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우리
2025년 5월의 〈읽고 추기 : 연극 무용〉 4회차, ‘자신만의 가면 퍼포먼스’ |
1. 무용 교육의 문제들
‘무용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은 여러 가지 문제와 만난다. 특히 무용 비전공자를 포함하는 일반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꾸린다 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일으키는 어려움과 만날 수 있다. 우선 그 프로그램은 이론을 교육할 것인지 또는 실기를 교육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다. ‘나는 무용수이기 때문에 실기 중심의 교육을 할 것이다’와 같은 결정은 이 사안을 평평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또는 ‘나는 무용 이론가이기 때문에 이론을 전달할 것이다’라는 판단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실기를 이론으로 교육할 수 있으며, 이론을 실기로 교육하는 교차의 가능성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많은 무용 교육이 ‘실기 교육은 실기로 이뤄져야 한다’거나 ‘이론 교육은 이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라는 암묵적 전제를 깔고 진행되고 있다. 이 전제를 드러내고 관점을 달리 가져본다면, 무용 교육에 대해 변화를 실제로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론을 교육한다고 결정했다면, 그 다음으로 생각해야 할 바는 보통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무용사나 무용에 관한 어떠한 담론들을 중심으로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이론을 교육하는 방식일 것이다. 프레젠테이션 / 세미나 / 발제 / 강독 / 토론 등은 이론을 교육의 현장에서 선택하고 전개되는 주된 방식들이다.
반대로 실기를 교육하기로 계획한다면 어떤 테크닉 또는 메소드를 전달할지 생각할 것이다. 교육자가 안무한 또는 체화한 춤의 동작들을 교육하는 방법도 있다. 예를 들어 스트릿 댄스 계열에서 ‘코레오그래피’라는 개념 하에 춤이 전달 및 교육되는 방식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실기의 기본적인 교육방식에 전복적인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자신이 추지 않은/출 수 없는 춤을 교육할 수 있을까?’1)
또한 꼭 생각해야하는 것은 계획 중인 프로그램이 어떤 결과물을 남기는지의 문제이다. 결과물 생산보다 ‘과정’을 강조하고 중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참여자들이 몸과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체험에 그친다면, 프로그램의 통합성은 의심받을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신체 감각을 깨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떠한 작품 또는 공연으로 결과를 남기기를 요구하는 경향 또한 있다. 더 넓게는 사회적인 상황에 대응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COVID-19 판데믹 상황에서와 같은 현장에서 만남이 이뤄질 수 없는 경우, 교육 현장은 큰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2024년 말처럼, 동시대의 많은 사회 정치적 사건과 사고가 일어날 때에도 무용 교육가는 이를 얼마나 교육 프로그램에 적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위와 같은 많은 문제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
〈읽고 추기〉 워크숍 홍보 이미지들 |
나는 2022년부터 초부터 〈읽고 추기〉 워크숍을 거의 매주 진행해오고 있다.2) 이 워크숍이 위에서 꺼낸 모든 문제와 질문들을 한꺼번에 모두 무사히 통과하는 이상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 완벽한 프로그램은 존재한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읽고 추기〉 워크숍이 형성되고 진행되면서, 여러 상황과 시점에서 한 번 쯤은 마주하고 고민했던 문제들이라고 말할 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에 반응하거나 해결책을 찾기도 하면서 워크숍의 형식을 꾸려왔다. 이 글에서는 〈읽고 추기〉를 소개하고, 소극적으로 말하면 특이하고 대차게 말하면 고유한, 이 워크숍의 형식과 진행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간단히 공유하고자 한다.
2. 〈읽고 추기〉 소개
일주일에 한번, 화요일 7시 30분이 되면 용산 해방촌 오거리 쪽에 위치한 ‘WAKE 스튜디오’에 7-12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인다. 10분 가량 먼저 와서 몸을 푸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몸을 풀기는 커녕 도착하자마자 엎드려서 단행본이나 노트북을 펼쳐 글을 계속 읽고 뭔가 메모를 하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 무용 전공자로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앞의 세 문장은 〈읽고 추기〉가 진행되는 날, 시작하기 직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왠지 무용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기 전에 마땅히 보여야 할 분위기가 보이지 않는 각자 할 일하기 바쁜 분위기이다. 시작 시간이 임박하여 약간의 ‘간식’을 한 손에 들고 진행자인 나도 스튜디오에 입장하여 옷을 갈아입고 창고에서 방석을 꺼내와 분주히 시작 준비를 마친다. “둥글게 앉아 함께 몸 풀겠습니다.” 나의 이 외침과 함께 그 날의 〈읽고 추기〉는 시작된다.
