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무용가로서 춤을 대상으로 하는 TV 프로그램을 무시하기는 힘들다. 최근에 채널을 돌릴 때마다 마주치는 땀 흘리는 여자들의 얼굴이 숨겨 놓은 거울 속에 있는 나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아서 외면해 오다가 드디어 채널을 고정하고 말았다. Mnet에서 하는 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흥미를 느끼며 보기 시작하는 월드 오브 스우파(World of Sreet Womam Fighter)는 2021년에 방영된 여성 댄서 크루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세 번째 시즌으로 전 세계 최정상급 여성 댄서들이 벌리는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국가 대항전으로 판을 넓힌 만큼 역대급 춤 전쟁이 펼쳐진단다.
이 프로그램이 전 세계 센 춤꾼 언니들의 자존심을 건 글로벌 춤 싸움-싸움은 언제나 흥미로운 구경거리-으로 발전된 것을 지나치기 어렵다. 이들이 글로벌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이라는 두 축을 가진 K-pop의 잔치에서 개인의 명예와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필사적으로 싸우는 것을 보면서 재미를 넘은 호기심이 발동된다. 특히 한 세기 전에 식민 역사의 주역이었던 일본인들이 한국으로 와서 춤으로 대결하는 것을 보는 것은 현재 동경과 제주를 오가며 살고 있는 나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총 6팀 중에 일본팀이 둘이나 있는 것에 놀랐다. 동경과 오사카 지역을 대표하는 두 단체의 다른 성격을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우수한 리더가 자기에게서 배운 학생들과 만든 동경팀은 일사불란하고 호흡이 잘 맞는다. 그에 비해 제각각 독립적으로 활동하다가 뭉친 오사카팀은 그린베레적이다. 다소 한국 내셔널리즘적인 뉘앙스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었는데 세미파이널에서 오사카팀이 최종까지 남았고 한국팀이 탈락한 것을 보니 그래도 이 대회가 홈그라운드 주최의 관대함과 공정함을 지키고 있다는 신뢰감을 준다. 일단 국제대회를 개최할 자격이 있다.
그런데 어느새 남녀칠세부동석 시대로 돌아왔나? 여자들로만 이루어진 춤판은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그룹의 춤판을 보는 것만큼이나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여자들은 강하고 공격적이고 억세게, 남자들은 곱고 부드럽게를 지향하는 세상으로 변한 것에 어쩔 수 없이 수긍하면서도 석연치 않다.
장 고당 단원 시절 ⓒ남정호 |
오래전에 만났던 프랑스 안무가 장 고당(Jean Gaudin)이 안무한 무용 마라톤적 작품 〈껌뻑거리는 속눈썹〉을 떠올리게 되었다. 이 작품은 너무 지쳐서 눈꺼풀이 껌벅거릴 정도까지 일을 하여야 했던 대공황기의 미국 노동자들을 지칠 때까지 춤을 추어야 하는 무용수에 대비시킨 작품이다. 까다롭기로 정평있었던 이순열 평론가는 당시에 이 춤 대회의 끝부분을 도덕경 15장으로 마무리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장 고당은 2000년도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의 창작과 초빙교수로 와서 이 작품을 부활시켜 학생들과 작업을 하였지. 어떤 인연인가? 그러니까 나는 프랑스 유학 말기에 장 고당 무용단에서 무용수로 있었다. 한 무용수가 피나 바우쉬 무용단으로 가는 바람에 대역이 필요하다는 오디션 공고를 보고 응모했는데 받아들여진 것이다. 사실 피나에게 간 무용수 프레드릭은 가끔 피터 고스(Peter Goss)의 수업에 들어오기도 했는데 유연하고 민첩하게 움직이는 기교가 아주 뛰어난 무용수였다. 볼륨 있는 몸집의 소유자인 그녀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데다가 다른 움직임의 성질을 가진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간 것은 전적으로 장의 이국적 취향 때문이라고 소피가 나중에 빈정대었던가.
