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안무가로도 주목받는 세계적인 부토 댄서 양종예
17년 부토의 길… 양종예가 말하는 몸과 존재
전혜원_아시아투데이 기자

양종예



내 안의 '정체불명 X'를 마주하는 시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위로여야 할 엄마의 자장가가 어떤 밤에는 가장 서늘한 노래가 되기도 한다."

부토 무용수이자 안무가 양종예가 신작 〈정체불명 X의 소환〉을 설명하며 꺼낸 첫 번째 이미지는 의외로 익숙한 풍경이었다. 가장 따뜻해야 할 기억이 문득 낯설고 불안한 감정으로 다가오는 순간. 그는 인간의 마음이란 그렇게 서로 다른 감정이 뒤엉켜 있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오는 7월 29일 충북 음성문화예술회관과 8월 1~2일 서울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제23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국내 초연되는 〈정체불명 X의 소환〉은 바로 그 모순에서 출발한다. 일본 부토 무용단 '다이라쿠다칸'의 외국인 최초 정단원으로 17년째 활동 중인 양종예는 이 작품으로 올해 도쿄 SAI 안무경연대회 그랑프리를 받았다.



 



부토는 인간의 존재와 내면을 몸으로 탐구하는 일본의 전위무용이다. 느린 움직임과 절제된 신체 언어 속에서 인간 존재의 근원과 삶, 죽음, 기억과 같은 질문을 무대 위에 펼쳐낸다. 양종예 역시 부토를 통해 화려한 동작보다 몸이 품고 있는 감각과 침묵에 귀 기울여 왔다.

그가 말하는 'X'는 공포의 대상도, 정체불명의 타자도 아니다. "나조차 규정하지 못했던 내 안의 가장 날것의 얼굴"이다. 평온한 일상 아래 숨어 있는 감정과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마주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 내면에 공존하는 따뜻함과 쓸쓸함, 희망과 불안, 천국과 지옥 같은 상반된 감정이 어떻게 하나의 몸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작품이 올해 도쿄 SAI 안무경연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사위원들은 한국춤을 전공한 뒤 일본 부토의 중심 무용단에서 활동해온 그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이 '포스트 부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한국적 신체 감각과 일본 부토의 미학이 만나 이전 세대의 표현을 답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종예는 수상보다 앞으로의 길을 더 이야기했다. 그는 "과분한 상"이라며 "지금 가는 길이 새로운 길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걸어가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화려한 수상 경력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으로 새로운 춤의 가능성을 계속 탐색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2009년 다이라쿠다칸(Dairakudakan)에 외국인 최초 정단원으로 입단한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부토 거장 마로 아카지에게서 가장 큰 가르침을 받았다. 그것은 몸을 표현의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사물처럼 바라보는 태도였다.

비바람에 깎여나가는 돌의 침묵, 형태 없이 허공을 떠도는 바람의 길, 숲속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나무처럼 몸 역시 의도를 앞세우기보다 존재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감정을 과장하거나 자아를 드러내기보다 몸을 비워낼 때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그는 17년의 시간 속에서 배웠다.

예술관 역시 조금씩 달라졌다. 그는 이제 세상과 자신을 "나란히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에 비유한다. 세상을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하거나, 반대로 세상에 자신을 맞추려 하기보다 서로 독립된 존재로 마주하며 관계를 맺는 것.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가 몸이라는 통로를 통해 어떻게 호응하는지를 바라보는 일이 지금의 부토관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일본 무용계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는 가장 큰 흐름으로 그녀는 장르 간 경계의 해체를 꼽았다. 노와 가부키, 부토 같은 전통 신체 언어가 현대무용과 스트리트 댄스, 발레와 결합하고, 무용은 미디어아트와 시각예술, 연극을 만나 새로운 공연 형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여기에 한국·홍콩·대만 등 아시아 각국의 공동 제작도 활발해지면서 일본 무용계 역시 더 이상 자국 안에 머물지 않고 국제적인 협업으로 시야를 넓혀가고 있다고 말했다.

무용수와 안무가라는 두 역할 역시 서로를 성장시켰다. 무용수일 때는 자신의 몸을 비워 안무가의 세계를 담아내고, 안무가일 때는 무용수의 몸을 통해 세상을 향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지금을 "안무가로서의 무게를 조금씩 더해가는 시기"라고 표현했다. 몸을 단련하는 시간을 넘어 자신의 세계를 작품으로 확장하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그럼에도 양종예는 부토를 어렵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이 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지"라는 부담을 내려놓는 순간, 무대는 비로소 관객의 내면과 연결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무대 위 몸은 단지 하나의 매개체일 뿐이며, 관객 각자의 기억과 감정이 작품과 만나는 순간 부토는 완성된다고 믿는다.





"이제 춤은 제 삶 자체이자 자연스러운 숨쉬기가 됐습니다."

17년 동안 일본에서 자신의 길을 걸어온 그는 이제 더 이상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삶의 시간과 함께 깊어진 몸으로 정직한 춤을 추고, 후배들에게는 과거에 머물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도 된다는 작은 이정표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참여하는 '제23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은 해외 주요 무용단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무용수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대표적인 갈라 공연이다. 올해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윤서후, 독일 드레스덴 젬퍼오퍼 발레의 정서현, 라이프치히발레의 최수정 등 해외에서 활약하는 무용수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양종예가 국내 초연하는 '정체불명 X의 소환' 역시 이 무대를 통해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난다.

- 본 원고는 아시아투데이 양종예 인터뷰 기사를 전재하고 보완 및 편집(장광열)을 더해 재구성하였다.

전혜원

예술은 삶을 이해하는 가장 깊은 언어라고 믿는다. 20여 년간 문화부 기자로 문화정책부터 공연과 전시까지 문화예술 전반을 취재해 왔다. 작품 너머의 사람과 시대를 바라보며, 예술이 삶에 남기는 의미를 기록하고 있다.​

2026. 7.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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