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유빈댄스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이나현의 예술 사유와 논리를 읽고 체험하고 이해하기

(1) 인터뷰_ 유빈댄스 대표 이나현



일시│ 2025년 12월 20일 오후 4시 

장소│전주 문화공판장 작당             
인터뷰어│ 이지선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인터뷰, 이나현 대표와 이지선. 유빈댄스 제공 ⓒ류진욱



이지선: 유빈댄스 20주년을 축하합니다. 대표로서 유빈댄스 20주년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고 계시는지요.
이나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느새 20년이 되어서 저도 놀랐습니다. 20년이라는 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는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20주년과 작년부터 3년간 이어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주체사업의 첫해가 맞물리면서 그 시작으로 지난 20년을 정리하는 것은 저 자신에게도, 새롭게 구성된 멤버들에게도 지금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고민하며 나아갈지를 명확히 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의 작업은 작품 단위라기보다는 큰 맥락 안에서 이어지다 보니 이러한 시간이 더 큰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30년 전 대학에서 선배님으로 뵈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발레 전공자로서 전통이라는 정해진 틀에 갇혀 있다는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 그때의 선배님은 굉장히 그 바깥을 자유롭고 과감히 넘나드는 분으로 느껴졌었습니다. 학창 시절 무용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무용을 늦게 시작해서 무용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보니 반은 외부자의 시각에서 좀 더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지 않았나 싶네요. 대학 때도 참 열심히 제 것을 찾아다닌 거 같아요. 많은 것을 배우러 다니고 보러 다니고 왜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 거 같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안무 작업은 그때 던진 질문들에서 이어집니다. 무용의 정형화된 동작들과 형식들에 대한 질문이 저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 체조를 전공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경험이 춤으로 연결되는 지점에 이점이나 생각의 차이가 있었는지요.
처음 리듬체조에서 무용으로 전공을 바꿨을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비슷한듯하지만 매우 다르니까 더 답답했던거 같아요. 하지만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우선 체력적으로 전 훨씬 강했고 무엇보다 리듬체조가 기구를 다루며 움직이는 종목이다 보니 움직임의 코디네이션이나 확장성에 대한 감각이 발달해 있었던 거 같아요. 복잡한 움직임을 수행하거나 타인과 춤을 추는 과정에서 그러한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된다고 느껴요. 차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무용예술은 등수에 상관없이 내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분야라는 것이죠. 그 부분이 좋았어요.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규정동작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으면서 차별점을 찾아나가는 그것에 매력을 느껴 무용을 선택했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현대무용가로서 일찌감치 해외에서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해외 무용단 정보도 접근이 쉽고 기회도 많이 열려있지만, 인터넷이 없던 당시 어떻게 정보를 얻고 가서 생존(?) 하셨는지, 그 때 얘기좀 듣고 싶습니다.
겁이 없었던 거죠. 이메일도 유럽에 가서 처음 만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대학 시절 피나 바우쉬, 수잔 린케, 윌리엄 포사이드 등 유럽 무용가들의 영상(그때는 비디오 테이프)을 독일문화원에 가서 찾아보곤 했어요. 그때 이미 전 유럽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디로 어떻게 갈지는 몰랐지만 그곳에서 그러한 춤을 추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무용단 오디션에 대한 정보는 정말 얻기 힘들었고 그래서 단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유럽 학교를 찾았어요. 온라인상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네덜란드 로트르담 댄스 아카데미(현 Codarts)에서 운영하는 게스트 스튜던트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서 지원하게 되었어요. 정말 감사하게도 그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신진예술가 지원이 처음 생겨 해외 연수를 지원해 줬는데 그 지원을 받아 갈 수 있었어요. 1년을 버틸 금액은 아니었지만 무조건 가서 오디션에 합격하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갔어요. 처음에는 가서 적응이 쉽지는 않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3개월 후 첫 오디션에 합격해서 오스트리아 린츠 무용단에 입단했어요. 그게 안되었으면 그냥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도 참여하셨죠? 1회였던가요?
장광렬 선생님께서 한국에서 활동했던 저를 기억하고 초청해주셔서 좋은 기회로 한국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2001년이 1회이고 2003년 2회에 참여한 걸로 기억해요. 워낙 해외 활동하는 현대 무용가들이 없어서 처음엔 ‘발레스타’로 시작했다가 2회에 무용스타로 바뀌었죠. 그때 〈Below the Surface〉(2003)를 초연했어요.