이세승 컨택즉흥 워크숍(대전, 2019년) |
“〈읽고 추기〉는 즉흥 움직임 워크숍과 이론적 세미나가 교차하는 프로그램이며, 무용 전공 여부에 상관없이 성인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읽고 추기〉 워크숍을 홍보하고 설명하는 글에 항상 첨부하는 문구이다. 이 한 문장이 워크숍의 형식을 잘 드러내준다고 생각한다. 〈읽고 추기〉의 매 회차는 대략 아래와 같이 진행된다.
A. 몸풀기 + 간단한 몸 활동
B. 읽은 것 나누기
C. 심화 움직임 활동
A와 C는 진행자의 가이드에 따라, 진행자가 준비하여 제안하는 몸 활동을 함께 해보게 된다. 중간의 B에서는 “텍스트 자료”의 정해져 있는 읽기 분량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한 명씩 돌아가며 발표하는 시간을 가진다.3) 그리고 나서 간단히 자유 토론을 나누기도 한다.4)
여기서 나를 포함한 모든 참가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은 읽은 내용에 대하여, 각자의 활동 기반이나 경험 등에서 비롯되는 자유로운 의견을 개진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소개하거나, 궁금증을 일으킨 부분과 함께 스스로 답을 찾아나간 주관적 사유의 과정을 나누어도 좋다. 때로는 동시대의 문화 및 예술을 참조로 삼아 텍스트와 연결해도 좋다. 다시 말해, 참여자 각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준비해서 또는 즉흥적으로 발표하면 된다.
〈읽고 추기〉 읽은 것 나누는 시간 (2024년 1월) |
함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인 만큼 참가자들에게 몇 가지 추가 제안을 아래와 같이 한다.
(1) 분량에 대하여, 한 사람당 5분 정도, 7-8분 이내로 '간략히' 준비한다. 이는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할 시 A4용지 한 쪽 정도 되는 적은 양이니, 발표 분량에 대하여 큰 부담 없는 분량이다.
(2) 가능하면 텍스트의 내용 전체의 요약은 지양한다. 되도록 참여자 개인이 텍스트 중 국소 부분들에 집중하여 참여하는 사람 각각이 주목하는 초점들이 컨택 그리고/또는 관계망을 이루면 좋겠다는 취지의 제안이다.
3. ‘추기’는 어디에
그렇다면 ‘읽고 추기’는 “보통의 ‘책 읽기 모임’과 무엇이 다른가?”와 같은 반문을 할 수 있다. 다르지 않다. 적당한 분량을 읽고 자신의 감상을 나눈다. 이것이 ‘책 모임’의 중심이 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분명히 다르다. ‘읽고 추기’는 ‘읽고 춘다’. 앞에서 설명한 A와 C의 순서, 즉 몸을 즉흥적으로 움직이고 춤을 추는 것이 이 프로그램을 일반적인 ‘책 읽기 모임’에서 더 특별한 모임으로 변화시켜준다고 생각한다.
〈읽고 추기〉 움직임 활동 전후의 피드백 세션 |
이 워크숍의 진행자로서 내가 맡은 일은 사람들이 읽은 것을 춤 추는 행위로 바꾸게끔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주일동안 참여자들과 똑같이 책의 정해진 분량을 읽고 고민을 한다. 또는 춤을 상상한다. 어떤 문장에서는 춤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책 전체가 나의 이러한 상상을 거부한다면, 그 책은 ‘읽고 추기’의 텍스트로 선택될 수 없다. 그러나 춤을 허락하는 책에서는 분명히 곳곳에서 춤이 떠오른다. 나는 그 춤을 건져내야 한다. 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거나 하면서. 하지만 여기에 남기는 줄과 메모는 책 내용을 요약하거나 비평하려는 줄과 메모와는 달라야 한다. 그래서 헷갈리지 않도록 따로 표시를 해둔다.
