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언젠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문제를 다루는 시사 프로를 본 적이 있다. 중소기업이 각고 노력 끝에 개발한 기술이 세상에 빛을 보기도 전에 계약을 맺으려던 상대 업체에 도용되어 그로 인해 결국 부도를 맞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갑의 업체가 을인 영세 업체와의 계약 단계에서 을의 주요 핵심 기술만 빼가고 계약은 파기하는 식으로 기술탈취를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빈번한 일이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보호장치나 법제도 없어서, 을은 계속해서 백전백패할 수 없다는, 결국 ‘억울하고’ 속 터지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 이야기를 그대로 예술현장에 적용해 보면 결코 나와 무관한 일이 아니다. 예술현장, 바로 이곳이 더욱 지독한 ‘기술탈취’의 현장이다.
김현진 〈나의 이야기〉 (2022) ⓒ김정엽 |
나는 1년 전 작년 3월에 오랜 공백 끝에 개인 공연을 올렸다. 개인적으로는 오랜만에 다시 시작하는 무대라 몸도 풀리지 않은 채 부딪힘도 많았고, 아쉬움도 많이 남는 작업이었다. 그런데도, 고맙게도 주변에서 공연에 대한 따뜻한 응원과 격려를 해주셨다. 나의 공연은 여러 매체에 글, 인터뷰, 평론, 에세이 등의 형태로 다루어졌다. 나는 이를 발판삼아 용기 내 이번 작품을 더 보완 발전시켜 보리라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다음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공연장도 알아보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SNS에서 한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지역의 문화예술기관과 지역의 대표 예술단체가 협업으로 기획한 시민 참여 공연의 포스터였고, 공연은 공교롭게도 내가 올렸던 3월의 작품과 같은 작품명, 같은 콘셉을 띠고 있었다.
순간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혼돈과 충격에 휩싸였지만, 애써 ‘우연이겠지’하고 외면했다. 하지만 며칠간 찜찜한 마음으로 밤잠을 설친 건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서서히 이 일을 잊을 때쯤, SNS의 알고리즘은 귀신같이 내 눈앞에 다시 그 포스터를 가져다 놓았다. 호흡을 가다듬고 포스터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니, 3월에 올린 나의 작품과 유사한 점이 너무도 많았다. 제목, 주요 콘셉트와 키워드, 기획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이는 전혀 딴 곳에서 온 것이 아니라 어쩐지 나의 공연의 정보를 보고 도용한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김현진 〈나의 이야기〉 (2022) ⓒ김정엽 |
그 이유를 말하자면 이렇다. 첫째, 이번 포스터의 공연이 있기 전, 나는 이 작품을 기획하고 후원하는 문화예술기관과 작업을 위해 얼마 전까지 연관을 맺고 있었다. 3월에 올린 공연 이후 바로 같은 기관으로부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용 워크숍을 의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래서 3월 공연의 연장선의 개념으로 워크숍 기반의 작업을 준비하였고 그 일로 몇 차례 기관을 오가며 기획 회의를 거쳐 사업의 최종 승인을 받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작업 콘셉과 워크숍의 교안을 사업 담당자와 공유한 것은 물론이고, 최종 승인과 결제 과정에서 윗선의 담당자와 대표자 등에게서도 공유가 되었다. 하지만 여러 여건상의 이유로 그 계획은 무산이 되었고, 언제인지 모를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포스터의 기획이 같은 기관의 이름과 기관에서 지원하는 지역의 예술단체와 함께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하필 나의 기획이 무산된 그곳에서 그 시점에서 나의 작업과 비슷한, 아니 거의 같은 내용의 기획이 어떻게 다른 사람에 의해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앞서 언급했듯이, 나의 2022년의 공연의 내용은 리뷰, 에세이, 인터뷰 등의 형태로 무용 전문지와 기타 매체 그리고 SNS 계정으로 공유되었다. 특히 SNS 상의 친구로 되어있는 기관의 담당자도 내용을 보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뿐 아니라 그 기관의 몇몇 관계자들은 나의 공연을 관람하기까지 하였다. 