〈Below the Surface〉(2003), 유빈댄스 제공



해외에서 발레단 활동을 하셨나요? 90년대 장르의 구별이 굉장히 엄격했던 국내 상황에서 어떻게 그 벽을 넘어 생각할 수 있으셨는지, 어떤 경험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유럽의 국립, 주립, 도립 등의 국공립 단체들은 전통적으로 무용단이 발레라는 명칭을 사용했어요. 레퍼토리에 클래식 레퍼토리가 전혀 없어도 명칭을 그렇게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그리고 제가 오디션을 본 많은 단체들이 1차에 발레 수업을 보고 그다음 레퍼토리와 즉흥을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유럽의 무용수들은 다양한 스타일을 두루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고 발레는 일종의 훈련법으로 사용된다고 할 수 있어요. 요가, 즉흥, 현대무용의 다양한 기법과도 같이 발레는 몸을 훈련하는 하나의 방법이고 그것은 넘지 못할 경계로 인식되지는 않았어요. 유럽 무용단이 발레의 기본을 요구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부터 발레 수업을 들으러 다녔어요. 어릴 적 리듬체조를 할 때도 발레를 배웠었고 이화여대 입시에서도 부전공 발레를 해야 했기 때문에 발레가 그리 생소하지는 않았어요. 몸을 사용하는 체계화된 방법론을 익힌다는 생각이 컸던 거 같아요.

해외 활동하면서 틈틈이 국내에 들어와 공연을 하셨었죠?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하신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또 그때 국내 무용계의 반응과 해외와의 차이가 있었는지요?
제 안무작의 경우 2002년 서울국제무용축제에서 〈거울 속의 거울〉 솔로를 발표하고 이 작품을 독일 무용단에서도 공연했어요. 이후 2003년 한국을 빛낸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Below the Surface〉를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솔로탄츠페스티벌에서 최우수 무용가상을 수상했죠. 그리고 제가 활동한 무용단이 국내 초청공연을 한 경우도 있고요. 그렇게 국내외를 오가게 되었어요.
유럽에서 제 작품을 공연하면 동양적이라고 평했고 한국에서 같은 작품을 공연하면 유럽적이라고 평했어요. 그때부터 동양적, 유럽적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었던 거 같아요. 하지만 그것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어요. 서양인의 눈에는 동양인인 내가 추는 것은 결국 동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국내 관객에게는 해외 활동의 영향이 유럽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흔적〉(2005), 유빈댄스 제공



무용단을 창단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워낙 춤을 잘 추시는 무용수이셔서 댄서로서 더 오래 뵙고 싶었는데,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자연스럽게 옮겨가게 되신 건가요?
전 대학 때부터 안무하고 싶었어요. 월례발표회 때마다 작품을 발표하는 기회가 정말 재밌고 소중했어요. 유럽 무용단을 갔던 것도 그들이 어떻게 안무를 하는지 현장에서 보고 배우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에요. 유럽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안무작을 발표했고 그러면서 점점 더 내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던 거 같아요. 그런데 프리랜서 안무가로 유럽에서 활동하기에는 비자 문제 등 쉽지 않은 현실적 문제가 있어서 한국행을 택했고 무용단을 창단하게 된 거죠.
안무를 하면 외부에서 보는 시각이 필요해요. 제 작품에 무용수로 참여하면 제 생각을 실행하는 측면에서는 수월한 점이 있지만 외부에서 작품 전체를 조망할 수가 없어요. 그게 전 매우 불편했고 그래서 출연을 안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춤을 다른 무용수들에게 입히기 위해 그것을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이 필요했고 무용수들도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제가 요구하는 지점들이 좀 생소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많은 무용수들이 바로바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도 있고요. 그래서 제 계획보다 훨씬 더 오래 무용수로 참여한 거 같아요. 무용수로서 저를 무대에서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의 기대도 있고 제가 생각하는 춤을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도 있어서 전체 작품에서 솔로 부분을 따로 만들어 출연하는 방식을 택했어요. 그리고 안무가,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무용수로 활동했을 때보다 더 많은 부상에 시달렸어요. 내가 나를 돌보고 훈련할 시간이 줄어든 게 이유겠죠. 그러다 보니 무용수로 무대에 오르는 일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 거죠.