이렇게 ‘직관’을 통해 건져낸 춤의 문구를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이 순간이 중요한데 나의 ‘직관’이, 나의 언어나 몸짓을 통해 참여자로 하여금 춤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야한다. 때로 시범을 보이기도 하지만 시범이 항상 최선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참가들에게 진행자의 시범은 ‘정답’으로 이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춤과 움직임을 자율적으로 끌어낸다는 목표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때로 내가 준비한 제안이 참여자들에게 설득이 어려울 때도 있고, 비록 춤과 움직임을 시도하고 충분히 멋진 퍼포먼스가 펼쳐졌을지라도 읽기와의 관계의 끈이 얇을 때도 있다. 그러나 참여자들에게 나의 제안이 잘 전달되고, 그로부터의 움직임과 춤이 우리가 공유한 텍스트와 공명할 때, 그 순간이 〈읽고 추기〉를 고유하게 빛내는 것 같다.
2023년 6월의 〈읽고 추기 : 돌의 무용〉, ‘루시 리파드’의 『오버레이』를 읽고 수락산 채석장에서 돌과 춤추기 활동 |
따라서 ‘직관’이라는 개념은 〈읽고 추기〉 워크숍에서 아주 중요하다. 나아가 무용 교육 프로그램, 더 넓게는 예술 교육에서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예술 철학자 수잔 K. 랭거(1895-1985)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훌륭한 작업은 “사실이나 현실과는 별개로 숨겨진 의미를 갖는 ‘예술적 진실’”을 가진다고 한다.5) 여기서 ‘예술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 “예술적 인식”이며 ‘직관’은 그러한 인식 행위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읽고 추기〉에서 춤과 움직임은 텍스트가 지닌 ‘예술적 진실’을 포착하기 위한 인식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읽어야 할 책이 더 우선되는 것도 아니고, 책이 단지 춤을 추기 위한 수단인 것도 아니다. ‘직관’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책과 춤이 서로 융합되고 화학작용을 일으켜야만 한다.
4. 느슨한 공동체, 스근한 지속
참여자들은 왜 꾸준히 〈읽고 추기〉 워크숍을 함께 하는 것일까? 참여자들은 일주일에 하루 저녁 시간을 투자하는 것으로 모자라, 자신의 본업과는 관계가 없을 수 있는 적지 않은 분량의 텍스트를 읽어내야 한다는 부담을 기꺼이 짊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어떤 면에서 꽤나 불친절한 이 워크숍은 어떤 움직임 활동을 할지 당일 현장에서야 알려준다.
여타의 무용 수업이나 워크숍은 교육자의 카리스마와 아우라로 참가의 동기를 불러 일으킨다. 이와는 달리 〈읽고 추기〉로 사람들이 모이는 몇몇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진행자와의 수싸움을 참여자들이 즐기는 것을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해본다. 텍스트를 읽는 중에 ‘아 세승이 이번에는 이런 걸 하겠네’하는 추리를 즐길지도 모른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의 머리말에서 “철학 책은 한편으로는 매우 특이한 종류의 추리소설이 되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종의 공상과학소설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빌어와 어떤 “책은 댄스 스코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23년 12월의 〈읽고 추기 : 긍정 무용〉,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웃음 퍼포먼스’ 활동 |
여기에서 내가 참조하는 ‘스코어’는 지시나 명령이 담긴 어떤 권력을 상징하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프랑스 음악가 ‘피에르 불레즈’가 말했듯이 스코어에는 사물 그리고 몸들이 모이는 방법들로 채워진다. 이러한 결합의 관계들을, 즉 나의 직관을 추적하는 참여자들이 한편에 있고, 반대편에 참여자들의 몸과 춤을 상상하며 한 주를 보내는 내가 있다.
[스코어는] “Yes, it has to continue to exist because in it there is a way of combining things.” 6)
(Pierre Boulez, 1925-2016)
한때 무용계에서 비주류 무용가들의 활동 방식으로 소규모 콜렉티브의 형태를 띤 집단들이 많이 보이고는 했다.7) ‘느슨한 연대’라는 말을 서로 주고 받으며 구성원을 묶는 사슬을 전략적으로 최대한 성기게 하고자 했다. 이런 작업의 방식을 스스로 택한 안무가 및 작가들로 이뤄진 생태계에서 성장한 필자가 〈읽고 추기〉와 같은 워크숍의 진행방식을 지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목적을 향해 결집된 공동체가 아닌, 각자 다른 이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지향한다. 이러한 다양한 목표와 목적이 공존해야 ‘시대착오’라는 아버지가 부여한 이름표를 떼고, ‘동시대’라는 이름을 스스로 호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깊은 밤 잠들기 전에 어떠한 모임의 장을 상상하며 그 ‘바이브’에 설레어 잠이 오지 않는다면, 그 모임을 꼭 현실화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할 것이다. 설렘을 일으키는 상상의 모임, 그 결합의 작업을 꾸리는 것, 그것이 ‘워크숍’이다.