내가 그전에 시도하였던 몇 개의 오디션에서는 공공연하게 팔리기를 기다리는 장터 상품이 되는 치욕스런 입장이었다면 장의 개별적 오디션은 한 사람의 예술가로 대우받는 시간이었구나. 어쨌든 이 경험이 나에게 80년대 초기 프랑스 직업무용단의 세계를 맛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은 오디션을 치렀는가. 춤을 시작하면서 실력이 늘려면 콩쿠르에 나가야 하고 콩쿠르에 나가려면 작품을 받아야 하고 작품을 받으려면 엄청난 액수의 작품비를 바쳐야 하는 당시 무용계의 풍토를 용케도 피해 다녔다. 매달 내는 교습비에도 눈치를 보게 되는 집의 경제 사정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막연하게나마 그런 콩쿠르가 실력을 정확하게 선별해 주는 제도가 아니라는 감쯤은 잡았다고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 35년간 이 땅의 대학에서 춤을 가르치는 처지를 등에 업고 매년 신입생을 뽑을 때마다 맞닥뜨리는 심사의 불편함을 감수하였지.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공지영이 말했듯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하수 격인 콩쿠르에 심리적 거리를 가지고 이런 것들이 비인간적, 비예술적으로 경쟁을 부추기는 것으로 간주하고 의견이 받아들여질 상황이 될 때마다 노골적이나 간접적으로 저지하는 입장을 취하였지만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프랑스 누벨당스의 꽃을 피운 바뇰레 안무대회나 일본의 요코하마 안무대회는 예외적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참관하였는데 무용을 기술로 대하지 않고 창의적 접근을 하는 것에 공감했던 때문이다.
결국 나의 작품으로 나의 생각을 드러낼 수밖에. 그러니까 국립현대무용단에서 2020년 ‘이것은 유희가 아니다’를 탄생시켰다. 유희는 규칙이 있는 게임인데 규칙을 무시하고 반칙이 난무하는 세상에 대한 불평과 우려를 다분히 안고 있었던 작품이었지. 14명의 무용수로 시작하여 하나씩 탈락하고 마지막에 한 명이 남는 이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동안 가져왔던 경쟁의 순간들에 대한 쓰라린 기억을 어쩔 수 없이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함께 한 무용수들에게도 아마 나의 이런 에너지가 전달되었는지 안무가 진행되면서 가끔 살벌한 긴장감이 도는 부정적 기운이 감돌기도. 초연하고 2년 후에 미국 워싱턴과 멕시코에서 작품을 재개하는 중에 무용수의 부상 등으로 인하여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0명과 함께 드디어 작품이 완성되었다는 감을 받았구나.
이제까지 국내의 대중매체에서 춤을 다룬 프로그램 중에서는 2013년에 있은 댄싱9이 신선했던 것 같다. 그랑프리를 움켜쥔 김설진은 연구실 문을 두드려 방학 동안에 읽을 책을 빌려 가기도 하는 진지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다. 1학년 때 전국 무용콩쿠르에 가서 대상을 타서 군 면제를 받는가 하면 졸업 후에는 벨기에에 있는 피핑톰무용단의 무용수로 발탁되었지. 타고 난 멋진 무용수!
춤을 잘 추는 댄서가 좋은 작품을 만드는 안무가가 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 만큼 어렵다고? 그래도 본보기는 있잖니. 커닝험도, 피나도 세르카위도 모두 훌륭한 댄서였고 때로는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여 다른 무용수들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춤 세계를 드러내었잖아. 나는 설진이 귀국 후에 대중매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에 처음에는 박수를 쳐 주지 못했다. 자신의 춤을 창작하거나 표현하는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예술 작업으로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더디고 고통스러운 길을 걷기를 기대하였던가. 경험은 시간이 걸린다. 그의 재능은 기다리기에는 넘쳤다. 상금으로 연습실을 가진다는 것에 박수를 보냈다.
중국에서도 2019년과 2020년 TV 춤 경연대회에서 1위로 꼽히는 댄스 스매쉬(Dance Smash China) 프로그램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의 ‘그래 너도 춤 출수 있다고 생각해?(So, You Think You Can Dance?)와 유사하지만, 참가자들이 전부 전문가들로 구성되었는데 그 덕에 출연한 중국의 모던 댄서들은 팝 스타처럼 수백만의 팔로워를 거느리면서 유명인이 되고 있다고 하니 춤이 이런 식으로 변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전 세계적 현상이구나. 행여 이런 대회에서 순위에 들지 않았다고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문화예술은 금메달 경쟁이 아니다’고 말하면서 만들었다는 김민기의 ‘봉우리’를 꼭 들어보시길.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국경을 넘어 혼합되고 새로운 콘텐츠로 재창조되는 K-컬쳐의 주역으로 대중매체에서 춤을 깊숙이 들여온 것은 반가운 일이나 춤을 대하는 요즈음 세태의 얄팍한 감성을 부추기는 듯하여 쭉 반발심을 가져온 처지이다. 그런데 그간 애써 외면해 왔던 이런 프로그램을 이제서야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진화한 것인가 퇴화한 때문인가.
남정호
전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