유빈댄스의 이름에 뜻이 있나요? 유빈댄스 안무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이름의 의미에 대해 많이 물어보시는데 유빈은 있을 유(有), 빛날 빈(彬), 빛이 있다는 의미에요. 빛이 있어야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무대 위에서 빛나는 존재라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전 공연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춤이에요. 춤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나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리고 그 춤의 실행이 살아있는 감각의 전달이어야 한다는 것을 언제나 강조하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춤은 기능적 수행에 머무를 뿐이니까요.

이번 공연에서 “유빈스러움”을 강조하셨는데,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유빈스러움은 “깨어있는 감각으로 실행되는 춤”이라고 생각해요. 형태적인 특성이나 질감적 특질도 중요하겠지만 그 모든 근본에는 깨어있는 몸의 감각이 있어요.

〈2025 안무노트 20+
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는 일회성 공연이라고 부르기에는 굉장히 다양하고 규모 있는 프로젝트였습니다. 기획에 어떤 생각들을 담으시고, 그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나요. 전시 준비 과정, 작당이라는 공간에서의 공연, 렉처 퍼포먼스, 팝업 스테이지, 전시에서의 관객 반응 등이 궁금합니다.

20년을 기념하는 것이지만 업적으로서의 결과보다는 무엇을 고민하며, 무엇을 추구하며 20년을 이어왔는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전시라고 하면 물질적인 것의 전시가 일반적이다 보니 의상이나 소품, 포스터 등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제 작업에서는 의상이나 소품이 주가 된 적이 없어서 결국 저의 안무논리, 지향점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춤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어요.
사실 시작 단계에서는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될 줄 몰랐어요. 렉처 퍼포먼스와 전시를 함께 진행하려다 보니 그에 맞는 공간을 찾는 것과 20년의 자료정리에서 시작했고 오픈한지 얼마 안 된 문화공판장 작당을 피디님이 찾아주셨죠. 그곳이 100평이다 보니 공연에는 적합하지만, 전시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었어요.
전시의 내용을 구성하는 것과 그것을 시각화하는 일 모두 처음이어서 쉽지 않았어요. 20년의 작업들을 우선 디지털 자료로 전환하여 모으는 것에서 출발하였고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어요. 그 모아진 자료들을 이지선선생님이 일일이 훑어보고 핵심 내용들을 정리해 주셨고 섹션을 나누는 일이 진행되었죠. 전시에서는 무엇보다 관객의 체험존이 있었으면 했어요. 안무와 춤에 관한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저의 안무논리를 경험해 볼 수 있는 체험존을 고민했고 단어카드를 조합하는 방식의 체험존이 완성이 되었죠. 그리고 그것을 활용해서 팝업 공연을 진행해서 관객이 체험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고, 전시된 논리들의 실체를 경험하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관객들이 정말 내용들을 꼼꼼히 살펴보시는 것에 놀랐어요. 전시된 두 개의 영상(인터뷰와 작품)도 꽤 길이가 긴데 앉아서 다 보시고 가시더라고요. 무엇보다 체험존 반응이 좋았어요. 재현적 표현의 방법을 따르지 않는 제 안무 방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안무를 좀 더 편하게 경험해 보신 거 같아요. 무엇보다 전주에서 이런 형식의 안무에 대한 전시와 공연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반가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전문 관객뿐 아니라 일반 관객이 많았던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큰 전시가 되었고 렉처 퍼포먼스도 2회 공연이 되어 정말 준비와 진행이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모든 분들의 도움 덕분에 잘 마무리된 거 같습니다.





이번 아카이빙에 참여하면서 지난 20년간 50여 개의 작품을 저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어서 굉장히 흥미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자료 정리할 때 수많은 영상과 사진들 찾아 헤매느라 정말 애 많이 먹었습니다. 그런데도 안무가님은 모든 작품의 정보와 디테일들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계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매번 탈진 상태가 된다”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이어오신 동력이 궁금합니다. 안무가에게 작품들은 어떤 의미인가요.
몸으로 경험한다는 것의 힘이겠죠. 굳이 기억하려 애쓴 적이 없지만 제가 작업하고 공연한 순간들이 떠올라 저도 놀랐어요.
무용단 초기에는 프로 단체로서 많은 공연을 이어가야한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유럽에서 활동한 경험 때문에 매일 연습하고 매주 공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언제나 연습과 공연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힘든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근데 무엇보다 연습 과정이 즐거웠기 때문에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많은 집중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힘든 과정이지만 그 안에 분명 다른 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희열이 있고 배우는 것이 있어요. 그 과정에서 사람을 알게 되고 세상을 알게 되고 소통하게 되고 안무작업 자체가 제가 만들어지고 변화되는 과정인 거 같아요.

