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현장
지난 9월 30일 오후 3시 2025 씨댄스의 부대행사로 ‘무용인이 원하는 정책과 제도’를 주제로 한 정책 토론회가 문화공간너나들이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기조발제에 이어 3명 발제자들의 발표, 그리고 질의응답 순으로 이어졌다. 진행 순서대로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기조발제는 ‘튼튼한 예술 저변을 위한 새 정부 예술정책 방향이란 제목으로 염신규 (사)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이 맡았다.
“정부가 정책을 통해 예술의 성장과 지속가능을 촉진시키는 기본 전제는 직접적 구휼이 아니라, 예술 저변을 튼튼히 하여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상생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라고 전제한 그는 새 정부의 예술정책 방향으로서
① 예술 산업화 정책에 대한 진단과 재조정
② 예술향유 정책의 전환 필요성
③ 단기성과 강박에서 벗어나 진짜 성과에 대한 고민, 이렇게 세 가지를 꼽았다.
예술 산업화 정책에 대한 진단과 재조정과 관련해 그는 “뮤지컬 같은 특정 장르를 제외하면 전반적인 예술 활동의 공공 의존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상업성이 탑재된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의 시장 형성 구상 자체가 달라야 할 것이다. 또한 2010년대 이후 전 세계적 경제 위기 심화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예술향유 정책의 전환 필요성과 관련해서는 예술향유정책의 성과가 미진한 이유로 그는 문화예술향유 사업이 대부분 경제적·사회적 소외계층에 맞춰지면서 국민 전반의 문화적 해득력 증진과 거리가 생긴 점, 전략적 목표설정이 부족하고 목표가 모호하거나 단일 사업에 너무 많은 목표를 담고 있는 점, 예술 자체와 예술시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한국의 예술향유정책도 이제 단순히 예술을 뿌리는 것을 넘어 전략적 목표로 리모델링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단기적인 성과주의의 문제점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공공행정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성과주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이는 예술분야에서 계량화된 단기성과에 집착하면서 정책의 중장기적 파급력을 고민하지 않고, 가시적 성과를 쉽게 올릴 수 있는 정책만 취사선택하게 만들었으며, 개별 단위 정책성과에 집중하면서 정책의 연결성·통합성에 대한 고려가 취약해지는 문제점을 야기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모든 공공정책이 그렇듯 예술정책도 언제나 정답인 정책은 없다. 지금 현재 예술정책의 문제는 손쉽게 몇 가지 얕은 솔루션으로 해결될 수 없고, 다양한 영역에서 유의미한 질문을 더 많이 발굴해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3명 발제자들의 발표는 박성혜(한국종합예술학교 학술연구교수), 윤상은(프리랜서 안무가), 정옥희(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연구소)의 순으로 이어졌다.
‘예비예술인의 권리와 안전 - 무용분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한 박성혜는 ‘예비예술인’이란 “초·중등교육법 및 고등교육법에 따른 예술 교육기관, 무형유산 관련 보유자·전수교육학교, 대중문화예술기획업자, 예술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교육하는 예술인 등으로부터 교육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라며 현재 각종 공공기관에서는 예비예술인들을 29세 이하로 지정, 각종 지원제도와 법률 적용을 시행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예비예술인들과 관련해 당면한 문제로 그들 모두 사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점, 사업 참여자가 아니라 교육의 일환으로 이해한다는 점, 불공정, 위계 폭력, 따돌림, 성희롱,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점, 예비예술가의 인권과 건강권, 학습권이 침해당하고 있는 점, 미성년자 예비예술가에 관한 통계가 없는 점을 꼽았다.