그러기에 공연의 제목과 내용 그리고 주요 콘셉을 모를 리가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이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우선 기관의 담당자에게 자초지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는지, 기획을 맡는 문화예술기관의 실무 담당자와 총괄 책임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 곧 내부 회의를 거친 후 곧 연락을 주겠다며, 이 행사의 연출을 맡은 예술단체의 협력 연출자에게 연락을 해보라고 바톤을 넘긴다. 그래서 연출자를 만났다. 그는 내게 “선생님의 3월 공연을 본 적이 없다. 이미 발표된 것이라도 내가 보지 않았으므로 나는 모르는 공연이다. 공연 리뷰도 공식적인 공연의 내용으로 볼 수 없으니 그것이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 선생님이 발표한 공연의 제목과 콘셉 그리고 내용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흔한 것이자, 개인의 소유물도 아니니 누구라도 다룰 수 있다”라고 주장하였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기획은 그 이전부터 기획되고 정부로부터 기금을 받은 것이니 자신들의 기획이 원조라는 식이었다. 그는 내게 공모사업에 제출한 자신들의 기획서를 보여줄 수 있다며 큰소리를 쳤지만, 정작 만남의 자리에는 가져오지도 보여주지도 않았다. 단, 참여 대상자를 지역의 일반 시민에서 ‘경력단절의 예술가’로, 주요 콘셉을 경력단절 예술가의 ‘나의 이야기’로 바꾸게 된 건 최근 기관의 기획 담당자에 의견으로 이루진 거라는 사실을 연출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경력단절 예술가’ ‘나의 이야기’ ‘워크숍 기반의 생애사’ 등은 나의 작품에서 핵심이었는데, 하필 나와 작업을 하려던 기관의 담당자가 이를 갑작스럽게 아이디어로 제시하다니, 우연치고는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곧 있을 그들의 공연을 어떻게라도 정정하고 싶어, 다급한 마음에 “그러면 제목이라도 제발 바꿔달라”고 눈물로 하소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이런 반응에 큰 아량이라도 베풀 듯, 그럼 작품의 제목만은 사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후 그들의 작업은 계속해서 진행되었지만, 기관으로부터 내부회의를 거쳤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고, 담당자로부터 연락도 없었다. 나의 작품이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기관과 또 이들이 지원하는 지역의 대표 예술단체로부터 도용되었다는 의심과 정황은 있지만, 일개 개인이 이를 증명할 길은 사실상 없었다. 그들이 아니라면 아닌 것이 되어버리는 현실이었다. 그후로 나는 오랜 고민과 ‘경력단절’의 아픔 끝에 모처럼 올린 작품이 예술 권력기관의 힘의 논리에 의해 빼앗기고 난도질당했다는 패배감에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김현진 〈나의 이야기〉 (2022) ⓒ김정엽 |
여기에 그치지 않고 또 한 번 기가 찬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상처받은 마음이 진정되기도 전, 나의 3월 공연에 참여했던 비전문 무용수(시민예술가) 중 한 명이 단톡방에 자신이 기획한 공연 소식을 알려왔다. 그런데 축하하는 마음으로 본 작품 포스터 속에는 놀라운 사실이 숨어있었다. 공연 일자는 포스터를 올린 바로 당일이었고, 전체 기획의 큰 타이틀은 달랐지만, 그 기획의 핵심 프로그램 격인 무용 공연의 제목과 콘셉이 나의 3월의 공연과 똑같았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대해 직접 당사자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야만 했다. 그러자 그녀는 너무도 태연하게 “서로의 작품과 똑같다는 생각을 전혀 못 해봤는데?! 왜 이게 문제가 되지?”라는 반응을 보였다. 덧붙여, 자신들은 나의 3월 공연에 참여하기 전부터 이러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었고, 공교롭게 비슷한 콘셉트로 하게 된 것일 뿐, 자신들이 이 아이디어와 제목의 원조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똑같은 제목과 콘셉트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막무가내식 태도에 잠시 뇌가 멈추어 버리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예술사의 여러 예시를 들어가며 그녀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이미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기습적으로 포스터를 올려, 내가 손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그리고 자신이 참여했던 안무가의 작품 제목, 아이디어와 콘셉트 그리고 안무의 노하우 등등을 토대로 기획서를 작성하여 시민예술 단체의 이름으로 지역에서 기금도 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들의 것이라 주장한다. 현재까지 그녀로부터 어떠한 사과도 받아내지 못했다.