20년간의 작업에서 전반에는 무용수이면서 안무를 동시에 하셨고, 최근에는 안무만 전념하고 계시는데, 그간 작업의 분기점, 전환점들을 짚어주신다면.
유빈댄스의 활동은 러프하게 5년 단위로 새로운 변화를 맞았던 거 같아요. 제가 그렇게 계획을 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진행됐어요. 처음 5년(2005-2009)은 저만의 움직임 언어를 확고히 하는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그건 정형화된 움직임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움직임 연결의 방법론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2010년부터는 다른 매체로 눈을 돌렸어요. 그 시기 공연의 휘발성에 좀 지쳐 있었고 다른 매체로의 확장을 통해 춤이 존재하는 방식을 새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이 두 시기에는 제가 여전히 무용수로 많이 참여하였던 시기에요. 앞서 설명했던 이유로 무대를 빨리 떠날 수 없었죠. 그리고 2015년 이후에는 관객과의 소통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 작업이 춤 자체에 집중하는 작업이다 보니 다른 재현적 표현 방식을 따르는 작업보다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없다고 느꼈고 그래서 소재의 변화, 렉처 퍼포먼스 등을 시도하게 되었죠. 2020년은 제가 전북대 임용된 해이고 그러면서 유빈 활동의 중심지가 이동하는 시기였죠. 이때부터 군무 작업에 더 많이 집중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수직의 바다〉(2012), 설치작가 최종운, 사진가 서지연과의 협업, 유빈댄스 제공


〈맥베스〉(2018), 유빈댄스 제공


〈감각자료〉(2023), 유빈댄스 제공 ⓒCreamart



아카이빙을 위한 작품 분석과정에서 제가 느낀 것은 2000년대 안무 작업 초기부터 춤에서의 “감각”을 집요하게 탐구해 오셨다는 점인데, 동시대 춤이 이를 유행하는 수식어처럼 덧붙이는 것과 달리 안무가께서 주목해 오셨던 지점과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전 춤이 좋아서, 멋진 춤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안무를 하는 사람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멋진 춤이 바로 감각과 연결됩니다. 유럽 무용단에서 활동하기 위해 많은 오디션을 보고 멋진 무용수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춤은 곧 살아있는 감각에 의해 진행될 때 멋지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걸 실천하기 위해 〈Below the Surface〉를 작업한 거예요. 움직임을 다시 날것으로 만들어 생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감각이고 클리셰적인 춤이 아닌 새로운 춤으로 가는 길을 제공하는 것이죠. 이후 제작업에서 감각은 언제나 핵심적인 부분이었어요.

즉흥을 감각을 통한 신체적 사유를 발휘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계시죠? 하지만 실제 작품에서 즉흥은 거의 사용하지 않으시지요?
즉흥은 안무와 대립되는 지점입니다. 즉흥은 춤 자체와 연결되고 안무는 작품과 연결됩니다. 전 즉흥을 사용할 때도 많은 규칙들을 제시하고 그 제한된 조건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도록 합니다. 하지만 작품은 시도나 실행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품에서 즉흥을 사용하지는 않죠. 즉흥은 수행 과정에서의 생경함을 체험하고 몸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위해 중요한 도구이지만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것이에요. 작품은 진행의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논리의 완결을 위해 즉흥을 배제합니다.