그는 “전문 학교교육을 마친 청년들에게 놓인 취업과 관련 분야 진입 문턱은 높고 무용과 관련된 정규직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대부분 계약직이거나 연수단원 형식, 프로젝트 단기 계약 형태“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예비예술인의 활동에서 성희롱·성폭력은 학교와 직장 내 성폭력 관련 법안과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반면 불공정, 권위 침해에 관한 것은 일반 예술인만 대상으로 삼고 있다”라며 예비예술인에게도 모든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예술인권리보장법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점점 다양해지는 창작 생태계와 우리가 원하는 지원제도’란 제목으로 발제한 윤상은은 프리랜서 안무가로 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무용작업이 최근 연극 플랫폼이나 미술관 플랫폼등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며 국가의 지원 사업 역시 이 같은 변화된 생태계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문화재단의 '서울예술상'은 이미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예술가들을 또다시 경쟁으로 내모는 시스템이다. 이러한 '상주기' 관행은 주류 무용계의 여러 안무 경연 대회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다. 상을 타기 위한 작업은 안무가와 무용수를 번 아웃 상태로 만들고, 작업의 본질적 고민에서 멀어지게 한다”라며 서울무용센터는 설립 이래 아티스트 레지던시 사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레지던시는 창작 공간을 안정적으로 제공하고 결과 부담 없이 리서치 할 시간을 제공한다”며 각 지역 기관들과 협력하여 지역별 무용 레지던시를 더 많이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청년예술가네트워크 지원사업', '창작의 과정 지원사업‘과 서울문화재단 '예술인연구모임지원'이 없어진 것은 창작과 생산에 집중된 지원 제도의 흐름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며 향후 지원제도는 “창작자의 과정을 지원하고 예술 공동체를 지원하는 쪽”으로 시스템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동원된 몸에서 콘텐츠 허브로: 무용예술 공공단체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발표한 정옥희는 “국내 공공무용단 27개 중 다수는 공연사업에 집중하며 연구·출판·아카이브 영역은 매우 미약하며, 연구 사업에선 가벼운 소식지나 간헐적인 기념서적 발간 이상의 심층적·장기적 사업을 찾아보기 어렵고, 아카이브는 전무하다시피 하다”며 공공무용단이 공연 외 영역—특히 연구 영역—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무용단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포퓰리즘의 공연 실적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환원될 지식과 유산을 축적할 의무가 있다”며 “공연의 일회성에 머물지 않고, 그 과정을 기록·보존·연구하여 사회적 지식으로 환류시키는 것이 공공기관의 책무이다. 민간단체가 창작·공연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공공단체는 장기 연구·아카이브 축적을 선도하며 민간이 합류할 수 있는 인프라 및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공공무용단은 공연 중심의 조직에서 ‘예술지식 생산과 공유의 허브’로 전환해야 한다. 공연은 춤 콘텐츠의 종착지가 아니라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조직 구조 역시 폐쇄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외부 안무가, 예술가, 연구자, 지역 공동체, 국제 파트너 등과 긴밀히 협력하는 개방적 네트워크 플랫폼으로 변화해야 한다. 무용단의 활동은 공연예술의 범위를 넘어 교육, 관광, 지역재생, 사회복지 등 다양한 영역과 연계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그는 전문 연구 인력의 제도화, 예산·인프라 확충, 정책 연계 및 협력 강화를 꼽았다. 이어 “공공무용단의 연구 강화는 단순한 업무 확장이 아니라 공공예술기관으로서의 존재 근거를 재정립하는 일이며, 연구는 공연의 부속이 아니라 그 지속을 가능하게 한다. 공공무용단이 공연 중심 패러다임을 넘어 연구와 아카이브, 지식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관으로 전환할 때 비로소 공공성의 확장—책임성, 지속가능성, 사회적 공유 가치—이 실현될 것이다”고 주장했다.

토론 1: 예비예술인의 권리와 안전
윤지현(질의)
브니엘예고 학생 3명의 죽음 앞에서 무용계가 침묵한 이유는 모두가 이 구조에 연루된 공모자이기 때문이다. 박성혜 선생님의 발제는 무용 교육 구조의 폐해를 이해하고 해체·재건의 기초자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가지 질문을 드린다. 첫째, 순수무용과 실용무용의 이분법이 여전한 현실에서 실용무용 분야 예비예술인을 포함시킨 취지와 타당성을 다시 강조해 달라. 둘째, 예술인권리보장법 개정 시 예비예술인의 지위와 안전을 위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법 조항은 무엇인가.
