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국내 예술평론가 1세대로 한국 예술의 지형을 넓혀온 고 박용구 선생의 10주기 추모 모임이 4월 7일 대학로 예술가의집 다목적 홀에서 열렸다. ‘박용구를 기억하는 어깨동무 모둠잔치’라는 이름으로 열린 이날 행사는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주최하고 아르코예술기록원이 협력한 가운데, 비평가이자 기획자, 창작자로서의 박용구를 입체적으로 되짚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발레리나 강수진을 위해 육필로 쓴 창작 발레 대본 「팔담(八潭)」과 뮤지컬 드라마 〈白鶴(백학)이 된 玉女(옥녀)〉가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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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구를 기억하는 어깨동무 모둠잔치 현장 ⓒ춤웹진 |
이번 행사는 박용구의 예술적 유산을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불러내는 자리이기도 했다. 사회를 맡은 장광열 전 월간 〈객석〉 편집장은 “10년 전 같은 자리에서 1주기 추모 행사를 진행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박용구와의 인연을 회상했다. 그는 박용구가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음악평론가, 무용평론가, 극작가, 연출가로 폭넓게 활동했다고 소개했다.
이종호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장을 대신해 인사말을 대독한 채희완 명예회장은 박용구를 “음악과 춤 문화의 기획자이자 창작자, 그리고 비평가”라고 말하며, “죽은 이를 기리는 일의 핵심은 그가 남긴 자취를 살피고 못다 한 말을 오늘의 예술 현실 속에서 다시 불러내는 데 있다”고 밝혔다.
유족 대표인 재불무용가 박화경은 프랑스 파리에서 화상으로 인사말을 전했다. 그는 “아버지는 늘 동심 어린 시선으로 새로운 생각을 하고 미래를 내다보던 분이었다”며, 생전 “앞으로는 문화 올림픽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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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대표 재불무용가 박화경의 화상 인사말 모습 ⓒ춤웹진 |
‘영상으로 만나는 박용구’ 순서에서는 춤비평가 김채현이 소장한 개인 영상과 아르코예술기록원이 보관 중인 자료 영상이 상영됐다. 김채현은 2003년 구술채록 당시 촬영 영상과 2008년 6월 2일 부인 정덕미 여사의 희수 기념 공연 축하연 및 결혼기념일 자리에서 촬영된 기록 영상을 편집해 소개했다. 영상에는 일본 유학 시절 무용과 발레를 접한 경험, 당시 교류했던 인물들에 대한 회상이 담겼다. 이 영상은 박용구의 생애를 따라가며 한국 근현대 무용사의 흐름을 조망하는 내용으로, 서구 무용과의 만남부터 해방 이후 무용 이론의 형성과 창작의 흐름, 1970~80년대 무용계의 변화와 작품 활동까지 아우른다.
김도현 아르코예술기록원 무용 담당은 2013년 서울뮤지컬페스티벌에서 진행된 박용구의 특별 강연 영상을 일부 편집해 상영했다고 설명하며 “전체 영상은 기록원에서 열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행사에서는 고인이 남긴 자료를 공개하고 기증하는 시간도 마련됐다. 장광열은 “이번 모임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고인의 창작물을 전달하고 기록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발레리나 강수진을 위해 육필로 쓴 창작 발레 대본 「팔담(八潭)」이 공개됐으며, 강수진이 참석하지 못함에 따라 국립발레단 관계자를 통해 전달됐다. 강수진은 메시지를 통해 “선생님은 늘 따뜻하게 조언을 건네주셨고, 그 한마디가 무용수로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며 “예술가에게 열린 태도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뮤지컬 드라마 대본 「백학이 된 옥녀」 원고가 아르코예술기록원에 기증됐으며, 음악 및 민속음악 관련 노트 등 추가 자료 역시 향후 연구와 아카이빙 작업을 위해 순차적으로 기증될 예정이다. 박용구의 육필 대본 「팔담」과 「백학이 된 옥녀」는 생전 박용구가 월간 〈객석〉 기자였던 장광열이게 전했던 자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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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드라마 대본 「백학이 된 옥녀」 아르코예술기록원 기증 모습 ⓒ춤웹진 |
행사 중반에는 다양한 예술가와 평론가들의 회고 발언이 이어졌다. 이들의 증언은 박용구가 한 시대의 비평가에 그치지 않고 여러 예술가의 작업과 시야에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이었음을 보여줬다.