이나현 안무가 하면 렉처 퍼포먼스 〈안무노트〉 시리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18년을 시작으로 지난 5년간 지속해 오신 대표 기획 공연입니다. 인터뷰 영상에서도 언급하셨지만 ‘춤의 언어적 환원’ 또는 ‘언어의 춤적 표현’을 거부하는 안무가에게 언어와 설명, 렉처는 어떤 의미와 목적을 갖고 있는지요.
〈안무노트〉도 이렇게 지속적으로 이어오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에요. 〈안무노트〉에서 활용되는 언어는 제가 실행한 춤 혹은 안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장면별 설명이나 작품의 해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의 작업이 어떻게 재현적 의미 전달에서 벗어나 있는지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다룹니다. ‘해설이 있는 발레’와는 분명 다른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죠. 움직임에 담긴 의미를 언어로 환원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저의 안무 작업에서 언어, 설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제 춤을 무용수들이 형태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형태적 이상이 사라지면 그것의 원리가 설명되어야만 이해되어집니다. 무용수들에게 신체 부위 간 관계 변화를 설명해 줘야 그 움직임들이 이해되고 제대로 실행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작업에서 언어적 설명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러한 지점을 렉처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과 나누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연작 시리즈로 발전되면서 좀 더 보편적인 제 안무 철학을 다루며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명령의 언어인 안무와 하나의 명령에서 다양한 결과물이 나오는 아이러니한 작업 과정 전반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202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기술 매칭사업 〈안무데이터 Choreographic Data〉 프로젝트도 그러한 일환으로 기획하셨죠?
네, 맞습니다. 형태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움직임의 흐름 속에서 그 원리를 데이터로 분류해서 구분지을 수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분명 무엇인가 그 데이터가 말해주는 것이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는데 이 작업에서는 시각화에 초점을 둔 기술 기업을 설득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다 끝난 거 같습니다. 데이터의 시각화가 유행이지만 저의 관심은 그 움직임 안에 담긴 논리를 자료화할 수 있는가였죠. 여전히 이 부분에 대해 관심이 있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유빈댄스의 거점을 전주로 옮기셨습니다. 계기와 단체의 방향을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지요.
제가 전북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로 임용되면서 전주에서 활동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작년부터 창작주체사업을 진행하면서 본격적으로 전주로 거점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전주가 기반이지만 전북 지역만을 활동 무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현재 무용수 구성도 전주 지역 무용수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아요. 힘들지만 서울과 전주를 오가면 연습을 진행하고 있고 서울에서의 공연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꾸준히 중앙과 지역의 연결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전주에서 현대무용 단체 활동을 꾸려가는 이점과 어려움은 무엇인지. 지역사회 현대무용 발전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지역은 우선 공공예술활동지원이 매우 열악합니다. 관객층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죠. 특히 전주는 예향의 도시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예술이 발달하였고 원로 예술가가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이에요. 그만큼 차세대 예술가와 현대 예술의 지위가 약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젊은 무용가들은 서울에서의 활동만을 생각합니다.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단체, 재원, 기회)이 너무 열악하니 그걸 비판할 수도 없어요. 결국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고 세대 간, 지역 간 순환을 위한 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닫힌 환경과 사고에서 열린 순환과 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올해 오디션을 통해 연 단위 계약으로 무용수를 뽑고 워크숍을 통해 무용수 트레이닝을 지속하고 계십니다. 개인 현대무용 단체로서 흔치않은 기획과 포부라고 생각이 듭니다. 어떤 변화를 기대하고 계시는지요.
프로젝트 단위로 무용수들이 모여서 작품만을 하면 그들이 가진 특질을 따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무용수들을 변화시킬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무용수들이 지속적으로 함께 작업하고 연습하면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지난 1년을 진행하였고 무용수들의 변화가 보여서 앞으로 더 기대가 됩니다.

유빈댄스 컴퍼니II ‘유 코레오랩’을 창단하고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창단 계기와 어떤 활동을 이어가게 되나요.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젊은 안무가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제가 최소한 개입하면서 무용수들이 자신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대학 교육과 무용단 작업에 상호 유기적인 지점이 있으신지요.
전 대학 교육과 무용단 작업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동문 단체의 문제점을 봐왔고 그것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전북대학교 무용학과가 곧 유빈댄스는 아닙니다. 둘은 다른 개체입니다. 하지만 상호 영향권 안에 있습니다. 전북대 출신들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고 학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체이기 때문이죠. 학생들은 공연 관람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빈댄스는 대학 교육에 큰 도움이 됩니다.

유빈은 어떤 무용수를 기다리고 있나요. 유빈의 무용수가 되면 어떤 것들을 함께 나누게 되나요.
한마디로 말하면 열린 무용수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귀가 열려있고 생각이 열려있고 감각이 열려있는 무용수. 스스로 몸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요구하고 그것을 위해 저와 그리고 다른 무용수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전 질문하고 서로 의논하고 조율하고 해결 방법을 찾아나갑니다. 그러한 능력을 위해 다양한 훈련법도 제공하죠. 예를 들어 즉흥, 펠든크라이스, 발레, 한국무용 등과 같은 것들을요.