김현진 〈나의 이야기〉 (2022) ⓒ김정엽 |
나는 이와 유사한 경우를 창작활동을 하며 무수히 겪어왔다. 그럴 때마다 해결점을 찾으려는 전의보다, 나의 전부와 같은 소중한 것이 빼앗겼다는 상처와 상실감으로 무기력해진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리곤, 내가 약해서 그런 것이지, 아니면 내가 더 앞서가면 그만이지, 내가 잘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영감을 준 것일 뿐이라고 자신을 달랬지만, 내상은 꽤 깊어서 한동안 작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비록 세상의 모든 것이 예술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그것을 사용하여 창작할 권리는 갖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창작해 놓은 예술품을 아무렇게나 허가 없이 무분별하게 강탈해 갈 권리는 없다. 누군가의 눈에 세상에 널린 소재가 예술가의 시각에 의해 새로운 의미로 재조합되고 재탄생되고 새로운 의미를 알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에 등장하는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술가와 예술은 사라져야 한다.
나는 이번 일로 법률 전문가나 자문 기관을 찾지 않았다. 다만 나와 비슷한 일을 겪은 예술가에게 의견을 구해보았다. 그럴 때면 그들도 한결같이 나의 일에 공분하고 공감해준다. 그들도 늘 겪는 억울한 일이지만 정작 뚜렷한 해결점이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나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한 예술가는 내게 이도 저도 안 되면 SNS에 이 사안을 공론화하여 표절한 자들에게 망신이라도 주라는 팁을 준다. 그것이 먹혔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예술계의 도용, 복제, 표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교수가 제자의 작품 도용하여 그것으로 부와 명예를 얻는 예, 공공기관이 예술가의 창작물을 도용 표절하여 기관의 레퍼토리 사업으로 만드는 예, 연출자가 다른 작가의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그대로 복사하여 무단으로 사용하는 예, 함께 작업했던 창작자들 간의 도용과 표절의 예... 등등 무수하다. 하지만 세상에 드러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중 그나마 주목받는 예는 대가의 작품을 누군가가 표절하거나 도용했을 때일 것이다. 그런 경우 보통 예술계의 대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 도전과 비판, 차용과 새로운 해석으로 받아들이며 아름답게 관용을 베푸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하지만 나는 아직 예술계의 대가도 그 무엇도 아니다. 내가 겪은 일들은 작품에 대한 오마주, 차용을 통한 새로운 해석, 도용을 이용한 새로운 메시지 등과 전혀 연관이 없는 몰상식하고 무자비한 도둑질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나는 누구처럼 아름답게 관용을 베풀 생각도 여유도 현재로선 없다. 나는 그저 계속해서 나의 것을 찾고 발전시키는 일에 몰두하고 싶을 뿐이다. 그 과정에서 더 이상 나의 노력, 피와 땀이 부도덕한 누군가에 의해 빼앗겨 나의 길을 멈추게 하고 싶지 않다. 그뿐이다.
김현진
‘김현진의 춤공방’ 대표. 서울예고와 이화여자대학교 학부 그리고 대학원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영국 The University of Surrey에서 ‘무용문화와 역사 그리고 실제’ 분야의 석사를 마쳤다. 컨템퍼러리무용단 ‘탐’에서 무용수 활동을 거쳐, 독립 안무가로 지내며 〈나의 이야기〉(2022), 〈몸으로 자연으로〉(2016), 〈몸의 부호들〉(2015), 〈기괴한 도시〉(2014), 〈Nothing There〉(2004), 〈Discothéque〉(2003), 〈벗겨진...〉(2001) 등을 발표했다. 월간 「춤」에서 춤기행문과 「댄스포럼」에서 춤에세이를 연재기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