇들을 꺼내 빠짐없이 나눈 후에는 춤꾼 전체가 밥그릇춤을 추고, 이어서 4인의 표주박춤, 솥뚜껑바라춤, 주걱춤 등도 추고, 각설이도 등장하여 다같이 〈나누어 먹세〉를 노래 부른다.

‘대중공양’
   떨거지를 앞세우고 모인 사람 모두가 어우러져 열린 판 속으로 삼삼오오 열을 지어 탑돌이 하듯 진풀이 하듯 “나누어 먹세, 나누어 먹세, 나누어 먹으면 하나 되리.” 밥노래와 함께 밥춤을 추면서 밥을 나누어 공양한다. 한 자리한 잡귀 잡신도 풀어먹이고, 어울려 나누어 먹음이 바로 깨달음인 것을, 몸 속에 모신 밥이 부처인 것을, 모신 밥의 활동이 일이요, 예불인 것을, 바로 그것이 춤임을!


이윽고 ‘나눔굿’의 절정으로 밥춤을 추며 자연스럽게 관객과 떡을 나누고, 춤과 신명을 나누고, 미소를 나누며 대동놀이로 넘어갔다. 우리의 굿이, 우리의 전통공연 예술이, 우리의 춤이 그래왔듯 식당작법의 의미와 틀거리를 확대하여 1980년대 컨템포러리를 춤 작품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공연에는 당시 민중문화를 지향했던 마당극, 민요, 민중미술 등의 예술가들이 함께 참여했다.

‘나눔굿’ 공연을 마치고 『마당』이라는 잡지의 기자는 이애주를 인터뷰하며, 춤이 죽음의 질서로부터 중생을 구제할 수 있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대해 이애주 선생은 모든 굿이 춤을 매개로 해서 이루어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춤을 통해서 악귀를 물리치고 춤을 빌어서 복을 불러들이고자 한다고 했다. 그런데 춤이 공동체 전체, 생명계 전체를 위해 죽음의 질서를 물리치고 생명의 일원성을 회복하고자 할 때에는 그것은 중생 구제의 강력한 매개체가 된다고 했다. 그리고 춤의 더 큰 기능에 비하면 이는 부차적인 것이라 했다. 춤은 그 자체로서 근원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으며, 삶의 가장 고양된 표현인 신명 그 자체라고 했다. 온 중생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살아가되 신명나게, 어깨춤이 절로 나도록 사는 것이다. 그렇게 삶을 신명나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가꾼 것을 앗기지 않고 고루 나누어 먹고 배가 불러야 신명이 날 것이니, 나눔굿이란 바로 그런 것이라고 했다. (윤구병 글 
· 윤광준 사진, 「한국춤의 새 가능성 : 이애주의 ‘나눔굿’ 밥과 춤과 굿의 축제」, 『마당』 통권34, 마당사, 1984.)


이애주 선생은 무당의 굿이나, 사찰에서 행하는 식당작법과 같은 불교의식무, 탈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춤, 승무나 살풀이춤을 전개시키는 서사 등을 통해 춤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해 일찍부터 인식했다. 또한 무수히 추어지는 유명(有名)무명(無名)의 춤들 속에서 춤이 갖는 원초적인 생명성을 살리는 일을 자임하며 춤추었다고 하겠다.

김영희

전통춤이론가. 김영희춤연구소 소장. 역사학과 무용학을 전공했고, 근대 기생의 활동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춤의 현상에 관심을 갖고 있다.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 『전통춤평론집 춤풍경』등을 발간했고, 『한국춤통사』,  『검무 연구』를 공동저술했다. 전통춤의 다양성과 현장성을 중시하며, ‘검무전(劍舞展)I~IV’시리즈를 기획했고, '소고小鼓 놀음'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

2026. 5.
사진제공_이애주문화재단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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