 

2025년 유빈댄스 연습 스케치, 유빈댄스 제공



앞으로 유빈의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선 올해 3월에 전주에서 신작 발표를 준비 중입니다. 〈무율경〉과 2023년에 초연한 〈감각자료〉를 재구성한 〈감각자료 2.0〉을 더블빌로 준비 중입니다. 이후 작품들을 영상매체로 재창작하는 작업들을 하고자 합니다. 기존 작업들을 재해석하는 작업들도 이어나갈 계획입니다.

이어지는 활동들도 고대하겠습니다. 인터뷰에 감사드립니다.




(2) 20주년 프로젝트 현장 스케치_ ‘전시+팝업 스테이지+렉처퍼포먼스’



이지선_춤연구자



이나현이 이끄는 유빈댄스가 20주년을 맞이했다.

아날로그 시대라면 강산이 두 번 바뀐, 디지털 시대라면 쇼츠를 약 350만 개 볼 시간이다. 현대무용 민간단체로서 녹록지 않은 그래서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동시대 춤의 역사이고 현재다.

2025년 12월 18일~20일 3일에 걸쳐 전주 문화공판장 작당에서 선보인 이번 프로젝트는 ‘전시+팝업 스테이지+렉처퍼포먼스’라는 형식의 짜임새와 흥미로움뿐 아니라 지난 20년간의 작업에 대한 깊이 있는 리서치와 아카이빙, 무용단의 기반과 운영에 대한 체계 확립 등 이나현의 안무철학과 작업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 2025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주체지원사업의 핵심플레이어 예술단체의 중장기 활동을 지원받은 ‘유빈이콜로지 UBIN-ecology’의 첫해 사업으로, ‘연구, 나눔, 성장’이라는 중장기 비전을 바탕으로 지난 20년의 활동을 되새기고 전주로 거처로 옮겨 새롭게 유빈의 거듭남을 모색하고자 하는 단체의 기획의도를 담고 있다.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유빈댄스 제공 ⓒ류진욱



전시는 20년간 50여 개의 작품에서부터 안무가의 생각과 논리를 끌어올려 ‘안무노트(choreography notes)’라는 주제 아래 입체적으로 재구성하여 5개의 장으로 전개된다. 특히 전시 아카이빙 기획의 주된 생각들은 그간 이나현 안무가가 자신의 춤 논리를 설득하기 위해 성실히 실천해왔던 렉처퍼포먼스 시리즈 〈안무노트〉(2018~2025)의 내용들을 충실히 분석하고 되새기고 다듬어 구조화된 결과물이라 하겠다.

‘NOTE_01 안무가의 독백(Artist’s Monologue)’에서는 유려하고 영민한 무용수에서 안무가이자 무용수로, 그리고 오로지 안무가로서 춤에 유령으로 존재하는 안무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었다.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춤을 춘다”는 안무가의 선언은 춤이 미(beauty)나 주제(theme)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며 춤은 움직임 그 자체라는 확고한 예술철학을 투영한다. 안무가의 선언은 독백의 글로, 그리고 QR코드에 새겨진 나지막한 안무가의 육성으로 만나 볼 수 있다.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전시: 안무가의 독백, 안무가의 재료, 유빈댄스 제공 ⓒ류진욱



‘NOTE_02 안무가의 재료(Tools & Materials)’에서는 자신만의 움직임 언어를 탐구하고 무용수들에게 이를 이해시키고자 분투했던 안무가의 재료들을 도식으로 한눈에 그려낸다.

안무가의 재료는 그간 그녀의 작품 안에서 지속적으로 탐구되고 실험되었던 요소들을 크게 ‘몸’, ‘관객’, ‘관계와 구성’, ‘음악’으로 구분하고, 그 안에 존재론, 물질-몸, 안무논리, 움직임, 공간, 질감, 감각, 감각융합, 공감각, 운동감각, 시각, 촉각, 청각, 렉처퍼포먼스와 같은 재료들로 제시한다. 이 재료들은 위계적 종속적 선형적 관계를 이루지 않고 해체적이면서도 공기를 떠다니는 입자들처럼 작업 과정에서 부유하며 응집하는 유기적인 생각의 지도를 그려내고 있다.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팝업 스테이지, 유빈댄스 제공 ⓒ류진욱



팝업 스테이지(the Move Assembly)에서는 안무가의 재료를 직접 사용하여 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관람객이 직접 또는 무용수의 시연을 통해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다. 몸, 공간, 시간, 움직임으로 구별된 수십 가지의 재료카드를 무작위로 뽑아 자유롭게 순서를 나열하면 무용수들이 즉흥적으로 선별된 내용을 움직임으로 구현해 내는 안무게임 방식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NOTE 02에서 개념적으로 제시되었던 안무가의 재료들을 직관적이고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즐길 수 있게 된다.