박성혜(답변)
무용의 법적 정의에는 장르 구분이 없다.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만을 대상으로 한 법은 보편성이 떨어져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다. 최근 국회에 발의된 무용예술진흥법 일부 조항이 무용인을 특정 장르로 한정한 것은 문제다. 모든 법안은 이미 다양한 춤을 추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순수·실용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현재 성희롱·성폭력에만 예비예술인을 포함하고 있으나, 이제는 창작 주체로 활동하는 현실을 반영해 권리와 안전 전반을 보장해야 한다. 특히 각종 공공지원 사업에 예비예술인이 참여 주체로 포함되고 있는 만큼, 저작권과 창작 주체로서의 권리, 안전 보호 체계가 법적으로 명확히 세팅되어야 한다.
토론 2: 다양해지는 창작 생태계와 지원제도
국은미(질의)
대학 중심 무용계와 지원 심사의 대표성 문제, 번아웃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에 공감한다. 나는 2001년부터 2019년까지 거의 매해 지원을 받았으나, 2019년 이후 지원을 못 받으면서 자생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예술교육과 힐링센터 운영으로 다른 방식의 창작을 이어가고 있다. 지원 제도는 계속 세분화되고 있지만, 같은 과정 중심 사업도 경험에 따라 평가가 엇갈린다. 결국 행정의 섬세화를 위해서는 지원 기관과 예술가 간 피드백이 필요하다. e나라도움 데이터를 활용한 정례적 피드백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윤상은(답변)
e나라도움 데이터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서울문화재단은 현장·전문가·관객 평가 데이터를 서울예술상 심의나 재공연 참고자료로 활용하지만, 제도 개선을 위한 열린 피드백 구조는 아니다. 입시 구조와 대학 내 장르 화, 무용 간 구분이 바뀌지 않으면 다양성이 작동하기 어렵다. 지원 사업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외부 평가에 휘둘리지 않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자생력과 동료 간 피드백, 건강한 공동체 형성이다. 지원 제도를 1년짜리 성과 중심이 아닌 개인의 리듬으로 재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토론 3: 공공무용단의 패러다임 전환
장지영(토론)
정옥희 교수의 발제는 공공무용단 논의에 새로운 학술적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동원된 몸'이라는 개념이 공공무용단 창단 시 무용계의 주체적 요구와 예술적 성과를 지나치게 경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국립무용단 등은 무용가들의 적극적 창단 운동으로 만들어졌다. 공공무용단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여전히 공연을 만들어 관객에게 보이는 것이며, 현재 이 기본 미션 수행에도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콘텐츠 및 연구 사업은 패러다임 전환이라기보다 스펙트럼 확대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외부 연구기관과의 연계·협력을 통한 개방성 확대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정옥희(답변)
'동원된 몸'은 부정적 의미만이 아니라 능동성과 수동성이 뒤섞인 복합적 개념으로 사용했다. 푸코적 관점에서 개인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제도적 구조 속에서 수동적으로 작용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립무용단 창단에는 무용계의 자발적 운동과 국가적 필요, 사회적 위상 제고 욕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공공무용단을 인력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의 한계다. 예산 대부분이 인건비로 소모되고 청년 예술단원 제도도 고용 문제 단기 해소 역할을 한다. 이제는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연을 만들 것인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 투자가 필수적이다.
종합 토론
박성혜(질의)
염신규 선생님께 질문 드린다.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춤 영상이 활발히 유통되지만 안무 저작권은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경제적 이익은 플랫폼이 가져가고 창작자에게는 돌아가지 않는다. 정부 정책은 경제적 성과에만 집중할 뿐 플랫폼 독점이나 창작자 권리는 다루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견해를 듣고 싶다.