2024년 4월 〈읽고 추기 : 반복 무용〉 어느 참가자가 두고 간 양말 |
(이 글은 ‘댄스&미디어 연구소’가 주최한 제 8회 국내학술심포지엄 《경계를 넘는 춤 그리고 교육》에서의 발표문을 수정 및 보완한 것이다. 글쓴이가 진행하고 있는 무용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깊이 있는 질의를 해준 이진솔, 임수진님과 토론의 장을 마련한 연구소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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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전복적인 교육론으로는 자크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이 널리 알려져 있다.
2) 첫 〈읽고 추기〉는 2022년 1월 21일부터 2월 25일까지 6회에 걸쳐 진행됐다. 이태원에서 운영됐던 “AT(알렉산더 테크닉) Ground” 공간에서 J. L. 오스틴의 『말과 행위』를 읽으며 ‘수행성’ 담론을 춤과 움직임으로 탐구했다. 2022년 당시 프로그램 소개글은 다음과 같다. “이세승의 ‘읽고 추기’는 이론과 실천의 직접적인 오고 감을 시도하는 움직임 워크숍이다. 참가자들은 미리 정해진 분량의 텍스트를 차근차근 읽고 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텍스트의 내용에 더해 ’컨택즉흥’ 방법론을 기반으로, 강사가 제안하는 움직임의 활동들을 몸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를 통해 단지 지식의 습득에서 나아가 몸적 지혜를 도모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표이다.”
3) 책을 선정하는 것은 진행자의 은밀한 즐거움이다. 〈읽고 추기〉에서 함께 읽은 책들은 J. L. 오스틴 『말과 행위』, 한강 『흰』,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 등 이밖에도 많은 책들이 있다. 선택되는 책들은 예술 서적에 국한되지 않고 전방위적이다. 혹자에게는 〈읽고 추기〉가 철학책처럼 어려운 문헌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되도록 다양한 텍스트를 선택하려고 한다. 단지 ‘어려운 책을 피하지 않고 함께 읽기의 힘을 믿는다’라는 신조를 유지한다.
4) 나는 ‘선생님’의 역할보다는 리즈 러먼(Liz Lerman)이 『Critical Response Process』에서 이야기하는 ‘촉진자’(facilitator)의 역할을 선호한다.
5) 수잔 K. 랭거, 『예술이란 무엇인가』, 83쪽, 박용숙 옮김, 문예출판사
6) Hans Ulrich Obrist, 『A Brief History of New Music』, 62p., JRP Ringier
7) 필자는 집단 ‘쌍방’을 통해 ‘공동안무’의 방식으로 2010년대 중후반 안무 작업을 했고, 많은 안무가 동료들이 ‘공동안무’ 방식을 실험하고 탐구했다. 이는 무용계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최은진, 장현준을 주축으로 여러 예술 실천가들이 모여 진행했던 ‘또봐요 프로젝트’는 2015년 활발히 활동했다. 이 프로젝트는 공연을 만드는 생태계 자체에 주목하여 〈우리는 왜 빈정이 상하는가〉나 〈협업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토크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2020년대에도 ‘협업’의 가치는 바래지 않고 계속 실험적 실천이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신진영 프로듀서가 이끄는 ‘아파랏/어스(APPARAT/US)’는 2025-2027년에 걸쳐 《홀로 움직이기 (가능한 한 깊고 먼 곳으로) 그리고 함께하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세승은 현재 독립안무가, 공연연출가, 무용교육자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서 안무를 전공했고, 이론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컨택즉흥’(Contact Improvisation)을 다양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집단 ‘쌍방’을 동료들과 함께 조직했다. 주로 큰 역사에서 작은 무용사를 오가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하며, 작업 참여 구성원 사이에서 지평적 협업을 지향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대표작으로, 타자의 목소리를 전유해 파토스의 전염을 꾀하는 〈뻥-굿〉시리즈 (2023-), 집단과 개인 사이의 신명을 안무한 〈덩〉(2022), 몸의 주술성을 입체적으로 다룬 〈원〉(2021), 한국무용의 섬세성을 움직임에 집중해 풀어낸 〈한〉(2020), 역사적 현대무용의 군무 형식에 대한 화답인 〈불의 연구〉(2019), 무용 저작권 이슈를 퍼포먼스 형식으로 다룬 〈삼고무〉(2019) 등이 있다. 2025년 〈Cont(r)act Improvisation〉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