‘NOTE_03 대화(From Dancers & Critics)’에서는 유빈과 오래 작업했던 무용수들(신혜진, 강요섭)과 조명감독(공연화), 선배 예술가(안애순), 비평가(정옥희)가 바라본 이나현과 유빈댄스의 작업에 대한 경험과 생각을 담아낸 인터뷰와 전주의 대표 공간에서 촬영된 유빈의 작업스케치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https://youtu.be/CxtqSJjjvOc?si=oeLeq7ULBxaL5SG- 


‘NOTE_04 앤솔러지’에서는 20년간 파편적 사건들로 존재했던 50여개의 작업들을 시간의 흐름으로 나열한 연보로 본 전시의 출발점이 되는 원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다. 작품의 내용과 참여무용수, 대표 이미지뿐만 아니라 무용축제 초청과 공공예술기금지원, 렉처 퍼포먼스, 주요 대표작 등의 구분을 한눈에 살펴봄으로써 유빈의 성장과 예술적 생각의 전개를 이해하고 조망할 수 있다. 또한 앤솔러지의 선형적 나열을 감각, 즉흥, 비정형성, 구성연구, 음악의 구조, 춤의 내재적 리듬, 매체 활용, 관객과의 소통 등 내재적 주제로 키워드화하여 작품간의 논리적 관계를 프로젝션 매핑 영상으로 시각화하여 제시해 주었다.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전시: 앤솔러지, 도래할 생태계 ⓒ류진욱



전시의 마지막 챕터 ‘NOTE_05 도래할 생태계’는 앞으로 유빈댄스가 모색하는 미래를 담아보고자 했다. 그 생태계는 작은 책자 형태로 무용수들이 유빈댄스의 연습과정에서 느낀 생각의 메모들을 간략히 담아 전시되어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경험의 시간과 내용들은 더욱 오래고 깊다.

‘유빈이콜로지 UBIN-ecology’사업을 통해 유빈댄스는 전주를 기반으로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를 선발하고 지난 1년간 즉흥테크놀러지, 펠든크라이스, 접촉즉흥, 한국무용 등 움직임 워크숍과 기존 작품들의 작업 분석과 재해석 연구 과정을 통해 ‘유빈스러움’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쌓아나갔다. 또한 유빈댄스 컴퍼니 II ‘유 코레오랩(U ChoreoLab)’ 결성을 통해 유빈의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한 교육, 창작, 안무, 지역연계, 콘텐츠발굴을 위한 활동도 시작하였다. 유빈의 무용수들은 일회성 공연을 위해 소진되고 교체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안무가의 논리를 온몸으로 이해하고 수행하는 유빈 만의 ‘진짜’ 무용수가 되어가는 유빈의 진행되고 도래할 생태계를 만나볼 수 있다.

12월 20일 전시공간의 절반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메인 공연 렉처 퍼포먼스는 이나현 안무가의 생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안무가의 작업 논리를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감각적 체험의 장이 되었다. 전시에서 글과 체험으로 안무 논리를 이해하고자 한 관객들은 렉처 퍼포먼스에서 춤으로 안무가가 쌓아온 생각과 앞으로의 계획을 한층 깊이 있게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뤄온 이전 5년간의 〈안무노트〉 기획들과는 달리 이번 공연에서는 지난 20년간 만들어진 춤과 앞으로 만들어나갈 춤에 대한 이야기와 그 춤의 일부를 선보였다. 유빈 만의 고유 언어인 움직임의 특질이 무엇인지, 안무란 무엇인지, 안무를 통해 붙잡고 싶은 군무란 무엇인지, 춤에서 감각은 무엇이고 어떻게 확장되는지, 춤의 내재적 의미란 무엇인지, 안무의 과정에서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춤은 어떻게 발생되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에서 리듬과 공간을 어떻게 춤의 주제로 담아낼 것인지에 대한 논리적이고 수행적인 렉처와 퍼포먼스가 영상과 함께 배치되었다.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렉처 퍼포먼스, 유빈댄스 제공 ⓒ류진욱



렉처 퍼포먼스에서 안무가는 주제적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렉처하는 것과 함께 자신의 생각이 가장 잘 반영되어 있을 솔로춤을 무용수들이 재해석하는 방식을 덧붙였다.