염신규(답변)
문화체육관광부는 1990년대 이후 플랫폼 키우기, 즉 망사업자 중심의 산업 육성 방식으로 성장했다. 과거 음원 저작권 문제처럼 처음 설계 단계에서 창작자에게 불리한 수익 배분 구조가 고착되었고, 이는 게임·영상·음악 등 전 문화산업에 걸쳐 나타난다. 무용은 더욱 취약한 위치에 있다. 저작권자 보호보다 산업 확장 중심의 구조는 각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개선 노력을 해야 할 구조적 과제다. 예술정책을 보는 시각이 협소한 것도 문제다. 다양한 층위와 시각이 필요하며, 저작권 문제를 포함해 예술과 예술인을 바라보는 시각의 교정 자체가 정책 전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윤영(질문)
예비예술인이 기성 예술인의 수익 도구로 전락하는 현실, 청년 예술인의 열정 페이 문제에 공감한다. 박성혜 선생님께 입시 문제와 콩쿠르 문화 개선 방안을, 윤상은 선생님께 실기 비중 축소 등 입시 전형 변화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
박성혜(답변)
입시 시장은 창작 시장보다 크며, 상당수 무용인이 이 구조에서 생계를 유지한다. 브니엘예고 사건은 입시 시장 위기가 지역부터 시작돼 중앙으로 번지면서 경쟁이 심화된 결과다. 가장 시급한 해결책은 입시 전형의 다각화다. 콩쿠르나 실기 시험 하나로만 평가하지 않고 다양한 역량과 가능성을 인정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입시 시장에 직접 연관된 사람들의 생계 문제와 얽혀 있어 무용계 내부에서만 해결하기 어렵다. 입시 시장의 양성화도 필요하다.
윤상은(답변)
모든 무용인이 입시 과정의 생존자일 수 있다. 대학 내 무용 교육 구조에는 여전히 강한 권력이 존재하며, 교수의 작품에 참여하는 것부터 작업 허락을 받아야 하는 구조가 남아 있다. 스스로 다양한 세계를 개척하기보다 권력과 시선 속에서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 현실이 전근대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구조를 벗어나는 방법은 반항하거나 뛰쳐나오는 것밖에 없었다. 모두가 알지만 공공연하게 말하지는 않는 부분이다.
참석자(익명) 발언
브니엘예고 사건 탐사 결과 입시 문제는 단일 구조가 아닌 순환 구조라 한 부분만 바꿀 수 없다. 결국 강사 문제에서 막혔다. 대학 졸업생 대부분이 다시 입시 무용 강사로 돌아가는 구조다. 법이나 제도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무용계 내부의 사회적 합의와 아비투스가 바뀌어야 한다. 구전심수 방식은 좋지만 스승의 인격이 확보되지 않으면 희생자가 나온다. 지원 제도가 절대적 힘을 갖는 폐쇄적 구조에서 비평도 영향 받는다. 무용계 비평은 원고료조차 없어 의욕을 잃고 있다. 미술계는 작가가 평론가에게 정당하게 원고료를 지급하지만, 무용계는 이를 매문 행위로 본다. 콘텐츠를 평가하고 언어화하는 비평의 수준이 함께 올라가지 않으면 콘텐츠도 성장할 수 없다.
이날 토론회는 이종호(씨댄스 예술감독)의 발언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는 “비평 문제가 매우 중요하며 올해 내로 별도 논의가 필요하다. SNS와 블로그 확산으로 비평의 힘이 희석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비평의 역할과 방향에 대한 본격 논의가 없었다. 현장 비평은 작품 평을 넘어 무용계 윤리, 정책, 제도까지 그 대상 영역을 포괄할 수 있다. 오늘 논의를 연말이나 내년 초 확장판으로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씨댄스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현장 자료를 <춤웹진>에서 녹취 정리하여 주요 내용을 발췌 소개한다. - 편집자)