“세기말은 선언의 시기라고 하셨습니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시기도 또 하나의 세기말로 보셨죠. 그 말씀을 계기로 ‘영고21 선언’을 하게 됐고, 저는 지금도 그 선언을 기억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연극비평가 이상일)
“사진을 그만두려 했을 때 ‘부산에서 대전까지 왔는데 서울까지 가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한마디로 다시 시작했고,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들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작가 이은주)
“구기동 자택에서 나눈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눈 내리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따뜻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시대를 앞서 보며 문화예술을 몇 단계 끌어올린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 국립국악원장 한명희)
“선생님은 ‘달 같은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글쓰기의 모범이었고, 비평을 예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분이었습니다.” (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문화재청장 정재숙)
“‘신무용은 타락했다’는 말씀이 가장 강하게 남습니다. 예술을 양식이 아니라 역사적 힘으로 보셨던 분이었습니다. 또 외래 자극이 자국화되며 성장하는 관점을 갖고 계셨고, 이는 오늘날 다시 되새길 만한 시각입니다.” (춤비평가 채희완)
“대구시립무용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선생님과 조동화 선생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현대무용은 철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 대화 속에서 생겼습니다. 지금의 흐름에도 그 영향이 남아 있습니다.” (무용가 김기전)
“한국 발레의 대부가 국립발레단 초대 예술감독 임성남 선생님이라면 유니버설발레단을 낳게 한 인물은 에드리언 델라스 선생님입니다. 또 2013년 〈심청〉 공연을 보신 뒤에는 ‘나이가 많으니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 기량이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고 하셨고, 이어 ‘요즘 세상이 육체의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 어려운 시기일 수 있지만 결국 아름다움을 되찾는 때가 올 것이니 좌절하지 말고 분투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창작발레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심청〉 대본을 써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니버설발레단 문훈숙 단장 회고문 대독)
‘저술서를 통해 본 박용구의 어록’ 순서에서는 정보원 아르코예술기록원장이 발언에 나섰다. 그는 박용구가 아르코예술기록원의 구술채록 사업 첫 대상자였음을 밝히며, “20년 넘게 이어온 구술 기록 작업의 출발점에 선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구술자의 말의 성격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유문을 최소화해 기록했다”며, 이후 대중적 접근을 위해 총서 형태로 재구성된 과정을 설명했다.
박용구의 예술관을 드러내는 어록으로는 “작품은 진실을 추구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는 말이 소개됐다. 이는 그의 비평과 창작을 관통하는 핵심 인식을 보여준다. 아울러 윤심덕과 김우진의 현해탄 사건을 자살이 아닌 타살로 해석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이를 바탕으로 창작된 대화극 「계단 위의 거울」을 통해 사실에 대한 해석이 예술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박용구가 음악, 연극, 무용을 넘어 건축과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언급된 인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예술 전반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이지현 춤비평가는 공간지에 실린 박용구의 글을 낭독하며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환기했다. 해당 글은 윤이상을 둘러싼 논의를 통해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표본적으로 드러내는 대명사”라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동백림 사건과 군사독재 시기의 정치적 맥락을 비판적으로 짚는다. 동시에 이를 “인간 윤이상과 예술가 윤이상”의 관계로 구분해 바라볼 필요성을 제시하며, 예술가가 현실 정치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작품을 통해 시대 인식을 드러내는 관점을 보여준다. 글은 언론이 만들어낸 ‘윤이상 신격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함께 제기하며, 인간 윤이상을 연구 대상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대명사로서의 윤이상”이 성립된다는 시각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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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웹진 |
김채현은 ‘박용구의 삶과 예술’을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그는 “102년에 이르는 삶을 짧은 시간 안에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전하며 박용구의 생애를 개괄했다. 1914년 경북 풍기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 예술을 접한 이후, 음악, 무용, 연극을 넘나드는 활동을 펼쳤으며, 예그린악단 단장, 음악팬클럽 회장, 한국무용평론가회 공동 결성,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 단장,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회장 등 한국 문화예술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2003년 아르코예술기록원의 구술채록 사업을 통해 그의 삶이 기록됐고, 이는 「한반도 르네상스의 기획자」로 정리돼 출간됐다. 김채현은 박용구의 삶을 관통하는 특징으로 거시적 안목과 반골적 태도, 자유롭고 개방적인 예술관을 꼽으며, 장르를 넘나드는 통합적 시각을 지닌 인물로 평가했다.
‘박용구가 한국 발레에 끼친 영향과 구술사의 오류 고찰’ 순서에서는 장지영 국민일보 문화부 선임기자의 발표문이 정옥희 춤비평가를 통해 대독됐다. 발표에서는 그동안 구술사에서 반복돼 온 두 가지의 대표젹 오류도 함께 지적됐다. 첫째 「니치링」을 일본 최초의 창작 발레로 보는 해석, 둘째 한국의 〈백조의 호수〉 전막 공연이 아시아 두 번째라는 주장이다. 발표문은 이를 각각 재검토하며, 「니치링」은 일본 최초가 아닌 고마키 개인의 일본 소재 첫 창작 발레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한국 공연은 일본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구술 기록의 특성상 기억의 착오나 해석의 과장이 개입될 수 있음을 지적하며, 학술적 활용을 위해서는 검증과 교차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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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모 모임은 한 개인을 기리는 자리를 넘어, 박용구의 사유와 기록을 현재의 예술 환경 속에서 다시 호출하는 자리였다. 육필 대본 공개와 자료 기증, 구술 기록과 비평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그의 작업이 단순한 과거의 성과가 아니라 현재에도 유효한 예술적 자산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비평가의 역할과 기록의 의미를 다시 환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또한 이날 행사에는 채희완 한국춤비평가협회 명예회장, 김채현 한국춤비평가협회 전 회장, 〈춤웹진〉 김혜라 편집장, 댄스포스트코리아 장지원 편집주간, 최해리 춤문화자료원 이사장, 정보원 아르코예술기록원장, 이지현 춤비평가, 정옥희 춤 비평가, 김남수 춤비평가, 이은주 사진작가, 이상일 연극비평가,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 김기전 전 대구시립무용단장, 정재숙 전 문화재 청장, 한덕택 국악평론가, 정재옥 크레디아 대표, 김긍수 예술원 회원, 김순정 전 성신여자대학교 무용과 교수, 장순향 전 한국민족춤협회이사장, 장은수 전 한국연극 편집주간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참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