〈시선의 온도〉(2017) 〈텅빈 혼잡〉(2008) 〈Below the surface〉(2003)의 솔로들을 무용수들이 탐구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고민하고 느낀 생각들이 재해석한 춤의 수행과 함께 목소리로 발화되었다. 관객들은 안무가의 생각을 무용수의 생각과 재해석된 춤과 함께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었다. 작품들이 작품들로서가 아니라 작품의 논리를 예증하는 재료로 활용된 방식, 그리고 무용수가 ‘진짜’로 춤추기 위해 안무가의 춤을 탐구하고 재해석한 춤을 추어내며 그 생각을 발화하는 방식, 짧지만 관객 스스로 신체의 감각을 깨워낼 수 있는 움직임 체험, 제거된 조명, 최소화된 음악 등은 춤의 내재적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자 하는 안무가의 철학에 빈틈없이 철저하게 논리적이고 설득적이다.



〈2025 안무노트 20+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렉처 퍼포먼스 ⓒ유빈댄스



이번 프로젝트가 선보인 문화공판장 작당은 전주의 한옥마을과 함께 전통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남부시장 한복판에 있다. 과거 원예공판장을 리모델링하여 2024년 오픈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시장 2층의 청년몰 유치와 함께 세대간 문화의 융합과 소통의 중심지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전시와 공연을 찾은 관객들은 무용전문 관객뿐 아니라 시장 공간을 찾은 청년 및 중장년층의 일반 관객도 함께하였다.

특히 팝업 스테이지에서의 무용수의 시연과 설명, 관람객 스스로의 체험은 누구나 안무가가 될 수 있다는 상상 넘치는 기대와 자신이 만든 안무재료가 즉흥적으로 눈앞에서 춤으로 완성되는 희소한 경험으로 높은 흥미와 이해의 반응을 끌어내었다. 작품으로 어렴풋이 만나온 혹은 만나지 못했던 춤과 안무가 조금은 감각과 경험의 단계로, 참여자들의 삶의 일부로 스며든 즐거운 시간을 그들의 설레인 미소에서 확연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이나현 안무가의 논리는 간명하지만 지극히 관념적이면서 신체적이고 감각적인 사유에 근거한다. 오직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춤을 어렵다고 말하는 관객들을 위해 안무가는 예술가의 사명으로 애써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다. 안무가는 연구로, 전시로, 팝업 공연과 체험으로, 렉처 퍼포먼스로 다각적인 노력를 마다하지 않는다. 춤을 환언하거나 담론 아래 사로잡히기 쉬운 드라마투르기 방식이나 안무의 논리를 춤 바깥에서 찾는 안무 리서치와는 정 반대에 서 있는 이나현의 안무철학은 오로지 춤 안에서 춤의 내재적인 원리를 탐구하고 그 원리를 수행하는 사건으로 작품을 실천하는 것에 있다.

이번 〈2025 안무노트 20+
α: 20년의 기록과 도래할 생태계〉 프로젝트는 그녀의 안무철학에 대한 가장 짜임새 있는 설명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설득은 무료 전시 관람객이 이튿날 유료 공연의 관객으로 이어질 만큼 자못 성공적이었다. 내년 3월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있을 유빈댄스의 신작 〈무·율·경 舞·律·景〉도 관객들의 감각과 이해를 일깨우는 데 부족함이 없으리라 기대한다.

이지선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초빙교수와 댄스&미디어연구소 연구원으로 동시대 춤 미학과 비평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실천연구에 관심을 갖고 유빈댄스 〈유빈이콜로지〉 사업에 크리에이티브 퍼실리테이터로서 리서치와 아카이빙에 참여하고 있다. 2004년 국제공연예술제 제1회 젊은비평가상을 수상하였으며, 춤웹진, 몸, 춤과사람들, 춤in 등에 기고하였다.​
2026. 1.
사진제공_유빈댄스 *춤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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